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주의를 빼앗기는가
작성자 pwanderlust
소셜 딜레마
우리는 어떻게 주의를 빼앗기는가
인스타그램 2시간, 유튜브 2시간, 카카오톡 30분. 4월 둘째 주 나의 앱 사용 평균 시간이다. PC 사용 시간까지 합치면 이 시간은 대략적으로 6시간 정도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의 약 1/3을 미디어와 함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수치를 보고 사실 깜짝 놀랐다. 내가 이 정도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많다는 사실이 믿기지도 않았다. 하지만 스크린타임에 기록된 수치는 거짓말하지 않으니까 이 놀라운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주머니에 있는 스마트폰을 꺼내서 단순히 손가락 몇 번만 움직이면 미디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진입 장벽이 낮고, 접근성이 매우 높으며, 소셜 앱들이 제공하는 컨텐츠의 중독성이 우리의 뇌를 미디어에 종속시키게 된다고 느꼈다. 미디어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속에서 간과했던 부분들을 중심으로 나의 미디어 사용에 대한 성찰을 하려고 한다.
일상에서 미디어는 우리에게 비가역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미디어 앱들이 나오는 시점부터는 '실시간'과 '연결'이라는 키워드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가치로 자리매김하였다. 이 두 가지 특성이 가져온 거대한 사회적 변화는 우리가 그 이전으로 절대 회귀하지 못하는 시대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친구의 어머니가 아프셔서 급하게 장기 기증이 필요할 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주는 보기 힘들어진 친구의 소식이 궁금할 때,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기존의 방식보다는 훨씬 더 신속하고 간편하게 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페이스북에 장기 기증이 절실하니 꼭 도와달라라는 게시물을 올려 장기 기증자를 찾는 데 성공한 사례들이 여럿 있었고, 소식이 궁금한 친구는 인스타그램 팔로우만 누르면 그 궁금증이 해소된다. 또, 신문, TV 뉴스와 같이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전통적인 미디어와 다르게 이제는 소비자도 정보를 생산,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양방향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정보의 생산 주체가 많아졌고 절대적인 양도 방대해졌으며, 소비자 또한 각자의 선택으로 정보를 수용하는 이른바 정보의 바다(sea of information)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렇듯 '실시간'과 '연결'로 파생되는 편리성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기에,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기술이 내려준 고마운 동아줄로 여기며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때로는 편리성을 이유로 잡고 있는 동아줄이 역으로 우리를 조작(manipulate)하는 마리오네트에 연결된 줄과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자유 의지대로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고 있을까? 소셜 미디어 앱을 시작하게 된 태초의 원인은 '실시간'으로 빠르게,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데이터들을 보더라도, 내가 깨어있는 시간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는 시간들이 나에게 유익한 시간이었나 스스로 되묻는다면 그렇지 않았다. 내가 꼭 알 필요가 없는 혹은 궁금하지 않은 사람들의 정보들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었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SNS에 나의 일상을 공유한 적도 있고, 지나보면 무의미하지만 그 순간에 역치 이상의 자극을 위해서 숏폼 컨텐츠를 끊임 없이 소비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였다. 마치 영화 토이스토리에 나오는 돼지 캐릭터가 재미있는 채널을 찾아 리모콘을 빠르게 조작하듯, 나도 별 생각 없이 앱을 사용하다보니 그 모습에 수렴되어가는 것이 안타까웠고 허무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누구나 연결되고 싶어하고, 집단 속에서의 소외감이나 배제를 받는듯한 느낌을 절대 버티지 못한다는 취약점(Vulnerability)이 있다. 그들은 자신이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고, 이를 재확인하며 안심하려는 욕구(Social Assurance Need)와 다른 사람과 "계속" 연결되어져 있고 싶은 욕구(Connection Need)를 동시에 지니고 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대부분 SNS를 사용하고 있다면 한 개인은 그 경향성에 동조한다. 따라서 설사 SNS의 중독적인 측면을 인지하고 있더라도, 남들이 모두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그 플랫폼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그들의 취약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SNS 자체가 고도로 중독적이게 설계되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사용하고 있는 경우다.
Facebook, Instagram, Twitter와 같은 소셜 미디어 앱들은 결국 빅텍 기업이 운영하는 앱이자 상품이다. 당연하지만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윤 추구이다. 그러나 우리는 소셜 미디어 앱들을 사용하기 위해서 어떠한 값도 지불하고 있지 않다. 이 회사가 우리에게 절대 '공짜로' 이 앱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If you're not paying for the product, you are the product.
너가 상품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지 않다면, 너가 상품이다.
