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독서취미 선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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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독서취미 선물하기
우리 엄마에 대해 소개하자면,
우리 엄마의 나이는 지금 내 나이 곱하기 2
이십 팔 년 전, 우리 엄마는 나를 낳았구나. 그 이후론 계속 엄마로 살아왔겠지?
팔 근육이 굉장하다.
하루는 엄마가 감기로 병원 진료를 보는데, 의사선생님이 엄마보고 소싯적 운동하셨냐고.
수다를 좋아하고 운동을 싫어한다.
엄마의 취미는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떨기, 근교 드라이브가서 낙엽과 꽃잎 배경삼아 사진찍기.
싫어하는 것은 운동. 모든 종류의 운동을 전부 다 싫어하신다.
다행히 걷는 시간에는 관대한 편이라, 우리 강아지 포미와의 산책시간은 엄마의 루틴 중 하나이다.
별다른 취미가 없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이 아팠고, 나는 우리 엄마에게 취미를 선물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내 여름방학 프로젝트,
"엄마에게 독서취미 선물하기"
첫 번째 원칙. 자연스럽게 접근하라.
엄마에게 책 읽히겠다는 굳은 의지와 의도를 들키면 안 된다.
이 의지를 들키는 순간, 엄마의 알 수 없는 반발심을 자극하여
"에이~ 난 눈 아파서 책 안 읽어" 하며 프로젝트 중단 선언을 할 것만 같았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접근하자.
엄마가 나른하게 쉬다가 무료해질 즈음,
거실 테이블에 태블릿 pc를 아주 잘 보이게 켜둔다.
전자책을 켜고, 자연스레 엄마에게 말을 건다.
"엄마, 빨치산이라고 들어봤어?"
"그럼, 빨치산 알지. 옛날에 엄마 어릴 땐 간첩도 있고 신고하면 돈도 주고 그런 시절도 있었지"
"오 진짜? 엄마 그럼 아버지의 해방일지라는 거 들어봤어?"
"나의 해방일지 아니가? 그 손석구 나오는 드라마"
"아니아니 그거 말고 책인데, 나의 해방일지. 이게 한 때 베스트셀러여서 전자책 샀었거든. 한 번 봐봐"
"책~? 글씨 쬐끄만한거 아니야?"
"이거 이렇게 이렇게 설정하면 글자 크기도 키울 수 있어"
성공했다.
생각보다 인내심과 집중력이 상당했던 우리 엄마는
앉은 자리에서 고요하게 3분의 1을 읽어내려갔다.
두 번째 원칙. 재미를 확장시켜라
직업이 교사인지라 이건 내가 학생들에게 자주 사용하는 스킬인데,
무언가 원하는 행동을 상대로부터 이끌어내고 싶거든, 직접적으로 요청하기보단
그 상대방이 그것에 재미를 붙이게끔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책을 읽고 난 후, 포미와의 산책에 종종 따라나서서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깜짝 놀랬어. 집중력이 무서울 정도이시던데요?"
"그게 전라도식 사투리 이런게 많아서 읽을 맛이 나더라. 시대배경도 엄마가 이해하기 쉽기도 했고."
"대충 어떤 이야기야? 나는 저번에 읽다 말았어"
"그게, 이 글쓴 사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아버지 장례 때 이런저런 조문객들 맞이하면서
아버지가 한평생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풀어주는 그런 책이야. 근데 이 아저씨 굉장한 삶을 살았더만"
"오 어떤 내용 있었길래?"
"아니 보면 웃겨. 친구 깜빵에서 꺼내오겠다고 조폭 무리에 들어가서 얻어터지질 않나"
...
성공이다.
한 이야기를 나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전달하는 과정.
이 과정이 내가 교사된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신의 삶의 이야기가, 비슷한 나이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색다른 틀을 쓰고 있는 책을 읽다보면
내 삶이 위로받고 공감받고
내 경험들이 재조명되고, 추억이 떠오르고, 정리되는 경험.
엄마에게 책이 주는 이 경험이 가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조금은 읽힌 것 같았다.
추가로, 북적북적이라는 독서기록 어플을 엄마 폰에 깔았다.
엄마가 읽은 책을 달력형식으로 정리하여
한 눈에 볼 수 있게끔 하여 도장깨기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게.
세 번째 원칙. 물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책도 많고 책 읽는 사람도 많고 책 읽는 것이 당연한 공간
도서관, 그리고 서점
엄마와 함께 이 공간이 주는 매력을 공유하고 싶었다.
"엄마 나 책 빌리고 싶은데 내가 전입신고가 울산에 되어 있어가지고
여기 주민이 아니라서 엄마 대출증이 필요해"
"그래~ 엄마 계정 만들어서 써"
"근데 실물카드 분실이라고 떠서 엄마가 같이 가줘야해. 신분증 챙겨서"
"밖에 더운데"
"그늘진 지름길 있어. 7분이면 가"
"그럼 후딱 갔다오자"
땡볕을 지나 도서관에 들어서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겼다.
"캐리어 맞지? 에어컨 발명한 사람. 그 사람 진짜 상 줘야 해"
"뭐라도 상 받지 않았을까?"
종합자료실을 슥 둘러보고는
살금히 서가 사이를 걸어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엄마 공지영 작가 알지? 이거 되게 유명하대. 나도 저번에 읽은 적 있어"
"그래? 공지영 작가 알지~ 에고, 근데 글씨가 너무 작다. 눈이 침침해서 잘 안보여"
"음 그러네. 글씨 되게 작네? 그럼, 여기도 큰글자책 있는지 물어보자"
대체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책들은
출판사에서 큰글자책으로 출간이 되기에
큰글자책 서가에 가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법한 책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엄마와의 도서관 도장찍기를 성공하고,
주말에는 서점 데이트도 했다.
후기
스물 여덟, 직장인인 나에게는 방학이 있다.
직장이 학교, 고객이 학생, 직업이 교사이기 때문이다.
방학이 되면 본가에 와서 집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오랜만에 먹는 엄마의 음식이 그리웠던 것일까, 가족들과 마주보고 밥먹는 시간이 그리웠던 것일까
허기지던 배도 마음도 전부 듬뿍 채워가는 그 시간이 좋았다
어디 나가 걷기도 무서울 무더운 대구 날씨에,
에어컨 바람 아래 소파와 TV에 몸을 맡긴지 며칠이나 지났을까
문득 같이 널브러져 쉬고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채워준 나의 이십 팔 년 시간, 참 다양한 것들을 보고 배우고 느끼고 했다.
보답하고 싶었다. 취미를 하나 선물해주고 싶었다.
앞으로 펼쳐질 엄마의 시간들이 다양한 책과 이야기와 생각들과 함께,
알록달록 다채로워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