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영화를 촬영하고, 대박이 난 감독이 있다?

#1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영화를 촬영하고, 대박이 난 감독이 있다?

작성자 e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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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영화를 촬영하고, 대박이 난 감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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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_e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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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봉준호 감독과 손예진 배우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러더니 얼마 후 이들이 북한에 있다는 뉴스가 나온다.이 뉴스를 본 사람들은 다들 말도 안 된다며 루머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1960년대에 실제로 이와 같은 사건이 있었다. 1960년대 영화계를 주름잡던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돌연 잠적한 후, 북한에서 영화 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남한에 전해진 것이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는 누구이며, 이들은 왜 북한에 가게 되었을까?

북한에서 체류시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 사진(위에서 1번째 김일성, 2번째&3번째 김정일)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는 누구?
신상옥 감독은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여겨진다. 신상옥 감독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로맨스 빠빠’, ‘성춘향’ 등 시대상을 반영하는 다양한 영화를 제작했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그의 영화 ‘성춘향’은 한국 최초로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되기도 했다. 1960년에는 한국 최초로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와 유사한 형태의 영화 제작 스튜디오인 ‘신필름’을 설립했다. 김승호, 신영균, 이예춘, 남궁원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신필름 전속 배우로 활동했고, 1961년부터 1970년까지 신필름에서 제작한 영화는 102편에 달했다.

1954년 방한한 마릴린 먼로와 최은희 배우

최은희는 김지미, 엄앵란와과 함께 1950-60년대 원조 트로이카 배우로 유명했다. 지금의 손예진 배우처럼, 최은희 배우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다. 최은희 배우와 신상옥 감독은 부부였다. 남편 신상옥 감독의 영화에 다수 출연,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여주인공인 어머니를, ‘성춘향’에서는 춘향을 연기했다. 그가 출연한 ‘성춘향’은 36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는데, 지금의 기준에서 보자면 1,000만 명을 훌쩍 넘는 기록이라고 한다.

북한에서 신상옥 감독을 지켜보던 팬, 김정일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를 지켜 보던 사람 중엔 김정일도 있었다. 당시 김정일은 북한에서 선전선동부를 이끌며 후계자로서의 정당성을 입증해야 했다. 특히 영화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던 그는 1960-70년대에 걸쳐 혁명영화 창작 사업을 주도했다. 또한 세계 각국의 약 15,000편이 넘는 영화를 보존하는 ‘중앙영화필름관리소’를 평양에 세우기도 한다.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제작한 영화도 즐겨봤는데, 북한에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와 같은 영화감독과 배우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김정일은 신상옥 감독을 납치해서라도 북한에 데려오고 싶어 했다.

영화제작소 현지 지도를 하는 김정일 위원장

신상옥 감독 부부를 납치한 김정일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영화계 부부였던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는 화려한 삶을 살았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영화 제작 비용에 비해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빚쟁이를 피해 살아야 했고, 전태일 분신사건을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말했다가 박정희 정권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기도 했다. 1978년 1월, 경제난을 겪던 최은희에게 홍콩에서 영화 제작 투자 제안이 들어왔다. 신필름은 홍콩 지사가 있었기 때문에 반가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그 제안은 거짓이었고, 홍콩에 갔던 최은희는 북한에 납치당한다. 김정일은 그를 ‘최선생’이라 부르며 극진히 대접했지만, 최은희는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은희 배우 납북 직후, 남포항에 도착한 최배우를 김정일이 영접 중

최은희가 돌연 실종된 후 그를 찾고자 수소문하던 신상옥 감독은 홍콩에 갔지만, 그도 북한에 납치되고 만다. 신상옥 감독은 북한에 도착했지만 최은희를 바로 만날 수는 없었다. 탈북 시도도 실패하고 5년간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석방된 후에서야 마침내 최은희를 만나게 된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는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때를 기다리며 영화를 제작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북한 정권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증거를 남기고자 김정일과의 대화를 몰래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하기도 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있던 신상옥 감독의 영화, 국제영화제 수상까지

신상옥 감독은 김정일의 후원으로 북한에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웠다. 그는 북한에 있는 8년 2개월 간 <돌아오지 않는 밀사>, <불가사리>, <사랑 사랑 내 사랑>, <소금> 등 약 7편의 영화를 직접 연출했고, 13편의 제작을 지도했다. 1년에 약 10편씩 영화를 제작한 셈이다. 그가 만든 영화는 김일성, 김정일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도 굉장한 인기였다. 영화가 인기가 많아 암표까지 생길 정도였는데, 당시 10전이었던 입장권의 암표 가격은 10원으로 노동자 임금의 1/6에 달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신상옥  감독의 영화 <돌아오지 못한 밀사>는 1984년 체코 카르로비바리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았고, 최은희 는 영화 <소금>으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제 14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수상 중

오스트리아에서 탈북, 미국으로 망명하다

김정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는 늘 도청과 감시를 받았다. 언제라도 쓸모가 없어지면 제거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살던 그들은 1986년 3월 마침내 탈출한다. 영화 촬영을 위해 중립국인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한 부부는 북한 감시원들의 감시를 피해 택시를 타고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안전하게 탈출했지만, 남한의 군사 정권하에서 ‘반공의 나팔수’로 이용당하거나, ‘북한에서 선전 영화를 제작한 월북자’로 매도당할 것을 직감했기에 남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미국 망명을 택했다. 

신상옥 감독은 미국 망명 이후 8년 동안 녹음했던 테이프와 함께 북한에 납치되었던 이야기를 공개했다. 이 이야기들은 《김정일 왕국》, 《우리의 탈출은 끝나지 않았다》, 《난, 영화였다》 등의 수기로 출간되기도 했다. 신상옥은 책 《김정일 왕국》을 출판한 후 안기부에서 21일 간 조사를 받기도 했다. 신상옥 감독은 이후 김형욱 전 정보부장 실종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10.26 사태를 최초로 다룬 영화인 <증발>을 제작하기도 했다. 영화 <증발>은 남한 군사 정권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고, 1994년 칸 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선정되었다.  

신상옥 감독 촬영현장에서

영화인으로서 영화로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자 했던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는 어떤 영향력이 있었을까? 그리고 탈북 이후 제작했던 영화에는 어떤 생각이 담겨있을까? 앞으로의 아티클에서 좀 더 다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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