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서울여자도감>을 만든다면, "모두 잘 살고 있습니까?"

2024년 <서울여자도감>을 만든다면, "모두 잘 살고 있습니까?"

작성자 이중생활자

2024년 <서울여자도감>을 만든다면, "모두 잘 살고 있습니까?"

이중생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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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hpvfnqgg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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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는 이중생활자 이용은이다. 평일 오전 9시부터는 방송국에서 시사 콘텐츠를 만들고 저녁 6시 땡하면 뉴스를 뺀 다른 모든 콘텐츠를 본다. 이번 주말에도 논알코올맥주 한 캔을 들고 감자칩을 먹으며 OTT를 순례했다. 평화로웠지만 문득 치고 들어오는 생각이 있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일·연애·가족·미래에 대한 고민이 뒤엉킨다. 그러다 보면 내 또래 여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얼마 전 드라마 <타이페이의 여성들>을 봤다. 2022년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11부작. 대만 드라마. 계륜미 주연.

대만 남쪽 지역 타이난시에 사는 이산(계륜미 분)은 어릴 때부터 수도 타이베이에 살기를 꿈꿨다. 대학 졸업 후 타이베이에 혼자 올라와 뷰티업계에서 일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20대 싱글 여성 이산이 타이베이에서 일하고 사랑하며 사는 이야기. 그리고 그녀가 만난 사람들 이야기.

이 드라마의 재미 포인트는 3가지다. 우리에게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로 각인된 배우 계륜미가 이 드라마에서 매력적인 싱글 여성이자 주인공으로 나온다는 점. 드라마 캐릭터상 20대부터 30대까지 성장하는 모습을 연기하는데, 아무래도 배우 나이(1983년생)에 가까운 30대로 갈수록 더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보인다. 스토리의 한 축이 ‘연애’인 만큼 이산이 만나는 다양한 남자들이 나온다. 드라마 초반에는 매 연애에 이산처럼 몰입했는데 나중에는 몇 번째 남자인지 세는 걸 포기할 만큼 쉴 새 없이 연애를 한다-이 부분이 드라마에서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해두자. 그럼에도 다양한 남자친구 캐릭터와 매번 사랑에 진심인 이산의 모습을 보는 재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재밌었던 건 드라마 속 이산의 고민이 2024년 서울에 사는 싱글 여성의 고민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나 결혼 압박을 보면서 이쯤 되면 동아시아 문화권 공통점을 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2·30대 싱글 여성의 일과 사랑을 주제로 한 콘텐츠 장르를 칙릿(Chick Lit)이라고 한다. 고전으로 <섹스 앤 더 시티>,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있다. <타이베이의 여성들>(2022)은 일본 드라마 <도쿄여자도감>(2016)이 원작이다. 드라마 <북경여자도감>(2018)과 <상해여자도감>(2018)도 만들어진 바 있다. <북경여자도감>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를 배경으로 해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중국의 변화상을 엿볼 수 있다. 역시 지역 출신으로 베이징에 상경해 성공을 꿈꾸는 싱글 여성이 주인공인데, 방영 당시 중국 사회의 ‘베이퍄오’ 문제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지역에서 올라와 베이징에 사는 청년들을 베이퍄오라고 한다. 이들은 베이징 호적을 가질 수 없어서 주택 구입, 자동차 등록, 학교 등 각종 복지제도에서 차별받는데 드라마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이 베이퍄오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다. 가볍다고 여겨지는 칙릿물에서 한 발 나아간 콘텐츠 파급력이었다.

비교적 최근에 화제 됐던 한국 칙릿 콘텐츠로는 TVING 오리지널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2021)이 있다. 인기에 힘입어 2023년에 시즌2가 방영됐는데 시즌1이 더 재밌다. 배우 이선빈, 한선화, 정은지 모두 인생 캐릭터였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각각 캐릭터 개성이 뚜렷하고 동시에 케미가 좋다. 세 여자의 우정을 보면서 울고 웃었고 이런 관계성도 가능하다는 걸 알려줬으니 칙릿물의 소임은 다한 셈이다.

사회 초년생보다 ‘어른 여자’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중국 드라마 <겨우, 서른>(2020)을 추천한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43부작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우선 상하이 도심 라이프를 보는 재미가 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좀 더 무겁고 현실적인 인생의 문제들 속에서 분투하는 여성들을 볼 수 있고 같이 고민하다가 결국 힘을 얻는다.

드라마 <타이페이의 여성들> 오프닝 시퀀스에는 타이페이 거리를 당당하게 걷던 이산이 차 안에서 혼자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우는 장면이 나온다. 실은 매회 짧게 반복되는 그 장면을 보려고 11부작을 다 봤는지도 모르겠다. 동시대를 사는 여성의 한순간이 곧 위로의 전부가 되는 느낌. 그래서 칙릿 콘텐츠는 스테디셀러다. 2024년에 드라마 <서울여자도감>을 만든다면, 어떤 캐릭터를 내세워서 어떤 이야기를 건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