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 월급을 못 줘서 어머니한테 빌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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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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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케터를 위한 뉴스레터, 큐레터의 07월 30일 아티클이에요!


신호등의 빨간불 하나가 한 청년의 삶과 죽음을 갈랐습니다. 마야크루 오준호 대표가 창업을 결심한 곳은 세련된 회의실이 아닌 병실 침대 위였어요. 의경 시절 당한 대형 교통사고, 왕복 8차선 도로 위로 튕겨 나갔던 그날 덤으로 얻은 목숨 값 3,000만 원이 마야크루의 위대한 출발선이 되었습니다.

하루 400곳의 식당을 돌며 문전 박대를 당하던 맨땅 헤딩부터, 월 수천만 원의 서버비를 쓰며 미국 틱톡 생태계를 꿰뚫어 보고 팝스타 카디비의 선택을 받기까지. 하지만 그 눈부신 데이터 레버리지 뒤편에는, 생존을 위해 함께 고생한 직원들의 이름에 눈물로 선을 그어야 했던 지독히 아픈 리더의 트라우마도 숨어 있었습니다.

지난해 지인의 소개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이 거친 서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는 그저 밝고 유쾌한 청년이었 거든요. 압도적인 성과 앞에서도 늘 "운이 좋았고 주변 덕분"이라고 말하는 그 겸손함은, 대화를 나눌수록 근래 보기 드문 결이라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절로 그의 편이 되어 응원하게 되는 이유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겁니다.

벼랑 끝에서 쥐었던 목숨 값으로 '세계적인 위대한 기업'을 꿈꾸는 오준호 대표. 그가 다져온 생존의 지혜와 비즈니스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Q1. 군 복무 시절 당한 큰 교통사고의 보험금을 초기 자본금으로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목숨이 위험했던 순간의 기억이 창업이라는 선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의경 시절이었는데, 외출 나왔다가 선임 오토바이 뒤에 타고 팔당댐으로 바람을 쐬러 가던 중이었어요. 불법 유턴하던 차와 정면충돌하면서 제가 반대편 차선으로 완전히 튕겨 날아갔습니다.

왕복 8차선이 넘는 큰 도로였는데, 정말 천운으로 반대편 차선이 빨간불이라 차들이 멈춰 서 있었어요. 만약 파란불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했을 겁니다. 고관절이 다 부러져서 두 달 동안 허리도 못 들고 침대에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 했죠.

병원에 누워 있으니 잡생각과 함께 제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살면서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두 번이나 있고, 큰 교통사고도 이번이 서너 번째였어요. 매번 그 찰나의 순간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거죠.

문득 어릴 때 문방구 앞 오락기가 떠올랐어요. 게임하다가 캐릭터가 죽어도 100원을 넣으면 '띵~' 하면서 새로 살아나잖아요. "나는 분명 내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죽은 건데, 신이 나도 모르게 100원짜리 코인을 대신 넣어줘서 다시 살아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통사고 후 병상에 누워있던 시절의 오준호 대표 (사진 : 인터뷰이 제공)

그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무서워졌어요. "만약 이번이 신이 넣어준 마지막 코인이면 어떡하지?" 만약 내가 80살, 90살까지 평범하게 직장 다니고 결혼해서 살다가 죽은 뒤, 다시 20대 초반의 이 병실로 타임 루프를 해서 돌아온 거라면 나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상상해 봤어요.

결론은 명확했어요. 남들이 말하는 대기업 가고, 좋은 대학 졸업장에 목매고, 안정적인 삶을 사는 건 제 인생에서 더 이상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거였죠. 어차피 덤으로 얻은 인생인데, 밑바닥에 가서 망해봤자 한국 땅에서 밥은 굶겠냐는 배짱이 생겼어요.

온전하게 내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내 삶의 이유를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 '사업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죠. 그렇게 받은 교통사고 보험금이자 목숨 값인 3,000만 원이 마야크루의 위대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Q2. 대학 중퇴를 결심하셨을 때 당시 가족들과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실 대학 2학년 때 자퇴를 결심하기까지, 제 안에서도 정말 피가 말리는 고민과 혼란이 가득했어요. 20대 초반의 나이에 남들이 다 정답이라고 말하는 트랙에서 내 발로 내린다는 게 생각만큼 대담하고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주변 친구들이나 세상의 시선은 대학 졸업장을 당연히 붙잡아야 할 '안정된 미래의 보증수표'처럼 여겼으니까요.

그 좋은 울타리를 내팽개치고 야생으로 나가겠다는 저를 보며 다들 "왜 그렇게 리스크가 큰 무모한 짓을 하냐", "나중에 후회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하면서 엄청나게 만류했고, 선뜻 이해하지 못하는 따가운 시선들을 보냈어요. "진짜 내가 틀린 선택을 하는 건가" 싶어 혼란스웠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죠.

창업 초기 고벤처포럼 고영하 회장과의 멘토링 현장 (사진 : 인터뷰이 제공)

하지만 가장 큰 벽이 될 줄 알았던 부모님의 반응은 의외로 완전히 달랐어요. 제 성격과 성향을 누구보다 오랫동안 곁에서 잘 알고 계셨던 부모님은, 제가 큰 사고를 겪고 난 뒤 깊은 고뇌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 점을 깊이 존중해 주셨어요.

