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에 대한 존중을 담은 글
작성자 기미서
시니어에 대한 존중을 담은 글

최근 미화 여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소한 오해였을 뿐인 해프닝에 대해 한 젊은 사원은 미화 여사님께 핏대를 올려가며 소리를 질렀고, 카톡으로 여사님을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언급까지 했다고.
이 상황은 참으로 안타깝고, 아이러니했다.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인간적인 존중이 무너진 이 방식은 낯부끄럽기 짝이 없는 과잉 반응이었다고 느꼈다. 이는 어쩌면 여사님을 하대해도 괜찮은 사람으로 보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린 행동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사회에서 드물지 않다. 시니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되고, 주류에서 소외되는 것은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사회가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이 과거에도 동일했는지 알 수 없지만, 시니어 세대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시간이 흐르며 더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시니어의 지하철 무임승차 문제를 보도한 기사에는 하루에 200개가 넘는 비하 글이 올라왔다고 한다. '틀딱', '연금충', '할매미' 등 시니어를 비난하는 단어가 난무했다.
그럼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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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만든 인간 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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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로 인한 방어, 혐오 기제
자본주의가 만든 인간 상품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품과 상품을, 가치와 가치를 교환하여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중시되며, 인간조차도 마치 상품처럼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 가장 목적의식과 생산성이 높은 젊은 세대는 이 사회의 주류가 되었고, 그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시니어는 정년이라는 딱지를 붙여 사회의 외각으로 쫓겨나게 만들었다.
이는 곧 직장과 일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우리 전반의 삶에서도 쫓겨나게 된 것이다. 생산성이 떨어진 시니어는 경제 활동이 중단되고, 한 가정의 가장에서 가장자리로, 이 작은 사회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로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시니어에 대한 고정관념이 주류가 만든 체제 탓이라고만 할 수 없다.
그들 또한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젊은 세대를 맞이하지 못했다.
일반화로 인한 방어, 혐오 기제
진보적이고, 넓었던 관점도 노화로 인해 보수적으로 관점이 좁아지기 마련이었다. 거스를 수 없는 비처럼 피할 수 없었다. 젊은 세대 입장에서 몇몇 시니어의 말과 논리는 답답하고 설득조차 하기 힘든 큰 벽과도 같았을 것이다.
또한 수 없이 경험했던 젊은 세대의 배려가 당연히 여겨졌을 것이고, 지하철에서 새치기를 하거나, KTX에서 자리를 바꿔 달라는 무리한 요청이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를 오해하지 말고 받아들이면 좋겠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나이를 무기로 삼는 이런 몇몇 존중받지 말아야 할 사람들로 인해 젊은 세대들의 '일반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몇몇 이야기들은 젊은 세대를 냉소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로 충분할지 모르겠지만 이와 같은 원인도 있었을 것이다. 모두에게 냉소적이라면 최소한하루를 망치지 않는다. 우리는 하루에 골치 아픈 결정들로 머리가 복잡하기는커녕 터져버릴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빡빡하고 숨쉬기 어려운 삶에서 낯선 사람으로 인해 방해받고 싶지 않기에 우리는 이런 일반화를 하는 것이지 않을까.
이런 일반화의 장점처럼 단점도 너무 뚜렷하다. 서론에 언급한 사례처럼 무고한 시니어가 일반화의 대상이 되어 오히려 무고한 그들이 무지한 그들에게 투영된다.
그래서 일반화가 나는 조금 무섭다. 이는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와 다름없어 보였다. 우리 주변에는 본받고 존경할 시니어가 너무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것 같다.
대표적으로 나는 우리 할머니를 정말 많이,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형용사를 대입해도 모자랄 만큼 존경한다. 누구보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내 의견 자체를 존중해 주고, 나이라는 무기로 나를 훈계하려 하지 않는 그 태도는 나를 겸손하게, 또 성장하게 만들었다. 가족이라는 존재 의미를 가슴속에 새길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다른 사람을 온전히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나의 근간을 만들어주셨다.
(여든이 넘어 아흔을 바라보고 계신 우리 할머니 사랑합니다)
다시 돌아와 보자.
일반화의 가장 큰 문제는 그 총대가 본인을 겨눌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작은 행동과 생각이 모여 무언의 사회적 인식을 형성한다. 시니어에 대한 부정적 일반화가 만연한 세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시니어가 되었을 때 그 일반화의 대상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많은 사람이 시니어를 떠올릴 때 긍정보다는 부정적 감정을 먼저 느낀다는 점이다. 이러한 감정을 의식적으로 깨닫지 못하고 무심코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역시 그 부정적 감정의 실체가 될 위험이 있다.
나는 내 첫 블로그 글에서 시니어를 존경한다고 말한 적 있다. 시니어에 대한 고정관념과 부정적 일반화가 만연하면, 우리는 그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가르침을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에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그 경험은 때로 우리가 길을 잃거나 어려움을 겪을 때 소중한 나침반이나 등대가 될 수 있다.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간단하다. 시니어에 대한 고정관념 속에도 존중과 존경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녹여보자는 것이다. 그 작은 변화가 더 나은 이해와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