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키아프를 확 달라 보이게 한 디테일 5가지
아래 글은 2026년 9월 09일에 발행된 뉴스레터에 실린 글입니다.
👉전체 뉴스레터 보러가기
아티클 3문장 요약
1. 올해 키아프는 내년 프리즈와의 물리적 분리 개최를 앞두고 홀로서기 가능성을 보여줘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었고, 정구호 디렉터 영입 이후 관람 경험을 크게 개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2. 특히 넓어진 통로, 늘어난 의자, 광장처럼 활용된 F&B 공간, 직관적인 동선 안내, 오디오 도슨트 같은 디테일을 통해 관람객이 더 오래 머무르고, 더 구석구석 둘러보며, 작품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3. 다만 관람 경험이라는 ‘포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앞으로 키아프가 프리즈와 다른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면 좋은 갤러리와 작가, 작품을 선별해 보여주는 큐레이션 경쟁력까지 함께 강화해야 할 겁니다.
이제 진짜 홀로서야 할 때입니다
혹시 아트페어의 뜻을 아십니까? 수많은 갤러리가 모여 예술품을 선보이고 판매하는, 일종의 미술 장터를 뜻하는데요.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일반 대중에게는 낯설었던 아트페어가 우리에게 가까워진 건,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 양대 아트페어로 불리는 프리즈가 서울에 등장하면서부터였습니다.
프리즈는 ‘프리즈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진출하면서 키아프 서울을 파트너로 택했습니다.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와 공동 개최하면서 프리즈는 한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할 발판을 마련했고요. 반대로 키아프는 아트페어의 외연을 넓히는 동시에 글로벌로 나아갈 기회를 얻은 셈이었죠.
그리고 올해는 원래 이들이 동행하기로 했던 5년간의 공동 개최 기간이 끝나는 마지막 해였습니다. 물론 내년에 바로 헤어지는 건 아닙니다. 2031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거든요. 하지만 코엑스라는 한 공간에서 함께 열리던 두 행사는 적어도 내년만큼은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코엑스 리뉴얼 공사에 따라 키아프는 그대로 남지만, 프리즈 서울은 DDP로 옮겨 처음으로 분리 개최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올해는 프리즈와 키아프 모두에게 중요한 해였습니다. 재계약 이후 이어질 다음 5년의 청사진을 보여주는 무대였기 때문인데요. 특히 키아프는 프리즈와 떨어진 장소에서 혼자 열려도 지금의 흥행을 이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줘야 했습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두 행사는 올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우선 프리즈는 올해 신진 갤러리와 작가를 소개하던 ‘포커스 아시아(Focus Asia)’의 지역적 범위를 넓혀 ‘포커스(Focus)’로 확장 개편했고요. 여기에 신규 큐레이션 섹션인 ‘머티리얼 프랙티스(Material Practice)’와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도입하며 큐레이션까지 강화했습니다. 자신들의 역할을 조금 더 선명하게 재정의한 거죠.
반면 키아프는 처음으로 외부 인사인 정구호 디렉터를 영입하고, 그를 중심으로 아트페어의 관람 경험을 개선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무엇보다 이러한 변화는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직관적으로 다가왔는데요. 2023년 이후 꾸준히 방문했던 키아프 가운데 올해가 단연 최고라고 할 만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키아프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느끼게 만든 디테일 5가지를 소개해보려 합니다.
더 오래, 구석구석 살피며, 쉽게 이해하도록
새로워진 키아프의 요소들은 크게 세 가지 목적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더 쾌적한 관람 환경을 만들어 오래 머무르게 했고요.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공간까지 자연스럽게 이동하도록 관람객의 동선을 확장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일반 대중이 작품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죠.
① 통로 확장 :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한층 쾌적해진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인상을 만든 건 기존보다 확실히 넓어진 통로였는데요. 답답함이 줄어들면서 훨씬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더 오래 머무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② 늘어난 의자 : 아트페어에 가면 보통 몇 시간씩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다리가 아플 수밖에 없는데요. 대표적인 휴게 공간인 VIP 라운지는 일반 관람객에게 접근성이 낮았습니다. 이번 키아프는 중간중간 의자를 많이 배치하며 이를 보완했습니다. 넓어진 통로 곳곳에 휴게 공간을 마련한 거였죠. 덕분에 관람 만족도도 높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③ 광장처럼 만든 F&B 공간 : 키아프는 대형 갤러리가 모인 A홀에 비해 B홀이 상대적으로 한산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번에는 B홀 입구에 대형 F&B 공간을 집중 배치하며 이를 보완했습니다. 이곳은 거대한 휴게 공간인 동시에, 관람객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B홀까지 이끄는 역할을 했죠.
