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한과 북한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작성자 e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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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한과 북한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1986년 오스트리아 미국 대사관에서 탈북, 미국으로 망명한 신상옥 감독. 그는 모럴을 잃은 남한의 독재 정권도, 주민의 삶을 억압하는 북한의 독재 정권도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영화인은 영화로 이야기해야한다”라고 생각한 신상옥 감독. 이러한 그의 생각을 담아 이후에도 영화를 제작하고 책을 출판했다. 남한과 북한을 모두 경험한 사람으로서, 그가 대중들과 정권 지도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미국 망명 이후 회유하는 남한, 북한 정권
오스트리아의 미국 대사관에서 망명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남한 대사관이 아닌 미국 대사관을 택했던 이유는 ‘안전’과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해외 영화제를 참석할 때 북한 기관원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았던 신상옥 감독은 남한이 북한 간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가 미국에 망명했던 1980-90년대 초는 무장 공작원들이 남한에 침투했다는 기사가 종종 보도되던 시기다. 신상옥 감독이 남한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는 남한에 돌아가 남한 군사 정권의 ‘반공의 나팔수’로 살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미국 할리우드에서 자유롭게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에 그는 미국행을 택했다.

1986년 워싱턴에서 기자회견 장으로 이동하는 신상옥 감독, 최은희 배우
남한의 안기부는 미국행을 택한 신상옥 감독에게 남한으로 올 것을 제안하며, 영화 제작 지원, 거처 제공, 1억 원의 채무 변제 등 획기적인 혜택을 제시했다. 좋은 제안이었지만, 88서울올림픽 이전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한 반공 쇼의 도구로 사용되고 싶지 않았다. 몇몇 학생들과 지식인들도 신상옥 감독에게 “지금 들어가면 반공 나팔수로 전락하고, 결국 부도덕한 군사정권을 돕는 소모품 노릇이나 하게 될 것이니 좀 더 있다가 들어오십시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가 1990년에 한국에 입국했을 때, 안기부는 좋은 제안에도 남한에 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이 아니라 자진 입북했던 것이라 여겨20일 동안 심문하기도 했다.
한편, 신상옥 감독이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 김정일은 유럽에서의 영화 제작비로 사용하도록 신상옥 감독의 개인 계좌로 230만 달러를 입금했다. 신상옥 감독의 망명 소식을 접한 북한은 감독이 미국에 ‘피랍’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자발적 망명임을 알게 된 후 ‘북한의 공금 230만 달러를 착복하기 위해 서방으로 달아난 파렴치한 사건’으로 신 감독의 망명을 규정했다.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 자신의 납치 사실을 인정하면 돈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지만, 북한은 국가의 체면과 위신을 230만 달러에 내던지지 않았다. 이후 신 감독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기로 결정, 북한 정권에 돈을 돌려주었다. 이후 북한은 다시 그의 탈출을 ‘미국의 공작’으로 우기기 시작했다. 미국 애틀란타에 있는 동안, 신 감독은 뉴욕 북한 대표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북한의 신필름은 아직 그대로 있고, 동포들이 신 감독을 기다리고 있다는 전화였다. 하지만 그는 본인의 의지로 탈북했다고 이야기하며 제안을 거절했다.

