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유가 아닌 공유를 외치는 사람들

‍도처에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이 좁은 땅에 아직도 개발할 곳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빽빽이 들어찬 빌라와 아파트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나 집이 많은데, 심지어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정작 내가 살 집은 보이지 않는다. TV에서는 전세사기와 관련된 뉴스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살 집이 없는 처지가 점점 공포스러워진다. 그런데 왠지 이 이야기, 낯설지가 않다.

그렇다. 고시원,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전세사기. 이들 비극의 공통점은 바로 소유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소유가 곧 권력이 되는 세상에서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은 낙오되거나 소외된다. 사람이 살 자리는 화폐가 되었고, 존재할 장소를 빼앗긴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어가고 있다.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기에는 현실이 이미 평등하지 않다. 그게 무슨 대수라고 꿈까지 꾸는가.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처음부터, 대한민국에서 소유는 곧 생존이다.

그런데 여기, 소유가 아닌 공유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이름은 주택협동조합. 국제협동조합연맹(ICA, 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에 따르면,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사업체를 통하여 공통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자율적 조직”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단어는 “공동으로 소유되는” 즉, ‘공유’이다. 따라서 주택협동조합은 주택을 ‘공유’하고자 모인 사람들이다. 주택협동조합은 주택조합과 다르다. ‘협동’이라는 단어 하나의 차이일 뿐이지만 서로 정반대의 의미를 지닌다. 주택조합이 주택을 소유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반면, 주택협동조합은 주택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진다.

더 나은 구조 속에서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말하는 협동조합 사람들을 두고, 혹자는 아직 세상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쩌면 이들은 세상을 너무 아는 것이 아닐까. 인간은 누군가에게 기대고 의지해야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뼈저리게 깨달아버린 것이 아닐까. 이제는 전설처럼 혹은 꿈처럼 남아버린 연대의 흔적을 어쩌면 협동조합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희미해진 연대의 감각을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과 ‘함께주택 2호: 무지개집’의 사례를 통해 되새김질 해보자. 주택협동조합이 제시하는 구조가 도대체 무엇인지, 그 구조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알기 위해서 말이다.

✋ 주택협동조합의 5가지 유형과 구조

‍사례를 살펴보기에 앞서 빠른 이해를 위해 주택협동조합의 유형을 먼저 살펴보도록 한다. 주택협동조합의 유형은 크게 임대형, 분양형, 관리형이라는 3가지 모델로 나뉜다.(강세진, 2014) 하지만 협동조합운동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재원조달의 방식이 세분화되었고, 한국의 주택협동조합 유형 역시 약 5가지로 세분화되었다.(김소연, 2019) 5가지 유형의 기준은 쉽게 말해, 토지와 건물의 소유 주체에 있다.

🐌 달팽이집, 세입자가 세상을 바꾸는 그날까지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현재 13채의 ‘달팽이집’을 공급하고 있다. 13채의 집 중 민간임대형이 1채, 토지임대부가 2채, 공공임대형이 10채로 공공이 함께하는 유형이 총 12채이다. 이 중에서 가장 임대료가 가장 저렴하게 책정되는 유형은 당연히 공공임대형이다. 전체 사업내용에서 공공의 기여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임대료는 저렴하게 책정된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SH(서울주택도시공사) 혹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매입임대주택 관리 업체로서 선정된 경력이 다수 있다. 10채의 공공임대형 주택이 그 증거이다. 서울시에서는 이러한 주택을 두고 “수요자 맞춤형 매입임대주택”이라고 부른다. 주택협동조합과 같은 관리업체를 통해 타겟층을 제한하고 그들을 매개로 입주민을 들이는 방식이다.

한편,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청년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동조합으로서 만 19세 이상 만 39세 미만의 청년들만이 입주할 수 있다. 타겟층이 매우 뚜렷한 편이다. 2013년 청년들의 주거빈곤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제기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과 자매단체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오는 공동체적 감각은 매우 독특하며 실체적이다. 예를 들어, 이들은 입주자를 선정함에 있어서 비교적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온라인 신청’, ‘예비조합원교육’, ‘집보기’, ‘평등문화교육’, ‘식구와의 만남’이라는 총 5가지의 절차를 밟아야만 들어올 수 있는 달팽이집은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2년 이상을 살다 나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렇게 까다로운 절차를 밟는 것일까? 함께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공동체적 가치관을 공유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에 동의하는 사람만이 공동체주택을 견딜 수 있다.