부모님께서는 오히려 "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온전히 해야 하는 아이"라며 제 본질을 그대로 인정해 주셨고, 자퇴 결정에 대해 크게 반대하지 않으셨죠. 가장 가까운 가족이 따뜻한 신뢰를 건네준 덕분에, 저는 리스크에 대한 두려움을 지우고 야생으로 뛰어들 용기를 얻을 수 있었어요.

Q3. 초기 창업가들과 '광인회관'이라는 공동체에서 함께 살며 치열하게 고민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당시 그 연대의 경험이 오대표님의 초기 기업가 정신을 형성하는 데 구체적으로 어떤 '정서적·사업적 이정표'가 되었습니까?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우연히 카톡 한 통을 받게 되었는데, "우리 또래 창업가들끼리 한집에 모여 살면서 끈끈한 연대를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어요.

당시 각자의 전장에서 외롭게 싸우던 초보 창업가들에게는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정서적 안전망이 간절했기에, 그 카톡을 계기로 광인회관이라는 공동체에 합류해 5년 동안 함께 사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어요.

광인회관 공동체 생활 시절 (사진 : 인터뷰이 제공)

그렇게 모인 광인회관 식구들의 가장 큰 자산은 '서로를 절대 평가하지 않는 문화'였어요.

세상 밖에서는 늘 냉정한 잣대로 사업성을 따지고 재단하기 바빴지만, 이 공동체 안에서만큼은 제가 어떤 무모한 도전을 하겠다고 선언해도 "무조건 할 수 있다"며 정서적으로 100% 지지해 주었어요. 실패해도 돌아갈 정서적 고향이 있다는 끈끈한 연대감은, 외로운 창업의 길에서 멘탈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 준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죠.

터닝 포인트는 라이너의 김진우 대표님을 매일 옆에서 지켜보며 만들어졌어요. 진우 형이 매일같이 치열하게 사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사업은 저렇게 치열하게 해야 하는구나"를 몸으로 배웠고, 특히 진우 형이 4~5년 동안 끊임없이 던진 "너는 꿈이 너무 작다. 꿈을 더 키워야 한다"는 질문에 직면해야 했죠.

당시 국내 매출 성과에 만족하며 안주하려던 제 '자영업자 마인드'를 과감히 버리고, 훗날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으로 눈을 돌려 글로벌 마케팅 생태계를 잡겠다는 큰 꿈을 품게 된 결정적인 이정표가 되었어요.

Q4. 1세대 소셜 커머스의 '반값 할인'이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문제를 보고 창업하셨습니다. 당시 설계한 초기 모델은 어떻게 자영업자의 단발성 출혈 지출을 막고 '지속 가능한 재방문 구조'를 만들 수 있었나요?

첫 사업을 구체화할 때 가장 눈여겨본 게 바로 그 1세대 소셜 커머스들의 한계였어요. 당시에 쿠팡이나 티몬에서 반값 할인 쿠폰을 엄청나게 뿌렸잖아요.

당장 손님 끌어모으기엔 참 좋아 보였는데, 뜯어보니까 재방문율이 5%도 안 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더라고요. 손님들은 할인 혜택만 쏙 빼먹고 다신 안 오니까 사장님들 입장에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던 거죠. 돈은 돈대로 쓰고 남는 게 없는 지속 불가능한 구조였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고민하다가 판을 완전히 새로 짰어요. "이 손님이 꼭 다시 오게 만들자"가 아니라, "이 손님이 남긴 후기를 보고 다른 손님이 찾아오게 만들자"로 생각을 뒤집은 거죠.

내가 다시 안 오더라도 이 사람이 남긴 온라인 리뷰가 또 다른 신규 고객을 끊임없이 데려오는 선순환 구조를 설계한 거예요. 그러려면 아무한테나 할인쿠폰을 막 퍼주면 안 되니까, 온라인에서 영향력이 확실하게 검증된 인플루언서들만 콕 집어서 혜택을 주는 방식을 선택했어요.

특히 인플루언서의 영향력 크기에 맞춰서 할인 혜택을 다르게 주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사장님이 일방적으로 손해 보며 마케팅 비용을 쓰는 게 아니라, "사장님이 이만큼 베푸시면, 인플루언서가 그만큼 확실한 홍보 효과와 새 손님으로 갚아드립니다"라는 상생 모델을 만든 거죠.

이 구조 덕분에 사장님들의 무의미한 출혈 지출을 막으면서, 매장과 플랫폼이 함께 윈윈하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Q5. 초기 슈퍼멤버스 영업을 위해 하루에 음식점을 400곳씩 직접 돌며 문전 박대를 당하셨습니다. 이 무모해 보이는 '맨땅 헤딩'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무엇인가요?