미국 망명 이후 제작한 영화 <증발>, <마유미>, 책 <내레 김정일입네다>
“영화인으로서 영화로 이야기하겠다”
그는 북한에 납치당했지만 ‘자진 월북’, ‘이중 간첩’ 등 여러 루머로 인한 고충을 겪었다.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전하고자 김현희의 KAL기 폭파 사건을 소재로 영화 <마유미>를 제작했고, 김형욱 전 정보부장의 실종 사건을 소재로 <증발>을 제작했다.
영화 <마유미>는 북한 정권의 야만적인 테러를 고발하면서도, 김현희도 정치적인 희생물로 그린 휴머니즘에 입각한 반테러 영화다. 당시 안기부에서 KAL기 폭파 사건을 영화로 제작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으나, 재정 지원은 일절 받지 않았다. 그가 담고 싶은 메시지를 온전히 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대신, 그는 일본 동경방송의 지원을 받아 TV 프로그램으로 제작했다. 동경방송은 방영 이후 북한 취재를 한동안 금지당하는 보복 조치를 겪었다고 한다. 또, 8년 간의 납북 수기를 담은 책 《내레 김정일입네다》를 출판했다. 책에는 그가 만났던 김정일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공개 처형 등 주민들이 겪은 인권 유린의 모습도 담겨있다.
한편, 영화 <증발>은 북한에 있을 때부터 기획해 온 영화다. 김정일이 김형욱 수기인 <권력과 음모>를 신상옥 감독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책을 읽은 후 영화 구상을 하다 미국 망명 이후 제작했다. 김영삼 문민 정부 출범 이후 상영된 영화 <증발>은 박정희 군사 정권의 횡포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다. <그때 그 사람들>, <남산의 부장들> 등 군사 정권의 폐해를 담은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박정희 배역을 선뜻 맡는 사람이 없어 일본 배우 조지 타케이가 박정희 역을 맡을 정도로 정치적 고발이 강한 영화였다.
영화 <마유미>나 <증발> 모두 한국에서는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았다. ‘신상옥이 오랜만에 만드는 영화라고 잔뜩 기대를 했다가 실망했다’, ‘신상옥도 이젠 갔다’라는 식의 혹평이 이어졌다. 그러나 해외에선 반응이 좋았다. 영화 <증발>은 칸 영화제 초청작으로 특별 상영되었고, 뛰어난 반체제 영화로 인정받았다. 영화에 담긴 그의 생각은 에세이집 《난 영화였다》에서도 엿볼 수 있다.

신상옥 감독 에세이집 제목처럼, ‘영화 같은 삶’을 산 신상옥 감독 (사진: 책 《난, 영화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서 사는 사람으로서, 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감당하고자”
신상옥 감독은 대중을 향해서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 아니다. 북한과 남한의 지도자를 향해서도 책을 통해 의견을 전달했다. 김일성 사망 이후 그는 김정일에게 우정과 충정을 담은 충고의 편지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를 출판했다. 우상화를 멈추고, 개혁, 개방의 길을 선택해 북한 주민들을 위한 변화를 결단해달라는 책이었다.
《김정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신상옥 감독은 김정일과의 일화를 언급했다. 처음 만난 파티에서 연주자들이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라고 환호할 때, 김정일이 그에게 귓속말로 “저것은 전부 가짜요, 거짓으로 하는 소리지요”라고 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신상옥 감독은 김정일이 정권의 우상화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을 보는 눈은 깨어있다고 생각했기에 김정일이 김일성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고, 개혁 개방을 통해 주민을 위한 통치를 하기를 기대했다. 자력 갱생을 주창하고, 국가를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것을 배우고, 문호를 개방해 국가 발전을 위해 힘쓰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책을 저술했다. 전력난, 비료 등 주민들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해결책은 자급 자족이 아니라 개혁 개방임을 이야기했다.
또, 처음으로 북한에서 남녀간의 삼각관계, 키스신을 다룬 영화를 제작했던 신상옥 감독은 영화로 인해 북한 생활에서 도덕성이 혼란해지지 않았던 점을 이야기했다. 정권의 프로파간다에 맞는 영화만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신필름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들을 믿고 자유롭게 영화를 제작하게끔 장려해달라고 청했다. 당시 주민들이 남녀 노소 영화 <사랑 사랑 내 사랑>의 주제가를 흥얼거리는 것을 기억한다고 말하며, 주민들이 원하는 사람 이야기가 담긴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김정일은 자력 갱생과 핵무기 개발에 집중했다. 이에 실망한 신 감독은 햇볕 정책을 펼치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내는 신상옥 감독의 공개장’을 저술했다. “김정일은 변할 수 없고, 그가 변하는 것은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햇볕 정책은 실패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5년 주기로 임기가 만료되는 남한의 대통령과 달리 북한의 김정일은 40-50년을 집권할 수 있기에, 자신의 뜻과 독재 정권을 굳건하게 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방제나 국가 연합의 구체적인 계획과 운영 방안을 구상했는지, 서로 다른 두 체제의 연합으로 인한 갈등, 패권 다툼 발생 시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한 준비 없이 실행되는 연방제는 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음도 경고했다. 그러면서, 국경을 탈출해 중국에 체류하는 탈북인 30만 명을 남한에 정착하도록 돕는 것이 더 효과적인 햇볕 정책이라고 이야기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에서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영화를 제작해 본 경험이 있는 신상옥. 그는 영화와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자 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신상옥 감독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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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최은희,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월간조선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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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난 영화였다》, 랜덤하우스코리아,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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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옥, 재조명돼야 할 한국영화 반세기의 ‘신화’”, 월간조선, 20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