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다를까?
작성자 큐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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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왜 이렇게 다를까?
🍀 마케터를 위한 뉴스레터, 큐레터의 02월 12일 아티클이에요!
중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전업자녀’라는 뉴스 기사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대학원을 마친 자녀가 직장을 구하지 않고 집을 지키며 집안일, 반려견 산책, 식사 준비로 하루를 채우기도 하고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부산에 내려가 부모집에 살며 부모의 출퇴근을 챙기고 청소, 빨래 병원 예약 등을 도맡아 하는 청년들을 전업자녀라 부릅니다.
전업자녀는 직장이 없는 자녀가 집안일을 전담하고 부모에게 용돈이나 월급을 받는 생활방식을 뜻하는 표현인데요. 2023년 중국의 극심한 청년 실업난 속에서 처음 등장한 신조어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 말은 자조와 공감을 넘어, 이제는 세대 간의 미묘한 갈등과 불안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죠.
전업자녀라는 단어가 빠르게 확산된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가사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논리 때문입니다. 그들은 "내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백수가 아니다. 나는 분명히 집 안에서 가족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현상을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라기보다 청년 실업과 고용 부진의 비용이 가족 내부로 이전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까워요.

실제로 한국의 청년 고용 지표는 이 현상이 개인의 선택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11월 기준 20대 '쉬었음' 인구는 약 40만 명, 30대는 약 31만 명으로 집계됐어요. 특히 30대 쉬었음 인구는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20~30대 쉬었음 인구를 합치면 70만 명을 훌쩍 넘어서며, 이는 같은 시점의 취업 준비자나 공식 실업자 수보다도 많습니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청년층 쉬었음 인구 가운데 자발적 요인은 약 28%에 불과하고, 나머지 72%는 비자발적 요인이 차지합니다. 다시 말해, 전업자녀 현상은 "일하기 싫은 청년"의 증가라기보다, 원하는 수준의 일자리로 진입하지 못한 결과가 가족 내부에서 해소되고 있는 구조적 현상에 가깝죠.
집으로 후퇴하는 청년들, 그리고 은퇴를 미루는 부모들
전업자녀 현상은 한국만의 특수한 현상이 아닙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이 현상을 개인의 태도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결과로 분석하고 있어요. 중국 학계 연구에 따르면, 전업자녀는 치열한 취업 경쟁과 높은 주거비, 소득이 없어도 일정 수준의 삶의 질을 유지하려는 욕구, 그리고 부모의 강한 보호와 개입이 맞물리며 등장한 현상으로 설명돼요.
일본의 사례는 한 걸음 더 나아간 경고에 가깝습니다. 일본 사회는 이를 단순한 청년 문제로 보지 않고 ‘8050 문제’, 즉 80대 부모가 50대 자녀를 부양하는 구조로까지 확장해 논의하고 있어요. 초기에는 자녀가 집에 머무는 것이 일시적인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시간이 흐르며 부모의 연금과 저축에 자녀의 생계가 얹히는 구조가 고착화된 겁니다.
글로벌 지표 역시 이 흐름이 예외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전 세계 청년의 약 20%는 교육·고용·훈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에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부 국가의 실패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청년층이 노동시장 안으로 흡수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인 거죠.
문제는 이 ‘공백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있느냐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 질문에 아직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안전망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그 부담은 자연스럽게 가족으로, 더 정확히는 은퇴를 미루고 있는 부모 세대의 노동과 자산으로 이전되고 있습니다.

전업자녀가 성립하려면 부모는 여전히 돈을 벌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많은 부모들은 정년 이후에도 어쩔 수 없이 계속 일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고령층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요. 고령층이 일하는 건 활동적인 노년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로 볼 수 있겠지만 현실에는 자녀 세대의 독립 지연을 떠받치는 현실이 겹쳐 있음을 시사합니다.
‘가사 노동’이라는 명분, 그 이면의 경제학
전업자녀를 옹호하는 논리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말은 "노동의 형태가 바뀌었다"는 주장입니다. 병원 예약, 장보기, 택배 관리, 반려동물 돌봄은 분명 가정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 노동이라는 거죠. 물론 이 점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봐야 할 질문이 있어요.
"자녀가 받는 월급의 원천은 어디인가요?"
전업자녀가 수행하는 가사 노동은 시장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습니다. 그 대가는 부모가 현재 벌고 있거나, 혹은 노후를 위해 축적해 둔 자산에서 나옵니다. 즉, 전업자녀의 노동은 부모의 노동이 지속돼야만 가능한 종속적 구조 위에 서 있습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에만 있는 것보다는 집안일을 돕는 편이 낫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의 선택일 가능성이 큽니다. 자녀의 경제적 자립이 유예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부모의 은퇴 역시 함께 유예되기 때문이죠.
디지털 플랫폼은 이 위태로운 구조를 때로는 낭만적으로 포장합니다. 유튜브 속 전업자녀 브이로그는 정갈한 식탁과 깔끔한 집안을 보여주며 "이것도 의미 있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화면 바깥에는 매일 출근하며 그 식재료 값을 벌어오는 부모의 시간이 존재합니다. 전업자녀는 어쩌면 도피라기보다, 사회가 감당하지 못한 비용을 가족에게 전가한 결과로 만들어진 가장 조용한 생존 전략일지도 모릅니다.

마케터의 시선
전업자녀는 '소비자'가 아니라 '전환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 지점에서 마케터는 전업자녀를 단순히 '시간이 많은 새로운 소비자'로 정의해서는 안 됩니다. 이들은 가정 내 구매와 운영을 담당하고 있지만, 경제적 주도권은 여전히 부모에게 종속돼 있는 불안정한 그룹입니다.
따라서 이 시장을 바라보는 핵심 질문은 "무엇을 팔 것인가"가 아니라 "이 구조를 어떻게 전환시킬 것인가"입니다. 전업자녀와 그 부모 세대를 겨냥한 진짜 기회는, 이 불안한 공생 상태를 지속시키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모의 자산과 노후를 잠식하지 않으면서 자녀가 다음 단계로 이동할 수 있게 돕는 설계에 있습니다.
전업자녀 기간 동안 수행한 가사·돌봄·생활 관리 역량을 외부 노동시장과 연결해 주는 매칭 구조, 소액이라도 자녀가 스스로 현금 흐름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금융·플랫폼 서비스, 부모와 자녀 간 역할과 기간을 명확히 설정하는 계약형 모델이 더 필요한 이유입니다.
전업자녀 현상을 무조건적인 효도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포장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그것은 청년의 가능성을 가두고, 부모의 노후를 잠식하는 달콤한 유예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업자녀는 트렌드가 아니라 경고에 가깝습니다. 우리 사회가 감당하지 못한 불확실성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얼마나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입니다.
* 이 글의 원고는 아샤그룹 이은영 대표님이 제공해 주셨으며, 큐레터가 편집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