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케어러가 영케어러를 지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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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테이블토크

사회변화를 향한 레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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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가족이자 친지를 돌보는 청(소)년을 지원하는 제도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대선이 한창이던 2021년 말, 한 청년의 간병살인 문제가 이슈화됐고, 2022년 2월 정부는 ‘가족 돌봄 청년[영 케어러] 지원대책 수립 방안’을 내놓았다. 이후 지자체, NGO, 복지관, 기업 사회공헌팀 등의 영케어러 지원이 확산됐고, 마침내 올해 2월 27일 ‘가족돌봄 등 위기아동·청년 지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제 영케어러를 위한 전달체계가 전국으로 확대될 참이다. 앞으로 더 세심하게 정비해 나가야하지만, 제도의 변화는 발 빠르게 이뤄졌다.

하지만 사회적 소수자를 지원할 때, 제도의 변화만큼이나 당사자들의 변화도 중요하다. 스스로 자신의 소외를 해석하고 목소리내며 나아가는 힘 말이다. 그 힘은 당사자들이 모여 서로 돕는 자조력과 공동으로 미션을 해결해 나가는 자치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자조적이고 자치적인 당사자의 활동이 제도적 지원과 맞물린다면 더 튼튼한 안전망을 형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토록 바라던 어른

“나를 알아주는 어른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렇게 힘들지 않았을 거 같아요.”

영케어러 자조모임을 할 때마다 자주 나오던 이야기다. 지난날 살아남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들을 나누다보면 경제적 빈곤, 사회적 위축, 돌봄 부담만큼이나 고립감의 문제가 크게 대두된다. 아픈 이를 돌보느라 가정에서, 병원이나 공공기관에서, 학교나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어떨까? 사회적 서비스의 필요만큼이나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관계망’의 필요 또한 높았다.

2023년 말, 우리는 자조모임이나 정책 제안만 할 게 아니라, 직접 사회적 역할을 해보자는 마음을 모았다. 그토록 필요로 했던 어른의 존재, 우리가 되어보자는 마음이었다. 돌봄 상황에서 겪는 어려움을 공감하고 함께 머리를 맞대는 사람, 내가 돌볼 줄 몰라서 좌충우돌하며 얻은 돌봄노하우를 공유하는 사람, 돌보느라 더 나은 미래가 없을 것 같이 느끼는 사람에게 나도 너와 닮은 경험을 했지만 이렇게 살아가고 있노라고 손 내미는,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돌봄청(소)년의 고립감은 많이 해소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실현한 게 ‘영영케어’ 멘토링 프로젝트였다. 영영케어는 ‘노노케어’를 패러디한 말로, 영케어러가 영케어러를 지원한다는 의미를 담은 명칭이다. 나는 2023년 5월에 진행한 ‘영케어러와 돌봄의 위기’의 연사로 참여하며 SIT와 관계를 맺었고, 그해 10월쯤 SIT에 멘토링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제안은 곧바로 성사되어 11월부터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영영케어 1기(2023년 11월~2024년 4월)와 영영케어 2기(2024년 7월~2024년 11월)를 진행했다. 영케어러인 청년들이 11명의 멘토로 양성됐다. 양성과정을 거치지 않고 멘토로 함께 한 청년들까지 포함하면 총 16명이다. 이 프로젝트가 끝나고도 멘토들의 활동이 복지관과 연결되며, 현재 총 71회의 멘토링을 진행했으며 누적 516명(실 인원 80여명)의 돌봄청소년을 만났다. 이 글은 영영케어의 진행 과정을 소개한다. 많은 기관이나 단체가 영케어러 동료상담 혹은 동료지원(Peer support)을 수행하길 바라며 기록을 공유한다.

영영케어 1기 & 2기 모집 포스터 | ©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영케어러 멘토 모집 잘 될까?

우선 멘토를 모집해야 했다. 모집은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포스터와 소개글을 올리고, 다양한 질병이나 장애 카페의 자유게시판, 자조모임 단톡방 참여자들에게 외부 공유를 부탁하며 진행했다. 19~39세 청년 중 영케어러였거나 영케어러인 이들을 중심으로 모집했다. 홍보 문구는 아래와 같았다.

