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보통. 평범.
작성자 블라디
평범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약간. 보통. 평범.
소노 아야코 라는 일본 작가가 있습니다. 서점에서 우연히도 책 제목(무인도에 살 수도 없고)과 디자인(미니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반 책자크기보다는 작은, 제 한 손에는 들어올 그렇게 두껍지 않은 크기의 책자)을 보고 손에 집어 들었는데, 인간의 성숙에 관한 이야기를 축소지향의 일본인 특유의 짧은 글들로 표현하면서 그 속에 많은 것들을 함축한 책이라 맘에 들었습니다. 책 내용마저 괜찮아 팬이 될 것 같았습니다.
우연히 또 한 권의 책을 만났습니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디자인은 위의 책과 동일하면서 겉표지는 한 여성이 수영장에서 걷는 모습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제목과 일치되지 않아 더 흥미로웠습니다. 제목 때문에 집어든 책인데 작가 이름이 낯익어 찾아보니 소노 아야코 였습니다. 이 책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쓴 에세이 였는데, '약간'이라는 주제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약간의 도움이 누군가에겐 엄청나게 큰 행운일 수 있다’
이 책에서 예로 든 것은 유모차를 가지고 계단을 올라야 하는 아이의 엄마에게 한 청년이 '약간의 도움'(유모차를 들어준)을 주었다는 것. 그 청년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약간'의 도움이었지만, 그 아이 엄마에게는 그 하루 중 가장 큰 행운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일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당연히 했어야 할 평범했을, 그냥, 보통의 행동들. 그래서 어떤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을 행동들. 그런 일들이 도움을 받았던 이들에게는 로또 당첨보다 더 행복했고 꼭 필요했던 일들이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근데 ‘약간’은 어느 정도일까요?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라는 책을 10년 전에 구입해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좋아하는 '보통'이라는 단어가 있고 겉표지가 노란색으로 되어 있어 눈에 잘 띄기도 해서 구입했던 것 같습니다. 저자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지만, 요즘 서점에 가보니 에세이 코너에 다시 올라와 있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에세이 이기에 저자의 여러 이야기와 생각들이 담겨있어 사실 내용이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약간’은 ‘보통’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엄연히 뜻이 다르지만 두 단어 모두 부사와 명사로 사용되기도 하고, 사전적 의미로 ‘약간’은 정도나 양 따위가 많지 않음을, ‘보통’은 특별하거나 드물지 않고 평범한 것을 의미하는데요.. 적당함을 얘기하려는 데에는 왠지 어울리는 것도 같습니다.
‘약간’은 어느 정도일까라는 질문에 ‘보통 정도’ 라고 답하면 어색할까요?
그러고 보니 ‘보통’을 설명하는데 나온 '평범'이라는 단어가 또 눈에 띄네요. 예전에 제가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는데 그 때 지은 블로그 이름이 '평범한 한 사람의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 였습니다. 제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았고, 평범이라는 단어가 왠지 안정감을 주기에 좋은 듯 하여 그렇게 지은 것인데요. ‘보통’이라는 단어와 또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 사람 어때?'
'그냥 평범해. 보통 사람이야.'
평범한 사람은 특별한 것이 없는, 멋없는 사람인걸까요? 그래도 저는 평범한, 보통인 사람과 그런 것들이 좋습니다.
'그 사람 어때?'
'약간 멋이 없긴 하지만, 약간 행복한 사람이야.'
요즘 인기 있는 일본 작가 ‘마스다 미리’의 에세이 만화책 ‘오늘의 인생2’를 쓰윽 읽었습니다. 만화책이다보니 가볍게 읽을 수 있었는데요(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에서 느꼈던 일들을 스케치와 짧은 글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마트에 가는 길에 우연히 중학생 두 명이 길거리에서 만나 대화나누는 ‘평범’한 일상을 보았는데, 단순히 그 장면에서 행복함을 느꼈다는 이야기.
‘약간’의 도움이 누군가에겐 최고의 행운이 되고,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보통’ 사람들의 하루하루.
우리네 인생은 그런 것 같습니다. 영향력 있는 정치인들처럼, 유명한 연예인처럼, 큰 기업의 CEO처럼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며 살지 않아도,
그냥 평범하게 살아도,
보통의 삶을 살아도,,
약간의 행동을 더하거나 덜하더라도,,,
이미 우린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비록 두꺼운 신문 한 페이지 어딘가에 한 줄 남겨지지 않는 일상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