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크게, 실행은 치열하게
🍀 마케터를 위한 뉴스레터, 큐레터의 08월 27일 아티클이에요!
3년 전 한 스타트업 행사장에서 스치듯 명함을 주고받았을 때만 해도, 솔직히 한동안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최근 유통과 커머스 시장을 관찰하며 '약국'이라는 채널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문득 길을 걷다 보니 거리 곳곳에 '참약사'라는 간판이 눈에 띄게 늘어 있었고, 자연스레 질문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지금 약국 판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기억을 더듬어 3년 전 명함을 찾아 연락을 드렸고, 약 3주 전 참약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눈 대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끊임없는 궤도 수정'이었습니다. 제약회사 연구원에서 다시 현장 약사로, 그리고 약국 생태계를 바꾸는 사업가로 변모해 가는 과정에는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는 유연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실행력은 숫자로도 고스란히 증명되고 있었습니다. 가맹점만 전국 700개를 넘어섰고, 자체 개발한 재고 관리 솔루션 '반팜'은 전국 약국의 40%에 달하는 1만여 곳에서 매일 쓰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거대한 인프라보다 더 깊게 남은 것은 그가 내놓은 답의 출발점이었습니다. 1만 개 약국의 데이터를 움직이는 메디컬 테크 기업의 대표가 말한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였습니다.
바로 '현장 약사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환자가 편안함을 느끼는 눈높이'를 맞추는 지극히 인간적인 고민이었습니다. 약국을 단순히 약을 받아가는 장소에서 내 건강 이야기를 시작하는 공간으로 바꿔나가는 김병주 대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Q1. 약사들이 처음 모여서 만든 게 약국도 유통 회사도 아닌 '출판사'였다는 게 참 독특해요.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당시에 왜 그런 선택을 하셨던 건가요?
제가 4년제 약대를 졸업하고 막 현장에 나왔을 때는 솔직히 '기준'이라는 게 거의 없어서 너무 막막했어요. 어떤 선배를 사수로 만나느냐에 따라 제 실력이 천차만별로 갈리는 걸 보면서 현장 교육이나 가이드라인이 정말 절실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러던 중에 약사 전문 서적을 내시던 자그마한 출판사가 문을 닫을 위기라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때 멘토 선배님이 "이 기록들이 사라지면 약사 사회 전체의 큰 손실인데, 의지 있는 젊은 친구들이 이어받아 보면 어떨까?" 하고 슬쩍 제안을 주셨죠. 사실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유통이나 공동구매 쪽을 택했겠지만, 당시 저와 동료들에게 당장 목말랐던 건 '현장의 지식을 연결하는 일'이었어요. 그래서 조금 유별나 보일지 몰라도 학술과 출판에 집중하는 협동조합으로 첫발을 떼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게 해 준 결정적인 경험이 바로 故 박정완 약사님의 『약국에서 써 본 약 이야기』였어요.

40년 넘게 현장을 지킨 베테랑의 임상 노하우를 쉬운 언어로 풀어낸 이 책은, 15년 동안 5권의 시리즈로 이어지며 약사들의 '실전 교과서'로 자리 잡았거든요. 하지만 저에게 책의 베스트셀러 달성보다 더 짜릿했던 건 따로 있었어요. 한 약사가 평생 쌓아온 개인의 경험도 잘 정리하고 구조화하면, 전체 집단의 엄청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한 순간이었죠.
돌이켜보면 지금 저희 참약사가 데이터와 AI로 하려는 일도 본질은 똑같아요. 예전에는 선배 약사의 노하우를 '책'으로 묶어 공유했다면, 지금은 전국 약국의 임상 데이터와 경험을 '디지털과 AI'로 축적해서 다시 현장의 약사님들에게 돌려드리는 것뿐이거든요.
Q2. 제약회사 연구개발직을 그만두고 약국으로 나오시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나요?