Tristan Harris (전 Google Former Design Ethicist, 현 Co-founder & Executive Director of the Center for Humane Technology(CHT)
이 유명한 말은 <Social Dilemma>라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되는 중요한 내용이기도 하다. 빅텍 기업들이 돈을 버는 방식은 수많은 이용자들을 기반으로 한 개인화된 광고의 노출이다. 광고의 노출 빈도, 시청 시간을 기준으로 광고사는 빅텍 기업들에게 값을 지불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당신에게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오직 하나다. 당신의 취약점을 활용해 앱 이용 시간을 늘려서 당신이 광고에 노출될 수 있는 개연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 행동 유도를 위해 기술을 고도로 발전시킨 것이고(Technology affordance), 그 기술의 총체가 '알고리즘(Algorithm)'과 '맞춤형 알림(Personalized Notification)'이다. 나는 왜 토이스토리 영화 속 돼지가 리모콘을 빠르게 돌리듯 끝이 없는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는가? 이는 빅텍 기업들이 나의 취약점을 간파하고 사회공학적 기법을 사용하여 나를 마리오네트처럼 조작하였기 때문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Meta나 Instagram 같은 앱들이 사용하는 추천 알고리즘은 미지의 비밀스럽고 위험한 기밀사항으로 여겨졌었다.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었고, 어떤 작동 원리를 갖는지도 몰랐기 때문에 기업과 소비자 간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어떤 점에서 위험한 것인지는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정보의 바다 시대에서 수용자가 쏟아지는 정보들에 대한 통제를 잃는 순간, 정보 자체는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이는 테트리스 게임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우리가 테트리스에서 어떤 블록이 어떻게 내려오는지에 대한 예측을 하면서 게임을 플레이하면 점수를 얻어내지만, 갈수록 블록이 내려오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내려오는 블록들의 속도에 대한 통제를 잃게 되면 그 블록이 어떤 모양이던간에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블록의 절대적인 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가 각 블록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는 통제력을 지니는게 훨씬 더 중요하다. 결국 내가 어떤 정보와 컨텐츠에 주의를 기울이느냐가 현대 사회에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특히 빅텍 기업들에게는 사람들의 주의(attention)가 곧 돈이 된다. 이러한 원리가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 개념이 나오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추천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주의를 취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정보의 홍수 속에서 통제력을 잃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추천 알고리즘은 참된 것, 유용한 것을 전달하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앞서도 말했지만 알고리즘의 기술 발전 방향은 컨텐츠의 진위, 유용성, 유익성을 필터링하는 '소비자 중심'이 아니라, 어떤 것이든 소비자의 주의를 빼앗는 것이 우선시되는 '수익 모델 최적화 중심'이다. 속된 말로 '어그로는 끌었지만 너한테 좋을 수도 안 좋을 수도 있어. 그치만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중요한 건 넌 어그로가 끌렸다는 사실이야.'라고 기업이 소비자에게 익살스럽게 말하는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내가 소비하는 컨텐츠의 특성을 모델이 학습하고 점점 더 관련성이 높고 나의 주의를 빼앗는 방향으로 알고리즘을 강화시킨다. 우리는 끝내 정보의 비대칭성 앞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취약하다. 뇌가 수많은 정보를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지 않고, 슈퍼컴퓨터 몇 대가 당신을 겨냥해 만드는 개별 맞춤형 알고리즘과 맞춤형 알림 앞에 뇌는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다. 소셜 미디어를 열심히 사용하고 컨텐츠를 소비하는 것은 더 오랫동안 우리 자신을 그곳에 가두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이제 다시 한 번 반문해본다. 기술이 내려준 고마운 동아줄을 잡은건 우리지만 스스로 잡은 줄이 되려 우리를 조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소셜 미디어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장점과 장점이 아닌 것은 명백하게 구분해야 한다. 유익한 것과 유쾌한 것은 다르다. 유쾌한 것에 속아 자아 통제권을 잃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그들에게는 상품임을 인지하고, 내가 제공받는 컨텐츠와 정보는 '현재'의 내가 좋아할만한 추천 요소임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를 반향실(Echochamber)에 가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회는 제도를 정비하고 새로운 학문 분야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디자인 윤리학(Design ethics)과 인도주의 기술 전환(Humane technology)이 현재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분야겠지만 모든 개발 분야에 있어서 갈수록 역할이 대두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빅텍에서 나온 일부 개발자들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며 인도주의적 기술 개발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Tristan Harris가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Humane technology는 디지털 인프라를 근본적으로 재창조하는 데 전념하는 방향을 가지고 있다. 집단 웰빙, 민주주의 및 공유 정보 환경 지원하는 인도적 기술로의 포괄적인 전환을 추구한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 자동차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비가역적인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속도, 안전, 편리성 측면에서 자동차 시대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탔던 사람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대변화였다. 그러나 차량이 어느 정도 보급되었었던 20세기 초반부터는 교통사고가 급증했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 보는 유형의 사고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누구도 자동차를 없애자는 극단적인 러다이트 운동 비슷한 주장을 하지는 않았다. 인류는 문제 상황에 맞추어 신호 체계, 교통 규제, 교통법을 만들어냈다. 현 상황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로의 회귀가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서 개인과 사회가 모두 노력한다면 장점은 극대화시키되 단점은 최소화된 더 나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