당시 저희 팀은 저랑 운영이사님, 그리고 개발자 딱 세 명뿐이었어요. 앱을 만들어야 하는데 개발자가 완성하려면 최소 세 달은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당장 가진 돈도 없고 피가 마르는 상황에서, 그 세 달이라는 시간을 그냥 가만히 앉아서 보낼 수는 없었거든요. 서비스가 출시되자마자 바로 매장들이 들어와서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사장님들을 미리 확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아직 제품도 없고 마케팅 서비스도 없는 상태에서 무작정 전단지를 뽑아 길거리로 뛰어내렸어요. 그때 이사님과 둘이 상권에 가면 딱 이렇게 나눴어요. "이사님은 오른쪽 맡으시고, 저는 왼쪽 맡아서 돌고 저 골목 끝에서 봐요." 하고 건물 꼭대기부터 아래까지 샅샅이 훑어 내리는 일명 '계단 타기'로 무작정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오준호 대표와 운영이사가 전단지 배포 당시 (사진 : 인터뷰이 제공)

그렇게 세 달 동안 음식점만 한 2만 군데를 들어갔어요. 사장님이 계시면 설명해 드리고, 없으면 알바생한테 전달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가입하시면 나중에 한 달 무료로 해드리겠다고 제안을 건넸죠.

사실 2만 곳을 돌아서 겨우 20개 매장을 모았으니 전환율로 치면 0.1%밖에 안 돼요. 숫자만 보면 "이거 안 되는 비즈니스 아닌가" 싶겠지만, 저는 이 20개가 있으면 이제 시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영업 사장님들의 진짜 현실적인 고민을 깊게 학습할 수 있었어요.

사장님들은 손님을 모을 마케팅 채널이 거의 없고 블로그 마케팅이 사실상 유일하게 중요한 수단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바닥에 사기 치고 간판 바꾸는 어둠의 업체들이 워낙 많다 보니 불신이 엄청나게 깊으셨어요. 오죽하면 제 입에서 '블로그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바로 "나가라"고 하실 정도였으니까요. 사장님들의 그 깊은 불신을 마주했을 때가 처음에 참 힘들었죠.

그래서 고민 끝에 전략을 바꿨어요.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매장 홍보 서비스 만드는 대학생입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신기하게도 일단 얘기를 들어주시더라고요. "저희가 대학생인데 이런 매장 홍보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미리 가입하시면 한 달 무료로 드릴 테니 잠깐 얘기 좀 들어봐 주실 수 있냐"면서 사장님들의 마음을 열어갔던 거죠.

쥐뿔도 없는 3명이서 발로 뛰며 모은 그 소중한 20곳의 매장이 발판이 되어주었고,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시장의 진짜 니즈를 검증해 낸 덕분에 지금은 3,000개가 넘는 매장을 확보한 서비스로 성장할 수 있었어요.

Q6. 많은 스타트업들이 IR에 매달릴 때, 마야크루는 외부 투자 없이 매출로 생존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적 결정의 배경은 무엇인가요?

많은 분이 제가 무슨 대단한 전략이나 뚝심이 있어서 투자를 거부했다고 생각하시는데요, 사실 전혀 아닙니다. 초기에는 저희도 다른 스타트업처럼 투자 받고 싶어서 정말 간절하게 벤처캐피탈(VC)들을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당시 VC가 보기에 블로그 마케팅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었어요. 투자를 '안' 받은 게 아니라 시장에서 '못' 받았던 거예요.

그런데 비록 떠밀려서 한 선택이었지만, 투자를 안 받으니까 엄청난 반전이 있더라고요. 매 순간 남의 눈치 안 보고 칼같이 움직이는 '의사결정의 자유'를 얻은 거죠. 만약 지분 쪼개 가며 VC 돈을 받았으면 뭐 하나 바꿀 때마다 주주들 설득하느라 진을 다 뺐을 거예요.

하지만 저희는 "이제 미국 마케팅 시장 잡으러 가자" 하거나, 잘 성장하던 서비스를 하루아침에 엎어버리는 무모한 결정도 제 판단하에 정말 빠르게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 투자 받은 커머스 기업들이 시장이 변할 때마다 회수 압박에 시달리는 걸 보면서, 마야크루만의 끈질긴 유연성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진짜 엄청난 축복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돈 없이 버티느라 치러야 했던 기회비용도 뼈아플 정도로 현실적이었습니다.

자금이 넉넉했다면 확실한 데이터가 보였을 때 수십억 원씩 빡 태워서 시장을 통째로 집어삼키는 과감한 스케일업을 했을 텐데요, 늘 통장 잔고 안에서만 움직여야 하니 성장 타이밍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죠. 특히 코로나19가 끝나갈 무렵 진짜 위기가 왔을 때는 회사의 체력이 완전히 바닥나서, 벼랑 끝에 내몰렸던 적도 있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참 고생스러운 기회비용을 치렀지만, 위기를 버텨내면서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생력이랑 생존 본능을 뼈에 새기게 된 것 같아요.

만약 외부 자금에 의존하면서 겉멋만 들었던 스타트업이었다면 저희는 진작에 망했을 거예요. 하지만, 이 독자 노선을 걸으며 다져진 체력 덕분에 지금은 매년 20억, 40억, 50억씩 흑자를 내며 당당하게 성장하고 있고,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되었죠.

