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대혼돈의 스페인어 시험 - 추론 능력과 IB 제2외국어

작성자 Koi

국제 바칼로레아 학생의 렌즈

Ep 3. 대혼돈의 스페인어 시험 - 추론 능력과 IB 제2외국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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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k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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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시험이 끝났다.

저번 텀에는 분명 쉬웠던 스페인어가 복병이었다. 이런, 무슨 델레(DELE) 시험을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본래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 반응을 보면 대략적으로 얼마나 어려웠는지에 대한 감이 오는데, 스페인어 악셀레이션을 한 친구들도 모두 입을 모아 스페인어가 어려웠다고 하는 걸 보니 다들 적잖이 어려웠던 것 같다. 저번 시험에 가뿐히 만점을 받은 나도 이번에는 정말 긴장해야할 것 같다…

내가 이번 시험을 보고 가장 충격을 먹었던 건, 교과서에 없는 내용이 떡하니 시험에 나왔기 때문이다. 둘 다 매우 간단한 듣기 평가였고, 제시된 음원도 한 두 문장으로 간략했다. 문제는 내가 단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이마가 스페인어로 뭔지, 정강이가 스페인어로 뭔지, 또 토끼는 스페인어로 뭔지.. 스페인어로 아는 신체부위는 lavamanos (세면대) 때문에 알게된 manos밖에 없는데, 3번 문제에서 막혀버리니 앞이 아주 깜깜했다. 분명 눈을 씻고 교과서를 떠올리려고 해도 교과서에 전혀 없었던 내용인데, 이걸 어떻게 푸냐는 말이다. 결국 그 문제는 최후의 수단 운에게 맡겨 제출할 수 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의의를 제기하자 선생님이 조용히 ‘IB는 너희를 마치 스페인어를 3주 배우고 마드리드에 방을 얻어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처럼 생각한단다’ 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무슨 말인지 정말 모르겠고, 지금도 내가 그 말을 잘 해석한건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해석한 선생님의 말을 나의 말로 풀어보자면 이렇다.

언어를 배움에 있어서 우리가 그 언어에 완벽해지려면 수십년의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아마 그만큼의 세월이 흘러도 어쩌면 우린 여전히 말에 구멍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한국에서 거의 20년을 살았지만 내 한국어가 생각보다 서툴고 어눌한 것처럼 말이다. 영어 사용 국가에서 영어를 공부하지만 여전히 공문서를 읽을 때 사전이 옆에 있어야 하고, 때로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모르는 gen Z 용어가 불쑥불쑥 나올 땐 당황하기도 한다. 영어를 3년 공부했지만 여전히 영문학은 내 발목을 잡는 친구고, 셰익스피어는 왜 그리 어려운 말을 쓰는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요컨대 언어에 있어 ‘완벽’은 거의 불가능이라는 것이다. 특히 제 2외국어라면 더더욱!

우리가 특정 언어에 완벽하지 못하다면, 완벽하지 못한 부분의 것들을 이해하기 위해 ‘추론의 영역’을 쓰게 된다. 예를 들어 앞뒤 문맥으로 단어의 뜻을 유추한다든가, 아니면 접두사나 접미사를 통해 대략적인 단어의 품사나 뜻을 파악한다든가 이런 정확하진 않아도 대략적으로 예상하고 맞힐 수 있는 것들 말이다. IB가 지향하는 제2외국어는 이 추론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단순히 이러이러한 게 시험에 나오니까 공부해! 공부하면 만점 그냥 받아!가 아니고, 내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을 극복하는 요령과 힘을 기르는 교육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상황, 예컨대 딱 3주를 배우고 마드리드에 떨어진 상황에서는 모르는 단어가 훨씬 많을 테니 그때 내가 갖고 있는 언어적 능력을 잘 활용해 확장하는 기술을 2년 내내 연습하는 거다.

그래서 스페인어 ‘능력’ 시험인 DELE와 시험이 매우 비슷하게 출제된다. 단순히 특정 단어를 외우고, 표현을 외우고, 문법을 외우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스페인어로 정보를 입력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평가하는 거다. 유사한 시험으로는 TOFEL, Ielts와 같은 공인영어시험이나 한국 수능 영어 모의고사가 있다. 언어 교육에 있어 IB가 강조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호주에 오고, 새로운 언어를 직접 배워보니 실감한다. 추론 능력에 따라 사람마다 펼칠 수 있는 언어 확장의 폭이 정말 많이 달라진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보려 계획중이라면, 단순 암기도 좋지만 새로운 자료를 많이 접해보며 추론 능력을 향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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