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림을 살림하기

| 대학 동문인 추혜인, 박인필과 조합을 창립했습니다. 살림을 시작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선생님들과는 대학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본격적으로 의기투합하게 된 계기는 <언니네트워크>라는 여성주의 단체에서 상근 활동가로 사회활동을 시작하면서였어요. 추혜인 선생님을 중심으로 셋이 만나,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행복하게 100살까지 살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살림을 처음 구상했죠. 민주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운영 조직이 병원을 소유하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오가며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형태를 구체화했어요. 조합원들이 운영의 주인이 되는 것을 시작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기 힘으로 뭔가를 만들어내고, 바꿔본 사람들이 가진 힘. 그게 협동조합의 매력이에요.

| 평등, 다양성과 같은 살림의 가치를 여러 조합원이 받아들이고 합의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의견은 정말 다양하고 달라요. 하지만 조합원 각각의 이야기가 살림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누구나 건강과 돌봄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더 정의롭고 더 문턱이 낮은 의료를 직접 만들어가는 것이 살림의 여성주의적 건강관인데요. 기본적인 살림의 목적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모였기에 항상 소통의 과정에 있어요. 대화라는 건 상대방을 설득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요. 살림을 함께 하며 저의 가치관도 확장하고 있어요.

공동으로 의견을 계속 논의하기 때문에 협동조합을 ‘민주주의 학교’라고도 합니다. 모든 조합원, 지역 주민까지 참여하는 회의도 있고, 상시로 위원회, 활동 모임, 이사회 등을 운영합니다. 기본적인 시스템에 접근하기 어려운 분들이나 시간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한 공론장도 만들려고 애쓰죠. 협동조합에서 민주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일반 기업에 비해서 경쟁력이 떨어지게 돼요. 모두가 논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경쟁력입니다. 

| 회의가 많아서 바쁘시겠어요.

그런데 좋은 회의를 하면 오히려 힘이 나지 않아요? 회의에 들어갈 땐 약간 우울해도, 나와선 개운해지잖아요. 조합원분들이 보통 다 직장에 다니시거나 자기 일이 있으셔서 퇴근 이후 저녁이나 주말에 회의하는데요. 울상으로 오셨다가 웃으면서 나가요. 그 모습을 잘 이어가고 싶어요.

| 청년의 조합 참여도는 어떤가요? 신규 유입이 잘 이뤄지나요?

2~30대의 정주율이 낮은 것이 안타까워요. 조합 탈퇴 이유의 대부분이 잦은 이사로 인해 살림과 거리가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청년 주거문제랑 연관된 거죠. 코로나 때도 2~30대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안전망이 약해졌어요. 하지만 돌봄의 관계망이 불필요한 사람은 없어요.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건강과 돌봄 관련 사업을 앞으로도 계속해 볼 생각입니다.

| 어떤 프로그램이 있을까요?

작년에 만들어서 대박 난 게 살림 FC(여성 풋살 모임)입니다. 보통 풋살팀은 20~30대들이 똘똘 뭉치고, 엄청 연습해서 실력도 좋아요. 그런데 저희 팀은 10대부터 60대까지 있어요. 저희도 진심으로 이기고 싶어요. 행복 축구 아니에요. 욕심이 있어요(웃음). 그렇지만 더 다양한 몸들, 체력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 즐거운 20~30대들이 분명 있더라고요.

🤝 함께 아프고, 돌볼 수 있도록

| 청년 세대는 건강보다 돈과 시간을 우선시하는 환경에 자주 내몰리고, 아픔에도 비교적 무디게 반응합니다. 살림의 청년 세대는 어떤가요?

기본적으로 지금 세상에서 바라는 이상적 인간은 소위 ‘갓생’을 사는 사람이에요. 누구한테도 민폐 안 끼치고, 혼자서도 건강해서 아무 돌봄도 필요 없고, 자고 일어나면 쌩쌩하게 출근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이상적 인간상이 자원이 부족하고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한테 강력하게 투영되는 게 문제예요. 청년들은 주변의 누군가가 돌봄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주려고 하지만, 자기가 돌봄 받을 생각은 잘 못해요. 사회가 돌봄 받는 사람을 나약한 사람, 민폐 끼치는 사람으로 보기에 돌봄 받는 걸 주저하게 만들어요. 
그런데 인간은 그렇게 살 수가 없는 존재잖아요. 원래 다 민폐 끼치면서 사는 거잖아요. 돌봄은 일대일로 주고받기만 하는 게 아니에요. 살림이 생각하는 호혜적 돌봄은 내가 A가 아플 때 돌보고, A는 B가 아플 때 돌보는 식으로 교차해요. 그런 돌봄이 가능한 사회가 안전하고요. 받은 만큼 갚지 않아도 돼요. 사람은 삶에 시간과 돈이 여유로운 때가 생겨요. 지금은 어려운 처지라 하더라도 나중에 타인을 돌볼 수 있는 시점이 반드시 오거든요. 그걸 믿어주고,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 사회적 약자는 건강권에서 소외되기 쉽습니다.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어떻게 건강할 수 있을까요? 서로가 서로를 돌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정말로 사회적협동조합 형태가 답이라 생각해요. 사회적협동조합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할 뿐 아니라, 조합 내에서 사회적 약자의 주체권까지 인정하며 같이 가는 게 핵심이에요. 가난하고 약한 사람은 정해져 있지 않아요. 누구나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옵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이해관계만으로 움직이지 않아요. 연대하고 싶은 마음, 같이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요. 충분히 촉진만 된다면.