Q7. 코로나19로 소상공인 시장이 무너지던 극한의 위기가 있었습니다. 대표로서 가장 취약했던 그 순간,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사실 진짜 비극은 코로나 시기 자체보다 코로나가 끝나가던 2023년 초에 찾아왔어요. 당시에 저희 B2B 마케팅 서비스인 '슈퍼차트'가 막 성장 그래프를 그리니까, 3년 동안 억눌려 있던 보상심리 때문에 "지금 기회를 잡고 무조건 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이 멀었던 거죠. 기업 대상 B2B 마케팅은 대기업들이 예산을 짜는 1분기가 극비수기라는 걸 미처 모른 채 너무 공격적으로 인원을 뽑아버린 게 화근이었어요.

2023년 초가 되자 매출이 팍팍팍 떨어지며 바닥을 쳤고, 당장 다음 달 직원들 급여 줄 돈 5,000만 원이 펑크 나는 상황에 다다르게 됐죠. 회사의 체력도, 제 멘탈도 정말 툭 치면 쓰러질 정도로 완전히 바닥이 나 있었어요.

그때 포기할랑 말랑하던 제 정신을 붙잡아 준 건 역설적이게도 유튜브에서 매일 반복 재생해 보던 '일론 머스크 동기부여 영상'이었어요.

테슬라와 스페이스 X가 동시에 망할 위기에서 전 재산을 반반씩 넣으며 자식 같은 회사를 살리려고 고뇌하던 일론 머스크의 스토리가 문득 제 가슴에 콕 박히더라고요. "나는 부모로서 내 자식인 마야크루가 죽어갈 때 내 목숨 내놓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나?" 자문해 보니 아니더라고요.

그 각성의 순간부터 잡생각을 없애려고 제 자신을 지독한 루틴 속에 가두기 시작했어요. 노래는 만화 원피스의 '우리의 꿈' 딱 한 곡만 듣고, 영상도 일론 머스크 영상 그 10분짜리 하나만 무한 반복해서 틀어놓았죠. 그리고 매일 아침 내가 오늘 해야 할 일 1번부터 5번까지 적어두고, 그걸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에만 미친 듯이 몰입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텨냈어요.

그렇게 자식을 살려야 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눈이 뒤집혀서 온갖 대출을 알아봤는데요. 어머니가 제 힘든 사정을 들으시더니 "너 회사 힘들다는데 이거 살리는 데 보태 쓰라"며 선뜻 빌려주셨어요. 딱 다음 달 펑크 난 급여만큼의 금액이었죠.

하지만 어머니의 도움만으로는 부족했어요. 회사의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으니까요. 결국 살아남으려면 인원의 3분의 1 정도를 내보내야 딱 손익분기점이 맞는 상황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부끄러운 기억이지만, 직원 20명의 이름을 중요도 순으로 1번부터 20번까지 쭉 쓰고 선을 그어야 했어요. 그리고 대상이 된 친구들을 한 명씩 불러서 제 치부와 회사의 통장 잔액을 다 공개하며 솔직하게 얘기했어요. "우리 회사 상황이 이래서 이달 퇴직금까지는 딱 맞춰 줄 수 있지만, 이걸 넘어가면 지속이 불가능하다. 정말 너무 미안하다"고요.

그렇게 눈물로 고통스러운 선을 긋고 냉혹한 현실을 마주한 덕분에, 그다음 달인 2023년 5월부터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단단한 회사가 되었죠. 대표의 판단 착오로 겪은 지독한 트라우마였지만, 회사를 내 자식처럼 생각하며 책임져야 한다는 리더의 무게감을 뼈저리게 배운 값진 순간이었습니다.

Q8. 수많은 소비재 중 왜 'K-뷰티'가 미국 틱톡 생태계에서 가장 폭발적인 데이터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고 확신하셨나요?

우리 마야크루가 장기적으로 위대한 기업이 되려면 무조건 글로벌 무대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어요. 전 세계 글로벌 시총 100대 기업들을 보면, 대한민국은 삼성 딱 하나뿐이잖아요.

반면 프랑스는 5개 기업이 들어가 있는데, 그중 무려 4개 회사가 로레알이나 LVMH 같은 뷰티와 패션 회사입니다. 미국이라는 초엘리트들과 글로벌 시장에서 싸워 이기려면, 우리도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문화적 이점, 즉 '소비재'를 가지고 유리한 지형에서 싸워야 한다고 확신했죠.

그래서 2023년 하반기에 미국 마케팅 시장을 타깃으로 잡고 시장 조사를 샅샅이 돌려봤는데, 역시나 딱 하나 'K-뷰티' 브랜드들만 미국 시장에서 어마어마한 수치로 터지고 있더라고요.

사진 : 틱톡 medicube US Store 계정

과거에 '조선미녀' 같은 브랜드들이 미국 시장의 문을 열었다면, 이제는 아누아나 메디큐브 같은 브랜드들이 틱톡샵에서 단일 메가 히트 세트 하나로만 수십만 개씩 팔아치우며 시장의 판을 상상 이상으로 키우고 있었죠.

