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체호프가 어려운 그대에게: 연극 <벚꽃동산>
작성자 이중생활자
안톤 체호프가 어려운 그대에게: 연극 <벚꽃동산>

안녕, 나는 이중생활자 이용은이다. 평일 오전 9시부터는 방송국에서 시사 콘텐츠를 만들고 저녁 6시 땡하면 뉴스를 뺀 다른 모든 콘텐츠를 본다. 지난 주말에는 연극 <벚꽃동산>을 봤다. 원작은 읽어본 적 없고 단지 배우 전도연이 2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 작품, 유명 연출가 작품이라는 점에 혹해서 봤다. 그래도 이 글을 다 읽고 나면 ‘안톤 체호프 희곡집’을 검색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를 바란다.
연극 <벚꽃동산> 감상법1 : 2024년 한국
원작의 배경은 1904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아직 농노제가 존재할 때, 몰락하고 있는 귀족 지주 가문 이야기다. 연출가 사이먼 스톤은 이를 2024년 한국, 파산 직전의 재벌집 이야기로 완벽하게 각색했다. 대사에 따르면 1970~80년대 산업화 시기 정부 특혜와 인맥으로 재벌이 된 송씨 가문이다. 이에 맞서 요즘 떠오른 자본가 황두식의 직업은 부동산 개발업자다. 큰 설정뿐 아니라 작은 소품이나 대사 한마디조차 한국 사회 공기와 유행을 알고서 한 각색이었다. 영국 출신 연출가가 한 게 맞는지 잠시 의심했을 정도. 안톤 체호프 원작을 전혀 몰라도 2024년 한국에 살고 있다면 빵빵 터지면서 이 연극을 볼 수 있다. 골프, LP레코드, 대학원생, 지하철: 혹시 연극을 본다면 현대화·한국화 된 설정을 확인해 볼 것.
연극 <벚꽃동산> 감상법2 : 출연진듀스 10인
연극하는 전도연 배우를 보러 갔다가, 연극이 끝난 뒤 전체 출연진을 배경으로 한 포토존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이어서 배우 한 명 한 명 얼굴과 이름을 외울 기세로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만큼 모든 캐릭터가 살아있고 배우들 연기만으로 만족스럽다. 전도연 배우는 널리 알려진 자신의 이미지를 캐릭터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관객들 시선이 그녀만을 좆게 만든다. 박해수 배우는 능청스럽게 잘하면서 무대 위를 휘젓고 다닌다. 연극 <벚꽃동산>의 신스틸러는 손상규, 유병훈 배우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스크린에서 눈도장 찍고 연극 무대에 오른 최희서, 박유림, 남윤호 배우는 과감하고 신선하게 제 몫을 다한다. 이세준, 이주원, 이지혜 배우를 이 연극을 통해 알게 돼서 기쁘다.
연극을 다 보고 비로소 안톤 체호프 4대 희곡집(갈매기/세 자매/벚꽃동산/바냐 아저씨)을 샀다.
연극 <벚꽃동산>에서 송씨 집안 가사도우미 정두나 역을 맡은 박유림 배우는 2021년 일본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로 주목받았다. 영화에서 연극배우로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안톤 체호프의 또 다른 희곡 <바냐 아저씨> 속 소냐를 연기한다. 우연인지 선택인지 안톤 체호프 희곡을 두 편째 연기하는 셈. 영화 속 그녀가 주인공에게 건네는 마지막 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