| 돌봄은 필수적인 행위, 질병을 예방하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중요하지 않은 일로 치부됩니다. 돌봄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전환되어야 할까요?

돌봄은 특정 사람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노인, 장애인, 아이뿐 아니라 누구나 돌봄 받을 준비를 해야 해요. 모두가 돌봄 생산자가 될 수 있는 준비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부터 인권 감수성이 있는 돌봄 교육을 시행하고, ‘좋은 돌봄’의 모습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새로운 공동체를 기다리며

| 차별 없고 평등한 의료권은 어떻게 보장할 수 있을까요?

사회에 차별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의료 분야만 평등하기는 어렵습니다. 의료권은 병원 갈 권리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기에,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불평등, 혐오에 같이 대응해야죠. 저희가 진료를 잘 해도 환자가 직업이 없고 집이 없으면 건강하기가 어려워요. 내 옆집에 사는 여성이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사회 전체가 불건강하다면, 내 몸 하나 튼튼하다고 내가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연결된 관념 속에서 건강, 돌봄, 의료를 봐야 해요.

| 살림 10주년 다큐멘터리 <두 번째 사람> 강유가람 감독의 전작 <우리는 매일매일>에도 출연했습니다. 90년대 말~00년대 초 함께 페미니즘을 외쳤던 여성들의 현재를 보여줍니다. ‘영페미’였던 유여원이 바라보는 2024년은?

<우리는 매일매일> 관객과의 대화에서 받았던 인상적인 질문이 있어요.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다 편안하고 사이가 좋아 보이냐, 나는 여성주의자로 사는 것도 너무 힘들고 얼마 없는 여성주의자 친구들과도 자꾸 의견이 갈려서 너무 외롭다’는 거예요. 그 질문을 잊을 수가 없어요. 저의 과제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저희도 진짜 많이 싸웠거든요(웃음). 의절도 수없이 당하고.

그렇지만 계속해서 여성주의자로서 살아가기를 멈추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기를 멈추지 않으니 지금이 됐어요. 그때의 저희처럼 싸우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에게 이 시기는 지나갈 것이고, 또 다른 시기가 올 거라고 보여주고 싶어요. 지나고 보니 저 역시 호주제 폐지, 투표권 투쟁을 하셨던 많은 분들의 길 위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은 매우 힘들더라도, 내가 누군가 지나간 길 위를 걷고 있고, 또 뒤에 누가 올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시야가 장기적으로 변해요. 그러면 또 해나갈 힘이 생기고요. 이걸 연결하는 작업이 중간에 끼어 있는 사람인 저의 역할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꼭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민주화 운동, 협동조합 운동에서도 동일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 최근 청년 세대의 정서는 미래가 기대되지 않고, 불안감이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자원과 에너지가 많은 사람들 옆에 꼭 붙어 계시면 좋겠어요. 맡겨놓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이랑 같이 울지 않고요?

같이 우는 것도 중요해요. 왜냐하면 우는 것도, 눈물도 에너지예요. 대신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면 그들 옆에 붙어 있자. 딱 붙어서 도움을 받자.

| 그럼, 과거의 유여원이 현재의 유여원을 바라보면 어떤가요?

의료협동조합이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하지 말 걸(웃음). 너무 어릴 때 시작했어요. 시야가 좀 넓어지고 둥글둥글해진 뒤라면 제가 좀 더 멋있는 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기여했을 텐데. 그런데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외로웠던 순간은 없었어요.

| 정상 가족의 개념이 해체되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가야 할까요?

저는 끝까지 나답게 살다가 아는 얼굴들 사이에서 죽고 싶어요. 그렇게 나이 들고 싶고, 그 준비를 사람들과 같이 해나가고 싶어요.

글 | 이승현

✅ 관련 콘텐츠도 확인해 보세요! 

사회혁신 뉴스레터, 테이블토크를 구독하시면
새롭게 바라보고 다르게 해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요!

🖤 테이블토크 소식 받아보기 🖤
tabletalk.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