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니 괴물로 변신한것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이제 갓 학교생활을 시작 한 1학년 학생이 담당교사한테 살해된 인류역사 이래 초유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가해자인 40대 교사는 자신도 자해를 했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정작 죽어야 될 사람은 살고 살아야 할 사람이 죽은 셈이다. 물론 표현이 거시기한 것 같다고 볼 수있지만 나이순으로 보면 누가 먼저 저승사자와 동행해야되는지 감이 올 것이다. 헌데 문제는 그 교사가 치료받고 니온다고 해도 심신미약을 감안해 중형은 면할 가능성도 배제 하지 않을거란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발견할 수있다. 이런경우는 격리를 해 야하나, 치료감호를 해야하나를 두고 고민한다. 예컨데 마약중독자에대해 처벌을 하느냐 마찬 가지로 치료가 필요하냐에 대한 논쟁이다. 어느 나라에선 마약사범은 사형인데 우리나라는 이에 대해 넘 관대한것 아니냐는 것이다. 누군가는 해당 교사도 현 사회가 초래한 피해자 라고 두둔하는 목소리도 있을것이다. 일리가 아주 없진 않지만 분명 문제임에 틀림없다. 요즘 학생 들이 스승 알기를 개오줌으로 알다못해 무력행사 까지 일삼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러니 스승들이 스응질이 나 아이들에게 꾸중을 하거나 손찌검을 하면 학부모의 민원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로인해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도 증가추세지만 이조차도 극심한 취업난에 주저하 기도 하는데 그러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사람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기때문이다. 한편에서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포위된 어른들 잘못이라고 한다. 그런사람들은 조국과 민족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 안위나 이익을 위한다. 그러다보니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어려움에 처하면 못견디고 신마적이 된다는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접하면서 과연 을씨년스런 한해가 될 것 같다고 좌절할 분위기다. 그러나 여기서 되 돌아봐야할 게 분명 존재하다. 작금의 상황을 초 래한것이 뭐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