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싶은 당신에게
작성자 큐레터
큐레터
2026년, 조금이라도 성장하고 싶은 당신에게
🍀 마케터를 위한 뉴스레터, 큐레터의 12월 29일 아티클이에요!
질문하는 것이 직업인 제가, 오늘은 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려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수십 명의 창업가와 투자자를 만나며 그들의 진심을 길어 올렸지만, 정작 제 마음 깊은 곳의 소리에는 얼마나 귀를 기울였는지 문득 궁금해졌거든요.
제 커리어는 매일유업과 네슬레 코리아 같은 안온한 울타리부터, 상장의 환희와 폐업의 쓰라림을 모두 겪은 스타트업의 야생까지 극단을 오갔습니다. 누군가는 정교한 전략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매 순간 벽에 부딪히고 넘어지며 길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단 한 번도 정점에 머물러 본 적이 없습니다. 시스템이 완성되고 안정 궤도에 진입하는 순간, 어김없이 다음 전장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동안 제가 기록해온 인터뷰들 역시 화려한 영웅담이 아니었습니다. 자금을 구하러 다닐 때의 비참함이나 동료가 떠날 때의 상실감처럼, 창업가들이 현장에서 온몸으로 겪어냈던 그 ‘날것의 절박함’을 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려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저 또한 그들과 같은 길 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왔으니까요.
그래서 오늘 이 인터뷰는 대단한 성취를 뽐내기 위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은 본래 예측할 수 없는 것이고, 그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제 믿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충분히 안정적인 이 시점에, 왜 저는 또다시 익숙함을 내려놓으려 하는지... 그 선택의 이유를 솔직하게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전쟁이 있다(Everyone fights their own battles)"는 말이 있습니다. 포장된 마케터나 작가 조인후가 아닌, 삶이 주는 불확실성을 기꺼이 껴안고 나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답해 보려 합니다. 저의 이 서툰 걸음이, 저마다의 전장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공감이 되길 바랍니다.
Q. 재무에서 마케팅으로의 직군 전환은 보수적인 제조업 구조상 매우 드문 일입니다. 그 불가능해 보이던 장벽을 깨뜨린 결정적인 계기와 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네슬레 재무팀에서 마케팅으로 자리를 옮긴 건, 거창한 야망보다는 ‘모호함’에 대한 생리적인 거부감에서 시작된 일이었어요.
발단은 우연히 엿듣게 된 광고 미팅이었어요. 브랜드 담당자가 대행사에 “조금 더 엣지 있게 부탁드려요”라고 주문하더군요. 그 미팅 후 대행사 직원에게 그 뜻을 물었더니 “그냥 알아서 잘 해오라는 소리죠”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실소가 터지면서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마케팅이라는 화려한 무대 뒤에 논리의 결핍이 존재한다는 걸 간파한 순간이었죠.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한 언어로 정의하고, 상대가 즉각 움직일 수 있도록 목표를 구체화해 전달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다고 확신했어요.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어요. 인사팀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죠. 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사례가 없다면 제가 첫 번째 사례가 되면 그뿐이고, 길이 없다면 직접 걸어가서 길을 만들면 된다고 믿었으니까요.
마침내 전사 프로젝트 발표 현장에서 기회가 왔고, 제 발표를 흥미롭게 본 마케팅 임원의 제안으로 재무와 마케팅을 병행하는 특별한 커리어가 시작됐습니다. 오전에는 자금을 관리하고 오후에는 신제품 론칭에 몰입하는 극한의 일정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저는 독보적인 ‘입체적 시각’을 갖게 됐어요. 마케팅이 크리에이티브에 집중할 때, 저는 그 이면에 흐르는 자원의 효율성과 수익 구조를 함께 읽어낸 거죠.
덕분에 유관 부서와 협업할 때도 그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미션을 구조화해 전달할 수 있었어요. 수치를 넘어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선명한 설득력을 갖추니, 조직도 비로소 저를 마케터로 바라보기 시작하더라고요.
이 치열한 전환을 통해 깨달은 건, 삶에 흩어진 그 어떤 경험도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무미건조해 보였던 재무의 시간이 마케팅 현장에서 상대를 압도하는 날카로운 필살기가 될 줄은 저조차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과거의 점들은 결국 연결되기 마련이죠. 중요한 건 어디로 향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거쳐온 시간의 조각들을 어떻게 나만의 독창적인 서사로 엮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에요.

