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북한 영화에도 애정신이 있다?! '사랑 사랑 내 사랑'
작성자 e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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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북한 영화에도 애정신이 있다?! '사랑 사랑 내 사랑'

북한 사람들이 시대물 로맨스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씨 정권 찬양 목적으로 만들어진 현대극이 인위적인 감정 표현에 치중한 데 비해 람의 감정을 그나마 잘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신감독의 작품을 북한 사람들은 가급적 사상성을 배제하고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에 초점을 두었다고 그의 작품을 기억하고 애정한다.
북한에서 유년기 이상을 보낸 탈북민에게 좋아하는 북한 영화 장르가 무엇이었는지 묻는다면, 대다수는 시대물 로맨스 영화를 뽑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제목을 묻는다면 3명 중 1명은 이 영화를 말할 가능성이 크다. 바로 <사랑 사랑 내 사랑>이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은 신상옥 감독이 1984년 북한에서 고전소설 춘향전을 소재로 제작한 뮤지컬 영화다. 그는 남한에서도 1961년에 <성춘향>이라는 제목으로 춘향전을 영화화했다. 이 영화는 당시 홍성기 감독의 영화 <춘향전>과 경쟁 구도에 있었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제작한 영화 <사랑 사랑 내 사랑>은 북한 영화 최초로 제목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으며, 기존의 선전선동에서 벗어나 서정성과 사실성을 담았다는 점에서 돋보였다.
영화 줄거리
신상옥 감독은 전통적인 춘향전 이야기를 뮤지컬 형식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단오날 그네 타는 춘향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몽룡은 방자를 시켜 춘향과의 만남을 이뤄내지만, 춘향은 처음에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춘향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던 몽룡은 춘향의 집 담을 넘었고, 춘향의 어머니를 설득해 백년가약을 맺고 첫날밤을 보낸다. 이후 몽룡은 과거 시험을 치러 한양으로 떠나고 과거에 급제하면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맹세하며 춘향과 이별하게 된다. 새로 부임한 변사또가 춘향에게 수청을 요구하지만, 춘향은 이를 거절했고 옥에 갇힌다. 과거에 급제한 몽룡이 암행어사가 되어 신분을 숨긴 모습으로 춘향을 찾는다. 몽룡은 변사또를 처벌하고 춘향과 결혼한다.

캐스팅 비하인드 스토리
춘향을 연기한 장선희는 연기자 출신이 아닌 평양 순안공항 지상직 승무원이었는데 신상옥 감독의 눈에 띄어 춘향으로 발탁되었다. 하지만 남한과 북한의 미의 기준이 달라 당시 배우 선발 과정에서 잡음이 있었다고 한다. 신상옥 감독은 당시 북한에서 추구하는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더라도 본인이 확신이 있으면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했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당시 북한에서 <사랑 사랑 내 사랑>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영화표를 구하지 못해 암표를 구매하려는 품귀현상도 있었다고 한다. 춘향과 몽룡을 연기한 배우들은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고 특히 춘향역을 맡았던 장선희의 인기는 절정을 이뤘다. 갸름한 얼굴형에 한복을 입은 아름다운 자태가 돋보였고, 한 폭의 그림 같은 그녀의 몸짓과 또렷한 목소리 톤은 남녀노소에게 사랑을 받았다. 장선희는 이후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주연으로 활약했지만, 오래도록 춘향으로 불렸다.

북한 영화사
북한 영화 산업의 황금기를 물으면는 1960~1980년대 중반까지를 든다. 이는 남한의 영화 황금기가 1960년대로 꼽히는 것과 어느 정도 유사하다. 1960년대는 북한과 남한이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반영해 영화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시기로 여겨진다. 북한에서는 정부가 영화 제작을 철저히 통제하고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남한에서도 박정희 정권 시기 검열이 강화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다양한 장르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남한에서는 베이비붐 세대를 제외하고는 1960년대에 나온 작품을 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MZ세대는 영화를 전공한 사람이어야 1960년대에 제작된 작품을 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북한은 매년 새롭게 출시되는 작품이 몇 편 안되다 보니 영화가 만들어지던 초기 영화부터 오늘날의 영화까지 다 본다. 공식 채널도 1개뿐이다 보니 황금기 때 제작된 흑백영화도 어제 나온 것처럼 매일 재방송이 되는 게 일상이다. 사상이 가득한 혁명적인 영화는 소음 정도로 취급하는 반면에, 대부분 신상옥 감독이 제작하고 영향을 준 1980년 대 작품이 인기가 높다.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제작한 작품들은 일반 북한 주민들에게 일상의 위로를 건냈고,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게는 영감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신상옥 감독 이전에 제작된 북한의 다른 작품에 비해 신상옥 감독의 작품은 한 사람의 서사에 집중하면서 내면의 감정을 표현한다. 남한의 기준으로 애정신을 평가하면 머리를 갸우뚱할 수 있겠지만, <사랑 사랑 내 사랑>에서 춘향과 몽룡이 백년해로를 약속하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고 치마저고리를 살며시 푸는 시도는 북한에서는 파격적인 애정신으로 여겨진다.
맺는말
지금 이 영화를 다시 보니, 호기심과 상상력이 가득했던 10대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면서 현재 북한의 영화와 음악은 매일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30~40년 전의 신상옥 감독이 기획하고 감독한 영화에서 배우들의 연기나 연출이 지금의 북한 영화보다 몇 배는 더 세련되었다. 고향을 떠난 지 근 20년이 되어가는데, 장담컨데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신상옥 감독의 작품을 요즘 제작되는 북한 체제 선전 작품보다 선호할 것이다. 그는 북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지만, 북한 정권은 그를 부정하고 북한에서 활약했던 모습을 지웠다. 그렇지만 오늘도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 그리운 사람은 유일하게 허락된 그의 작품을 보면서 외부 세계에 대한 상상을 이어가지 않을까 예상한다. 나와 내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출처]
“1960년대 황금기 한국 영화 뉴욕 상륙한다”, 한국일보, 2023.08.30.
“한국 영화의 황금기”, 국제신문, 2011.11.24.
“북한 문화예술의 흐름 5/ 북한 영화의 오늘”,https://www.arko.or.kr/zine/artspaper2000_07/101.htm
“신상옥의 북한영화 이야기 ●‘사랑 사랑 내사랑’ 춘향역 장선희 공항 접대원 출신 서구형 미인… “달덩”, NK조선, 2000.10.09
“북한영화 美서 영화제 통해 상영”, NK조선, 2008..01.04.
Johannes Schönherr, North Korean Cinema: A History, McFarland,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