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을 거래하는 은행이 있다고?

⏱ 시간을 거래하는 은행이 있다고?

작성자 테이블토크

사회변화를 향한 레퍼런스

⏱ 시간을 거래하는 은행이 있다고?

테이블토크
테이블토크
@tabletalk
읽음 687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Table Talk - People #25 타임뱅크코리아 손서락 대표가 웃고 있는 테이블토크 썸네일 사진

사회문제 해결의 출발점으로 ‘관계의 변화’가 자주 언급됩니다. 복지와 자선만으로는 사회적 약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도 지적되고요. 그렇다면 관계와 연결은 왜 중요하고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까요? 해묵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관계와 연결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도움의 시간을 교환하고 저축하는 활동으로 관계의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을 만나봅니다. 타임뱅크코리아 손서락 대표가 그 주인공이죠.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사회문제를 대하는 새로운 상상력과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다른 관점을 발견하면 좋겠네요.


| 타임뱅크란 무엇인가요?

시간을 거래하는 은행이라고 생각하면 간단해요. 돈을 주고받지 않고 이웃끼리 품앗이하듯이 도움과 도움을 주고받는 모임이죠.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며, 모든 도움은 시간 단위로 기록하고 저장해요. 예컨대 내가 지역 어르신을 위해서 1시간의 말벗 자원봉사를 했다면 우쿨렐레를 배우고 싶을 때 1시간만큼의 봉사를 받을 수 있어요. 내가 한 봉사 시간만큼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거죠.

| 기존 자원봉사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자원봉사, 복지서비스가 일방향 도로라면, 타임뱅크는 쌍방향 도로예요. 기존의 제공자-수혜자, 봉사자-피봉사자의 관점이 아닌 수평적, 호혜적 관점에서 도움을 주고받아요. 상호 도움 주고받기를 통해서 관계와 공동체를 추구하는 활동이죠.

|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타임뱅크는 1980년대 미국의 에드거 칸 박사가 설립했어요. 에드거 칸은 흑인, 원주민, 빈곤층 등을 위한 인권변호사로 활동했죠. 그는 심장 수술 후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데요. 도움을 주는 존재였던 그는 보호받는 존재가 되었고,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했죠. 그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지 성찰했어요. 이후 소외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스스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대요. 복지 대상자, 수혜자 집단도 가족 혹은 이웃을 위해서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죠. 이런 종류의 노동을 사회가 인정하고 보상한다면 역량을 갖추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다는 개념이었어요.

국내는 대한성공회 김요나단 신부가 구미에서 시작했어요. 김요나단 신부는 10년 동안 간병 봉사자를 양성하고 파견했어요. 봉사 현장을 지켜보니 봉사자는 봉사만 하다가 지쳐 이탈하고, 봉사 받는 사람의 의존성, 무력감은 높아졌죠. 시간이 지날수록 봉사 받는 사람의 요구는 다양해지고, 봉사자는 그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해 갈등이 발생했고요. 봉사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 2004년에 타임뱅크를 시작했어요. 경북 구미의 산골 마을에서 노인 간 돌봄을 주고받고, 나눔 장터를 여는 작은 활동을 했죠. 그때는 ‘노노케어’란 단어도 없던 시기예요. 현재는 법인을 세워 ‘사랑고리’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에요. 1시간의 봉사당 ‘사랑고리’ 증표(화폐)를 한 개씩 받는 방식이죠.

| 이곳, 타임뱅크 하우스(서대문구 포방터길 위치)는 어떤 곳인가요?

홍제동 지역에서 발달장애 청년들과 함께 타임뱅크 활동을 진행했어요. 공동체 활동을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이 중요했죠. 타임뱅크 하우스의 회원은 노인, 아동, 장애인, 1인 가구 중년 남성 등 다양해요. 복지관 프로그램에 신청했으나 제외된 분, 낮에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장애인, 학원 다닐 형편은 안 되고 같이 놀 친구는 없는 청소년 등 사연도 다양하죠. 돌봄이 가장 필요한 사람이 와요.

공간을 조성하고 초기에는 파리가 날렸어요(웃음). 그러나 모든 일은 첫 사례에서 시작한다고 하죠. 지역에 사는 22살 장애 청년이 갈 곳 없어 동네를 배회하다가 타임뱅크 하우스 앞 벤치에서 쉬곤 했어요. 청년에게 화분과 가구를 옮겨달라고 도움을 요청했고, 활동을 한 후 시간 화폐를 발행했어요. 이후 공간에 탁구대를 놓았고, 어르신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하셨죠. 탁구에 좀 더 익숙한 어르신이 처음인 어르신을 가르치며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게 되더라고요. 탁구를 치는 어르신들 중 경기 민요를 잘하는 분이 있었는데요. 발달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경기민요를 가르쳐달라고 요청드렸어요. 이후 약 1시간 정도의 수업을 운영했죠. 묘하게도 장애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르신이 장애인에게 차근차근 소리를 가르쳤고, 아이는 수업 마지막에 흥얼거리며 노래를 불렀어요. 이런 방식으로 서로 돌보는 실험이 일어나고 있죠.


| 타임뱅크의 개념을 현재의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기업 모델과의 연계 사례가 있어요. 사회적기업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한계에 직면해요. 도시락을 제조하는 사회적기업 ‘맛사랑’은 타임뱅크 형태의 주민 참여를 통해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었죠. 멸치를 다듬는 등의 재료 손질을 동네 어르신이 하고, 도시락을 받는 수혜자가 직접 배달하는 방식으로요. 이런 활동을 시간 화폐로 인정하고 있어요.

