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탈출 유니버스
작성자 부기
인생은 방탈출
방탈출 유니버스
두 사람이 친해지지 않기를
나는 정말 두 사람이 친해지지 않길 바랬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말았다. 우리의 관계는 이렇다, M과 나는 내가 이전에 다녔던 회사의 동료다. 둘 다 방탈출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함께 몇 번 게임을 했다. H언니와 나는 몇 년 전 동호회에서 만난 관계다.(심지어 방탈출 동호회가 아니다.) 동호회 지인의 결혼식 때문에 최근 H언니와 만나게 되었고, 이를 게기로 방탈출도 하게 되었다. M은 내 방탈출 리뷰를 보고, H언니와 셋이 방탈출을 하자고 제안했다.
처음 만나서 게임을 한 날이었다. M은 방탈출을 100번 가까이 했지만, H언니와 나는 당시 방탈출을 20번 미만으로 했다. 게임을 하며 H언니는 M의 문제 파악력에 감탄해서 눈이 반짝거렸다. “걔는 어째 그래 문제를 잘 푼다니.” 언니의 순발력과 기지에 M도 놀랐다. “언니 그 문제 진짜 잘 푸신다. 관찰력이 좋으신데요.” 둘은 합이 잘 맞았다. 음 나만 빼고 둘이 잘 맞았던 것 같다. 우리는 힌트 하나 없이 탈출할 수 있었다. 방탈출에 가면 늘 힌트를 엄청나게 보던 나는 노힌트 탈출을 처음 해봤다. 한 단계 성장한 듯 짜릿했다. 두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나보다. 신나게 문제를 풀다가 왠지 어색하게 집으로 돌아가던 길, M이 언니를 보며 제안했다.
“언니 다음 달에도 하실래요?”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깼다. 악몽이었다. M과 H언니 두 사람이 둘이서만 재미있는 방탈출 테마를 하러 가는 꿈이었다. 가장 치욕스러웠던 부분은 이거다. "나 진짜 OOO 테마 하고 싶은데 우리 다음에 하러가자."라고 말하자, 두 사람이 은밀히 시선을 교환한다. “부기님 우리 그거 우리 둘이 이미 했는데.” 말하며 안쓰럽다는 듯이 비웃는거다. 부들부들 치가 떨린다.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지만, 두 사람은 이미 꽤 친해졌다. 우리 셋은 다음 테마로 무엇을 할지 이야기 중이다.
나랑 탈출하러 가지 않을래?
처음에는 친구들과 방탈출을 했다. 하지만 다들 생활에 충실하다 보니 방탈출을 자주 하지 못했다. 방탈출을 좋아하는 친구들도 있기는 했지만, 나만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친구들 간의 약속이 잡히면 나는 늘 방탈출을 제안했다. 질려버린 몇몇 친구들은 솔직해지기 시작했다. “내 취향이 아닌 것 같아.” 친구 한 명은 방탈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했다. “부기야 너도 방탈출 동호회 가입해봐. 그 사람들이랑 해도 되잖아.” 그건 마치 내가 짝사랑 하는 남자가 나에게 “너 소개팅 할래?”라고 말하는 기분이었다. 이게 바로 돌려서 거절하는 방법인가? 그 말을 듣자 내 꿈이 부정당한 듯 슬펐다. 한 번 거절당하고 나니 게임을 하자고 할 수 없었다. 방탈출 하러 가자는 말은 다단계에서 치약 하나 사달라고 하는 것처럼 께림직한 일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주변인에게 권유하기는 무리였다.
약속이 없던 쉬는 날, 방탈출이 갑자기 하고 싶었다. 그래서 온라인에서 방탈출을 할 사람을 찾아 나섰다. ‘오프라인 방탈출’ 이라는 카페에 가입해 할 사람을 찾았다. 거기에는 방탈출 테마와 시간을 올려 두고 구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갔던 번개 모임에서 문제를 잘 푸시고, 친절한 분들을 만났다. 나는 매너가 있는 분들을 만난 긍정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방탈출 동호회나, 온라인으로 만난 사람중에 비매너인을 만난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남이 풀고 있는 중 말도 없이 문제를 혼자 풀어버리거나, 다들 문제를 고민하는 와중에 상의 없이 힌트를 써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내게는 온라인 구인도 괜찮았지만, 안 맞는 사람을 만날 위험 부담도 있다. 그리고 세상이 흉흉하기 때문에 선뜻 권하기 쉽지 않은 방법이다.
방탈출은 가격이 2~3만원 정도 된다. 가격 부담이 있어 쉽게 권유할 수가 없다. 주변인들에게 권유를 해본 결과 호불호가 심한 취미다. 한 이불 덮고 사는 내 남편도 싫어한다. 혼자 하면 되지 않느냐고? 역부족일 수 있다. 2~3명이 적당하다. 결국 방탈출은 취향과 돈이 걸려있기에 함께 할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때문에 탈출이라는 모험을 함께 떠나는 동료를 찾는 것 부터 큰 난관이다.
방탈출 유니버스
반면 또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는 쉽게 뭉쳐진다.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쉽게 친구가 된다. 방탈출 게임속에서 M과 H언니는 협동심을 발휘하는 구간이 끝나자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다. 서로 천재냐고 칭찬도 해준다. 이 험난한 세상을 살면서 가족 말고 누가 그렇게 서로에게 칭찬을 해주겠나. 게임을 하던 중 각자가 흩어져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거기서 흩어져서 문제를 풀다가 다시 만나자 얼싸안았다. 이산가족 상봉한 줄 알았다. 방탈출을 하는 동안 계속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그 테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함께 게임을 하는 사람은 서로 유대관계가 생기고 대화의 요소가 생긴다.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대탈출>에서는 피오와, 강호동이 함께 협력하며 문제를 푸는 장면이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피호동’이라며 좋아한다. 둘은 연령과 활동영역이 다르지만 탈출하고자 하는 목적 하나로 유닛이 된다. 그것처럼 탈출을 하다 보면 각자의 룰이 생긴다. M은 문제 파악, H언니는 추리력, 관찰력이 좋다. 그리고 나 부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고있다. 바로 자물쇠 돌리기이다. 두 사람이 문제를 풀어주면, 나는 자물쇠를 돌린다. 정답은 큰 소리로만 외쳐주세요! 그들의 손과 발이 되는 조력자!
<대탈출>이든, 마블 영화이든 세계관은 비슷한 캐릭터들이 뭉치면서 생겨난다. 우리도 방탈출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모여서 세계관을 만들었다. 방탈출을 하는 사람들끼리는 함께 방탈출을 다니는 사람을 ‘방메(방탈출 메이트)’라고 한다. 방메끼리는 협동심도 생기고, 친해진다. 반면 깊은 얘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적당한 거리감을 지킬 수도 있다. 정말 탈출이 목적인 만남이 될 수도 있는 거다. 그것또한 나쁘지 않다고 본다. 어벤저스의 영웅들도 빌런에 맞서고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니까. 나는 MBTI중 앞이 I인 내향형 인간이다. 그래서 친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도대체 다들 어디서 새친구를 만드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방탈출을 하며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 방탈출이라는 취미로 나의 유니버스가 조금 넓어진 느낌이 든다. 그 속에서 나는 자물쇠를 돌리는 조력자이다. 하지만 유니버스 속 캐릭터들처럼 능력이 점점 성장하기를 바란다.
우리 모임 중 가장 인싸인 M의 카톡이 왔다. “언니들 다음에 이 테마 하실래요?”
다행이다. 아직 날 끼워주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