④ 직관적인 동선 안내 : 아주 단순한 장치지만, 전시장 바닥에 검은 카펫으로 구현한 굵은 동선 표시도 한몫했습니다. 복잡함을 덜고 관람객들이 행사장 구석구석까지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왔으니까요. 보통 이렇게 큰 행사에서는 상대적으로 한산한 부스가 생기기 마련인데, 덕분에 이번 키아프는 확실히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고르게 북적이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⑤ 오디오 도슨트 : 쾌적한 환경과 좋은 동선을 만들어도 정작 콘텐츠가 어렵다면 관람객은 쉽게 지칠 수 있습니다. 사실 아트페어는 늘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갤러리스트에게 말을 걸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먼저 말을 거는 것 자체가 솔직히 쉽지 않았거든요. 이번 키아프는 이를 오디오 도슨트 도입으로 보완했습니다. 앱을 설치하지 않아도 이어폰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쉽게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었고요. 이를 통해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5가지 디테일은 키아프의 관람 경험을 확실히 개선했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런 변화의 문법이 최근 리테일 트렌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입니다. 과거 매장들이 오로지 구매 전환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은 고객이 더 오래 머무르고 더 많이 둘러보게 만드는 경험에 집중하고 있으니까요. 이번 키아프를 보며 좋은 공간 경험의 문법은 결국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참고할 만한 점은 경험을 크게 바꾸는 장치가 꼭 복잡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통로를 조금 넓히고, 쉴 곳을 늘리고, 동선을 직관적으로 안내하는 것만으로도 전체 경험은 꽤 크게 달라질 수 있거든요. 여기에 더해 공간에 좋은 의미를 담아놓고도 정작 전달 방식을 놓쳐, 대부분의 관람객이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과하다 싶을 만큼 친절하게 안내하고 설명하면서, 의도한 경험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챙기는 것이 필요하죠.
그런 면에서 이번 키아프는 사소해 보이는 디테일을 놓치지 않은 사례였습니다. 작품 자체를 바꾼 것이 아니라, 작품을 더 편하게 보고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겁니다. 결국 기본을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공간의 인상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셈이고요.
다만 포장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키아프를 다녀온 뒤, 극적인 변화의 주역으로 평가받는 정구호 디렉터의 인터뷰도 찾아봤는데요. 다음 대목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갤러리 한 곳 한 곳을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어요. 그 이외에 제가 할 수 있는 포장들을 한 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사실 아트페어가 정말 사랑받으려면 무엇보다 작품이 좋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품을 감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도, 정작 작품이 별로라면 관람객의 마음을 붙잡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이 프리즈와 키아프가 공동 개최를 시작했던 초창기처럼, 유명 작가의 대형 작품이 많이 들어와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최근 국내 미술시장 불황으로 프리즈 서울에서조차 일부 메가 갤러리가 빠지고 대작의 비중도 줄어드는 흐름을 보면 더욱 그렇고요.
그럴수록 아트페어 본연의 역할 중 하나인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올해 키아프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신진 갤러리의 장인 ‘키아프 플러스’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지난해나 그 이전과 비교해도 부스 구성이나 참여 갤러리, 작가 측면에서 뚜렷한 변화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관람 경험에서는 변화가 컸지만, 큐레이션 강화에 적극적으로 나선 프리즈 서울과는 확실히 대비되는 지점이기도 했고요.
따라서 키아프가 정말 홀로서기에 성공하려면 올해 잘했던 관람 경험 개선은 이어가면서, 더 좋은 갤러리와 작가, 작품을 선별해 보여주는 역할도 강화해야 합니다. 관람 경험이라는 ‘포장’에 더해,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까지 높여야 한다는 뜻이죠.
그러므로 올해가 작품을 ‘보는 방식’을 바꾼 해였다면, 내년에는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까지 달라져야 합니다. 키아프가 이 지점에서도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준다면, 앞으로 프리즈와는 다른 자신만의 영역을 훨씬 선명하게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