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작성자 기미서

상황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기미서
기미서
@user_45hnf39pt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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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무 바빴다.

30년 인생 중 가장 바쁘고, 심적으로 힘들었던 시간이 블로그 글을 작성하는 것에 귀찮음을 부여했고 두어 달만에 여유롭게 지난 두 달을 리뷰해보려 한다.

  1. 첫 번째, 갑상선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마쳤다.

  2. 두 번째, 이와 동시에 이직을 했다.

내가 왜 바쁘고 심적으로 힘들었는지 상기 요약으로 충분히 설명되었다고 생각한다.


먼저 지난 12월로 돌아가보자.

1년 동안 미뤘던 건강검진을 했다. 초음파 검사는 단순 복부만 보는 줄 알았는데 목에 초음파기를 들이 밀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선생님께서 1cm 되는 작은 혹이 있다고 한번 추가 검진을 받아보라고 하셨다. 뭐 염증이겠거니, 갑상선 암이라고는 생각조차 안 했었다. 

워낙 찝찝한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보니 빠르게 병원을 예약하고 내원해서 검사를 받아봤다.

악성 종양과 양성 종양은 색, 형태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필자와 같은 경우 그 형태가 너무 모호하여 초음파 사진만 보고 판단할 수 없어 조직 검사를 진행했었다. 1차 조직 검사에서도 비정형 3단계라고 양성도 악성도 아닌 모호한 결과가 나와서 2차 조직 검사를 했다. 결과는 유두암이 의심된다는 소견이었고 상급 병원으로 내원하라고 하셨다. 

보통 갑상선 암은 착안암, 거북이 암으로 불릴 만큼 전이 속도와 예후가 좋은 질병이다. 하지만 이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압박감은 상당했다. 내가 너무 불쌍했다. 술담배도 하지 않고, 부끄럽게 살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못된 사람들도 다 건강하게 떵떵되며 잘 사는데 내가 어떤 잘못을 했길래 이런 시련을 겪어야 하는지 더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무리 암이라는 게 원인 불명인 러시안룰렛이라고 하지만 왜 하필 내가 그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온갖 비난과 비판이 온몸을 젖힐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냥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가벼워졌고, 그냥 갑상선 종기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나름대로 순탄했다. 상급병원으로 내원했고, 의심했던 바와 같이 유두암 판정을 받았다.

요즘 의학 기술도 많이 발전해서 1cm 이하는 갑상선을 절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관찰하여 커지거나 전이되지 않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근데 나는 하필 1.05cm여서 수술을 권고받았다. 뭐 어쩌겠나. 해야지. 수술 날짜는 일주일 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에 결정하기로 하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러던 중 이게 또 호사다마라는 말이 진짜 현실로 이뤄지듯 갑자기 채용 담당자에게 문자가 왔다.

알고 보니 작년에 해당 회사의 다른 포지션으로 지원했었던 이력을 보고 문자를 줬던 것이었다. 마침 최근에 업데이트한 포트폴리오가 있었고, 과제 또한 없다는 말에 한번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인드로 지원했다.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지 하루채 되지 않아 포트폴리오 면접이 잡혔고, 빠르게 면접을 진행했다. 이때만 해도 이 과정에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지 전혀 예상되지 않았다. 왜냐면 이직 프로세스가 처음이었으니까.

1차 면접을 보고 채용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포트폴리오라던가 면접에서 보았던 나의 포텐셜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연차가 너무 낮아서 과제를 봤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찾아보니 내가 지원했던 곳의 최소 이력은 7년 이상이었고, 나는 고작 3년 차였다. 

처음 없었던 과제 전형이 생겼을 때 조금 벙쪘지만 만약 3년 차라는 허들이 나를 떨어트리는 결정적 트리거였다면 아마 과제 전형도 제안하시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한번 내 역량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수락했다. 

와 근데 진짜 개빡셌다. 기간은 5일이었고, 주제는 정말 난해 그 자체였다.

문제 단위로 주제를 주는 것이 아닌 도메인 단위의 주제였다. 이 안에서 문제를 정의부터 서비스 기획, 출시 이후 프로모션 전략까지 세워야 하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만약 내가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시간적 여유가 충분한 과제였겠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시간적으로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해야지. 잠도 줄이고, 점심시간도 할애하며 마감 3시간 전까지 꼬박 밤을 새워 제출했다.

제출 후 해당 과제에 대한 면접을 봤고, 참 면접이라는 게 쉬운 게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만큼 첨예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일단 머릿속이 하얘져도 내가 이 답변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자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말이 안 되는 답변이라도 성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을 알아주셨는지 운 좋게 과제 면접까지 통과했다. 나는 그게 끝인 줄 알았다. 근데 웬걸 면접이 2번이나 더 남았다는 것이다. 참 쉽지 않다는 말을 이렇게 많이 써본 적도 없을 만큼 입에 달고 살았다. 나머지 두 번의 면접은 앞으로 협업하게 될 개발자 및 PM과의 면접이었다.

처음 면접 시작하기 전에는 긴장에 온몸이 짓누르는 느낌에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운 좋게 티키타카가 잘 되는 분들과 만나 시간 가는지 모르고 이야기했던 것 같다.

마지막 면접관은 “빨리 입사해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직접적으로 얘기해줬다. 그 한마디에 도파민이 폭발했고, 갑자기 말이 꼬이고 이상해졌다.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하는 모든 고민과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가능성’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참 묘하게 위로가 됐다.

최종적으로 오퍼콜을 받았고, 주니어가 아닌 시니어에 맞는 연봉과 잡 레벨을 제안받았다.

기분이 참 오묘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말단 중의 말단으로 취급받고 있었는데, 시야를 넓혀 다른 회사를 보니 나는 시니어 대우를 받고 있었다. 누군가의 인정이 한 사람의 동기 부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원래는 더 많이 배우자는 마음으로 최소 1년은 더 다닐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을 인정해주는 곳이 생기니, 카운터 오퍼를 받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매니저분과 잘 협의해 퇴사일을 정했고, 다음 주 금요일이 마지막 출근이 될 것 같다.


자 잠깐 잊고 있었던 갑상선 이야기를 다시 꺼내보자. 

왜냐면 이 면접의 종지부를 찍고 수술을 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최종 퇴사일을 다 정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이직하는 날짜와 겹치면 골치 아파져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수술 날짜가 잡히길 기도했다. 진짜 호사다마가 맞는 것일까. 2주 안에 수술이 가능하다고 하여 나흘 전 갑상선 반절제 수술을 했고, 지금은 퇴원했다. 

많이 아프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진짜 종기 그 자체였다. 지금은 그냥 감기가 걸린 듯 목에 이물감이 있는 것 빼곤 지나가는 건장한 청년과 다름없는 컨디션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나이다.

"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나 자신이고,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마주할 일들의 무게감이 달라질 것이라고."

아마 이런 마음가짐으로 이겨내지 않았다면 운 좋게 제안이 들어온 이직의 기회도 날려버렸을지 모르고 지금까지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갑상선 암인데 대단한 병에 걸린 것 마냥 유세 떤다고 생각할 만큼 내 상황보다 더 심각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란 것을 안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마음가짐으로 호재의 기회를 붙잡은 사람도 있으니 한번 시도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이 마음이 겸손하게 잘 전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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