원래는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치고 제약회사 연구개발 쪽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협동조합을 만들고 운영하다가 공동 이사장까지 맡게 되면서, 회사 업무와 조합 일이 점점 겹치기 시작했죠. "회사를 다니면서 두 가지를 병행하긴 어렵겠구나, 이제는 약국 현장으로 나가봐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습니다. 그때 존경하던 선배 약사님께서 "괜찮은 약국 자리가 생겼는데 한번 해볼래?" 하고 소개 주셔서 성북구 종암동에 처음 자리를 잡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들어간 약국은 대로변이 아니라 건물 뒤편에 있었어요. 잘 보이지도 않아서 손님들이 "약국이 어디 있어요?" 하고 찾아올 정도였죠. 저한테 가장 아쉬웠던 건 이로 인해 처방전 조제 비중이 높은 구조라는 점이었어요. 당시 약사들 사이에서는 처방전 조제와 복약지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병원 의존적인 면이 크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반면에 처방전 없이 오신 분들과 건강 상태나 영양제를 직접 상담해 드리는 건 약사의 역량을 훨씬 더 넓게 펼칠 수 있는 영역이라 다들 그 재미를 크게 느꼈죠. 제가 연 약국은 바로 그런 상담을 적극적으로 하기엔 조금 불리한 환경이었던 셈입니다.
Q3. 개국하자마자 시스템부터 만드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풀고 싶으셨던 문제는 무엇이었나요?
IT 쪽에 관심이 많았던 데다 회사에서 연구개발을 한 경험이 있다 보니, 환자분들을 데이터로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그래서 약국을 열 때 청구소프트웨어과 결제 POS 업체에게 제안을 드렸죠. 처방전 데이터는 현재 저장되는데, 거기에 영양제나 일반 의약품 구매 기록까지 함께 관리할 수 있게 만들어 달라고요. 그게 발전해서 나온 게 지금 회원 약사님들과 쓰는 '참약사 POS'입니다.
데이터를 쌓기 시작하니까 효과가 바로 나타나더라고요. 만성질환 환자분들은 똑같은 복약지도를 반복하면 지루해하시는데, 이전 기록이 있으니 "지난번에 사 가신 영양제는 잘 맞으셨어요?" 하고 먼저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된 거죠. 환자분들 입장에서는 "이 약국이 나를 기억해 주는구나" 하고 감동하시는 포인트가 됐습니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알레르기 사건이었어요. 단골 환자 한 분이 주말에 다른 병원에 다녀오셨는데, 의사선생님께 원래 갖고계신 약 알레르기 이야기를 깜빡하시는 바람에 페니실린계 항생제가 처방되어 나온 거예요. 제가 시스템 기록을 보고 "환자분, 예전에 알레르기 있으셨는데 혹시 이번 진료 때 말씀하셨나요?" 하고 여쭤봤죠. 깜빡하셨다길래 바로 병원에 연락해서 처방을 변경해 드렸습니다. 그 뒤로는 어느 병원에 가시든 처방전은 무조건 저희 약국으로 들고 오시더라고요.

비슷한 사례로 아이들 약포지도 있었어요. 당시 제가 첫아이를 키우던 때라 육아하는 부모 마음을 잘 알았거든요. 아이 둘 이상 키우는 집은 가루약 포지가 섞이면 용량이 달라서 위험할 수도 있고 굉장히 헷갈려요. 그래서 첫째 둘째 셋째 별로 약포지 색을 시스템에 완전히 지정해드렸죠. 소소해 보여도 이런 세심함과 시스템을 통한 관리가 부모님들께 큰 신뢰를 주었습니다.
Q4. 25평이면 당시로선 작은 약국이 아니었을 텐데, 굳이 넓히기로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위와 같은 차별화로 짧은시간에 약국 매출이 꽤 늘면서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기준으로는 25평도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지만, 내심 "왜 우리나라에는 해외 같은 드럭스토어가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거든요. 미국의 월그린, CVS나 일본의 마쓰모토키요시, 웰시아처럼 다른 나라는 이 드럭스토어 산업이 잘 커가는데, 왜 우리는 안 될까 싶었던 거죠.