그 성공의 뒷단을 데이터로 깊게 파고 들어가 보니, 그 중심에는 '틱톡 마케팅'과 콘텐츠가 소비로 바로 이어지는 '디스커버리형 소비' 트렌드가 있었어요. 미국 소비자들이 틱톡 안에서 제돈 주고 사서 자발적으로 영상을 올리고 화제를 만들면서, 거대한 바이럴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거죠.

사실 화장품이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바르는 즉시 나타나는 비포&애프터나 독특한 제형의 매력을 숏폼 영상으로 직관적으로 보여주기에 가장 완벽한 비주얼 소비재잖아요. 이 제품의 특성과 플랫폼의 궁합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결과였어요.

마야크루 전 직원 미국 여행 (사진 : 인터뷰이 제공)

K-뷰티는 미국 틱톡이라는 거대한 플랫폼의 파도를 타고, 다른 어떤 소비재도 흉내 낼 수 없는 폭발적인 데이터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있었던 셈이죠. 숫자로 이 명확한 흐름을 딱 보고 나니까 "이건 마케팅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거대한 기회의 판이구나" 하는 확신이 섰어요.

마침 저희 마야크루가 지난 10년간 가장 잘해왔고 가장 자신 있는 영역이 바로 인플루언서 마케팅과 데이터 분석이었잖아요. 이렇게 확실한 시장이 눈앞에 열렸는데,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Q9. 고대 미디어학부 출신이신데, 뜻밖에도 회사에서 SQL(데이터 분석)을 가장 잘하고 데이터 크롤링 서버비로만 월 수천만 원씩 쓰실 정도로 '데이터 광인'이라고 들었습니다. 문과 출신의 대표님이 데이터에 이토록 집착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맞아요, 저 신방과 출신 문과생입니다. 심지어 학교는 2학년까지만 다니고 자퇴 후 창업을 해서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것도 별로 없어요. 하지만 마야크루를 창업하고 지난 10년간 서비스를 운영하면서, 비즈니스의 핵심 본질은 결국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을 어떻게 정량적인 수치와 알고리즘으로 평가할 것인가"의 싸움인 걸 알아냈어요.

그 알고리즘을 제가 밤새우며 직접 개발하고 만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데이터 분석에 눈을 뜨게 됐고, 지금도 저희 회사에서 SQL을 가장 잘 다루는 전문가가 바로 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가 K-뷰티 브랜드들의 미국 진출 마케팅을 도울 때도, 저는 제 직감이나 남들의 '카더라 통신'을 절대 믿지 않았어요. 대신 미국 틱톡 생태계의 K-뷰티 관련 데이터를 그냥 통째로 긁어모으기 시작했죠. 크롤링 서버비로만 한 달에 3,000만 원 넘게 썼으니까, 주변에선 다들 저보고 미쳤다고 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데이터를 6개월 동안 끈질기게 쌓고 재조립해 보니까, 남들이 절대 보지 못하는 시장의 '진짜 뼈대'가 보이더라고요.

아누아나 조선미녀, 코스알엑스처럼 미국에서 대성공한 K-뷰티 브랜드들의 해시태그 발행량 지표를 전수 조사해 봤는데요. 신기하게도 마케팅 지표가 제품만 협찬해 주는 '무가 시딩'에서 시작해,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필리에이트(판매 수수료 매칭) 마케팅'으로 급격하게 흐름이 전환되는지가 숫자로 아주 정교하게 찍혀 있었어요. 성공 공식의 타이밍을 데이터로 완벽하게 포착해 낸 거죠.

이걸 무기 삼아 고객사 대표님들을 만나니까 미팅 퀄리티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요즘 미국은 틱톡이 대세입니다"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는 일절 안 합니다.

대신 "현재 미국과 동남아의 콘텐츠 발행량 비중이 정확히 몇 대 몇이고, 어필리에이트 비중이 이 시점에 폭발했으니 지금 당장 이 마케팅을 하셔야 합니다"라고 숫자로 가감 없이 진단을 내려드리죠. 눈앞에 명확한 숫자가 찍히는데 신뢰하지 않을 대표님이 어디 있겠어요.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Q10. 이 치열한 데이터 분석 과정에서 발견하신 틱톡 샵 생태계만의 작동 원리와 '승자 독식'의 비밀은 무엇이었나요?

한 달에 서버비만 수천만 원씩 쏟아부으며 미국 틱톡의 모든 K-뷰티 데이터를 6개월간 통째로 크롤링해서 분석했더니 아주 흥미로운 규칙을 발견했어요. 틱톡 샵 생태계는 어필리에이트 영상을 무작정 많이 찍어내는 게 핵심이 아니더라고요.

여러 브랜드 데이터를 깊게 뜯어보니까, 영상 만 개를 뿌려도 실제로 매출을 내는 건 300개밖에 안 되고, 그중에서도 월 매출 10억을 찍는다 치면 7~8억은 단 '탑 10개'의 대박 영상 안에서 터지는 극단적인 승자 독식 구조였던 거죠.