또한 더 나아가, 소유자 위주가 아닌 살고 있는 거주자 중심의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집주인이 아닌 세입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해야만 불평등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은 험난한 주거불평등 사회를 열심히 헤쳐나가기 위한 힘을 달팽이집이라는 전략을 통해 모으고 있다.

🌈 무지개집, 여기 퀴어 가족이 살고 있다

‍함께주택협동조합은 현재 6채의 집을 공급하고 있다. 6채의 집 중 12호만이 조합소유형 주택이고, 36호는 토지임대부형 주택이다. 조합소유형과 토지임대부형은 아무래도 임대료 산정이 앞서 소개한 공공임대형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공공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집을 공급해야 하는 의무가 있지만, 민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협동조합은 일반 민간주체가 아니라 제 3섹터에 있는 사회적 경제 주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경제에서 활동하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수익 구조를 따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함께주택협동조합은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제로 마포구의 높은 집값에 비해 이들이 공급하는 집은 10~15% 정도 더 저렴하다. 또한 공공임대와 달리 비교적 안정적인 거주기간을 보장한다.

한편, 함께주택협동조합에서 만든 2호집, ‘무지개집’은 퀴어 프렌들리한 공간으로서 이미 소문이 자자하다. 성소수자 당사자 혹은 친화적인 태도를 지닌 앨라이(Ally)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이러한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함께주택협동조합이 토지공공성 확대, 사회주택 공급, 주거교육 및 연구 등의 진보적인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퀴어 공동체 주택을 만들고 싶어하던 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이들 협동조합의 문을 두드린 것이다. 퀴어 공동체 주택의 성공적인 사례로 남아있는 ‘무지개집’에는 초기 15명의 멤버 중 6명이 남아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의 세태를 생각하면 아주 많은 수의 사람들이 남아 있는 셈이다.

독특한 것은, 이들의 입주자 선정 문화이다. 퀴어 프렌들리한 공간이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기준을 요구할 것 같지만 의외로 앞서 소개한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보다 훨씬 간단한 절차를 밟고 있다. 소득 외의 별다른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다소 비싼 보증금 및 임대료 때문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애초에 이 주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어디에선가 한 번 보았던, 알음알음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경제 및 시민사회라는 너른 제 3섹터의 공동체가 이들의 안전망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동체 문화가 또다른 공동체로 연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협동조합, 잃어버린 공동체를 찾아서

‍지금까지 우리는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의 달팽이집과 함께주택협동조합의 무지개집을 통해 주택협동조합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았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이 세입자 정체성을 확립시킴으로써 주거불평등 해소를 실천하고 있다면, 함께주택협동조합의 ‘무지개집’은 소수자 환대의 주거공동체를 제시함으로써 지역에 합일되기 위한 전략을 실천하고 있다.

평등하다는 감각, 함께한다는 감각, 공유한다는 감각, 이러한 감각의 공통점은 ‘나’의 경계가 무너지는 데에 있다. 그런 점에서 공동체를 지켜가는 일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수세적인 태도를 넘어서 존재의 변형을 받아들이겠다는 용기가 있어야지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무지개집’에 살고 있는 한 원년 멤버가 들려준 이야기이다. 동네에서 어떤 사람이 한밤중에 크게 다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가 고통에 차서 소리를 지를 때, 집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그 골목을 통틀어 오직 ‘무지개집’ 사람들 뿐이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말했다. “다른 집에 사는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에요,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알기 때문에 골목에 나가도 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 뿐이에요.” 우리의 안전은 어쩌면 서로를 감각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고한다. 당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평등일 것이다.

글    | 김경서(민달팽이유니온 전 정책국장, 현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성장지원팀 매니저)
편집 | 양수복

📝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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