Q. 네슬레에서 스위스 본사는 물론 다양한 해외 법인과 협업하며 신제품 출시를 관리하셨는데, 글로벌 조직에서 일하면서 어떤 걸 배우셨나요?
글로벌 본사와의 협업에서 제가 배운 건 단순합니다. "압도적인 부지런함과 1%의 날카로움", 그게 전부였어요.
많은 한국인이 글로벌 무대에서 국가대표라도 된 양 조심스럽게 행동하곤 하죠. 예의를 차리느라 정작 해야 할 날카로운 질문들을 삼키는데, 저는 그런 낭만적인 태도에 기댈 여유가 없었어요. 사실 이런 저의 '지독한 집요함'은 재무팀 시절, 아무도 받지 못해 포기했던 해외 미수금을 회수하며 이미 증명된 바 있었거든요.
당시 합작법인이 청산되면서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해진 ‘버려진 채권’을 찾아오겠다고 손을 들었을 때, 동료들은 저를 측은하게 바라봤어요.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협력사 유럽 본사의 담당자부터 CFO(최고재무책임자)까지, 말 그대로 의사결정의 계통을 타고 올라가며 그들을 흔들었습니다.
“당신의 회신이 없다면, 다음은 당신의 상사와 직접 논의하겠습니다.”
정중하지만 서늘한 경고를 던지며, 목표를 놓치지 않는 포식자처럼 그들의 결단을 압박했죠. 마침내 계좌에 외화가 입금되던 날, 저는 뼈저리게 확신했어요. 비즈니스의 세계에서는 막연히 ‘착한 사람’보다, 어떤 난관 속에서도 끝내 ‘결과를 증명하는 사람’이 훨씬 강력하다는 사실을요.
그 집요함은 마케팅으로 전환한 후, 글로벌 신제품 출시를 관리할 때도 제 핵심 역량이 되었어요. 해외 담당자가 자료를 미루면 저는 기꺼이 다시 한번 ‘피곤한 파트너’가 되기로 했죠. 시차를 이용해 그들이 출근하자마자 제 메일을 보게 만들었고, 해외 담당자보다 제품 성분을 더 완벽히 꿰뚫으며 정보로 상대를 압도하려고 했죠.
결과적으로 제품은 일정에 맞춰 무사히 상륙했고, 본사로부터 "신뢰할 수 있는(Reliable) 파트너"라는 피드백을 받았어요. 괴테는 "친절함은 사람을 묶어주는 금사슬이다"라고 말했지만, 비즈니스에서의 그 사슬은 '성공'이라는 결과가 뒷받침될 때만 가치를 가진다고 봐요.
국제무대에서 '예의 바른 동양인'으로 남는 건 실익이 없어요. 차라리 '함께 일하기는 피곤해도 반드시 끝을 내는 동료'가 되는 게 훨씬 낫죠. 제가 부지런했던 건 단순히 성격이 좋아서가 아니라, 성공이 절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절실함이 빚어낸 집요함만이 글로벌 무대에서 유효한 언어였어요.

Q. 2017년 InGenius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서 수상하셨는데, 어떤 혁신 아이디어를 제안하셨고 어떻게 실행으로 옮기셨나요?
사내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인 ‘InGenius’에 참여했을 땐, 정말이지 제 아이디어 하나로 시장을 바꿀 수 있을 거라 믿었어요.
제가 제안한 건 브랜드 콘텐츠를 게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모델이었어요. 캐주얼 게임의 서사에 브랜드 스토리를 입히고, 유저가 게임에서 얻은 포인트를 오프라인 마트에서 실물 제품으로 교환하는 구조였죠. 지금이야 익숙한 P2E(Play to Earn)의 초기 모델이었지만, 당시로선 꽤 파격적인 발상이었어요.
하지만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려 하자 상사의 반응은 냉담했어요. “그럴 시간 있으면 집에 가서 쉬라”는 핀잔을 들었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죠. 퇴근 후 직접 게임 회사를 찾아가 기획안을 제안했고, 시스템 연동을 위해 이마트 담당자를 설득했어요. 저의 절박함이 통했는지, 게임 회사에서는 계약서도 쓰기 전인데 선제적으로 데모 영상을 제작해 줄 정도로 열정적으로 화답해 주더군요.
