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알고 있지만 하지 않는 것

미세플라스틱의 위험성을 알리는 콘텐츠를 봤을 때, 아마 열의 아홉은 그 심각성에 공감하겠죠. 근데 그 후에 당장 미세플라스틱에 위협(?)당하는 지구를 구하는 일에 뛰어들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아는 것’과 ‘아는 것을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차이가 있습니다. 왜 수천 년전,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지행합일, 지덕합일’을 강조하셨는지 이제 잘 알 것 같아요. 저는 알기 위해 뉴스레터를 읽습니다. 사실 안다는 건 문을 여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알게 된 것과 내 영혼을 일치시키려면 우리는 그 문 안으로 한 발 내딛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 한 발걸음을 통해 나의 변화가 시작되고요. 그 변화의 지속을 통해 비로소 세상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게 됩니다.

‍여기 한 어부가 있습니다. 그는 일을 통해 자연스레 해양쓰레기(특히 미세플라스틱)의 심각성을 확인했고요. 당장 내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지체하지 않고 쓰레기를 치웠습니다. 그의 꾸준한 실천은 점점 주변에 번져 나갔고 이제는 함께 하는 동료가 꽤 많이 생겼죠. 그리고 이제 '그 행동'이 문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문을 열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시겠어요?

🐟 어부 김정판

안녕하십니까! 쓰레기 낚는 어부 김정판입니다. 저는 죽방염이라는 전통 어업 방식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죽방염을 간단히 설명해 드리자면 V자 형태의 발을 설치해 조류에 의해 밀려온 물고기를 잡는 방식입니다. 한 500년 전부터 이어져 내려왔다고 전해지고 있어요. 대표적으로 잡히는 어종은 멸치고요. 계절에 따라 갈치가 잡히기도 하고 6월 말, 7월 초에는 보리새우가 잡히기도 합니다.

조업 중에 멸치와 함께 그물에 항상 드는 게 쓰레기입니다. 집중 호우가 있을 때는 죽방염 그물에 쓰레기가 너무 많이 들어서 그물에 있는 멸치까지 못 쓰게 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저 어렸을 때는 연안이나 선착장만 가도 꽁치 같은 물고기들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지금은 전혀 없습니다. 해양오염으로 연안 습지가 산란지나 서식지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해서겠죠. 바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해양 쓰레기로 인해 바다가 파괴되고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되더라고요.

죽방염 그물에 가득 차있는 해양 부유 쓰레기를 치우는 김정판 어부 | ⓒ행복나눔재단

“먹고살기가 힘듭니다, 물고기가 없어서”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제가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바로 시작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요. 2012년부터 지금까지 여러 방면으로 해양 쓰레기 줍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최고 만조선 위 미세 플라스틱을 수거하라

해양 쓰레기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죽방염 그물에 걸리는 해양 부유 쓰레기 때문이었어요. 근데 10년 넘게 해양 쓰레기를 수거하다 보니 자연스레 ‘해안가 미세 플라스틱 수거’에 초점을 맞추게 됐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수면이 가장 높을 때인 ‘최고 만조선’ 위쪽에 있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빨리 공략해야 합니다. 강한 바람이나 집중 호우 때문에 최고 만조선 위로 떠밀려 올라온 플라스틱 쓰레기는 오랜 시간 해안에서 태양광을 맞으며 미세화됩니다. 미세화된 플라스틱은 수년 만에 태풍이나 집중 호우가 찾아올 때 바다로 휩쓸려 가고요. 바닷속 미세 플라스틱을 수거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바다로 흘러들어 간 미세 플라스틱이 바다 환경을 파괴하고 돌고 돌아 해산물을 통해 다시 인간 몸속에 들어온다는 걸 다들 아실 거예요. 마음 같아서는 최고 만조선 위쪽 해안을 굴착기로 싹 다 파서 체로 거르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김정판씨가 거둬들인 스티로폼 가루. 땅을 파면 팔수록 미세화된 플라스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 ⓒ행복나눔재단

💡 기록, 발명

2012년부터 개인적으로 쓰레기 수거 활동을 했습니다.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고요. 2017년부터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고 2020년부터 쓰레기 종류나 쓰레기양 기록하기 세세하게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해안가 쓰레기를 해결하는 방안을 기록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계속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수년간 기록을 하다 보니 쓰레기의 흐름을 파악하게 됐고요. 이를 통해 쓰레기 수거 위치와 시간 등의 계획을 효과적으로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제가 직접 발명한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 3개가 현재 특허 출원을 마쳤고요. 지금 진행 중인 특허도 있습니다. 포집 장치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첫 번째, 하천과 연결되는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 두 번째는 해안가로 유입되는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 그리고 세 번째는 만으로 유입되는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가 있습니다. 지형과 지역, 조수 간만의 차, 조간대의 길이 그리고 바람의 영향에 따라 만들어진 포집 장치입니다. 죽방염에서 물고기 모으는 방식을 쓰레기 포집 장치 발명에 활용하기도 했어요. 오랜 세월 바다에 있다 보니 조류의 흐름과 포집 원리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김정판씨가 출원을 마친 해양 쓰레기 포집 장치 3종의 특허 관련 서류 | ⓒ행복나눔재단

🤝 우리바다환경지킴이 결성

저희 우리바다환경지킴이는 어업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해양쓰레기 수거 단체입니다. 개별적으로, 조업 중에 만나는 쓰레기를 거둬들이고요. 월 1회씩은 모여서 해안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태풍이 올 때는 태풍 앞뒤로 활동을 해요. 그래서 보통 1년에 14번 정도 우리바다환경지킴이 활동을 합니다. 단체를 결성하고 나서 연간 약 50~60톤 정도의 쓰레기를 줍고 있습니다. 수거된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통해 재활용 할 수 있는 것들은 수협을 통해 수익화하고요. 이 과정에서 발생한 수익은 전부 환경단체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 "이미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다"

제가 쓰레기 활동하면서 결과는 쓰레기가 줄지 않는 결과는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데 실천을 안 합니다. 지금 해양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근데 지자체에서나 관계자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예산이 없어서 못한다”라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돌려서 생각해 보면 “돈이 있으면 해결에 뛰어들 수 있다”라는 말인데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너무 늦으면 돈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사람들이 저를 ‘쓰레기 잡는 어부’라고 하더라고요. 그거 좋은 소리입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기분이 좀 안 좋았어요. 근데 지금은 괜찮습니다. 계속 해양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하다 보면 나중에 물고기를 줍는 해양 쓰레기보다 많이 잡을 길이 있을 겁니다. 그때까지는 열심히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