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情)의 종말

한국인의 정(情)의 종말

작성자 기미서

한국인의 정(情)의 종말

기미서
기미서
@user_45hnf39pt3
읽음 427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한국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단어는 ‘정(情)’이다.

사전적으로 정(情)의 의미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독 이 단어 앞에는 ‘한국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마도 한국 사회에는 타인에게 기꺼이 마음을 내어주는, 조금은 특별한 인심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1년 전 방영된 흑백요리사 결승전에서 에드워드 리 셰프는 떡볶이 몇 점이 올라간 디저트를 선보였다. 그는 이 요리를 통해 “항상 남길 정도로 아낌없이 주는 풍족함과 사랑”, 즉 한국인의 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에드워드 리 셰프가 말한 것과 비슷한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게서 받은 뜻밖의 따뜻함 말이다. 최근에 보았던 한 외국인의 한국 여행 영상에서도 그런 장면이 등장했다. 우연히 들른 분식 포차에서 돈을 받지 않고 떡볶이를 건네며 “한국에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필자 역시 잠깐 길 안내를 도와드렸을 뿐인데 귤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IMG_2259.jpeg

버스정류장을 못 찾으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받았던 귤

이처럼 사람과 사람이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 사회가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따뜻함이 일종의 윤활유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떠올려보면 이 따뜻함을 건네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한 분들이다. 독자 역시 잠시 생각해 보라. 아마 또래의 누군가보다는 시장에서 만난 아주머니, 버스 정류장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남에게 정을 베풀기 어려워졌을까?

ElYvJiLWkAEC6NK.jpg

왜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여주던 그 다정함을 우리는 쉽게 실천하지 못할까?

그 이유의 단서를 나는 <경험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발견했다. 이 책은 기술의 발전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사라졌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경험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기술이 인간을 연결하는 동시에 개인의 고립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점이었다.

책에 따르면 미국 인구조사국의 ‘미국인의 시간 사용’ 조사 결과, 2014년을 기점으로 친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2019년에는 주당 평균 4시간으로 2014년 대비 약 37%나 줄었다고 한다. 이는 물리적으로 사람을 만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든 만큼, 가상공간에서의 매개된 상호작용이 늘어났다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통제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선호한다. 불편한 감정을 피하고,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지 않는 상황을 원한다. 그러나 타인과 직접 마주하는 상황에서는 이를 완벽히 통제하기 어렵다. 원치 않는 대화를 해야 할 수도 있고, 불편한 감정을 감춰야 할 때도 있으며, 쉽게 자리를 벗어나기도 힘들다.

반면 온라인 공간은 정반대다. 관심 있는 주제의 커뮤니티에서,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과, 원하는 시간에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알고리즘과 AI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개인화는 더욱 정교해졌고, 취향이 맞는 익명의 사람들과 연결될 선택지는 넘쳐난다. 그 결과 굳이 대면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자연스레 오프라인 만남도 줄어든다.


하지만 이게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편한 대로 살라고 기술이 발전하는 것 아닐까?

201703181909_61180011338509_1.jpg

<경험의 종말>에서는 상호작용 환경과 공감 능력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오늘날 대학생의 공감 능력은 20년 전보다 약 40% 낮아졌고, 그 감소 추세는 스마트폰 보급 시기와 맞물린다. 온라인에서는 타인의 문제에 반응하고 싶지 않을 때 쉽게 무시할 수 있고, 이러한 태도가 오프라인 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한 상대를 직접 마주한 상황에서는 신체 반응으로 인해 거짓말을 망설이게 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그 심리적 장벽이 낮아져 거짓말을 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온라인에서 더 많은 관계를 맺고, 더 많은 ‘좋아요’를 받을수록 상호 간의 신뢰는 줄어드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류는 역사적으로 사랑과 연대를 통해 번영해 왔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상호 신뢰는 필수였고, 그 신뢰를 가능하게 했던 인간의 무기는 공감 능력이었다. 그러나 선택적으로 관계를 맺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공감 능력은 약해지고, 타인에 대한 무시는 일상이 된다. 결국 신뢰는 휴지 조각처럼 가치를 잃고, 사랑과 연대로 이뤄낸 번영 역시 흔적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한국인의 ‘정’ 역시 다르지 않다.

이러한 변화에 비판 없이 적응하기만 한다면, 정을 몸으로 실천해 온 기성세대가 사라지는 순간 그 따뜻함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청년 고립은 지금보다 더 가속화되고, 우리는 점점 더 철저히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철저한 개인주의자라고 여겨왔다. 불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물리적 접촉을 최소화하며 나만의 벽을 쌓았다. 처음에는 편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더 어려워졌고, 대화 앞에서도 점점 서툴러졌다.

편식이 심해지면 다양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 결핍이 생기듯,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통제 가능한 관계만 경험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그 과정에서 얻을 수 있었던 배움 역시 놓치게 된다.

그러니 오프라인 경험을 두려워하기보다,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며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노련함을 기를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말자. 나부터.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