최종 프레젠테이션 날, 다른 팀들이 화려한 PPT 슬라이드로 장밋빛 미래를 읊을 때 저는 실제 구동되는 데모 영상을 틀었어요. 심사위원들은 경탄했죠. “이건 예산만 있으면 당장 내일이라도 론칭할 수 있잖아?” 결과는 압도적인 우승이었어요.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짧았어요. 실제 실행 단계에서 예산을 집행하려던 찰나, 해당 분기의 실적 부진으로 예산 동결이라는 통보를 받았거든요. 몇 달간 게임사와 이마트를 오가며 일궈낸 결과물이, 거대 조직의 경직된 예산 사이클 하나에 가로막혀 허무하게 무너지는 걸 지켜봐야 했죠.
그 순간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글로벌 기업은 안정적이지만 그만큼 무겁고 느리다는 사실을요. 아무리 날카로운 혁신이라도 타이밍이라는 파도를 타지 못하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말이죠. 저는 더 빠르게, 더 주도적으로 제 아이디어를 세상에 내놓고 싶었습니다.
주변에선 "왜 그 좋은 직장을 떠나느냐"며 말렸지만, 저는 확신했어요. 혁신은 아이디어 자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즉시 실행할 수 있는 '환경'에서 완성된다는 것을요. 저는 네슬레라는 견고한 성벽 안에 머무는 대신, 성벽 밖 스타트업이라는 거친 벌판으로 나가는 길을 택했어요. 그 무모했던 확신이 지금의 저를 만든 가장 용감한 결정이었다고 할 수 있죠.
Q. 중고나라 만우절 캠페인이 JTBC, SBS 등 전국 언론에 보도되며 1,680만 회원의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이 바이럴 캠페인의 기획부터 실행까지 전 과정을 상세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사실 이 캠페인의 시작은 엉망에 가까웠어요. 만우절을 불과 사흘 앞두고 등 떠밀리듯 시작된 프로젝트였으니까요. 처음엔 타사의 성공 사례를 본떠 "우리가 황당한 가짜 매물을 직접 올려보자"고 제안했지만, 곧바로 "중고나라답지 않다"는 냉담한 피드백이 돌아왔어요.
그 순간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어요. 중고나라의 가장 아픈 손가락은 언제나 사기성 '허위 매물'이었죠. 회사로선 금기어였지만, 대중들은 그 황당한 사기 글들을 일종의 ‘놀이’나 ‘밈(Meme)’으로 소비하고 있다는 이중적 시선을 포착했어요. 그래서 다시 제안했어요.
“금지하지 말고, 딱 하루만 판을 깔아주죠. 이용자들이 직접 세상에서 가장 재치 있는 허위 매물을 올릴 수 있도록요.”
그렇게 토요일에 긴급 소집되어 탄생한 것이 바로 '전국이색매물자랑'이었습니다. 디자인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어 마케팅 팀원이 직접 포토샵을 잡았지만, 오히려 그 어설픈 감각이 ‘광고 같지 않은 날것의 재미’를 갈망하는 커뮤니티의 정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어요.
만우절 당일,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친필 사인부터 분당의 초대형 까치 로봇, 그리고 압권이었던 ‘미개봉 박혁거세 알’까지... 이용자들의 상상력은 제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어요. 저녁이 되자 기자들의 문의가 쏟아졌고, 밤 9시에는 JTBC와 SBS 뉴스에 중고나라의 이름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죠.

더 놀라운 건 비용이었어요. 투입된 자산이라곤 주말에 출근한 인력 두 명과 경품비 50만 원이 전부였거든요. 수억 원대의 TV 광고로도 도달하기 힘든 매스컴의 중심에 단돈 50만 원으로 입성한 셈이에요.
이 캠페인이 남긴 통찰은 명확해요. 가장 강력한 마케팅은 대상의 본질과 대중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이에요. 숨기고 싶던 약점을 드러내 유저의 언어로 변주했을 때,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니까요.
미국의 종교학자,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당신이 들어가기 두려워하는 동굴 속에 당신이 찾는 보물이 있다"고 말했어요. 중고나라에게 허위 매물은 기피하고 싶은 동굴이었지만,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비로소 1,680만 회원의 열광이라는 보물을 만날 수 있었던 거죠.
이 성공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유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빚어낸 필연이었다고 믿어요.
Q.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제가 본격적으로 펜을 든 계기는 거창한 야심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에 남은 지독한 ‘아쉬움’ 때문이었어요.
