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함을 이겨내는 법 (박서보 미술관 후기)

지루함을 이겨내는 법 (박서보 미술관 후기)

기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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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로 개관한 <박서보 미술관>에 다녀왔다.

총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까지 이어진 전시는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움이 남았지만, 박서보 선생님의 비움과 인내의 미학이라는 주제로 스스로를 반추해 보기에는 충분한 전시였다.

박서보 선생님은 한평생 번뇌를 이겨내기 위한 수행의 수단으로 회화를 선택했다.

“생각을 하기 싫어서 그림을 그린다”는 그의 인터뷰를 들으며, 누군가의 우상으로 여겨지는 사람 또한 우리와 다르지 않게 번뇌와 씨름하는 한 명의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골과 산이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묘법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어떨 때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번뇌를 화폭에 그대로 던져내듯 거침없는 패턴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떨 때는 비 내리는 창문을 바라보는 듯 수직으로 떨어지는 선들의 절제된 반복을 통해 스스로를 온전히 절제하려는 끈질김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느꼈던 것은 폐암 3기와 파킨슨병이라는 굴곡에도 불구하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수행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항암치료조차 수행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접하며, ‘비움’이라는 철학을 통해 박서보라는 작가와 박재홍이라는 한 인간을 끝까지 완성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이 전시를 보며 스스로를 반추하게 된 3가지 주제는 '무목적성', '불완전성', 그리고 '인내'이다.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에서 완전함이 잉태한다.

멀리서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 정교하게 계산되고 선 하나하나를 자로 그은 듯 매끄럽게 표현되어 있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전혀 다른 불완전함이 켜켜이 쌓여 있다. 선들은 미세하게 어긋나 있고, 산을 이루는 아크릴 물감의 높낮이도 제각각이라 울퉁불퉁한 산맥을 보는 듯하다. 손의 떨림 또한 지우지 않고, 그 실수마저 인정해 자신의 일부로 표현한다는 그의 철학을 모든 화폭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필자가 생각하고 있는 주제와도 맞닿는 점이 있어 인상 깊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많은 실수와 실패를 겪는다. 실수를 할 때마다 실수에 대해 자책하고 실수하지 않은 다른 평행세계를 상상한다.

하지만 실수를 하지 않은 인간은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성장한다는 사실을 깨닫기만 한다면 그 실수 또한 나 자신이라는 점을 인정할 수 있다. 불완전한 실수와 실패가 켜켜이 쌓이는 만큼 나다운 단단함을, 완전함을 탄생시킬 수 있다.

실패와 실수 또한 나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요즘은 실수를 곱씹으며 자책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드는 듯하다.


무목적성, 그의 작품을 해석하는 것에 필요한 것은 그의 시간들 밖에 없다.

박서보 선생님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 서양회화의 모노크롬과 다른 점 중 첫 번째로 무목적성을 언급한다. 작품을 그리는 것에 목적성이 없다는 것이다. 단지 수행의 결과일 뿐, 인내의 결과일 뿐 그 외의 목적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전시를 보고 있으면 늘 작가가 던지는 질문이 무엇일지, 어떤 배경과 상황에서 이 작품을 그리게 되었을지 추론하곤 한다. 작품을 보고 해석하다 보면 ‘정말 작가가 이런 의도로 그린 게 맞을까?’라는 의심이 피어오르는 것을 막기 어렵다.

가령 지난 6월에는 큐비즘의 거장인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의 작품을 보고 왔다.

"형식은 산산이 해체됐지만, 그 밑을 흐르는 집착은 단 하나였다. 본다는 것의 진실. 눈에 비친 모습이 아니라, 본다는 행위 자체를 그리려는 고집이었다."

이렇게 해석하는 분도 계셨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의 의도를 끊임없이 추론하다가 결국 ‘새로운 기법의 탄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을 만큼 작품을 해석하는 일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가 선 하나를 그을 때마다 견뎌야 했을 인고의 시간을 상상했다. 그 역시 사람이기에 이 과정에서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이를 견뎌내고 작품을 완성하며 자신의 번뇌를 이겨냈을 과정을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나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나는 삶이라는 지루한 게임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는가?


지루함을 이겨내어 얻는 게 뭘까?

출근길만 보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의미 없는 숏츠와 릴스를 넘기며 지루함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이 조금이라도 나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속 의미 없는 콘텐츠를 소비하며 끝없이 펼쳐지는 지루함 속을 유영한다.

알고리즘이 고도화될수록 우리의 흥미를 끌 만한 콘텐츠를 더 정확하게 들이밀고, 그만큼 우리는 이 의존성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지루함을 이겨내는 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경험의 멸종>에서는 이렇게 언급한다.

"역사에는 백일몽을 꾸는 도중 혹은 한가하게 쉬는 도중 과학적 돌파구를 만난 일화가 많다. 르네 데카르트는 침대에서 천장에 있는 파리를 바라보다 좌표 기하학을 생각해 냈다. 아인슈타인은 전차를 타고 가면서 베른 탑을 보다가 특수 상대성 이론을 생각해 냈다. 니콜라 테슬라는 숲을 산책하다가 교류 전류를 고안해 냈다. 소설가이자 기술 전문가인 로빈 슬로언은 한 인터뷰에서 아이폰 사용이 틈새시간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줄을 서거나 기차를 탈 때 아이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의 도약>에서는 '지켜보는 냄비는 끓지 않는다'라는 속담을 언급한다.

빨리 익으라고 끊임없이 냄비 뚜껑을 열어버리면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음식은 익지 않는다. 결국 위에서 언급한 사례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오랫동안 골몰했던 문제에 대해 한적하고 유휴 한 시간이 촉매제가 되어 새로운 생각에 도달했던 것이다.

어쩌면 생각 역시 삶과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확인한다고 해서 반드시 더 빨리 답에 도달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또한 <경험의 멸종>에서는 피부에 와닿는 조금 파격적인 사례를 언급한다.

“시간 선호도가 높은 사람은 미래의 건강과 유용성을 희생하면서 더 많은 고칼로리 음식을 소비하고 몸을 별로 움직이지 않는 여가활동을 한다”는 생물사회과학 저널의 연구를 소개한다. 인내하지 않고 당장의 보상에만 집중하는 성향은 우리의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지루함 즉 유휴시간을 이겨내면 오랫동안 고민했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기회의 땅을 만나게 되고, 비만도 예방할 수 있다.

박서보 선생님 또한 이 불안과 지루함 사이의 공간을 인내함으로 이겨냄으로 인해 그만의 독특한 창의성을 발현시켰고, 이 울림이 지금 지루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현시대를 관통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 아닐까 싶다.


돌고 돌아 지루함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은 무엇일까

아직 정확한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마련되는 듯하다.

하지만 글쓰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림을 그려보기도 해야겠고, 아무 목적 없이 산책하는 것도 시도해 봐야겠다. 박서보 선생님이 평생에 걸쳐 자신만의 수행 방법을 만들어냈던 것처럼, 나 역시 나만의 ‘비워내는 법’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답을 빨리 찾으려고 애쓰기보다 그 답을 찾는 과정 자체를 조금 더 오래 견뎌보고 싶다.

+ 하종현 선생님 또한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니 한번 찾아보는 것을 추천드린다.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