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턴정착자입니다, 없는 직장은 제가 만들었습니다.



스마트폰 없는 유년시절을 보냈다. 시골 할아버지댁에서 풀을 끓여 소밥을 주던 추억을 가지고 있고, 비 오는 날에는 진흙 물웅덩이에서 지렁이를 잡고 놀았다. 공중전화와 삐삐, 모토로라 휴대폰, 가로본능까지 무선통신의 역사를 온몸으로 통과한 10대를 보냈고, 20대에는 싸이월드 문화와 스마트폰 혁명, 그리고 스마트워크를 추구하는 직장생활을 했다. 기술발전과 변화의 흐름 속에 살아온 90년대생이다.
30대가 되어서는 서울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시골 농부인 부모의 곁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거창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햇수로 7년째다. 어릴 적 추억 속 여전히 아날로그적인 농촌의 일상을 살며, 시대의 변화 앞 ‘위기의 농촌’ 지역에서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작은 실행들을 해나가고 있다.
스스로 자리를 만들고 찾아보기
U턴의 배경에는 성장과 변화에 대한 욕구, 그리고 중소농 규모로 농사짓는 부모님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서울에서는 사회적연대경제 영역에서 크라우드펀딩 매니저와 사회공헌사업 기획·지원 업무를 했다. 그 일을 하며 도시에서 농업·농촌의 문제를 다루는 창업가들의 사례를 가까이서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때마다 이상한 자성이 찾아왔다. 나는 농촌 출신이고, 심지어 농부의 딸인데,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가.
그렇다고 답이 바로 나온 건 아니었다. “내가 농촌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지역사회에 대한 정보도, 공간도, 사회적·인적 네트워크도 전무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찾아야 할지 막막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농촌에는 내가 원하는 직장도, 당장 일할 수 있는 곳도 없다는 것. 결국 나의 일을 스스로 만들어야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월세 30만 원짜리 작은 사무실을 얻으면서, 거창에서의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부모님의 농산물을 온라인으로 팔아보기 시작했고, 농촌개발사업의 코디네이터로 합류하면서 지역사회와의 관계를 하나씩 만들어나갔다.


