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산문집, '준비성 없는 여행자들을 위한 마법의 주문'이라는 글 중에서(2018년 마음의숲에서 발행)

어제 출근길에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서는 사람을 봤어요. 격자 무늬 마당을 덜컹이며 유유히 지나는 그 유쾌한 발걸음을 보며 저도 모르게 혼잣말로 읊조렸죠. 아, 나도 여행가고 싶다.

여행이 가고 싶어지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아마도 루틴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때가 아닐까 싶어요. 그럴 때면 당장이라도 박차고 어디론가든 떠나고 싶어지죠.

그런데 막상 여행에 가면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로구나, 시시한 감상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낯선 환경을 내 경험과 얄팍한 지식에 맞대보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고 규정해 버리는 거죠.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불현듯 엄연한 사실을 깨닫게 돼요. 세상은 참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루틴한 일상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구나. 그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요상한 위로가 마음 속에 잔잔하게 퍼지곤 하죠. 그렇게 좁디 좁았던 저만의 세상이 가까스로 넓어져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