영케어러를 지원하는 나라들은 영케어러를 ‘숨은 집단’(Hidden army)라고 부른다. 존재하는 건 알지만 사회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붙인 명명이다. 사실 1명도 신청하지 않으면 어쩌나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걱정이 무색해졌다. 순식간에 14명이 신청했다. 그 중 끝까지 참여할 수 있는 이들을 추려 6명으로 1기 양성을 출발했다. 2기는 모집 기간이 촉박하여 많이 신청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5명이 새로 모집됐고, 양성과정 없이 참여할 수 있는 이들도 초대해 총 10명이 멘토 활동을 이어갔다. 사실상 모집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어려움 없이 모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는 게 컸다.

영케어러가 숨은 집단이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복지 신청주의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복지를 신청하는 건 나의 무능을 증명하는 낙인감으로 다가오고, 빡빡한 신청 기준 앞에 서면 신청해도 안 될 것 같다는 무력감이 몰려온다. 하지만 영영케어와 같은 멘토링 프로그램은 너의 무능을 증명하기보다 너의 역량을 증명하며 사회에 기여하자는 제안이다. 서비스의 수혜자를 넘어 활동의 주체가 되길 권한다. 더불어 빡빡한 신청 기준이 있는 복지도 아니니, 내가 돌봄 경험이 있고 에너지만 있다면 신청 가능하다. 홍보 채널만 확보된다면, 멘토들이 잘 모집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멘토 양성 과정의 큰 흐름

“다 돌봄 경험이 다른데 모여서 같이 대화하고 배우고 할 수 있나요?”

영영케어 프로젝트를 소개하다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정말 다양한 돌봄 경험들이 있다. 뇌병변장애, 지체장애, 지적장애, 조울증, 조현병, 고립은둔, 알코올의존, 치매, 말기암, 사별 등 돌보는 이들의 질병이나 장애의 종류만큼이나 돌봄의 양상이나 관계도 다양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는 영케어러라는 이름 아래 모였지만, 우리는 다 다른 사람이라는 걸 인식하는 일이다. 오히려 다름과 차이 덕분에 서로 인식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계기를 만들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그라운드룰이다. 충고, 조언, 평가, 판단, 즉 ‘충조평판’을 하지 않고 ‘경청하기’는 모든 과정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멘토가 모집됐다면 교육 과정을 진행한다. 영영케어 1기는 총 5회기, 2기는 총 8회기 멘토 양성 과정을 진행했지만, 1기와 2기 교육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동일했다.

멘토 양성 교육 현장 | ©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1. 나의 돌봄 경험을 돌봄 생애주기 그래프로 그리며 공유한다. 돌봄을 한 것 뿐 아니라 돌봄을 받은 것도 공유하면서 돌봄이 주고받는 것임을 느낀다. 돌봄 경험을 안전한 관계 안에서 말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자유로움’을 얻었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비로소 ‘나다움’을 인정받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장은 자신의 돌봄 경험에 거리를 두며 억울함이나 죄책감 등에 파묻히지 않을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

2. 관계맺음과 알아차림에 집중한다. 성찰의 시선을 본격적으로 ‘나’에게 둔다. 나는 지난날 어떤 상황에서 관계가 불편했고 그 불편함은 어떤 감정인지 알아본다. 반대로 내가 신뢰를 느끼는 관계는 왜 그렇게 느끼는지 확인한다. 행위 워크숍이나 이미지 카드 활용으로 동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동적 활동으로 몸이 열리면 마음도 자연스레 열리게 된다. 몸의 열림은 멘토들 간의 신뢰 형성을 돕고, 이후 교육의 흡수력을 촉진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3. 청소년 위기 양상과 상담 방법을 배운다. 시선은 ‘나’에서 구체적인 ‘너’로 향하게 된다. 오늘날 청소년 위기, 즉 중독, 폭력, 우울, 자해, 사이버성폭력 등의 사례를 익히며, 상담 기술을 습득한다. “한주 어떻게 보냈어?”와 같은 개방형 질문과 “한주 잘 보냈어?”와 같은 폐쇄형 질문이 주는 차이를 느끼며 질문법을 고민하고, 대화 없이도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언어적 표현을 숙지한다. 익히는데 그치지 않고 서로 짝을 이뤄 실습까지 진행한다.