어느 날 갑자기 지역활동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농업기술센터 회의 참석자 명단에 내 소속이 '청년활동가'라고 적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담당자에게 “제가 청년활동가인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지역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이 어떤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그전까지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지만, 주변 어르신들이 어려워하는 행정업무나 정보 탐색을 도와드리곤 했다. 코디네이터 역할을 하며 지역 사람들과 단체들의 활동에 전방위로 조금씩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머릿속 '활동가'는 비영리 영역에서 특정 목적의 활동을 지지하고 실행하는 사람이라는 개념이었다. 농촌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일들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분명 비영리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움직이는가” 라는 목적성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 했다.
코디네이터로서 맡은 업무 중 하나는 지역공동체가 조직될 수 있도록 돕는 교육프로그램을 기획·운영하는 일이었다. 첫 교육과정을 개설하고 10회 차 중 2회 차 수업이 끝났을 때, 한 주민분이 찾아오셨다. “백코디님은 이 사업 끝나면 서울로 가세요?”, “이전에도 이런 교육을 서울 컨설턴트들이 와서 했는데, 교육 끝나고 나니 싹 가버리고, 뭐 좀 해보려니깐 물어볼 데도 없고... 이런 교육 백날 하면 뭐 합니까” 안타까움과 하소연이 섞인 그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 대화를 계기로 지역 안에 있었던 주민조직화 사업과 몇몇 지원사업, 중간지원조직 역할을 하는 단체들의 현황을 찾아봤다. 인구소멸 위기의 농촌지역에는 수많은 지원사업과 공간사업들이 존재한다. 결국 지역주민의 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축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기초교육 이후 현장에서 주민조직의 성장을 곁에서 지원해 줄 조직과 프로그램은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었다. 교육·컨설팅 기관은 하루 와서 교육하고 떠나가고, 사업계획서 한 장 쓰는 것도 버거워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생존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창업이라 했지만, 사실은 지역을 연결하는 일
농촌개발사업 코디네이터로 3년을 활동한 뒤, 사업 기한 종료와 함께 운영조직도 지역에서 사라지는 상황을 맞았다. 그 3년은 형식적인 사업 수행이 아니라, 운영조직과 코디네이터와 지역주민 모두가 함께한 교육과 공동체 활동 속에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쌓은 시간이었다. 특히 서울 마르쉐를 벤치마킹해 2년간 매달 운영해 온 지역의 농부시장은, 다품종 소량생산 농가의 판로가 되고 농업·농촌의 다양성을 사람들과 나누는 장이었다.
모두가 농부시장이 없어질까 봐 걱정할 때, 조직을 갖추고 이를 추진할 주축이 필요했다. 코디네이터를 함께했던 동료와 지역의 연결점이 되겠다는 목표로 2024년 농촌문화기획사 로컬로우를 창업했다. 창업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수익모델과 비즈니스모델을 체계적으로 구상했다기보다는 지금처럼 지역의 연결 속에서 프로젝트를 이어가며, 농업·농촌 안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다양한 재능과 이야기를 거창의 자랑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열망이 일을 만들어갔다.
농부시장은 여전히 4년째 운영 중이다. 10여 개 농가가 중심 네트워크로 구성됐고, 30여 회 넘게 진행됐다.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을 경험할 수 있는 '농부의 식탁', 회차마다 다른 농촌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농가들과 함께 기획하고 있다. 매번 고민하는 질문은 비슷하다. 농부시장이 어떤 콘텐츠로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까, 건강한 먹거리와 식탁까지의 연결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볼까. 지역의 소비자 인식과 시장 규모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대구 지역 마켓과의 연결로 2년째 활동을 확장하고 있고, 도시 소비자가 알아보는 농가의 가치만큼 거창에서도 농가 팬덤 문화와 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이어지는 과제다.


이 프로젝트의 페르소나, 그건 바로 나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젝트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하는 '시골언니 프로젝트'다. 거창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로컬로우'가 운영하고 있고, 올해로 3년째다. 5박 6일간 지역에 머물면서 각 지역의 여성 네트워크를 통해, 이후 지역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관계의 비빌언덕을 만드는 것이 사업 목적이다.
'농촌, 청년, 여성'이라는 키워드 속에서 나는 당사자다. 다른 점이 있다면 먼저 농촌에 정착했다는 것뿐이다. 로컬리티와 러스틱 라이프(Rustic Life)에 관심 있는 2030 여성 참여자들은 다수가 미혼이고, 경쟁적인 도시 생활의 피로감을 느끼며, 인생의 어느 시기에 찾아온 삶의 방향성과 주도권을 찾는 고민을 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원하는 건 농촌 공간과 환경이 주는 생태적 감수성, 느슨한 연대를 통한 관계의 안전망, 거기에 취향이 반영된 일까지 더해진 삶이다.