그래서 한 달 정도 휴가를 내고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브랜드별로 300개가 넘는 드럭스토어 매장을 직접 돌며 현장을 조사했어요. 그렇게 얻은 나름의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옆 공간 20평을 더 넓혀 총 45평 규모의 '한국형 드럭스토어'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상품 구성부터 서비스까지 정말 이것저것 다양한 시도를 해봤죠.
그러다 운 좋게 약국경영대상에서 대상을 받게 됐어요. 약사 전문 언론에 소개되다 보니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분들이 늘었습니다. 젊은 약사님들은 견학을 오거나 조언을 구하러 연락을 주셨고, 연세가 좀 있으신 약사님들은 "내 약국도 비용을 줄 테니 이런 스타일로 만들어달라"고 요청하시기도 했죠.
Q5. 개별 약국의 한계를 깨닫고 주식회사 형태의 체인(참약사)으로 본격 발전시키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궁금해요. 단순히 상품이나 간판을 공유하는 것 이상의 고민이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직접적인 계기는 의외로 사소했어요. 아내가 "어떤 신제품이 나왔는데 좋다더라" 해서 업체에 문의했더니 대뜸 최소 주문 수량을 묻더라고요. 당시엔 MOQ도 잘 몰라서 "10개나 100개쯤 해볼게요" 했더니, 기본 단위가 몇천, 몇만 개라는 거예요. 그때 개별 약국 하나로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고,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비즈니스화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겠다고 직감했죠.
처음엔 기존 협동조합 멤버들과 시도해보려 했지만, 조합 특성상 소유와 책임이 모호하고 다들 생활이 바빠지면서 속도감 있게 사업을 추진하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기존 조합은 그대로 두고, 실행력을 갖춘 주식회사 형태로 새로 출발하게 됐습니다.

약국은 개국할 때 관공서만 다섯 곳을 거쳐야 할 만큼 규제도 많고, 인테리어나 보안 같은 서비스도 개인이 구하면 매번 불리한 일회성 거래로 끝나버려요. 이걸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어내면 강력한 협상력이 생기니까요.
사업을 하면서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단가 절감이나 프랜차이즈 간판 그 이상이었어요. 회원 약사님 한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전에는 약국의 모든 문제를 혼자 떠안은 '외로운 개인사업자'였는데, 참약사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같이 고민해 줄 사람이 생겼다"고요.
약국은 작아도 노무, 세무, 마케팅, 환자 상담까지 약사 혼자 결정해야 할 일이 수두룩하거든요. 약사님들이 진짜 가치 있게 느끼는 건 상품 할인보다, 본부나 동료 약사들과 문제를 나누고 해결하는 '든든한 인프라' 그 자체였던 거죠.
Q6. 체인을 막 시작하신 시점에 코로나가 터졌습니다. 그때는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코로나는 저희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였어요. 손소독제부터 마스크, 진단키트까지 물량이 없어서 못 파는 상황이 펼쳐졌고, 체인을 이끄는 대표 입장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원 약국들에 제품을 공급해 국민 불편함을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었어요. 그때부터는 정말 밤을 새워 가며 소싱하고 구매하러 뛰어다녔습니다. 당시 시장은 암시장 영역까지 퍼져 있을 정도로 과열되어 있었죠.

그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수량을 중개하는 브로커를 만나러 갔는데, 대뜸 저한테 "칼 하나는 차고 오셨죠?" 하시는 거예요. 무슨 소리인가 싶어 놀라 물어보니, 현금 거래가 크게 오가는 상황이다 보니 위험해서 다들 칼 하나씩은 품고 다닌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잘못 들었나 싶었는데, 심지어 거래 장소도 신림동의 한 양꼬치집이라는 말을 듣고 느낌이 참 쎄했습니다. 결국 칼을 사긴 좀 그래서 호신용 봉을 하나 사서 차고 다녔죠. 한 번 거래에 몇십억원씩 오가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당시 저희 이사님 약국인 하남스타필드 물류쪽으로 마스크를 소싱해 오면, 회원 약사님들이 택배 기다릴 겨를도 없이 직접 가지러 오셨어요. 다 같이 스타필드 집하장에 모여 마스크를 나눠 실어 가시곤 했죠. 결과적으로는 그 치열했던 과정을 거치면서 유통을 몸으로 직접 배웠고, 단단한 유통망도 갖추게 됐습니다. 만약 그때 그 시련이 없었다면 저희가 단기간에 유통 비즈니스를 이렇게 자리 잡게 할 수 있었을까 싶습니다.
