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기생충은 왜 잔인하게 느껴질까?

ep1. 기생충은 왜 잔인하게 느껴질까?

작성자 Koi

영화 한 스푼

ep1. 기생충은 왜 잔인하게 느껴질까?

K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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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yk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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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는 좋지만.. 너무 잔인해.

영어 시간에 기생충(2019)을 함께 보며 대부분의 호주 친구들이 남긴 감상평이에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만큼, 저도 참 좋아하는 영화인데요. 처음에는 잔인하다는 평이 단순히 잔혹한 범죄 행위 묘사 때문인 줄 알았지만, 여러번 돌려보니, 다른 잔인함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어요. 오늘은 영화 한 스푼의 첫 번째 여정, 누구나 봤을 기생충에 대해 다뤄볼게요.

🖐️잠깐! 기생충을 아직 안 보셨나요? 아래 예고편과 영화를 보고 오시는 걸 추천드려요(스포일러 O)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사회

기생충은 부와 가난이 세습되는 사회를 그리고 있어요.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는 다송이는 별 볼 일 없는 그림 실력을 가지고 있어 최고의 교육을 받지만,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는 기정은 재능이 있어도 지원받지 못 하는 게 현실이죠. 그 외에도 계층을 수직적으로 시각화한 점이나 김 씨 일가가 박 씨네 집에 발을 들이는 데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상하관계가 존재한다는 점도 있어요. 결국 이 모든 장치들은 특정 계층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 계층에 머물게 된다는 것을 설명해줘요. 한 마디로, 사회경제적 계층의 이동이 불가능해졌다는 거죠.


계층 이동 불가라는 잔인한 선언

하지만 기생충은 단순히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달하는 데에서 그치 않아요. 계층 문제가 오랜 시간 이 사회에 뿌리내려 있었고, 이에 따라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이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많은 영화적 장치를 통해 관객에게 전하고 있어요. 김 씨 일가의 희망은 결국 꿈에 불과하다는, 절대 이룰 수 없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제게는 참 잔인하게 느껴졌어요. 지금 현재도 많은 사람들은 계층 이동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텐데, 그 희망마저도 무참히 짓밟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거든요

제가 이 잔인함을 느낀 영화적 장치 중 몇 가지를 설명해볼게요.

🪟철창살에 갇힌 김씨네 가족

김 씨네 가족의 반지하방, 무엇이 가장 먼저 생각나시나요? 저는 철창살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났어요. 영화 초반에 기택이 반지하 방 내부에서 지상을 바라보는 장면을 하이앵글(위에서 아래로 촬영하는 기법)로 촬영한 장면이 있었는데요. 하이앵글의 특성과 철창살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해당 장면은 기택이 마치 그 지하방에 갇힌 것처럼 연출해요. 그 외에도, 반복적으로 철창살을 보여주며, 마치 김씨네 가족의 '빈곤'이 철창살처럼 그들이 가난을 벗어나 지상으로 발돋움 하는 것을 막는 것처럼 연출하죠.

⏱️유난히 긴 기택과 기우의 재회

아주 급박한 호흡은 아니지만, 기생충은 굉장히 적절하고 몰입감이 높은 호흡으로 진행돼요. 하지만 이 호흡이 길어진 순간이 있는데, 바로 기우의 상상 속 기택과 기우의 재회예요. 기택이 지하실에서 걸어나와 기우의 품에 안기기까지, 이 부분만 롱테이크 기법 (Long take, 하나의 장면이나 시퀀스를 편집 없이 오래 촬영하는 기법)을 통해 굉장히 오랜 호흡으로 끌고 가는데요. 이는 기택과 같은 빈곤층이 자신들을 철창살처럼 누르는 가난에서 벗어나, 상류층의 삶으로의 계층 이동의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오랜 여정인지를 시각적으로 연출해요.

↕️오프닝과 클로징씬의 카메라 무빙

제가 생각했을 때 기생충에서 가장 잘 만든 부분은 바로 오프닝 씬과 클로징 씬인데요. 두 씬 모두 틸트 (Tilt, 카메라를 위 아래로 움직임)를 사용했고 그에 따라 상당히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어요. 다만, 오프닝씬은 아래에서 위로, 클로징씬은 위에서 아래로 카메라가 움직여요. 오프닝 씬의 카메라 무빙은 김씨네 가족의 위로 향하려는 욕구, 즉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의 시작을, 반대로 클로징 씬의 카메라 무빙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층민의 삶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잔인한 현실을 시각적으로 연출해요. 이는 롱테이크 샷을 통해 연출된 기우의 희망 속 존재하는 계층 상승마저도 헛된 희망이라는 걸 다시금 잔혹하게 강조하죠.


🧐기생충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

기생충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김 씨네 가족의 희망이 개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계층이 계급처럼 고착된 현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언급했던 영화적 장치들이 시각적으로 계급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가혹함을 다시 관객에게 알리며, 이를 날카롭게 비판하죠.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전찬일 영화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기생충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를 둘러싼 현재 이 시대의 상황이라든가 그런 것에 솔직하다보니까, 더 강하게 말하면 적나라함, 그 적나라함을 피하지 않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불편해진 거죠....(중략)...어떻게 보면 잔인하지만, 그걸 마지막에 어떻게 이상한 당의 정을 심어서 포장하면 오히려 그게 관객에게 실례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히려 솔직한 게, 좀 다소 불편하게 극장을 나서더라도, 그게 관객을 향한 예의가 아닌가 하고, 그렇게 생각한거죠.
출처 : 쿨투라(http://www.cultura.co.kr)

기생충이 범세계적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영화보다 더 잔혹한 현실 속 사회 문제를 단호한 목소리로 비판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기정이가 홍수 속 변기에 앉아 피우던 담배처럼 씁쓸한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오늘의 영화 한 스푼 '기생충'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