시골언니프로젝트는 지역마다 운영사가 그 지역의 여성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콘셉트를 기획한다. 거창은 여성 소농의 삶과 농업에 밀착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기획의 페르소나는 나 자신이다. 내가 고향에 정착할 만큼 매료됐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과 그들의 삶이다. 사람과 흙이라는 관계에서 삶의 태도를 배우고, 계절과 자연의 섭리에 따라 기르고 먹는 자급의 삶에서 배우는 것들.
1년 차 프로그램의 콘셉트는 내가 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뻗어나갈 수 있었던 에너지가 되어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2년 차부터는 러스틱 라이프 하면 늘 거론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환상보다, 흙을 만지고 땀을 흘리며 자급하는 삶의 수고로움과 보람을 몸으로 직접 느끼는 데 무게를 뒀다. 참여자들에게는 귀농·귀촌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환상은 영화 속에나 있다고 말하며 주거, 경제활동, 이동과 생활권, 관계의 문제까지 농촌 정착에서 실제로 부딪히는 상황들을 가감 없이 공유한다. 청년 미혼 여성이 마주할 수 있는 문제를 미리 준비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그리고 농촌의 살아가는 여성의 삶의 어떤 단단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보며 도시의 삶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마음을 어루만져주기도 하고, 삶의 전환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대안적 예가 있음을 보여주면서 살아가는 시골언니가 되고 싶다.
“할 수 있다, 넌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용기와 따뜻한 마음을 한가득 얻어, 앞으로 어떤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지 정말 기대됩니다”
“거창에서의 5박 6일은 단순한 체험이 아니라, 시골 언니들의 삶을 직접 배운 시간이었어요. 흙을 지키고, 씨앗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키는 언니들 덕분에 도시인으로써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을 새롭게 보고 알게 되었어요. 시골은 단순히 ‘한적한 곳’이 아니라, 사람과 철학이 살아있는 현장이더라고요”
“자급자족 하는 삶에 대한 동경은 더욱 커졌지만, 단순히 안빈낙도만을 꿈꾸지는 않아요. 앞으로 제가 거창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어요”
- 2025년 참여자 후기 중

로컬에 왜 청년이 필요할까?
시골언니프로젝트와 같이 청년 여성을 중심에 둔 농업·농촌 프로젝트는 흔치 않다. 정부 사업의 성과 지표는 농촌 인구 증가지만, 5박 6일짜리 체류 프로그램의 성과를 거기에 곧바로 연결하기엔 무리가 있다. 대신 내가 체감하는 성과는 다른 데 있다. 도시로 돌아간 참여자가 도시 텃밭이나 생태 교육을 듣고, 텃밭을 분양받아 주말 농부가 되고, 제철 농산물을 나눠 먹는 커뮤니티를 직접 꾸리고, 언젠가 거창을 다시 찾아오는 것. 그렇게 관계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 경험이야말로 생태적 감수성이 일상을 바꾸고, 도시의 청년이 농촌의 '관계인구'가 되는 실질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무실에서 스마트워크 툴로 협업의 효율을 따지는 일은 이곳에서 한동안 사치에 가까웠다. 사업계획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전화를 받으면 마주 앉아 함께 썼고, 문자로만 신청을 받던 팀에는 구글폼과 네이버폼 쓰는 법을 알려주는 게 내 일이었다. 도시적 감각과 디지털 리터러시를 가지면서도, 고령층이 느끼는 기술적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세대적 경험을 함께 가졌다는 것. 그것이 90년대생인 내가 이 자리에서 발견한 쓸모였다.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중간지원조직이 부재한 농촌 현장에서, 당장 체계를 갖춰 나가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청년이 로컬에 있으면 확실히 달라지는 게 있다. 도시에서 배운 언어와 도구를 지역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사람들의 경험과 관계에 이어 붙이는 일. 하루 왔다 가는 컨설턴트가 아니라, 다음 주에도 물어볼 수 있는 사람으로 계속 그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다.
지역은 청년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 청년은 지역의 필요한 최소 기능의 역할을 찾아서 하는 것.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활동조직들과 계속 논의하고,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실행해 나가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그리고 지역활동가들이 해나가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도시만큼 실행의 임팩트가 빠르지도 않고, 규모가 작아 ‘사업성’에서는 배제될 수 있지만, 지역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신뢰의 자본과 공동체의 즐거움이 있다면, 그 커뮤니티는 유지되고 커뮤니티 안에서 만들어지는 프로젝트는 천천히 결과를 낼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변화의 임팩트를 만들어 낼 거라고 기대한다.
글 | 백은선
(주)로컬로우 대표
사회적연대경제 영역에서 크라우드펀딩, 사회공헌사업을 기획하다 2020년 고향 경남 거창군으로 귀농귀촌했다. 현재는 가족농의 형태로 사과 농사를 지으며 농촌문화기획사 로컬로우의 대표를 겸하는, ‘반농반X’의 삶을 살고 있다.
localro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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