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인생은 나의 일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인생은 나의 일

작성자 블라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인생은 나의 일

블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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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tulr0bdt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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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외로움이 느껴지는 공간..

섬에는 담장은 있어도 대문은 없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사실인지 검색해 보니, 제주도가 삼다도(돌, 바람, 여자)와 함께 삼무도(거지, 도둑, 대문)로 불린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제주도가 아니라도 섬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지난 연말 다녀온 섬을 떠 올려보니 거지는 물론이고 도둑도 있을 수 없는 곳이었고, 대문 또한 굳이 만들 필요가 없었겠다 싶었습니다. 섬은 외로움과 함께 정해져 있는 공간에서 '관계'로 엮여 있는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벌써 새해도 1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작년 말 다녀온 섬이 떠올랐습니다. 연말 휴가를 어떻게 보낼까 하다, 섬에 들어가서 며칠을 보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에서 그나마 가까운 덕적도를 추천받았으나 검색해 보니 섬이 커서 도시 생활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더 작은 섬으로 알아보다 캠핑성지로 불리는 굴업도를 발견했지만 캠핑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민박을 위해 그 근처에 있는 '백아도'로 결정하였습니다.

몇 주 전부터 준비를 하면서 민박 두 곳 중 섬의 접안시설과 더 먼 곳에 있는 민박집으로 연락을 했으나, 손님도 없고 한 명 식사 준비하는 게 어렵다며(사장님이 그 기간 동안 인천으로 나갈 계획이라며) 결국 다른 민박집으로 연락을 했고, 그곳마저도 사장님이 인천으로 나갈 예정이지만, 다행히 방을 쓸 수 있다 하여 이틀의 먹거리(먹거리라 해 봤자, 3분 요리, 라면, 캔으로 된 음식들)를 챙겨 떠났습니다. 두 사장님 모두 연말에 춥기만 하고 볼 것도 없는데 굳이 여길 왜 오냐며, 주민들도 반 이상은 육지로 간다 하였지만, 오히려 이런 게 신기하고 궁금해졌습니다. 3-40 명 주민 중 육지로 반이 나가면 20명 정도가 있는다는 건데 주민들은 만날 수 있을지, 어떤 얘기들을 들을 수 있을지, 난 뭘 느끼고 얻어갈지 기대반 걱정반으로 더 조용하고 잘 쉬다 올 수 있겠다 생각하며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직행으로는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였지만, 작은 섬이다 보니 5곳의 섬을 경유해서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는 배였습니다. 배는 생각보다 깨끗했습니다. 10여 년 전 제주를 갈 때 배를 타보고 오랜만에 장거리 배 여행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차량을 10대 정도 실을 수 있는 크기에 160여 명의 탈 수 있는 배. 엔진의 소음은 생각보다 컸고, 엔진의 진동이 그대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배 옆과 뒤에는 배가 지나며 생기는 파도와 물결과 포말이 바로 보였기에 세찬 바닷바람에 몸이 조금만 밀려도 떨어지지는 않을까 무섭기도 했습니다.

먼지와 안개가 껴 아쉬웠지만, 바다물결에 비치는 윤슬은 볼 수 있었습니다. 문갑도-울도-지도-백아도-굴업도(총 3시간)를 거쳐 다시 인천으로 귀항하는 배에는 12월의 마지막 날들이라 그런지 승객은 열댓 명 정도였고, 각 섬마다 주민들로 보이는 2-3명이 내리고 타는 정도였습니다. 3층 갑판에 테이블이 여럿 있었는데 여행철이면 여행객들로 북적북적, 시끌벅적할 것 같았습니다. 영상 7도의 날씨였지만 겨울 바닷바람에는 1분도 버티기가 힘들어 조금 더 바람을 쐬고는 객실로 오가기로 반복하며, 뱃여행을 즐겼습니다. 섬마다 접안해서 승객을 태우고 내리는 모습도 흥미로웠습니다.

