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날 소개하지(feat. 성장라이팅 속 진짜 나 찾기)
작성자 기미서
안녕 날 소개하지(feat. 성장라이팅 속 진짜 나 찾기)
"일이라는 굴레에 벗어난 나는 누구일까?"
2024년을 마무리하면서 내가 내게 묻는 질문이었다. 고민하고 어렴풋 답을 생각해 냈지만 게으른 탓인가 글로 적어 두지 않아 매번 까먹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한번 정리해 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노트북을 켰다.
나는 올해가 지나면 곧 3년차가 되는 프로덕트 디자이너이다. 운이 좋게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유니콘 스타트업에 입사하게 되었고, 능력 있고 따뜻한 동료분들과 함께 프로덕트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내가 다니는 곳은 정말 빠르게 시도하고 빠르게 학습한다.
1년 동안 했던 과업이 몇개였나 세알려보니 족히 40개가 넘었다.(몇달을 메달린 과업들도 그냥 하나로 퉁쳤으니 40개를 펼쳐 놓으면 아마 80개가 되지 않을까)
이렇게 많은 양의 과업을 실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능력있고, 깨어있는 동료들 덕분이라고 자부한다. 그런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성장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때론 그 동력의 rpm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주니어 프로덕트 디자이너가 성장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은 확실히 맞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한 인간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일에 집중한 시간만큼 고민했던 시간은 적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지 글로 정리하려 한다.
일단 처음이니까 3가지만 나열해 보자면,
1. 일이 있기에 앞서 라이프가 있어야 한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핑계로 일에 몰입하는 것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2. 모든 시니어를 존경한다. 그들의 주름 속 응축된 시간들을 하늘을 우러러 존경한다.(몇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3. 진심으로 모두가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났음 좋겠다. (이것도 인간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제외한다)
일이 있기에 앞서 라이프가 있어야 한다.
내가 무슨 말 하려는지 너무 뻔히 알 거다. 워라밸이다.
단순히 일에 지쳐 투정을 부리는 것은 아니다. 라이프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핑계로 일에 몰입하기 싫다고 선언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일을 하고 있는 나도, 집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나도, 자기 계발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나도 그냥 나다. 일과 삶의 경계를 자를 수 없다는 것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사실 이 두 가지 개념이 같은 선상에 동등하게 언급되는 것 자체에 어폐가 있다. 라이프에 워크가 속하니까.
그냥 내가 접근하는 개념은 간단하다. '내'가 존재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붕괴되면 하고 있는 일도 붕괴되고, 나를 믿는 가족도 붕괴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정리하고 있는 것도 이 도미노 같은 붕괴의 연쇄를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일에 몰입하고, 동료들과 자기계발 책을 읽고 토론하고, 지표를 어떻게 성장시키고, 고객 경험을 어떻게 개선시킬까 고민하고 있는 시간들이 후회되지 않지만 이게 내 전부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 동력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게 도와주신 동료분들께 정말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럼 여기서 '진짜 나'는 무엇일까? 단순한 것 같다.
좋아하는 여가생활이 무엇이고,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이고, 지향하는 삶의 태도에 관해 자신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지층처럼 하나씩 쌓여 나간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친구들과 동료들과 함께 아이스브레이킹 소재로 언급되는 얕은 주제가 아니라, 어떤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깊이 고민하는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박물관'이라는 장소를 좋아한다.
그럼 왜 좋아할까?
시간이 중첩되는 그 미묘한 마찰이 좋다. 내 생애 이전의 이름 모를 사람이 수십 시간을 마주하며 갈고 닦은 작은 유물을 그 사람과 같은 시각에서 본다는 느낌, 그 시간으로 되돌아가 직접 그 사람에 이입되는 느낌. 유적 앞에 서서 관찰하다보면 그 이름 모를 사람에 나를 투영하는 그 과정이 시간을 여행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특히 미술품 앞에서는 그들이 남겨 놓은 붓자국 하나하나를 관찰하며 하얀 캔버스 위에 한 획을 그어 나가는 듯한 경험을 하고 감탄한다.
그럼 나는 과거를 좋아하는 사람일까?
음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다. 현시대 미디어, 작품 등등 재미있는 것도 있지만 익숙해진 탓인지 조금 지루해질 때가 있다. 그 순간에 과거 유물, 작품들을 보면 너무 새롭고 환기가 절로 된다. (과거에 만들어 놓은 정교함은 다 어디로 갔을까? 라는 생각도 들곤한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끝없이 질문함으로써 내재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 있어야 의사결정도 나답게 할 수 있고, 누군가에게 휩쓸리지 않고 의견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에 대한 충분한 오너십 뒤에는 자신에 대한 오너십이 기반이 된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는다.
이 과정이 결국 일에 몰입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 준다고 확신한다. (음 3년 차가 말하기에는 거만해 보일 수도 있겠다. 뭐 지켜보자. 나를 찾는 일이 얼마나 동력에 도움이 되는지)
2번 3번도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버되어서 저거는 다음에 탐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