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의 숙명

초인의 숙명

작성자 기미서

초인의 숙명

기미서
기미서
@user_45hnf39p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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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적인'이라는 단어가 수식하는 인간은, 모든 것을 초월해 사람들 위에 우뚝 선 존재다.

왜냐면 그만큼 주도적이기 어려운 것이기에. 귀찮음을 기여이 이겨내고, 죽음으로 가는 시간의 폭풍후를 역행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해서 태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은 주도성과 반대되는 수동성에서 태어난다. 작은 파동에서 시작되는 이 작은 물결은 파도를 만들고 쓰나미를 만든다. 수동성에 몸을 맡기게 되면 언제든지 파도와 쓰나미라는 혼란에 잠식되기에 우리에게는 주도성이라는 목표가 탄생했던 것이다.

사피엔스의 역사 속 수렵, 농업, 산업 등의 행위들이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과연 수렵을 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실수로 흘린 씨앗에서 싹튼 새순을 보고도 귀찮음을 이유로 외면했다면, 우리는 식량의 대량 생산이라는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이처럼 주도성이라는 목표를 잃는 순간, 발견과 발명의 행위는 언제든 멈출 수 있고, 인류의 역사도 정지될 수 있다. 이는 마치 아주 예민한 아이를 조심스레 돌보는 일처럼 섬세한 태도를 요구한다.


그러나 주도성을 실현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다.

수렵과 채집의 시기뿐 아니라 산업화 이후에도, 우리는 상호 합의된 일정한 시간 속에서만 주도성을 발휘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온전한 휴식을 통해 다음 날 사용할 에너지를 비축해왔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때와 매우 다르다. 컴퓨터의 발명 이후 우리는 24시간, 1분 1초도 쉬지 않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 다양한 인종, 문화, 정보에 언제든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동시에, 주도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의 경계도 무너졌다. 누구나 새벽 한 시에 메시지를 보내 문서를 요청할 수 있고, 어디서든 업무에 투입될 수 있다.

'합의된 시간이라는 개념은 희미해졌고, 에너지를 비축할 여유마저 마음 편히 누릴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도성이라는, 태생과 반대되는 어려움을 이겨내야만 할까? 그 질문에 나는, 다소 냉정하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류의 역사에 쉼표가 없었던 만큼, 우리의 미래에도 쉼표를 찍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이런 인정을 하고 보니 문득 이를 이겨내는 모든 초인들이 대단해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인 것 같다. 이를 이겨내고 하루를 버텨내는 당신은 벌써 초인이다. 주도성을 실현하는 당신도 초인이다. 모든 것을 초월해 우러러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인간말이다.

아무튼 이 글은 당신을 채찍질하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한 채찍질이다. 요즘 부쩍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나에게, 다시 한 번 주도성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다그치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초인들 모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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