중고나라에서 신사업을 기획하던 시절, 저는 매일같이 전 세계의 혁신 사례를 탐닉했습니다. 미국의 플랫폼, 중국의 커머스, 일본의 구독 서비스까지... 며칠 밤을 새워 리서치하고 분석해 올린 기획안은 정작 회의실에서 10분 만에 소모되곤 했죠. “좋네요, 검토합시다.” 그 짧은 한마디와 함께 제가 발견한 빛나는 인사이트들이 허공으로 흩어질 때마다 가슴이 아릿할 정도로 아쉬웠어요.
그 아쉬움을 달래려 발표 후 먼지 쌓여가던 자료들을 정리해 브런치와 티스토리에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참 묘한 경험을 했어요. 누군가의 서랍 속에서 조용히 잊힐 뻔한 정보들에 독자들이 뜨겁게 반응하기 시작했거든요.
사실 글쓰기에서 가장 힘든 건 조회가 터지지 않는 불확실성을 견디는 일인데, 저는 제 안의 자기만족이 이끄는 꾸준함으로 그 시기를 지냈던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제 글에 왜 그토록 공감해 주시는지 완벽히 이해하진 못해요. 그저 제가 가진 평범한 고민의 깊이가 누군가의 마음과 맞닿았을 때 전해지는 그 온기에 감사할 뿐이죠.
제 기록의 여정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해외 사례를 분석하던 단계를 넘어, 직접 인터뷰를 시작한 순간이었습니다. 해외 기사만 볼 때는 추측으로 끝내야 했던 질문들을, 창업가들을 직접 마주하며 깊고 집요하게 물어볼 수 있었거든요.
첫 인터뷰 제안서를 보낼 때의 손끝에 남은 떨림이 지금도 생생해요. 인터뷰를 수락하여 마주했을 때는 질문을 멈출 수 없었어요.
“왜 하필 그 문제였나요?”, “그 순간, 정확히 어떤 기분이셨죠?” 답변이 모호하면 집요하게 파고들었어요.
행여 실례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창업가들은 제 질문을 통해 스스로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립하며 고마워하시더군요. 발터 벤야민이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생각의 형태를 빚어내는 과정”이라고 말한 것처럼, 저 역시 인터뷰와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생각의 실체를 마주하는 기분을 느꼈어요. 단순히 묻고 답하는 것을 넘어, 함께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배움이 되었죠.
지금 돌이켜봐도 제 글쓰기의 동력은 여전히 ‘아쉬움’이에요. 버려지는 자료가 아쉬워서, 사라지는 인사이트가 아쉬워서, 들리지 않는 창업가들의 진심이 아쉬워서 저는 오늘도 씁니다. 그 아쉬움을 활자로 고정하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 되고, 저에겐 세상을 읽는 새로운 눈이 되어주었으니까요.
Q. 인터뷰어로서 상대의 깊은 속내와 통찰을 이끌어내는 본인만의 비결이 있나요?
제게 고유한 기술이 있다면 그건 화려한 화술이 아니라, 지독한 호기심과 치밀한 준비, 그리고 집요한 집중 그 자체예요.
인터뷰이를 만나기 전, 저는 그가 세상에 남긴 모든 흔적을 추적합니다. 홈페이지와 기사는 기본이고 과거의 인터뷰, 영상, SNS까지 샅샅이 훑죠. 뻔한 질문을 피하고 더 깊은 심연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서예요.
예를 들어 "고객 중심 서비스를 지향한다"는 형식적인 답변이 예상되면 저는 똑같이 묻지 않아요. 대신 "지난 인터뷰에서 그걸 강조하셨는데, 사실 그 결정 때문에 내부 반발이 가장 심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라고 묻죠. 이 정도로 날카로운 질문이 던져지는 순간 인터뷰이의 눈빛이 바뀌어요. '나를 제대로 공부했구나'라는 확신이 서는 순간, 홍보 멘트가 아닌 '진짜 서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질문보다 더 중요한 건 인터뷰 중의 '조정'이에요. 저는 상대가 어떤 단어를 쓰는지, 어디서 목소리에 힘이 실리거나 낮아지는지를 매우 예민하게 관찰해요. "그때 정말 힘들었다"고 말하면 준비한 질문지는 바로 접어둡니다. 그리고 즉석에서 되묻죠. "그건 어떤 종류의 힘듦이었나요? 자금이었나요, 아니면 사람이었나요?" 그러면 상대는 잠시 멈춰요. 그리고 "아, 사실은..."이라며 진짜 이야기를 시작하죠.

