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밥
작성자 블라디
까치밥
이사 온 빌라 주차장 한 켠에 화단이라고 하기엔 크고, 정원이라고 하기엔 작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곳에 나무 한 그루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무슨 나무일까 궁금했던 찰나에 감이 열리는 걸 보고 감나무임을 알았습니다. 누가, 언제(빌라가 15년 됐으니 15년 전에 심겨지지 않았을까 추측), 왜(사람이 사는 곳에는 감나무가 있어야 한다는 건축주의 신념?) 심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겨움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관리가 되지 않으면 감이 익을 무렵, 주차된 차에 떨어지면서 차와 바닥은 더러워지기 마련인데, 빌라의 누가 돌보고는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마침, 가을이 익어가면서 감도 주황색을 선명히 드러내기 시작하던 무렵,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올라가는데, 감이 대여섯개씩 담긴 봉지가 집집 현관 앞에 놓여 있었습니다. 누군가 그 감나무의 감을 따서 나눠준 것이었습니다. 생각지 않았던 선물에 '정'이 느껴졌습니다.(나중에 반상회를 통해 누가 나눠주었는지 알게 되었는데, 빌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상회도 하고, 감도 나눠주는 빌라로 이사를 와서 뿌듯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기분도 좋고, 잘 익어보이는 감이 먹음직스러워 바로 하나를 깎아 맛을 보았지만,,, 홍시를 해 먹는 대봉감이었기에 역시나 '떫었을' 뿐이었습니다.(요즘 아이들은 '떫다'는 맛, 표현, 느낌을 모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바로 뱉어내고는 홍시를 만들기 위해 접시에 잘 올려놓고, 잘 보이는 곳에 두었습니다. 2-3주가 지나 하나, 둘 물렁해지더니 역시나 잘 익은 홍시가 되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직 2개는 딱딱함이 남아있어 2주는 더 지나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조금 늦은 출근을 하면서 동네를 지나고 있었는데, 저 앞에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오면서, 꼭대기에 감 하나가 걸려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뭐지? 왜 안 땄지?'했는데, 그 순간 '아! 까치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혹시나, 집 감나무에도 남아있는지 궁금해서 집에 연락을 해보니, 역시나, 하나가 남아있었습니다.
'까치밥'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도 살아갈 새들을 위해 남겨 놓은 감 하나.
인간들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새 들과도 공생하기 위해 남겨 놓은 감 하나.
마지막 열매 하나까지 모두 가지겠다는 욕심 보다는, 함께 살아가자는 나눔의 미덕이 담겨있는 감 하나.
시멘트로 가득하고 답답한 공간에서, 애쓰며 가꾸고 돌보지 않았지만 잘 자라게 해 준 하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남겨 놓은 감 하나.
누군가 이런 생각 없이, 당연히 하나 남겨놔야지 하는 뇌리에 꽂혀있는 무의식으로 남겨진 '까치밥'일 수도 있지만, 각박한 도시속에서도 한국인의 '정'이라고 하는 것이 아직까지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사를 와서 경험한 감 나누기, 반상회, 까치밥의 발견은 아직도 우리에겐 '함께'라는 ‘정겨움‘이 남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싯구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있는 우리에게 '까치밥'이 위로를 해 주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