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일하지?
작성자 기미서
나 왜 일하지?

"연금 복권에 당첨되어 50년 동안 매달 750만 원씩 받는다면 일할 거야?"
라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을 하는 행위는 온전한 휴식을 더 달콤하게, 삶을 소중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결론을 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삶을 이루는 '일'과 '휴식'은 양립 절대 필수성을 가지고 있다.

요즘하고 있는 헬스에 비유하자면, 숨이 끊어질 듯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고 나서 마시는 이온음료가 그토록 시원하게 느껴지는 이유, 뛰는 것보다 걷는 것에 소중함을 느끼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일이란 마치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척박한 사막과도 같다. 누군가는 하루에 100개가 넘는 택배를 배송해야 하는 책임감에 어깨가 짓눌릴 수도, 누군가는 100페이지가 넘는 자료를 1-pager로 줄여야 하는 압박감 때문에 가슴이 답답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일과 분리된 시간은 척박한 사막과 대비되어 달콤한 보상처럼 느껴진다. 일과 후 저녁 시간에 잠시 책을 읽는 것도, 주말에 소중한 사람과 소소하게 전시를 보러 가는 것도 인고의 시간에 대한 보상처럼 느끼기 때문에 소중하게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여기에 소중함을 배가시키는 것은 휴식의 희소성이라고 생각한다.
휴식이라는 보상 뒤에 다시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에 더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죽음이라는 운명을 인지한 사람이 이에 무지한 못한 사람보다 삶을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것도 이와 같다. 90분이라는 제한 시간이 없는 축구 경기를 박진감 넘치게 볼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아도 삶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못한다.
이처럼 일과 휴식 빛과 어둠처럼 양립해야만 한다. 수평 저울처럼 어떤 것 하나만 존재한다면 한쪽으로 기울어 삶의 균형이 깨진다. 해서 나는 일 한다. 더 달콤한 휴식을 즐기기 위해 내 삶을 더 빛내기 위해
조금 더 좁혀 생각해 보자.
나는 왜 굳이 많고 많은 직업 중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을 할까?
솔직히 말해, 우연과 나의 기질이 맞물렸다는 것이 결론이다.

고등학교 시절 자동차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자동차 디자인학과를 가기 위해 미대 입시를 시작했다. 마냥 뭣도 모르고 자동차가 좋아 그 학과를 선택한 것은 정말 낯부끄러운 선택이었다는 것을 미대 입시를 시작한 지 6개월도 안되어 한 친구를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친구도 자동차 학과를 지망했는데 열정에서 나와 비할 수 없는 차이를 보였다. 수업 시작 전에 항상 자동차를 재미로 그리고 있었고, 새로 출시된 자동차도 사진을 보지 않고 정교하게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스케치에 숙달되어 있었다. 나는 깨달았다. 자동차 디자인 학과를 지망한다면, 적어도 저 정도의 열정을 가져야 하는구나. 그리고 나는 그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걸 인정했고 방향을 선회했다.
남들이 많이 가는 학교를 선택했고, 남들이 많이 가는 전공을 택했다. 그게 UX/UI였다.
처음에는 여느 미대생처럼 UI를 심미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밤새 그려도 눈이 반짝였고, 희열이 넘쳤다.
하지만 과제와 인턴 경험을 통해, 단순히 UI를 예쁘게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쿠팡이 개떡 같은 UI로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것처럼, 고객이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총체적인 경험과 직관적인 흐름을 설계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튼 우연히 마주한 전공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으며 좋은 학점을 내고, 회사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었다. 고객과 직접 마주하며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프로덕트 디자이너라는 직업은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다행히 나는 적성과 역량이 합을 이루는 우연을 또 맞이했기에 더더욱 이 일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하여 앞으로도 고객이 설정한 목적을 직관적으로 이뤄낼 수 있도록 목적지에서 깃발을 흔들고 있는 '기수'라는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