일반 브랜드들이 직감으로 "남들 만 개 하니까 우리도 만 개 뿌리자" 할 때, 저희는 숫자를 보고 본질을 완전히 다르게 정의했어요. 만 개가 아니라 "잘 파는 영상 10개를 어떻게 한 땀 한 땀 확보할 것인가", "그걸 만들 줄 아는 크리에이터를 어떻게 포섭할 것인가"의 싸움으로 접근한 거죠.

틱톡 알고리즘 특성상 한 번 터진 구도의 UGC(사용자 제작 콘텐츠)는 장소나 연출만 살짝 비틀어 무한 복제해야 다시 터집니다. 저희는 그렇게 시딩으로 발굴한 대박 영상에 즉각 스파크 애즈(Spark Ads, 틱톡의 광고 부스팅 기능) 코드를 걸어 퍼포먼스 광고 예산을 밀어 넣는 부스팅 공식을 썼고, 이를 통해 CPA를 극적으로 낮추며 스케일업을 이뤄냈어요.

이 숫자에 기반한 판단이 실전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폭발력을 발휘했어요. 올리브영 PB 브랜드를 맡아서 대행을 시작했을 때 딱 3달 만에 월 매출 10억을 찍어버렸고요.

그다음 맡은 '라카'라는 브랜드는 시작한 지 고작 6주 만에 월 매출 3억을 만들었어요. 특히 라카는 시딩을 뿌려서 영상들이 올라올 때, 딱 10번째로 올라온 어필리에이트 영상 하나가 하루 매출 200만 원을 돌파하는 걸 보고 숫자로 신호탄을 바로 감지해 냈죠. 이런 압도적인 레코드는 현재 국내 대행 업계에 매우 드문 수준이거든요.

저희 마야크루가 지난 10년간 네이버 블로거들의 영향력을 정량화하는 알고리즘을 직접 개발해 온, 데이터에 뼛속까지 진심인 팀이잖아요. 철저하게 숫자에 기반해 생태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니까 글로벌 에이전시 판에서도 우리 능력이 통한다는 걸 완벽하게 증명해 낼 수 있었습니다.

Q11. 플랫폼의 효능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매운 김' 같은 자사 브랜드를 런칭해 카디비를 통한 노출까지 성공시키셨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나요?

새벽에 갑자기 지인들한테서 메시지랑 전화가 미친 듯이 오더라고요. "야, 지금 난리 났다! 카디비가 너희가 만든 매운 김을 직접 사서 먹어보고 평가하는 영상을 올렸다!" 하면서요.

처음에는 그 얘기를 듣고도 이게 진짜 도저히 실감이 안 나고 믿기지가 않는 거예요. 밤새 심장이 벌렁거리는 상태로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아침이 되자마자 회사로 달려가 틱톡 샵 어드민 시스템을 열어봤죠.

카디비의 자발적 바이럴로 화제를 모은 제품 시식 영상 (사진 : 인터뷰이 제공)

실제 구매 내역을 하나하나 샅샅이 추적해 보니까, 진짜로 누가 돈 주고 광고를 태운 게 아니라 카디비가 저희 제품을 제돈 제산으로 직접 구매해서 자기 틱톡 계정에 자발적으로 올린 거였더라고요.

사실 저희가 이 김 브랜드를 만든 건, 대행사랍시고 입으로만 잘한다고 떠드는 게 아니라 진짜 실력을 숫자로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였어요. 게다가 저희가 가진 데이터 가설들을 마음껏 던져볼 '우리만의 실험실'이 너무나 간절하기도 했고요. 틱톡 어필리에이트 영상은 어느 타이밍에 광고비를 증액해야 효율이 극대화되는지, 어떤 비주얼 소재가 알고리즘을 타는지 남의 브랜드 계정으로 돈 태워 가며 무책임하게 테스트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게 브랜드를 내놓고 미친 사람처럼 세분화된 데이터 가설을 검증하면서 틱톡 시딩을 전개했는데, 론칭한 지 채 한 달도 안 돼서 그런 영화 같은 일이 터진 거죠.

뷰티든 식품이든 자발적인 콘텐츠 발행량을 뚫어내는 틱톡 알고리즘의 본질을 정확히 찌르면, 글로벌 탑스타의 지갑까지 열게 만들고 폭발적인 데이터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온몸으로 증명해 낸 순간이었어요.

Q12. 최근 수많은 뷰티 브랜드들이 '미국 틱톡 샵' 진출을 꿈꾸며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께서는 "자금 체력이 안 되면 틱톡 샵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고 강하게 만류하시는데, 그 숨겨진 냉혹한 본질은 무엇인가요?

앞서 말씀드린 압도적인 대행 레코드와 카디비 바이럴 사례가 시장에 알려지다 보니, 요즘 저희 마야크루에 틱톡 샵 대행을 맡기겠다는 의뢰가 들어옵니다. 하지만 저는 자금 체력이 안 되는 브랜드라면 제발 틱톡 샵은 쳐다보지도 마시라고 아주 직설적으로 뜯어말려요.

