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을 가지는 법
작성자 기미서
주관을 가지는 법

하루에 온전히 나만의 생각을 창조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주제 아래 곰곰이 생각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색을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일어나서부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의 숏폼과 릴스를 소비하며 잉여 시간을 채웠다. 하루에 짧은 콘텐츠를 수십, 수백 개를 소비하는 것은 이미 너무 익숙해진 생활 패턴이 되었다.
1분 내외의 단발성 콘텐츠를 빠르게 소비하는 행위는 콘텐츠에 담겨 있는 수많은 정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도록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 순간 내가 내뱉는 말이 단순히 "누가 그렇게 이야기하더라"와 같은 얕은 공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해와 사색이 덧붙여진 의견이 아니라, 단순한 차용과 인용이 반복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겠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물론, 타인의 의견을 차용하거나 인용하는 것이 나쁜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배움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움'을 넘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생각이 필요하다. 단순히 아는 것과 깊이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 아는 것은 휘발성이 강해 언제든 잃어버릴 수 있다. 단순한 지식을 나열하는 것은 결국 타인의 사고를 빌려 나를 보여주는 것과 다름없다.
반면 이해와 사색이 동반된다면 휘발성을 잠재우고, 새로운 질문으로 되물으며 '나'만의 생각과 의견으로 치환할 수 있다. 치환된 생각은 사고의 힘을 성장시키고,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사색을 가지자'는 말이 쉽지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힘들다. 그 원인을 찾자면 혼자 있는 법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회피의식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는 혼자 있는 법이란, 외적 요인 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로 인해 남는 잉여시간을 어떻게든 숏폼과 외적 요인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럼 왜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할까?
혼자 있는 시간 속에서 외로움, 불안, 고독이라는 괴물을 찾아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럼 이 감정들이 처음부터 괴물로 존재했을까?
문명은 집단생활에 근거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타인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는 시간이 익숙지 않고, 이에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이치를 다시 생각해보자면, 태초의 외로움, 불안과 고독이라는 감정은 본래 인간을 응집시키기 위해 설계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신체적으로 다른 종들에 비해 열등했기 때문에, 집단을 형성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동력 중 하나가 바로 외로움, 불안, 고독이라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아마 태초의 인간이 느끼는 이 감정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감정이 집단생활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을 것이고, 인간을 활동적으로 만드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감정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었을 것이다.
집단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소외가 발생하고, 내부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누군가를 배척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즉, 원래는 집단을 형성하도록 도와주던 감정들이, 집단 내에서 배제와 소외를 유발하는 방식으로 왜곡된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외로움과 고독을 더욱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피하기 위해 더 많은 사회적 관계를 맺으려 하며 외부 자극에 의지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럼 이 괴물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나는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라는 물음은 답이 없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가 태어난 순간부터 어쩔 수 없이 느끼고 피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 역시 이 물음에 갇혀 우울한 시기를 보낸 경험이 있었지만 결국 한낱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하고 이겨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인정한다고 해서 이 괴물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항상 우리 곁에 존재한다. 부정해도 소용없다. 따라서 이를 받아들이고, 상충할 수 있는, 삶의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취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숏폼 콘텐츠 소비는 제외하고.)
그 다음으로 짧게라도 글을 쓰는 시간을 가져보자.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면,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일기든, 짧은 아티클이든 상관없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부터 시작하자. 이렇게 소소한 습관을 쌓아가다 보면, 사색하는 행위가 점점 익숙해지고, 사고의 힘을 성장시키는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나 또한 이렇게 글을 쓰는 것부터 '나'를 성장시키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주관을 가지기 위해 숏폼 소비를 줄여라!"라는 말은 진부해서 안 하고 싶다.
우리는 숏폼을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고, 이 습관을 고치기란 정말 어렵긴 하다. '줄여라'라는 말은 내뱉는 것은 너무 쉽다. 그렇게 내뱉고 주장하는 사람도 이를 잘 실천하고 있을지 의문이 들정도이다.
해서 나는 '줄이라'는 말보다 평소와 같이 시간을 보내되 10분이라도 혼자 있는 시간을 활용해서 사색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가져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 생각을 온전히 창조할 수 있는 창조의 시간을 만들자는 것이다.
우리 모두 누군가의 견해를 저항없이 받아들이기 보다 조금 더 사색하며 나만의 생각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길러 어제보다 성장하는 오늘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