경유하는 섬에서는 시간에 맞춰 준비해야 하는데, 잠이 들거나 해서 내리지 못하면 다시 인천행이었습니다. 좌석에 앉았을 땐 몰랐는데 누워서인지(마침 그즈음에 파도가 거세져서인지) 속이 울렁울렁한 게 놀이기구 탄 기분이 들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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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

사장님이 안 계셔서, 민박집 입구를 찾지 못했습니다. 인천에 있는 사장님과 통화를 하니, 옆집에 계신 아주버님(?)께 연락을 드리겠다며 전화를 끊었고, 옆집에서 어르신이 한 분 나오시더니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간단히 점심을 해 먹고(밥 김자반 참치 고기), 물을 끓이고는 동네를 둘러보았습니다. 몇몇 주민들을 마주쳤지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습니다. 지나가시는 어르신 한 분이 ‘피서 왔느냐’ 물어보셔서 반가웠지만 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산을 타기 위해 올라가다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께 방향을 물어보니, 자세히 설명은 해 주셨지만(당신은 못 가봤다 하시며) 결국 올라가다 길을 찾지 못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시 내렸던 선착장으로 가보니 올라가는 길이 있어, 30여 분의 등산 후에 다 무너져 버린 봉화대를 둘러보고는 내려왔습니다. 다시 출발점으로 내려와 바다를 보며 파도 소리를 들으며 섬을 느껴보았습니다. 7도의 기온이라 봄날 같은 날씨였지만 미세먼지는 나쁘지 않다는데 안개 때문인지 뿌연 하늘이 좀 아쉬웠습니다. 조그만 섬에, 아무도 없는 이곳에 앉아 바다와 하늘과 바람을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점심에 해 놓은 밥 한 공기에 밑반찬 몇 개로 저녁을 해치우고, 해가 저무는 섬을 보고자 다시 한번 동네를 둘어보았습니다. 역시나 주민을 만나지 못했고 그렇게 숙소로 돌아와 어두워진 섬 한편에서 하루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자려고 누웠는데 섬 여행은 하루로 충분한 것 같아 급히 계획을 변경하여 내일 돌아갈 배편 예약을 하였습니다. 하루 더 있는 게 큰 의미가 없을 듯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있는데, 민박집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지금 배를 타고 들어가는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내일부터 며칠간 배가 뜨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오늘 나가는 게 좋겠다 전해주었습니다(배웅도 친척 통해서 도와주겠다 하시는 걸 괜찮다 하였습니다. 섬에 몇 분 계시지 않은데다 모두가 가족이며 친척으로 연결돼 있는 듯 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이었지만, 마침 안 그래도 오늘 나가려 했다는 얘기와 함께 전화를 끊었는데, 왕복으로 예매를 한 사람들에게는 하루 전에 이런 안내는 해 줘야 하는 거 아닌지... 좀 어이가 없었습니다. 나오는 길에 만난 주민에게 물어보니 보통 당일 오전에 문자로 알려준다는데, 참 대책 없는 안내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나오지 못했다면 일주일은 섬에 갇히는 상황이 될 뻔했는데...

그냥 쉬겠다는 목적으로 왔기에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짧았던 섬에서의 하루는,

섬에서 듣는 파도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와 겨울햇살 그리고 사람도, 차도 없는 곳에서의 걷기로 마음이 조금은 평온해진 것 같았습니다. 섬에서 한평생을 보낸 이 분들에게, 이제 몇 사람 남지도 않고 만나는 사람도 한정돼 있는 이 분들에게 '인생'이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의미이며 의미였을까 궁금했지만, 인생에서 꼭 무슨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무슨 의미를 찾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도 하고 부질없는 일인 것도 같고,,,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태어나보니 이 세상이었고,

태어난 김에 사는 것이고,

사는 김에 후회 없이 재밌게 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완벽하지 않아도,

꼭 무엇이 되지 않아도,

꼭 무엇을 이루지 않아도

'인생'이라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끊임없이 잔잔한 파도를 보면서는,

나뭇잎이 흔들리는 이유가 바람 때문이 아니라,

나무와 나뭇잎의 광합성과 같은 생존활동 때문이라는 재밌는 이야기에 비쳐봤을 때,

파도가 치는 이유는 지구와 달의 인력 때문이 아니라,

바닷속 수많은 생물들의 움직임 때문이 아닐까 라는 가설도 가능치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도는 쉬지 않는다.

파도가 쉬지 않는 것은 바다가 쉬지 않기 때문이다.

파도는 바다의 일이다."

(김연수 작가의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이라는 글귀가 생각나 한번 만들어봤습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인생은 나의 일이겠다 싶네요.

 

외로운 섬에서의 홀로 보낸 낯선 하루.

매년 연말이면 홀로 떠난 바다 여행(작년엔 서해, 재작년엔 남해, 3년 전엔 동해)이 헛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하의 날씨가 이어진 요 며칠, 겨울바다의 기운이 그리워졌습니다.

이제 다시, 2026년의 2월이 시작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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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