앞서 얘기한 노노케어 공동체 노인 돌봄도 하나의 사례예요. 몸이 성한 어르신은 그렇지 않은 친구를 도와 병원에 함께 가세요. 기억이 깜빡깜빡하는 동료에게 약 먹을 시간을 제때제때 알려주기도 하고요. 사랑방에 오지 못하는 노인에겐 도시락을 배달하죠. 그렇게 하나의 느슨한 가족이 됐어요. 

공공복지와의 연계 사례도 있어요. 구미의 어르신 사랑방 식사는 다른 노인(사랑방 이용 노인보다 연령이 10세 정도 연령이 낮은)이 11시~1시에 방문하여 준비하고 제공해요. 노인일자리지원사업을 통해서 채용된 노인이 급식도우미 역할을 하는 거죠. 급식 활동을 진행하는 노인에게는 인건비가 지급돼요. 이후 관계가 쌓이니 도움을 주고받는 형태로 확장되고요. 예컨대 사랑방 이용 노인이 급하게 이동 봉사가 필요할 때 급식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도우미는 봉사를 진행한 후 ‘사랑고리’를 받는 형식이에요. 일자리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거죠. 공공복지의 한계를 보완할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 봐요. 

타임뱅크 순환도 © (사)타임뱅크코리아

| 타임뱅크 운동이 전통적 복지 모델의 대안(혹은 보완재)이 될 수 있을까요?

현재의 복지서비스는 공공 전달체계망 중심이에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 경계가 뚜렷하고 제공자 관점으로 서비스가 설계됐죠. 그리고 수혜자의 결핍, 부족, 빈곤 등의 특정한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요. 기존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죠. 오래된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을 이루지 못했고, ‘고립’, ‘외로움’과 같은 새로운 사회 문제가 발생했어요. 물론 현재 복지 체계가 가지는 장점과 효율성도 있어요. 좋고 나쁨의 문제는 아니죠. 그러나 타임뱅크와 같은 ‘관계’ 중심의 접근을 병행해야 해요. 그래야 법적으로 규정된 복지 대상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각지대 영역을 포용할 수 있어요.


| 노동(봉사)의 희소성, 강도, 난이도에 따라서 다른 가치를 매겨야 공정하지 않나요?

1365자원봉사 포털을 이용하면 알겠지만, 변호사건 초등학생이건 차등 없이 동일한 봉사 시간을 기록해요(웃음). 나의 1시간이 타인의 1시간보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하다고 재단할 근거는 없으니까요. 물론 화폐 중심의 시장 경제에서는 노동 별로 차등이 있죠. 희소성의 원리가 작용하고요. 그러나 시장 경제와는 다른 영역이 있어요. 시장경제에서 평가절하되고 보상받지 못한 노동일수록 공동체 혹은 사회에의 기여가 큰 부분이 있잖아요. 돈이 아닌 경제, 가족과 이웃과 같은 관계, 돈이 없어도 호혜적인 경제하에서는 누구나의 1시간은 평등하다고 약속을 정했어요.

| 모두의 노동을 동일한 가치로 적용한다면, 확장성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요?

반대죠. 예컨대 미용 봉사자가 1시간 활동을 했지만 전문 기술임을 인정하여 3시간을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면, 이와 반대로 심부름과 같은 사소한 봉사를 1시간 했지만 30분으로 인정한다면 지속적/장기적으로 순환할 수 없을 거예요.

| 운영 방식, 기준 등의 세밀함과 표준화가 중요해 보여요. 타임뱅크의 시간은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추적하나요? 노동(도움)의 매칭은 누가 역할을 맡나요?

코디네이터가 역할을 하고 있어요. 타임뱅크가 운영되기 위해서 중요한 요소죠. 사람이 모여있다고 공동체가 형성되지는 않아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역할과 리더십이 필요하죠. 코디네이터는 나와 이웃의 자산(심부름, 말벗, 재능, 전문지식 등)을 발굴하여 목록화해요. 주민이 뭘 할 수 있는지를 모두 기록하죠. 기록한 자산 정보를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 연결해요. 이후 도움을 주고받는 시간과 내역을 기록하고, 시간화폐, 통장, 플랫폼으로 발행하고 있어요.

자신의 자산(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작성하여 붙인 타임뱅크 하우스 내 게시물

| 플랫폼은 어떤 서비스인가요?