왜냐하면 틱톡 샵의 본질은 철저한 자본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생태계는 극소수의 탑 티어 크리에이터들이 매출의 대부분을 장악하는 구조예요. 그런데 물건을 기가 막히게 잘 파는 상위 10%의 크리에이터들은 이미 자본력이 탄탄한 거대 뷰티 브랜드들이 뒤에서 자금을 대며 꽉 쥐고 있어요.

인플루언서들을 전용기에 태워 섬으로 초대한 Tarte 브랜드 트립 (사진 : 인터뷰이 제공)

실제로 미국 틱톡샵 1위권인 'Tarte'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크리에이터들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보상과 포상을 제공하며 철저하게 관리를 해요. 이들을 우리 브랜드로 데려오려면 초반에 로아스가 깨지더라도 한 달에 수억 원씩 광고비를 태우며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야만 합니다. 틱톡의 AI 알고리즘은 철저하게 돈을 많이 쓰고 반응이 오는 광고주의 영상을 밀어주니까요.

초기 진입 장벽도 만만치 않아요. 틱톡샵 오픈 초기에 신뢰도를 얻으려면 리뷰 자산이 필수적인데, 영리한 브랜드들은 'Judge.me' 같은 서드파티 앱을 활용해 아마존이나 자사몰의 기존 리뷰를 합법적으로 연동해 오며 진입해요. 이런 테크니컬한 빌드업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먼저 갖춰져야 해요.

또 하나의 진짜 무서운 복병은 바로 '재고'예요. 운이 좋아서 영상 하나가 알고리즘을 타고 대박이 나면, 다음 달 매출이 2배, 3배가 아니라 수십 배씩 폭발해요.

이때 미국 현지 창고에 그 물량을 즉시 소화할 수 있는 여유 재고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요? 틱톡 알고리즘은 페널티를 부여하고 차갑게 우리 브랜드를 버려요. "어? 반응 오네? 이제 한국 공장 돌려서 배에 실어 보내자" 하는 순간 최소 두 달이 걸리는데, 그럼 이미 노출도가 바닥으로 떨어져 게임은 끝난 거죠.

결국 폭발하는 매출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력이 필수적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저는 최소 10억 원 이상의 여유 자금과 완벽한 재고 플랜을 미리 묶어둘 체력이 없다면, 틱톡 샵 대신 차라리 아마존 광고를 통해 게릴라전으로 틈새시장을 노리는 게 훨씬 현명하고 안전한 생존 전략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13. 스스로를 만화 원피스의 '루피'에 비유하며 "방향을 모를 때는 동료들과 함께 고민한다"는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하십니다. 하지만 때로는 리더의 독단적이고 고독한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함께 고민하는 선장'과 '방향을 책임져야 하는 외로운 결정권자' 사이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하고 계십니까?

투자 유치 거부나 구조조정처럼 회사의 명운이 걸린 벼랑 끝에 서면, 결국 마지막 도장은 대표인 제가 혼자 찍어야 하니 외롭고 고독한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 선장과 결정권자 사이의 딜레마를 '결정의 순간'과 '과정의 순간'을 철저하게 분리하면서 풀어가고 있어요.

평소에 배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모를 때는 진짜 원피스의 루피처럼 동료들 앞에 제 취약함을 다 드러내고 "나 이거 진짜 모르겠다, 같이 고민해 주라" 하면서 다 같이 머리를 맞대요.

대표라고 해서 무조건 정답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저희가 코로나 위기 때 잔고를 다 까발리고 구조조정이라는 아픈 선을 그어야 했을 때도, 숨바꼭질하듯 숨기는 게 아니라 날것의 진심을 공유했기 때문에 팀원들이 배신감을 느끼지 않고 상황을 같이 책임지려 힘을 모아준 거였고요.

하지만 그렇게 동료들과 치열하게 데이터 가설을 던지고 논의를 마친 뒤, "자, 이제 이 방향으로 돛을 올리자" 하고 리스크를 짊어지는 최종 결단의 순간에는 철저하게 외로운 결정권자가 돼요.

미국 틱톡 시장이라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판에 서버비 수천만 원씩 쓰면서 들이받기로 결심했을 때처럼, 실패했을 때의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제가 진다는 각오로 독단적으로 깃발을 꽂는 거죠. 동료들이 제 결정을 믿고 따라올 수 있게 배를 책임지는 게 제 몫이니까요.

결국 제 리더십의 동력은 완벽한 척 폼 잡는 게 아니라, 고민할 때는 지독하게 수평적으로 동료들의 지혜를 빌리고, 책임을 질 때는 지독하게 수직적으로 혼자 짊어지는 데 있어요. 그렇게 평소에 쌓아둔 끈끈한 소통과 신뢰가 있으니까, 제가 고독하게 내린 무모한 결정 앞에서도 팀원들이 흔들리지 않고 한배를 탄 진짜 동료로서 거친 바도를 같이 넘어가 주는 거라고 믿어요.

Q14. 마야크루는 신사업을 시도했다가도 안 되겠다 싶으면 무서운 속도로 칼같이 접는 조직처럼 느껴집니다. 구성원들이 불안해할 수도 있는 이 과감한 피벗의 리더십은 어떻게 작동하나요?

