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asis - Supersonic 전주가 흐르면,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Oasis - Supersonic 전주가 흐르면,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작성자 이중생활자

Oasis - Supersonic 전주가 흐르면, 그리고 다큐멘터리까지

이중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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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이중생활자 이용은이다. 평일 오전 9시부터는 방송국에서 시사 콘텐츠를 만들고 저녁 6시 땡하면 뉴스를 뺀 다른 모든 콘텐츠를 본다. 얼마 전 내 생애 가능하지 않을 것 같은 일이 일어났다. 바로 Oasis 재결합(“This is it, this is happening”). 이를 기념해서 3주째 오아시스 음악만 듣는 중이다. 그리고 지난 2016년에 개봉했던 오아시스 다큐멘터리 <Oasis: Supersonic>를 다시 봤다.

2016년 개봉 당시 이 다큐를 영화관에서 봤다. 내 인생의 암흑기가 막 시작되고 있었고 그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알지 못한 채 오아시스 음악에 또 한 번 자아를 의탁하려는 목적이었다. 큰 스크린을 곁들인 영화관 사운드로 음악을 들으려던 것뿐이어서 만족스럽게 상영관을 나왔다. 당연히 다큐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덕분에 이번에는 처음 보는 것처럼 다시 볼 수 있었다.

Oasis는 1991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결성됐다.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는 1994년에 나왔다. 다큐는 오아시스 결성부터 시작해서 1996년 전설의 넵워스 공연까지 3년여간의 타임라인을 따라간다.

오아시스를 잘 모르는 머글들도 <Don’t look back in anger> 정도는 안다. 누군가 내게 오아시스 음악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모든 곡이 명곡이니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으라.”고 말하곤 하는데(진심임) 그래도 딱 한 곡을 꼽자면, <Talk tonight>이다. 다큐에 노엘이 이 노래를 만들게 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온다. 1994년 미국 LA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게 된 오아시스. 미국 진출과 성공 여부는 밴드의 기점이 될 만큼 중요한데 그 와중에 록스타답게(?) 마약을 하다가 공연을 망친다. 멤버들에게 화가 난 노엘은 급기야 가출. ‘톡투나잇’은 그때 노엘의 감정에 관한 노래다. I wanna talk tonight until the morning light. 후에 노엘이 말한다. “훌륭한 노래가 나왔어. 그러니까 그것도 운명인거지.”

다큐의 다른 이야기 축은 형제 멤버, 노엘과 리암의 갈등이다. 밴드 보컬이자 프론트맨(공연을 이끌어가며 밴드 이미지를 좌우하는 사람) 리암, 그리고 리암보다 먼저 음악을 시작해서 오아시스 명곡들을 만든 노엘. 대문자F에 록스타 재질인 리암과, 밴드 활동과 음악에 진지한 노엘은 형제지만 캐릭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는 노엘 쪽에 가까운 성향이라 그에게 좀 더 감정이입했는데 형제가 서로에게 갖고 있는 열등감이나 애정의 갈구가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다큐에는 순탄치 않았던 형제의 성장 배경과 Oasis로 활동하는 3년여 기간 동안 그들이 겪었던 크고 작은 갈등이 나온다. 다큐의 절정인 1996년 넵워스 공연을 배경으로 노엘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지금부터 20년 후엔 어떻게 되겠어?” 응, 너네는 ‘돈 룩 백 인 앵거’ 등 데뷔 앨범을 능가하는 명곡들을 줄줄이 내놓고 싸워서 해체하고 결국 재결합한단다.

다큐 <Oasis: Supersonic>(2016)은 이미 Oasis 팬에게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가득한 선물이고 이제 막 Oasis를 알고 싶은 사람에게는 밴드의 탄생 설화와 초기 명곡을 알려주는 좋은 길잡이다. 또, Oasis 음악을 접하기 좋은 영국 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2013 시즌1~2015 시즌3)도 있다. 1996년을 배경으로 하는 하이틴 드라마로 90년대 영국의 찐바이브를 볼 수 있고(마치 '응답하라 시리즈' 영국 버전) 끊임없이 흐르는 오아시스 음악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다.

Oasis는 2009년에 해체하고 15년 만인 2024년에 재결합했다. 오아시스가 등장한 90년대에도, 귀환한 지금도 식지 않은 열광. 영국 리버풀대학교 음악산업 교수는 “Oasis는 디지털 쓰나미가 덮치기 전 마지막 브릿팝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이번에 관련 콘텐츠를 만들면서 나는 오아시스를 ‘서민과 청년 등 소외된 이들을 대변한 시대의 아이콘’이라고 (억지로) 의미 부여해야만 했다. '이 시대 청년들에게 다시 한번 희망주길!'이라며...(오, 제발) 레트로든 뉴트로든 뉴클래식이든 그럴듯한 트렌드 키워드로 명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결론은, 다 의미 없고 음악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오아시스 음악이 90년대를 관통했던 감정, 그리고 지금도 유효하게 사람들을 뒤흔드는 감정. 영국 대표니, 90년대니, 서민 출신이니 하는 해석은 오아시스 음악에 대해 극히 일부의 이해만 제공할 뿐이다. 다큐 제목과 같은 Oasis 노래, <Supersonic> 전주가 흐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머리가 띵하게 전율하므로.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1994), 올해 30주년.

(*다큐 <Oasis: Supersonic>(2016)은 현재 OTT에서 볼 수 없다. 잘 찾아보면 유튜브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