Q7. 약국 체인을 세대로 나눠 말씀하시던데, 세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1세대는 90년대 초반에 등장한 곳들이에요. 해당 체인에서만 판매할 수 있는 전용 PB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했죠. 핵심 기반은 유통이었죠. 반면 2세대는 성격이 조금 달라졌어요. 약국은 일반 직원들이 판매를 할 수 없고, 반드시 약사라는 전문직이 조제와 상담이라는 전문 행위를 수행하는 공간이잖아요. 그래서 약사들을 교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와 학술을 교류하는 커뮤니티 구축으로 사업을 시작하셨어요.

저희는 1세대의 유통과 2세대의 학술·교육 시스템을 기본 바탕으로 깔고 가되, 우리만의 확실한 차별점을 무엇으로 가져갈지 고민했어요.
그 답이 바로 디지털전환이었습니다. 그동안 약국 시장은 많은 영역이 아직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었거든요. 세상은 이미 디지털 전환을 넘어 AI 시대로 가고 있는데, 약국 현장은 변화가 쉽지 않았던 거죠. 진입장벽과 업계 특유의 문화와 전문가 집단이 지닌 고유의 정서나 우려들이 맞물리면서 혁신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한 영역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산업은 이미 이만큼 발전해 있는데, 이 기술들을 약업계에 잘 접목한다면 구성원인 약사님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저희 역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겠다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단순히 우리 체인 가맹점을 넘어, 전국 약국을 대상으로 하는 IT 사업을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기로 결정했던 겁니다.
Q8. 약국 현장에서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IT 서비스는 어떻게 처음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요. 반품이나 재고 문제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는데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의약품 일련번호 제도'였어요. 처방약에 2차원 바코드가 도입되면서 약 상자마다 스마트폰처럼 고유 번호가 생긴 건데, 이게 아이러니하게도 반품할 때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거든요. A 도매상에 반품을 보내면 "이 상자는 B 도매상에서 사신 거라 반품 안 됩니다" 하고 튕겨 나오는 거죠. 약사님들은 이 구매처를 찾으려고 일일이 도매상 사이트에 들어가 번호를 하나씩 검색해야 했어요.
이걸 보고 "약국 전용 인증서를 활용하면 이 일일이 대조하는 과정을 자동으로 묶어줄 수 있겠는데?" 싶었어요. 그렇게 바코드만 찍으면 어느 도매상 제품인지 바로 찾아주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이게 지금 저희 더약솔루션의 '반팜' 서비스가 됐습니다. 현재 전국 약국의 40%가 넘는 1만 여 곳에서 쓰실 만큼 필수 프로그램이 됐죠.

하지만 진짜 의미는 단순히 '반품이 편해졌다'는 데서 끝나지 않더라고요.
예전에는 구매처를 못 찾아서 버리거나 창고에 방치하던 재고들이, 반팜을 거치면서 전부 '시각화된 데이터'로 바뀌기 시작했어요. 실제 현장에서도 처음엔 '반품 좀 편하게 하려고' 설치하셨다가, 나중에는 "아, 우리 약국에 어떤 약이 얼마나 남아있고 어디서 안 돌아가는구나"를 파악하는 재고 관리 도구로 활용하시는 모습이 늘어났죠.
약사의 머릿속이나 창고에 묻혀 있던 데이터가 눈앞에 드러난 거예요. 저희가 반팜을 단순한 반품 도구가 아니라, 이름 뜻대로 '약사가 반하도록, 약사의 일을 반으로 줄여주는 시스템'으로 계속 진화시키려는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Q9. 밖에서 보면 약국도 결국 소매점 같은데, 안에서 보시기에는 다른가요?