4. 복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홈페이지, 채널, 창구 등을 확인하고, 실제 서비스 연결이 된 사례들을 듣는다. 활동은 주로 서울시 및 수도권에서 진행했기에 보조금24, 맞춤형급여안내, 내 손안에 서울, 청년몽땅정보통, 온통청년, 서울시 가족돌봄청년 지원사업 WAY 등 정보 플랫폼을 숙지한다.

청년몽땅 채널 | © 이욱진 <돌봄아동청(소)년의 복지상담 사례와 유의점>

5. 마지막은 멘토의 역할 정립과 멘토링에 필요한 실무 파악이다. 멘토는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영케어러가 겪는 돌봄의 문제는 단박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 다만 어려움 속에서 곁에 함께 하며 말하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는 귀가 되고, 무언가 듣고 싶을 때 말해줄 수 있는 입이 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그 이상으로 무언가 해결해야 한다는 조바심이 들기 시작하면 결국엔 무력감이 나를 먼저 덮칠 수도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우리는 곁을 함께 하는 사람이고, 도움이 필요하면 사회복지사나 사례관리사에게 연결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실히 한다. 멘토링 과정에 어려움이 발생하면 지원이 가능하도록 소통하는 ‘멘토링 활동 기록지’ 작성법도 익힌다.

멘토링 활동 기록지를 통해 n인분 활동가와 멘토는 소통하고 함께 고민한다. | ©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앞으로도 회차가 더 늘거나 줄어들 수는 있지만, 큰 흐름은 위와 비슷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서 약간씩 미디어 시청이나 선배 멘토 사람책, 현장 탐방 등을 넣는 방식으로 양성 과정을 변주할 수 있다.

멘토 - 멘티 매칭, 경험의 유사성이 핵심

양성 과정을 마치면 멘토와 멘티의 매칭이 이뤄진다. 하지만 멘티를 모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청소년이 스스로 자신을 영케어러라고 인식하고 있을까? 거기에 자신의 필요를 정확하게 알고 멘토링 사업을 신청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영케어러임을 인식하는 것도, 멘토링으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주변에 또다른 누구가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까? 몇 주가 지났는데 신청 인원은 0명! 이런 현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멘티 모집을 온라인으로만 진행한 결과였다. 그제야 활동가들과 청소년기관을 찾아다녔고, 기존에 알고 지내던 돌봄청소년에게 연락해 3명의 멘티를 찾아 매칭했다.

2기에는 이런 불상사를 막고자 복지관들과 협력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미 영케어러 사업을 하는 복지관들과 협력하여, n인분은 멘토 양성과 파견을, 복지관은 멘티 소개와 멘토링 장소를 마련해준다. 2기 시작 전, 복지관을 돌며 사전회의를 했기에 큰 어려움 없이 매칭이 이뤄졌다.

1기에는 멘티보다 멘토가 많았기에 멘토 2명과 멘티 1명이 매칭됐다면, 2기에는 멘토보다 멘티가 많았기에 1:1 동료상담형과 2:다수 자조모임형 멘토링으로 세분화했다. 그를 위해 2기에는 청소년 집단상담의 이론과 사례를 익혀야만 했다. 멘토-멘티 매칭 시 핵심이 되는 건 경험의 유사성이다. 이를테면 지적장애 형제를 돌보는 멘티를 지적장애 부모를 돌보는 멘토와 매칭한다거나, 예체능에 진로를 희망하는 멘티에게 예체능에 직업을 갖고 있는 멘토를 매칭하는 식이다. 멘토 양성 과정에서 돌봄의 차이들이 시너지를 만들 수 있지만, 본격적인 멘토링에서는 돌봄의 차이를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이다.

