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라밸의 함정

워라밸의 함정

작성자 초희

출근길에 만난 문장

워라밸의 함정

초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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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oin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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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의 '지지 않는다는 말'이라는 산문집, '이 우주를 도와주는 방법'이라는 글 중에서(2018년 마음의숲에서 발행)

주변 사람들이 뜯어 말리는데도 기어코 인문학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좋을 줄만 알았죠. 원하는 공부를 맘껏 할 수 있을테니까요. 역사 책이 가득 쌓인 방 한가운데에서 이것저것 연구해 볼 스스로의 모습을 떠올리며 한껏 부풀어 오르기도 했어요. 생각대로 얻은 게 참 많았어요.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8할 정도는 대학원에서 배웠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요.

그런데 막상 논문을 다 쓰고 졸업을 앞두다 보니 꽁꽁 감춰 두었던 불안이 엄습하더라고요. 아, 대체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하나. 자조 섞인 푸념이 일상을 가득 채워 갔어요. 나는 그저 책을 사 읽을 수 있는 일말의 월급과 이 몸뚱어리 누일 정도의 방이 필요할 뿐인데. 막연한 미래를 그리며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기적같은 소식을 접했어요.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지원한 박물관에 덥석 합격한 거예요.

월급은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행복했어요. 허구한 날 밤을 새워가며 열심히 연구해도 무일푼이었던 생활이 몸에 익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돈을 받으면서 좋아하는 걸 계속 이어갈 수 있단 기쁨으로 하루하루가 충만했죠. 김연수 작가의 말처럼, '일하는 건지 노는 건지 알 수 없는' 무아지경의 나날이었어요.

그런데 참 사람이 간사해요. 그 시절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지도 몰라요. 그만큼 오늘날의 나는 세상의 '셈법'에 농익어 버렸거든요. 월급은 곱절로 높아졌는데, 왜 그때보다 행복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걸까요. 자꾸만 손아귀에 있는 것보다 없는 것들을 셈하고 시샘하게 돼요.

'무엇을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그 소망을 들어 준다'는 어느 소설 속 한 문장이 삶의 전부였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졌어요. 지금부터 돌아가 보려고요. 어차피 세상 모든 일은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달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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