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 없는 미용, 차이 나는 미용
작성자 테이블토크
사회변화를 향한 레퍼런스
✂️ 차별 없는 미용, 차이 나는 미용
| 미용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력이다.
미용 면허는 미용실 개설 시 필요하여 작년에 취득했다. 전공은 사회복지다. 사랑의열매에서 모금 업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일본에서 유학을 했다. 정책학 대학원을 다니고, 개인 기부와 관련한 연구를 하며 일본에 8~9년 거주했다. 귀국 후 서울대, 연세대에서 모금 기획/관리 업무를 진행했다.
| 왜 미용을 선택했나?
성남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진행한 사회적경제 교육을 들었다. 듣다 보니 새로운 일을 만들고 싶었다. 당시 서울시복지재단에서 진행하는 ‘고령장애인 지역사회 돌봄지원체계 모형 개발연구’에도 참여했고, 일본 유학 중에도 발달장애인 시설에서 거주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기반으로 장애인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다. 무엇보다 내가 머리 자르는 것을 좋아한다(웃음). 비장애인에게는 일상적이나 장애인에게는 선택의 제약이 따르는 공간 중 하나가 미용실이다. 구매력 있는 장애인도 많다. 시장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비스 공급 측면의 문제도 있었다. 미용 업계의 불균형한 근무 시간, 수익 구조, 근무 환경의 문제 때문에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미용사는 창업을 시도한다.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하지만,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미용사 출신의 소규모 창업자는 빠른 폐업으로 이어지기 쉽다. 미용 자격과 기술은 있지만 일을 쉬고 있는 40~50대 여성이 많다. 이분들에게 장애인을 대하는 마인드, 기술을 교육하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장애인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미용실, 장애인 소비자에게 서비스하는 미용사 그리고 미용실과 미용사를 매개하는 플랫폼. 이 세 개의 아이템을 바탕으로 창업을 계획했다.
| 미용실 운영을 위한 수익 모델이 중요해 보인다.
아직은 적자다(웃음).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미용실을 제외하면, 민간의 장애인 친화 미용실은 없다. 즉, 수익 구조를 참조할 모델이 없다. 내가 미용 전문가가 아니니 정확한 손익 추정을 할 수도 없다. 좋은 서비스를 적정한 가격에 장애인에게 공급하고, 이익은 비장애인 고객을 통해서 높인다는 생각이었다.
우리 미용실의 주요 고객은 발달장애 아동이다. 대다수의 발달장애 아동은 엄마가 집에서 머리를 잘라준다. 엄마는 아이와 함께 미용실 가기를 두려워한다. 아이가 울고, 돌아다니고, 물건을 던지고, 심한 경우 주변 사람을 때리고 자해하기 때문이다. 발달장애 아동에게는 초기 루틴이 중요하다. 집에서 머리를 자르는 루틴이 굳어지면 나이가 들어도 미용실에 못 간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의 미용실’에서 좋은 경험을 쌓고, 향후 일반적인 미용실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보통 미용실은 남성 커트의 경우 15분 단위로 예약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1시간 단위로 예약을 받았다. 아동의 상황을 고려해 충분한 시간을 할애했다. 이러면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이 손실을 비장애 고객으로 메워서 손익분기만 유지하려는 생각이었다.
| 장애/비장애 이용자 비율이 어떻게 되나?
장애 3, 비장애 7 정도의 분포다.
| 장애인 이용자가 예상보다 적은가? 아니면 비장애인 이용자가 적은가?
아직은 비장애인 이용자가 생각보다 적다. 미용실의 주요 수익원은 파마와 염색이다. 파마, 염색 고객이 많아야 많이 남는다. 그러나 우리 미용실은 커트의 비중이 크다. 가격을 좀 더 낮출까도 고민 중이다. 운영 전에는 아이가 이곳에서 편하게 머리를 자르면 부모도 같이 머리를 자르고 파마도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운영해 보니 아이는 아이고, 부모는 부모더라. 무엇보다 부모는 아이를 신경 쓰느라 편안히 미용할 수 없었다.
경험이 쌓이니, 사실 장애 아동의 커트에도 1시간이 필요 없더라. 결국 머리를 자르는 시간은 5분에서 10분이다. 그 이상은 아이들이 버티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속도다. 빨리, 예쁘게 자르는 것이 중요하다. 미용실 오픈 전에는 장애 아동의 편안한 미용을 위해서는 충분한 대화, 상담, 놀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함께 온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빠르게 자르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도, 아이도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오래 머물고 싶지 않다. 가위, 바리깡을 쓰는 미용 특성상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미용 거부가 심하면 무리하게 미용을 진행하지 않고 중단한다. 요금을 받지 않을 테니 다음에 방문하시라고 권유한다.
| 고객 반응이 궁금하다.
그동안 미용실을 다니지 못했던 분들이 오니 기본적으로 반응이 좋다. 다른 곳에서 머리를 자르지 못했던 아이가 우리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가고, 미용실 의자에 앉지도 못하던 아이가 자리에 앉게 되고, 가위질만 해도 울었던 아이가 울지 않게 된다. 이런 변화를 볼 때 나도 기분이 좋다.
| 장애를 고려한 미용 시설과 기술이 궁금하다.