1기 수료식 사진 | ©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딱 한 그룹을 유사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매칭한 적이 있다. 수도권이 아닌 먼 지역의 영케어러들을 만나야 했기에 멀리까지 갈 수 있는 멘토를 중심으로 매칭했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멘티는 총 4차례 만나는 동안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았고, 멘토는 그 상황에 무력함을 느끼며 좌절했다. 좋지 않은 결과를 얻은 데에는 멘티의 컨디션, 복지관의 협조 등 여러 요인이 있지만, 경험의 유사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탓도 컸다. 경험의 유사성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멘토링 기획은 멘토의 자율성에 맡겼고, 멘토는 멘티의 욕구를 파악해서 내용을 제시하거나 같이 만들었다. 멘토링의 내용은 한강 소풍가기, 뮤지컬 보기, 원하는 진로 현장 탐방하기 등 여가활동이 중심이 되어 중간중간 돌봄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감정 일기 쓰기, 영케어러 지원 정책 살펴보기, 내 안에 숨은 역량 찾기 등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방식도 있다. 멘토링 비용은 예산에 따라 1회당 10만원에서 3만원 정도 지급했다.(3만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멘토링은 멘토와 멘티만의 일이 아니다. 멘토링 활동기록지를 통해 어려움이 발견되면 n인분의 활동가도 같이 고민하고, 필요 시 청소년상담사의 슈퍼비전으로 멘토링 전 과정을 되짚기도 한다. 슈퍼비전은 청소년상담사와 1시간~2시간 소통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과정이다. 특히 멘티의 우울, 불안, 중독 등 심리적 위기가 드러나거나, 멘티의 고통이 멘토에게 역전이 되거나 반대로 멘토의 고통이 멘티에게 투영될 때 슈퍼비전이 필요해진다.

매칭된 기관 담당자의 협력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멘토링 과정에서 멘토와 멘티가 고립되지 않을 수 있는 관계망이 있어야 한다. 멘토와 적극적으로 협력한 사례관리사는 이런 소감을 남겼다.

“처음에는 일이 늘어난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더 준 거 같아요. 6개월 동안 사례관리를 하며 듣지 못한 이야기를 멘토한테는 바로 이야기하더라고요. 멘토가 전달해준 이야기를 듣고 어떤 서비스가 더 필요한지 명확하게 확인하고 자원을 연계했어요. 앞으로 멘토와 사례관리사가 영케어러 지원에 협력하면 사례관리 품도 많이 줄어들 것 같아요. 서비스의 효과성도 높아지고요.”

멘토와 담당자의 적극적인 협력이 이뤄진다면 멘티의 고립감이 해소되는 건 물론, 실제로 필요한 서비스 연계도 더 효과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더불어 멘토 또한 이야기를 충실히 듣는 멘토의 역할에 집중하며 과도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협력이 잘 이뤄질 때 활동의 효과성도, 효능감도 높아진다. 이런 과정을 우리는 ‘관계 지원’이라고 부른다. 보통 지원은 일방향으로 제공자와 수혜자가 나뉜다. 하지만 관계는 상호적이다. 그러므로 관계 지원은 서로가 서로의 제공자이자 수혜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한 멘토는 관계 지원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한다.

“처음에는 제가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많은 도움을 받는 건 저 자신이더라고요. 멘티랑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도 많이 배웠어요. 결국 상호 성장, 상호 배움, 상호 돌봄이 이뤄진다고 느꼈어요. 어느 누가 도와주고 도움 받는 관계가 아니에요.”

멘토링이 잘 이뤄질수록 멘토와 멘티의 경계는 허물어진다. 물론 먼저 말을 걸고, 약속을 잡고, 해결책을 찾는 멘토의 역할은 있지만, 관계가 형성된 이후에는 멘토 또한 큰 도움과 에너지를 얻는다. 결국 함께 성장하고 함께 배우며 함께 돌보는 활동이 동료상담 혹은 동료지원인 셈이다.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선 수료증

마지막은 수료식이다. 지난 과정에 뿌려진 씨가 얼마나 잘 자라났는지, 그 결실은 무엇인지 추수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단지 내 돌봄 경험이 소외나 피해만이 아니었음을, 누군가의 고통을 덜어질 수 있는 시민적 역량이었음을 재발견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멘티와 관계는 어떻게 해나갈지, 멘토로 더 활동하고 싶은지 가늠해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멘티와 몇 개월이나 1년에 한 번씩 만날 계획을 세우고, 누군가는 이 과정을 끝으로 관계의 매듭을 잘 짓고 싶어 한다. 누군가는 멘토로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싶고, 누군가는 이 경험이면 충분하다고 느낀다. 결국 멘토링은 누군가와 관계 맺는 일이기에 이런 정리의 시간은 필수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만큼이나 중요한 게 수료증이다.