약국과 가장 구조가 비슷한 소매업 매장을 꼽자면 편의점이에요. 상대적으로 작은 공간에 수많은 제품을 진열해 두고 빠르게 순환시키는 구조니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매장 수와 시장 규모의 비율이에요. 전국 편의점이 5만 개를 넘어서고 약국은 2만 5천 개 정도인데, 전체 시장 규모는 둘 다 약 30조 원으로 비슷하거든요. 즉, 개별 약국 하나가 일으키는 매출이 편의점의 두 배 이상일 정도로 유통 볼륨이 훨씬 큰 공간인 거죠.
입지를 바라보는 기준도 일반 소매점과는 완전히 달라요. 일반 매장은 유동인구나 배후 상권에 집중하지만, 약국은 인근 병의원이 어떤 과목인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거든요. 소아과나 이비인후과처럼 아이와 부모님이 주로 찾는 약국인지, 아니면 내과나 정형외과처럼 어르신 방문이 많은 약국인지에 따라 같은 상권의 같은 평수라도 완전히 다른 약국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저희는 표준화와 커스터마이징을 동시에 적용하고 있어요.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는 기본 시스템은 규격화된 표준으로 가되, 고객 만족과 연결되는 디테일한 영역은 철저히 맞춤형으로 풀어가는 거죠. 단순히 매뉴얼 하나를 짜두고 "똑같이 복제하세요"라고 요구하는 게 아니라, 기본 프레임을 바탕으로 약사님과 충분히 상담하며 약국마다 최적화된 형태로 완성해 가고 있어요.
Q10. 명동이나 홍대에 대형 K뷰티 약국이 늘고 있습니다. 업계 안에서는 시선이 갈릴 것 같은데, 대표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저는 약사님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다 보니 약사님들의 입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산업 전체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면 한국 약국 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긍정적인 흐름이라고 봐요.
제가 비즈니스를 판단하는 기준은 명확해요.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성장하는 사업이 있고, 서로 상생하며 시장을 키우는 사업이 있거든요. 전자는 주변의 견제가 심할 수밖에 없어 오래가지 못하지만, 후자는 상대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높죠. 그런 면에서 K뷰티 약국은 주변 약국이나 약사님들에게 상대적으로 피해를 주는 구조가 아니에요. 실제로 매장에 가보면 다국어 상담이 가능한 전담 인력을 배치하고, 제품마다 상세한 다국어 표기를 해두었거든요. 게다가 약사님들도 기능성 화장품과 스킨케어 성분을 훨씬 깊이 있게 공부해서 전문적인 상담을 제공하고 계시죠. 약국의 영역과 역량을 넓힌 사례라고 봐요.
반면에 의약품을 대량으로 쌓아두고 가격 경쟁만 내세우는 창고형 약국은 결이 조금 달라요. 소비자가 일부 품목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의약품은 일반 공산품이나 식품과는 본질적으로 다르거든요. 약은 상술로 많이 소비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 전문가의 지도하에 적절하게 복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약사로서의 윤리의식이나 진정으로 국민의 건강을 우선시하는 가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Q11. 데이터를 쌓아두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듣는데, 실제로 그게 무기가 됐던 순간이 있었나요?
작년에 PDRN 성분이 약국가의 핫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던 적이 있어요. 당시에 저희가 플랫폼을 통해 데이터 흐름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는데, 해당 성분 의약품의 수요가 갑자기 급상승하는 게 포착되더라고요. "이게 무슨 신호지?" 싶었는데, 가맹 회원 약사님들과 저희 임직원들도 현장 분위기를 빠르게 전해주셨죠.