운영해 보니 장애인을 위한 전문 장비와 기술이 많이 필요하지 않더라. 접근의 제약을 받지 않는 1층의 턱 없는 장소, 바닥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의자 정도가 장애를 고려한 시설이다. 휠체어 고객이 방문할 시 의자를 치운다. 발달장애 아동의 경우 자유롭게 누워서도 머리를 자르고, 미용실 의자가 아닌 대기석에서도 자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미용사의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누구든, 어디서든 미용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이든 이해할 수 있다는 마음. 그래서 고객에게 어떤 장애가 있는지 잘 묻지 않는다. 묻더라도 장애 유형을 직접 드러내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예컨대 “발달장애가 있나요?”라고 묻지 않는다. “미용 거부가 있나요? 자리에 잘 앉아 있나요? 바리깡을 사용해도 울지 않나요?”라고 질문한다. 기본적으로 비장애가 아닌 장애를 전제로 미용 서비스를 한다. 모든 아동 고객을 그렇게 대한다. 결국 물리적인 장벽보다 마음의 문턱이 더 큰 제약이다.
| 장애 이해도가 높은 미용사가 일반 미용실에 배치된다면, ‘모두의 미용실’이 필요 없지 않을까?
그러길 바란다. 얘기했듯이 장애를 고려한 대단한 장비, 시설이 필요하지 않다. 장애 이해도와 장애 감수성이 있는 미용사가 미용실에 있다면 장애인은 비교적 수월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을 소비자로 인식하면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 이·미용 바우처라는 사회서비스가 있다. 주로 저소득 어르신이 이용한다. 이런 바우처 제도가 활성화되면 바우처를 사용할 수 있는 미용실도 늘어날 것이고, 장애인은 한 명의 소비자로서 좀 더 장애 친화적인 미용실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부모를 만날 때마다 이·미용 바우처라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지자체에 요구하라고 얘기한다.
| 자택 방문 형태의 미용 서비스는 고려하지 않았나?
방문, 출장 미용은 현재까지 불법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개인 집에서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금지한다. 방문 미용을 허용하면 적자 상황의 기존 사업주에게 더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논리다. 물론 예외의 경우가 있다. 예컨대 결혼식, 방송,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는 방문, 출장 미용이 가능하다. 이외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 일상생활과 관련이 깊지만 이용에 제약이 있는 시설/서비스가 또 무엇이 있을까?
장애인이 마땅히 갈 수 있는 장소가 없다. ‘탈 시설화’, ‘커뮤니티 케어’ 등의 얘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일상에서 갈 수 있는 곳이 별로 없다. 고령일수록 더욱 그렇다. 도심 중심지에서 장애인이 갈 수 있는 곳은 한정적이니, 시설 주변에만 왔다 갔다 한다.
사실 물리적인 조건보다 심리적인 문제가 크다. 카페, 식당과 같은 일상 공간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장애인을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바리스타가 장애인이고 손님이 비장애인 점포도 있지만, 반대로 비장애인이 서비스하더라도, 고객은 장애인이 다수인 점포가 많아야 한다.
| 장애 전문 카페, 술집, 모임 공간, 음식점 등으로 확장 시 사업성이 있나?
없다. 우리 미용실 외관에도 ‘장애’ 관련 표시가 없다. 사업적으로 결코 유리하지 않다. 심지어 장애 아동의 부모님도 우리가 가는 미용실이 장애인들만 이용하는 공간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차별 없는 서비스, 다양성을 고려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콘셉트로 가야 한다. 콕 집어서 ‘장애’를 언급하는 순간, 비장애인의 출입도 불편하고 장애인도 불편하다.
| 왜 장애인을 소비자로 인식하지 못할까?
장애인 연금과 같은 현금성 지원이 적은 것도 이유다. 다른 선진국 대비 장애인의 수입이 적으니 소비의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는 복지시설이 너무 많은 것도 원인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를 복지관에서 다 담당하고 있고, 시설 안으로 몰아서 넣었다. 체육 시설, 학습 시설, 취미 시설 모두 복지관에 있다.
그러니 시설 외부에서 돈을 지출할 이유가 없다. 한국만의 특수성이다. 그렇다고 꼭 나쁜 현상만은 아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편하기도 하다. 장단점이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와 같이 기존의 공급자 중심 복지 서비스보다는 당사자가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하다. 장애인의 소비도 촉진되고, 사업주도 장애인을 소비자로 인식할 수 있다.
| 창업 과정에서 가장 좋았던 선택은 무엇일까?
구상에만 그치지 않고 미용실 차린 게 좋은 선택이었다. 미용실을 한 번도 못 갔던 아이가 우리 미용실을 통해서 긍정적 경험을 축적할 수 있다. 집에서 자른 머리는 티가 난다. 대부분 더벅머리다.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이곳에서 예쁘게 자른 머리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물론 부모님도 기분 좋게 나간다.
| 현재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안정적으로 ‘모두의 미용실’을 운영할지 고민이다. 장애인 이용자는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입소문을 통해서 방문하더라. 수익 안정화를 위해서는 비장애 고객을, 특히 평일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 이 근처에만 미용실이 4곳이다. 쉽지 않은 환경이다.
| 바람이 있다면?
장애 아동이 방문하여 난이도가 높은 염색, 파마도 도전했으면 좋겠다(웃음). 좀 더 경험이 쌓이면 가능할 것이다. 현재는 구조를 만드는 단계다. 미용실을 개설하여 노하우를 축적하는 단계다. 이후에는 장애인을 이해하는 미용사를 양성할 것이다. 미용 경력이 단절된 여성에게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방문/출장 미용 규제가 완화된다면 플랫폼을 활용해 방문 미용도 시도하고 싶다. 장애아동을 위한 커트보를 만들고도 싶다. 입고 벗기 편하며 집에서도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커트보를 만들면 좋겠다. 커트보 착용 여부에 따라서 미용의 만족도가 달라지는데 의외로 커트보에 대한 거부가 심한 아동이 많다. 모두의 미용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싶다.
글 | 최성욱
* 모두의 미용실 이용자가 개인 SNS 계정에 남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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