철저하게 대표인 제 성향 때문인데요. 실제로 저희는 진짜 빠르게 접습니다. 미국 인플루언서를 1만 4천 명까지 모았던 무가 시딩 플랫폼도 시장이 어필리에이트로 바뀌는 걸 보자마자 서비스를 통째로 죽였고요, 아마존 대행 사업도 6개월 동안 준비하다가 AI가 입찰가 조정을 너무 잘하는 걸 보고 장기적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해서 칼같이 접어버렸죠.

신사업을 접자고 할 때 내부에서 "조금만 더 해보자"는 목소리나 반발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안 될 것 같은 비즈니스를 붙잡고 지지부진하게 시간과 비용을 끄는 게 조직의 체력과 멘탈을 가장 갉아먹는 독이거든요.

사실 대표인 저라고 100% 확신이 있어서 결정하는 건 아닙니다. 제 판단도 항상 6 대 4나 7 대 3의 확률 게임이죠. 다만 6의 가능성이 보이면 후회 없이 키를 꺾고 그 책임은 오롯이 제가 집니다. 대신 방향을 정하면 왜 이런 숫자와 기준 때문에 접게 되었는지 직원들에게 제 치부까지 정말 투명하게 다 공유해요.

마야크루 구성원들 야간자율(?) 스터디 (사진 : 인터뷰이 제공)

심지어 저는 직원들에게 대놓고 이런 말도 합니다. "나는 우리 회사의 메인 캐시카우인 슈퍼멤버스나 틱톡 대행이 5년 뒤에도 존재할지 솔직히 확신이 없다. 네이버나 틱톡 자체가 다른 AI 에이전시나 플랫폼으로 대체돼서 사라질 수도 있는 게 이 바닥이니까"라고요. 대표가 이런 말을 하니 직원들은 순간 불안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곧바로 이어서 반드시 이 이야기를 해줍니다. "다만 플랫폼은 사라져도, 5년 뒤, 10년 뒤 내가 죽을 때까지 사업을 하고 있을 거라는 사실과 우리 마야크루 팀의 '문제를 해결하는 펀더멘탈'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고요.

저는 본인의 역할을 '디자이너', '콘텐츠 마케터' 같은 특정 직무로 좁게 정의하는 사람보다, "지금 우리 회사에 필요한 게 뭐지? 내가 뭘 해야 임팩트를 내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인재를 사랑합니다.

다행히 저희 팀원들은 세일즈, PO, 마케팅을 전부 다 경험해 본 엄청난 서바이벌 능력을 갖추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방향을 급격하게 틀어도 배가 뒤집히지 않고, 오히려 더 큰 파도를 찾아 빠르게 전진할 수 있는 단단한 조직이 될 수 있었습니다.

Q15. 오대표님이 동료들과 함께 이 긴 항해 끝에 발견하고 싶은 마야크루만의 궁극적인 '원피스'는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입니까?

제가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타는 그런 물질적인 것에는 정말 관심이 없어요. 지금도 집도 없고 차도 없지만 너무 행복하게 잘 살고 있거든요. 제가 이 험난한 사업을 계속 이어 나가는 진짜 원동력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제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있습니다.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태자면, 제가 크리스천인데요. 기독교 세계관에서 좋은 삶이란 신이 저에게 준 역량, 즉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지 않고 최대한으로 가꾸고 키워내는 것이라고 믿어요.

성경을 보면 달란트를 그냥 땅에 묻어둔 종은 벌을 받았고, 그걸 열심히 키워낸 종은 상을 받잖아요. 저 역시 제 그릇의 크기를 미리 한정 짓지 않고, 제가 가진 역량을 끝까지 키워서 세상에 꼭 증명해 보고 싶습니다.

마야크루 (사진 : 인터뷰이 제공)

앞서 말씀드렸던 제 뿌리, '광인회관' 시절에 라이너의 진우형이 저한테 매일 던졌던 질문이 있어요. "준호야, 너는 꿈이 왜 그렇게 작냐"라는 말이었죠. 그때는 그 말이 잘 이해가 안 갔는데, 어느 순간 문득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꿈의 크기에 굳이 현실의 제약을 둘 필요가 없다는걸요.

어차피 국내에서 상장사를 만드나, 미국 나스닥에 가나, 글로벌 탑 100 기업을 만드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건 다 매한가지잖아요. 그렇다면 기왕 베팅하는 거 가장 크게 걸어야죠.

그래서 제가 동료들과 이 항해 끝에 가닿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는, 삼성처럼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기업, 나아가 세계적인 '위대한 기업'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저에게 꿈이란 '비현실적이고 난이도가 너무 높아서 미친 듯이 몰입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 동시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고 설레는 것'의 교집합입니다. 상상만 해도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이 거대한 꿈을 우리 멋진 동료들과 함께 끝까지 키워내서 세상에 멋지게 증명해 보이는 것, 그것이 마야크루가 찾고 싶은 진짜 원피스입니다.

※ 오늘의 큐터뷰는 조인후 작가님이 작성하고, 큐레터가 편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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