그래서 그 길로 해당 제약사에 곧바로 연락을 취했어요. 당시에 그 제품은 전국적으로 품절 대란이 일어나서 구하기가 정말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저희는 데이터 신호를 포착하고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물량을 제때 확보해서 가맹 회원분들께 안정적으로 공급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솔직히 돌아보면 운도 정말 잘 따라줬다고 봐요. 약국 체인으로 시작해 IT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고, 그 과정에서 구축한 플랫폼 덕분에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런 시장의 변화를 남들보다 한발 앞서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Q12. 앞으로 참약사가 집중하려는 '돌봄 약국'은 기존 약국과 무엇이 다른가요?
지금까지 참약사가 해온 일들이 1.0이었다면, 앞으로의 2.0은 '돌봄'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려고 해요. 잘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초고령화 진행 속도가 가장 빠르잖아요. 실버 세대를 향해 약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에요.
마침 저희 회사 1층 약국의 약사님이 은퇴하시면서, 그 공간을 직접 활용해 새로운 돌봄 모델을 테스트하고 있어요. 거동이 불편하거나 어르신 환자분들을 위한 '돌봄 배려 좌석'을 만들고, 음향 보조 장비나 직관적인 복약 봉투 시스템을 다듬어 가고 있죠.
그런데 테스트를 하면서 예상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됐어요. 환자분들은 이 약국이 "내 이야기를 꺼내도 되는 공간인가 아닌가"를 공간의 디테일에서 민감하게 느낀다는 점을요.
처음엔 상담 콘텐츠나 프로그램이 제일 중요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공간을 바꿔보니 의자의 위치, 약사와 환자의 눈높이, 다른 손님과의 거리 같은 요소들이 대화의 깊이를 완전히 바꿔 놓더라고요.

일반 약국에서는 처방전을 내고 약만 받아 빨리 나가기 바쁘잖아요. 하지만 공간이 "조금 더 머물러도 돼요", "여기선 편하게 건강 이야기를 하셔도 됩니다"라는 신호를 보내주면, 환자분들은 약 이야기뿐만 아니라 평소 생활습관이나 부모님 건강 같은 깊은 고민까지 꺼내놓기 시작하세요.
결국 저희가 꿈꾸는 돌봄 약국은 거창한 서비스를 추가하는 게 아니에요. 약국이라는 장소를 단순히 '약을 받아가는 곳'에서 '내 건강 이야기를 편하게 시작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것, 거기서부터 진짜 돌봄이 시작된다고 믿어요.
Q13. 약국들이 시설 투자에 유독 소극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그랬던 건가요?
과거에는 약국이 너무 고급스럽고 인테리어가 깔끔하면 "여기 왠지 약값이 비싸겠다" 하는 오해 때문에 손님이 안 온다는 시선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약국이 시설이나 인프라 투자를 주저하곤 했죠.
하지만 이제는 고객층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10~20년 전의 실버 세대가 아끼고 절약하는 데 익숙하셨던 분들이라면, 지금 실버 세대로 진입하는 베이비부머 분들은 경제력도 충분하시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훨씬 익숙하신 세대거든요. 병원들이 고객 경험 중심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듯이, 약국 역시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본 거예요.

예전에는 개별 약사님이 개인의 감과 경험에 의존해 매장을 꾸몄다면, 저희는 데이터와 환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철저히 근거 중심의 약국 환경을 구축해 가고 있어요.
VMD와 동선 설계, 매장 관리, 맞춤형 상담 프로세스를 적용하면서 20~30% 정도 매출이나 효율이 개선되었고, 많게는 두세 배 이상 올라간 곳도 있죠. 약국마다 도입 시기나 시스템 적용 범위가 달라서 통계를 정밀하게 내는 게 늘 고민이긴 하지만, 가끔 약사님들이 "참약사 덕분에 우리나라 약국들이 전반적으로 훨씬 깔끔하고 예뻐지고 있다"고 말씀해 주실 때가 가장 보람차고 힘이 납니다.
Q14. 앞으로 약사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져야 한다고 보시나요?
이제는 단순히 제품을 입점시키고 진열해서 판매하는 일보다, 약사의 본질에 집중해서 환자를 더 깊이 있게 관리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봐요. 환자 한 분 한 분과 약국의 유대감을 쌓아가는 거죠.