영영케어 2기 수료증과 수료식 단체사진 | ©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여기서 수료증은 단순한 기념품을 넘어선다. 특히 돌봄 과정으로 경력의 공백이 생긴 이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돌봄 경험은 우리가 사회에 나올 때 이력이나 경력으로 쓰지 못한다. 그럼에도 돌봄을 했기에 우리에게 쌓인 지식과 역량이 있다. 영영케어 멘토링은 돌봄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역량을 사회화하는 장이다. 수료증은 돌봄을 했기에 얻은 지식과 역량을 사회적으로 활용했다는 증거이고, 돌봄 경험이 이력이자 경력이 될 수 있다는 변론이다. 앞으로 n인분 뿐 아니라 다양한 기관들에서도 돌봄 경험을 이력이자 경력으로 가시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길 바란다. 도움을 받은 멘티가 커서 다음 멘토가 되어 또다른 멘티를 돕는다면? 이렇게 돌봄 경험이 선순환되는 사회를 함께 만들자.

지난 3월 7일, 보건복지부 청년정책팀을 만나 영영케어 사업 경험을 공유하며 ‘영케어러 동료상담’이라는 사업을 제안했다. 추정 예산과 사업 모형 또한 담았다. 꼭 n인분이 아니어도 좋고, 청년미래센터가 아니어도 좋다. 지역사회에서, 복지관이나 병원의 부설기관에서, 가족센터나 상담센터에서 다양한 상상을 함께 실현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영케어러 동료상담 운영안 | ©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영케어러 문제는 돌봄 부담으로 진로 이행을 하지 못하는 청(소)년 문제인 동시에, 돌봄 위기의 증상이다. 만약 영케어러 문제가 이렇게까지 가시화되기 전에, 돌봄을 했던 수많은 여성들과 돌봄자들을 지원하는 사회였다면 어땠을까? 영케어러가 돌봄을 한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숨겨지고 고립되진 않았을 것이다. 인구 구조는 크게 바뀌었고 가구 규모도 축소될 때로 축소됐다. 기존에 가정에서 공기처럼 돌봄을 맡았던 무수한 아내, 엄마, 며느리, 딸들이 사라지니 이제 아동, 청소년, 청년들에게 돌봄의 역할이 상속된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무시와 저평가가 그대로인 채로.

영케어러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돌봄으로 인한 불이익, 즉 돌봄 패널티(Care penalty)를 해소해야 한다. 그래야 영케어러 뿐 아니라 그 누가 돌봄하더라도 안전한 세상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돌봄해도 괜찮고, 더 나아가 돌봄하고 싶어지는 세상이 될 수는 없을까? 돌봄 패널티가 돌봄 인센티브(Care incentive)가 되고, 더 나아가 돌봄 프리미엄(Care premium)이 된다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런 세상이 되려면 복지정책, 돌봄정책, 노동정책 등의 거대한 전환이 있어야 하지만,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역할도 분명 있다. 그 중 하나가 나는 영케어러 멘토링 혹은 돌봄자 동료상담이라고 생각한다. 돌봄자들이 자신의 돌봄 경험을 단지 소외나 피해의 경험으로만 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 멘토링, 동료상담, 동료지원, 당사자 인식 개선 강사, 정책 거버넌스 참여 등 더 많이, 더 다양하게, 더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경로들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돌봄 받고 돌봄 할 것이기에.

글 | 조기현

돌봄청년 커뮤니티 n인분 대표를 맡고 있다. 영케어러 당사자 중심의 소문자 n인분에서 모두를 위한 돌봄안전망을 만드는 대문자 N인분으로 전환하는 사단법인화를 진행 중이다. 책 《아빠의 아빠가 됐다》, 《새파란 돌봄》,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등으로 영케어러와 돌봄 문제를 알렸고, 협력, 연구, 강의, 워크숍 등으로 다양한 돌봄과 복지 현장을 다닌다. 청년정책, 치매정책, 사회권 등 정부, 지자체, 국회의 대화기구와 위원회에서 정책 활동도 이어간다. 가끔 영화, 공연, 전시도 만든다. 영화 〈1포 10kg 100개의 생애〉, 공연 〈무출산무령화사회〉를 연출했고 올해 7월 선보일 개인전 《노동 이후 노동POST-WORK》를 준비 중이다. 브라이언임팩트재단의 4기 펠로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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