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상태로 클럽가서 디제잉을?
작성자 언더아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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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상태로 클럽가서 디제잉을?
🦉 3줄 요약
아멜리 렌스는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혼자서도 전자 음악을 즐기며 DJ로 성장했어요.
모델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며 음악을 배웠고, 이후 전업 DJ로 전환해 큰 인기를 끌게 되었어요.
임신한 상태로도 투어를 다니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그녀는 고유한 테크노 사운드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어요.
임신한 상태로 클럽가서 디제잉을 한다고…?‘
대중들에게는 생소하게 다가오는 이 영상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오늘은 벨기에 출신의 유명한 테크노 DJ이자 프로듀서,
‘아멜리 렌스 (Amelie Lens)’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멜리가 살아온 흔적을 보면서 그녀가 어떤 음악에 대한 태도를 지녔는지도 함께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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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가 익숙해졌을지도 모를 어린 소녀
1990년 5월 31일, 벨기에 브뤼셀 북쪽에 위치한 빌보르드에서 태어난 아멜리 렌스.
그녀의 어머니는 일찍이 혼자서 아멜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렌스의 어머니는 32세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데요, 이때 아멜리의 나이는 불과 5살.
그 후로 이모들 집에서 지내게 됩니다. 인터뷰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서는 이모들은 따뜻했지만 보다 엄격한 분위기였었던 것 같아요.
이때의 아멜리는 굉장히 소극적인 아이였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지지도 못했다고 회상을 하죠. 어쩌면 그때 혼자가 익숙해지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는지도 모릅니다.
11살때가 되서야 아멜리는 할머니 집에서 자라게 됩니다. 할머니는 이모들과는 달랐어요. 아멜리가 뭘하든 열린 자세로 지지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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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서도 잘 노는 음악에 빠진 여중생
할머니의 보살핌 아래 아멜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심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창의적인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공예품을 만드는 것에도 큰 관심을 보였어요. 그 중 열정을 더 보였던 것은 바로 음악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영향을 주었던 건 일렉트로니카의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Underworld가 있었고, 또 독일의 Boys Noize, Ellen Allien 등이 있었어요.
확실히 학창시절에 영향을 주는 뮤지션들의 풀이 우리나라랑은 많이 다르죠?
그리고 환경과 인식이 그녀가 지금의 DJ로 양분을 쌓을 수 있도록 잘 마련되어있었습니다. 벨기에는 영국, 네덜란드, 독일과 가까웠고 수많은 전자 음악들이 많이 보급된 상태였습니다. 때문에 클럽과 파티가 많이 성행했었죠.
15살의 아멜리는 자신이 심취하는 음악을 들으러 가고 싶었어요. 같이 들으러 갈 친구가 없는데도 어떻게든 혼자서라도 들으러 가려 했죠. 당시엔 facebook과 비슷한 my space가 유행이었고, 이런 SNS를 통해 아티스트와 관계자에게 연락해서 미성년자임에도 합법적으로 클럽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게 가능하다고..?)
그런 파티와 클럽은 당시 소극적인 아멜리에게 자신감을 불어다 넣어주었습니다. 꽉찬 댄스 플로어에서 혼자 갔던 아멜리는 함께 있는 것처럼 느껴졌대요.
클럽을 대하는 그녀의 경험과 생각이 묻어나오는 한마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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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인생을 바꾼 페스티벌
브뤼셀 남서쪽의 Dour 시에서 페스티벌이 하나 열립니다. 바로 Dour 페스티벌이었는데요.
1989년부터 시작된 이 페스티벌은 최초에는 밴드뮤직으로만 구성되었지만 아멜리가 참여할 즈음에는 테크노를 포함한 전자음악도 들을 수 있었어요. 역시나 이 페스티벌에 혼자갔던 아멜리는 테크노 존에 들어갔고 거기서 일렉트로닉 음악에 온전히 빠집니다.
그 이후로 일렉트로니카의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새로운 아티스트들과 수많은 레이블을 찾아나서며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페스티벌은 아멜리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줍니다. 바로 모델 일이었어요.
173cm 큰 키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이미 13살때 그 키만큼 컸다고 해요. Dour Festival에 다녀온 후, 햇볕에 그을린 상태였던 그녀의 모습이 모델 에이전시에 어필이 되었는지, 정식으로 모델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게 됩니다.
아멜리에게 음악적 열정을 넣어주고,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게 해준 고마운 페스티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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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자
모델 일을 시작한 그녀였지만, 모델 일 자체를 즐겁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델 일을 하는 동안에 생활을 위한 돈을 벌 수 있었고, 훗날 남편이 될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프로듀싱과 디제잉을 열심히 배울 수 있었습니다. 특히 남자친구 역시 DJ였기에 기술적인 면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해요.
결국 아멜리는 수년간의 모델일을 그만두고, 음악인으로써의 삶에 더 집중하기 시작했어요.
그건 사실 다시 커리어를 완전 초기화 하는거라 매우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죠. 어쨌든 아멜리는 무명의 DJ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열정은 음악에 녹아있었고, 그녀가 보여주는 무대의 퍼포먼스에서 사람들은 진심을 느꼈습니다. 그녀가 만든 트랙 Exhale이 레이블 Lyase와 먼저 이름을 날리고 있던 Pan-Pot 에게 관심을 얻었고 그들의 지지는 SNS를 통해 알려지고 또 팬들이 늘어나고 또 선배 아티스트들의 샤라웃을 받고… 그렇게 급격하게 인기가 많아졌습니다.
인기가 많아져서 음악일이 바빠지자 아멜리는 또 하고싶은게 생겼어요. 그건 바로 아이를 갖는 일이었습니다.
음악인으로써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이 동안에 임신과 출산은 여성 아티스트들에겐 크나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다들 임신을 하면 편안하게 쉬는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아멜리는 달랐습니다. 임신을 하기전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정말로 보여주었습니다.
임신한 채로 투어를 돌면서도 건강하게 먹고 명상과 운동을 했으며, 흡연을 하거나 DJ 부스의 볼륨 조절을 할 수 없는 실내 공연은 모두 취소를 했어요. 몸이 무거워진 상태였어도 오히려 야망과 창의력이 넘쳤다고 말했죠. 아이는 건강하게 태어났고, 청력도 완벽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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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멜리 렌스만의 개성적인 음악 스타일
아멜리는 다크하면서도 밝은, 하드하면서도 공격적이지 않은 그 경계의 사운드를 지향합니다.
사실 이렇게 애매한 포지션을 잡으면 빠와 까를 동시에 생성하기 좋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좋아하는 팬들도 많지만 안티들도 많은 편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녀는 개의치 않아해요. 오랜 기간 클럽의 앞줄에서 마지막까지 음악을 듣던 리스너로써 정확한 음악적 수요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분명히 이 사운드에 대한 시장이 있었거든요”
테크노 계의 거장 리치 호틴(Richie Hawtin)이 그녀를 평하기를
아담 베이어(Adam Bayer)는 그녀를 "고유하고 순수한 형태의 시대를 초월한 테크노"라고 설명했어요.
여러분들도 한번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저는 투모로우랜드 메인스테이지에서 처음으로 아멜리를 보았어요. 매우 먼 거리에서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했었습니다.
독립적이면서도 하고싶은 것을 해내는 그녀의 모습에 음악을 떠나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댄스뮤직, EDM 을 좋아합니다. 음악 평론가는 아닙니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에서 음악, 아티스트, 페스티벌에 대해 읽기 쉬운 아티클들을 적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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