요즘 소비자들은 영양제 하나를 살 때도 홈쇼핑이나 인터넷, 심지어 AI한테까지 물어보시잖아요. 하지만 정작 자신에게 무엇이 올바른 정보인지 판단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반면 전문가는 수년간 그걸 전문적으로 교육받고 훈련해 온 사람들이니까 제대로 된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죠. 무작정 제품을 팔려고 하기보다, 이분들의 건강 고민과 제품 선택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해 드리는 상담 중심으로 나아가야 해요.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게 바로 포지셔닝의 변화예요. 지금까지 약사가 '셀러'의 역할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카운슬러'로 완전히 이동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미국에는 '약물치료관리'라는 서비스가 있어서, 여러 병원에서 받은 약들이 서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는지 약사가 다각도로 검토하고 의료진과 협진을 진행해요. 우리나라도 이런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하게도 기술 환경은 이미 갖춰지고 있어요. 환자분의 동의만 받으면 마이데이터를 통해 최근 6개월에서 1년 치 병원·약국 투약 이력을 한눈에 볼 수 있거든요. 어르신들은 본인이 드시는 약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기 힘들어하시는데, 동의 한 번으로 어제 다른 약국에서 받아 오신 약까지 함께 펼쳐놓고 병용 금기나 부작용 이슈를 짚어드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Q15. 맞춤형 건기식 데이터에서 AI 추천안의 97.31%를 약사가 손봤다는 결과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AI가 끝내 대체하지 못할 영역은 어디라고 보시나요?
AI 기술의 한계가 어디까지일지는 감히 단정할 수 없지만, 지금 단계에서도 데이터를 넘어서는 현장의 영역이 분명히 존재해요.
가장 대표적인 게 바로 '데이터에 기록되지 않는 맥락'입니다. AI는 구매 이력이나 상담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답에 가까운 제품을 추천할 수 있죠.
하지만 약사와 환자가 직접 눈을 맞추는 순간 전혀 다른 정보들이 튀어나와요. "이 약은 속이 아파서 못 먹는다", "알약이 너무 커서 목에 넘기기 힘들다", "사실 제일 걱정되는 건 다른 증상이다" 같은 속마음 말이죠. 이런 대화 한마디에 AI가 짜놓은 우선순위는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환자의 표정과 말투, 행간에 숨겨진 불편함을 읽어내고 진짜 필요한 질문을 던지는 건 결국 숙련된 약사의 경험과 연륜에서 나오거든요. 게다가 약은 안전성과 책임이 직결된 영역이라 전문가의 최종 검증이 필수적이고요.
그래서 저희가 만들려는 AI는 약사를 대신해 단정적인 정답을 내리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AI가 수많은 선택지를 빠르게 줄여주는 보조 도구가 되고, 마지막 결정과 세심한 조정은 직접 환자를 마주한 약사가 하는 구조를 만드는 거죠.
오히려 진짜 훌륭한 AI라면 약사가 제안을 수정하거나 뒤집었을 때 "왜 약사님이 이 선택을 하셨을까?"를 다시 학습해서 다음 추천을 더 똑똑하게 다듬어갈 수 있어야 해요. 지금 참약사가 구축해 가는 '약국 슈퍼에이전트'도 정확히 이 방향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Q16. 아마존 파머시 같은 글로벌 거대 기업을 상대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해지진 않으시나요? 그 사이에서 참약사만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솔직히 미국의 거대 테크 기업들과 저희를 직접 비교하기엔 체급 차이가 커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영역이 많고, 저희가 부족한 점도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저희만의 확실한 강점을 꼽자면 바로 '현장감'과 '빠른 속도감'이에요.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조직이 거대해지면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잖아요.
반면 저희는 직접 수많은 현장 약사님들과 실시간으로 밀접하게 소통하면서, 그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회사의 실행 과제나 비즈니스로 즉시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죠. 작은 조직 특유의 기민함으로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법을 아는 셈이에요.