타임뱅크는 크게 두 방향의 전개 방식이 있어요. 이곳 타임뱅크 하우스와 같이 공동체와 관계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방식이 있고, 디지털 플랫폼을 기반으로 사용자 간 서비스를 직접 교환하는 일종의 마켓플레이스도 있죠. 아무래도 후자는 젊은 세대 위주로 구성돼 있어요. 두 방향의 경계에서 긴장감을 가져야 해요. 공동체와 관계성만 추구하면 규모의 확장과 확산에 한계가 있거든요. 반대로 교환만 추구하면 관계성이 훼손될 수 있고요. 

| 타임뱅크가 잘 작동하는 영역/규모가 있을까요?

타임뱅크는 개인의 치유와 성장을 넘어 서로 주고받는 이웃의 관계 공동체를 추구해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공동체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이 질문을 고민하면 답이 나와요. 노인, 장애인, 이주민 등 소외된 사람이 참여할 때 가장 선순환될 수 있죠. 이 사람을 수혜자, 대상자, 쓸모없는 사람이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산으로 여기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을 발견하고 서로 연결하면 돼요. 규모로는 1명의 코디네이터 70~80명 정도의 회원을 관리하고, 인원이 늘면 또 다른 타임뱅크를 조성하는 것이 효율적이죠.

| 어떻게 보면 자조모임과 유사하네요. 현실적으로 자조모임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타임뱅크의 핵심 원리는 코프로덕션(공동협력생산)이에요. 기존의 전문가-고객, 제공자-수혜자의 접근이 아닌 같이 동등한 관계에서 협력하며 생산하는 거죠. 코프로덕션이 잘 되기 위해서는 5가지 가치가 필요해요.

  1. 자산 중심
    결핍·부족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자산을 발견하고 활용할 때 우리는 평등한 파트너가 될 수 있어요.

  2. 새로운 노동
    돈을 주고받는 노동만이 아닌 그 어떤 가치를 생산하는 행위도 노동으로 인정해요. 그래야만 기존의 수혜자 그룹이 참여할 수 있어요.

  3. 호혜성
    일방적인 도움이 아닌, 서로 필요한 관계가 되어야 해요.

  4. 사회적자본
    관계망을 뜻해요.

  5. 존중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경청하고 그들의 개성을 존중해야 해요

이 다섯 가지를 잘 실천해야 타임뱅크를 잘 운영할 수 있어요. 자조모임은 이 5개의 가치가 잘 실현될 수 있는 토양이고요.

자조모임의 활성화가 힘든 이유 중의 하나는 다수가 복지 패러다임 하에서 운영되기 때문이에요. 복지시설에서 세팅된 프로그램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형태면 안 돼요. 자조모임 참여자 간 신뢰를 형성하고, 각자의 자산을 연결해야 하죠. 장애인 부모 자조모임을 예로 들어볼게요. 각자 부모가 가진 자산이 다양할 거예요. 어느 참여자는 바느질을 잘하고, 어느 참여자는 컴퓨터를 잘하고, 어느 참여자는 장애인이 이동하기 좋은 곳을 잘 알고 있겠죠. 이런 분들이 자기 자산을 내어놓고 해당 도움이 필요한 사람과 연결할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서 참여자 간 신뢰를 쌓을 수 있고요. 타임뱅크의 가치를 자조 모임에 적용했을 때 역동성을 가질 수 있어요. 부족함을 채워주는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타임뱅크와 코프로덕션 © (사)타임뱅크코리아

| 타임뱅크를 돌봄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나요?

앞서 얘기했던 악기 배우기와 같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어르신 말벗, 손톱·발톱 깎아주기, 병원 등의 이동 동행, 에어컨 청소 등 사소하고 돈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노동을 타임뱅크에 적용할 수 있어요. 일상과 밀접한 돌봄이 수요가 가장 많고, 쉽게 교환될 수 있죠. 내가 도움을 준 사람에게 바로 돌려받는 1대 1의 관계일 필요는 없으며 모든 종류의 봉사나 노동이 동등하게 인정받아요. 전문가의 자문 1시간이나 아이나 어르신의 1시간은 동등하니까요.


보상받지 못하는 노동이 너무 많아요. 하루 종일 폐지를 줍는 노인, 많은 시간 가사와 간병을 도맡는 사람, 마을의 활동가 등... 이들이 사라진다면 모두 공공의 비용으로 해결해야 해요. 보이지 않는 노동을 인정하고 시간화폐를 발행하여 이들이 적절한 보상과 도움을 받도록 할 수 있어요. 첫 시작은 그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노동과 활동 시간을 기록하는 거예요. 공적인 가치를 발생하는 시간 활동을 기록해야 향후 공론화되고 보상할 수 있을 거예요.

글 | 최성욱


✅ 관련 콘텐츠를 확인해 보세요! 


사회혁신 뉴스레터, 테이블토크를 구독하시면
새롭게 바라보고 다르게 해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려요!

🖤 테이블토크 소식 받아보기 🖤
tabletalk.c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