여기에 더해 AI 전환을 경영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의사결정 속도를 대폭 끌어올렸다는 점도 큰 무기예요. 실제로 그 성과가 즉각 나타나고 있거든요.
예전에는 약국 하나를 가맹하고 오픈하기까지 전 과정에 인력이 직접 붙어서 일일이 챙겨야 했지만, 이제는 상당 부분을 자동화 시스템과 프로그램 개발로 대체해 냈어요. 작은 몸집에 첨단 무기를 탑재해서 현장과의 거리감을 최소화하는 것, 그게 바로 저희 참약사가 가진 본질적인 경쟁력이라고 봅니다.
Q17. 약사 출신 경영자로서 여러 시도를 거쳐오셨을 텐데요. 그간의 시행착오 속에서 얻은 가장 큰 레슨과 요즘 치열하게 하시는 고민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기대했던 것만큼 빠르게 풀어내지 못했던 시도들도 사실 정말 많았어요.
과거에는 "우리가 좋은 기술과 서비스를 만들면 약사님들이 알아서 잘 써주시겠지" 하고 생각했거든요. 비용과 시간을 엄청나게 들여서 근사하게 개발해 놨는데, 정작 현장에서는 '기능이 많다'는 것과 '매일 손이 간다'는 게 완전히 다른 이야기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우리가 만들고 싶은 이상적인 서비스'와 '약사가 오늘 당장 해결하고 싶은 진짜 문제'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저희의 대표 서비스인 '반팜'도 그 깨달음의 결과였어요. 처음부터 거대한 약국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욕심내지 않고, 약국에서 매일 겪는 가장 번거로운 '반품'이라는 작은 문제 하나부터 확실하게 풀어냈죠. 그렇게 사용이 쌓이니까 자연스럽게 재고 데이터가 모였고, 그제야 자동 발주나 커머스 같은 다음 단계가 열리더라고요.

결국 제가 얻은 가장 값진 레슨은 "큰 비전일수록 가장 작게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처음부터 판을 크게 짜려고 하면 아무것도 안 만들어지지만, 현장의 작고 반복되는 문제 하나를 확실히 해결해 신뢰와 데이터를 쌓으면 사업은 자연스럽게 확장되니까요.
회사 경영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이것저것 다 잘하고 싶은 욕심을 내려놓고, 지금 우리 회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핵심에 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이 가장 중요한 시기거든요.
결국 약국 현장의 불편함을 풀고, 데이터를 쌓고, AI로 연결하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그동안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참약사의 가장 확실한 답입니다.
Q18. 10년 뒤 참약사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참약사가 업력이 아주 길지는 않아 아직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저는 약을 처방받고 건강 상담을 나누는 '약사라는 전문가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서, 소비자가 아무런 고민 없이 가장 먼저 믿고 찾는 브랜드가 되기를 바라요. 그 영역에서 압도적인 넘버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기본 목표죠.
나아가 글로벌 시장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싶어요. 미국에는 월그린, 영국에는 부츠, 일본에는 마쓰모토키요시처럼 각 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헬스케어 리테일 브랜드가 존재하잖아요.

K뷰티와 K의료에 이어 이제는 'K약료'의 시대라고 봅니다. 세계 주요 도시마다 참약사의 매장이 들어서고 한국형 약료 서비스가 자리 잡아, 헬스케어 영역에서도 국위선양을 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당당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실제로 그 기회들이 하나씩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고 있거든요. 코로나 직전에는 베트남의 한 법인에서 가맹 체인 진출을 제안해 와서 긴밀하게 미팅을 이어가다 팬데믹으로 잠시 멈췄었고, 최근에는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대형 의약품 유통사들로부터 참약사 브랜드 수출 제안을 받아 구체적인 논의를 진행 중이에요.
K-컬처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앞으로 '한국식 선진 약국의 표준'을 세계 무대에 퍼뜨릴 수 있는 기회는 훨씬 더 커질 거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 오늘의 큐터뷰는 조인후 작가님이 작성하고, 큐레터가 편집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