상대가 추상적으로 답하면 저는 구체적인 사례를 묻고, 반대로 사례만 나열하면 그 흐름을 관통하는 본질적인 원칙을 묻습니다. 특히 단어 하나에 담긴 결을 읽으려 애써요. "성공했다"는 사람과 "살아남았다"는 사람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니까요.
자기계발의 거장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스티븐 코비는 "대부분의 사람은 답변하기 위해 듣지, 이해하기 위해 듣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많은 인터뷰어가 다음 질문을 생각하느라 귀를 닫지만, 저는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듣는 편이에요. 질문은 짧게 가져가고 경청은 깊게 함으로써, 인터뷰이조차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진심을 마주하게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 믿거든요.
결국 좋은 인터뷰란 상대의 내면을 깊이 이해한 끝에 얻어지는 '팽팽한 교감'의 산물입니다. 그 이해의 과정에서 건져 올린 날것의 인사이트를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온기 있는 이야기로 빚어내는 것, 저는 그 살아있는 과정을 무엇보다 사랑합니다.
Q. 인터뷰한 스타트업 창업가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 누구였나요?
정말 많은 분이 영감을 주셨지만, 유독 제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 건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라 그들의 가장 처절했던 ‘보릿고개’ 이야기였어요.
키노라이츠의 양준영 대표님을 인터뷰할 때가 떠오릅니다. 사업 초기의 고통을 회상하던 그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더니, “눈물을 머금고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끝내 사채까지 써야 했습니다”라고 고백하시더군요. ‘사채’라는 단어가 공중에 흩어지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창업이란 단순히 아이디어를 파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생(生)을 통째로 베팅하는 일이라는 걸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한 순간이었죠.
또 다른 창업가는 제게 이런 질문을 던지기도 했어요. “가장 힘들 때가 언제인지 아세요? 통장 잔고가 바닥났을 때가 아닙니다.” 잠시 침묵하던 그분의 눈빛에는 참혹했던 과거의 잔상이 스쳐갔어요. “가장 고통스러운 건, 세상을 바꾸자고 밤새 꿈을 공유했던 동료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갈 때예요. 돈이 없는 건 버티겠는데, 믿음의 세계관이 무너지는 건 정말...” 차마 잇지 못한 그 말끝의 행간에는 극심한 허탈감과 외로움이 꽉 차 있었죠.
신기하게도 인터뷰를 정리하다 보면 매출액이나 투자 유치 같은 ‘숫자의 승리’는 금방 휘발되곤 해요. 대신 가장 취약하고 빈약했던 순간을 견뎌낸 이야기들은 생생한 화인이 되어 남습니다. 사채를 쓸 때의 절박함, 동료가 떠날 때의 배신감, 그럼에도 다시 일어선 용기 같은 날것의 감정들이 제게 이입되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저는 창업가들에게 항상 권합니다. “완벽한 성장 스토리보다, 애환이 서린 생존 스토리를 들려주세요. 그것이 당신의 캐릭터를 가장 온전하게 증명하니까요.”
처음엔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 망설이던 분들도, 막상 속내를 쏟아내고 나면 “비로소 진짜 내 이야기를 한 것 같아 후련하다”고 말씀하시곤 해요. 독자들도 마찬가지죠. 티 없이 완벽한 성공은 시기와 동경의 대상일 뿐이지만, 무너진 자가 딛고 일어선 재기의 서사는 깊은 공감과 뜨거운 위로를 만들거든요.
삶은 때로 우리를 할퀴어 피폐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사람은 바로 그 부서진 지점에서 가장 단단하게 다시 태어난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창업가의 가장 아팠던 순간을 묻는 걸 좋아합니다. 흉터처럼 남은 그 상처 입은 틈새로, 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고유한 빛이 배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Q. 많은 창업가를 인터뷰하시다가 돌연 투자자(VC)들에게 눈을 돌려 책까지 쓰셨습니다. 굳이 베일에 싸인 그들의 내면을 기록하려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 프로젝트는 투자자와 창업가 사이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고 싶다는 아주 작은 바람에서 시작되었어요. 제가 창업가들을 인터뷰하며 느낀 건, 투자자는 창업가의 사업 모델부터 배경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미팅에 나오지만, 정작 창업가는 앞에 앉은 심사역이 어떤 철학을 가졌는지 전혀 모른 채 심판대에 서게 된다는 점이었죠.
이 정보의 비대칭을 해소하고 싶어 12명의 벤처캐피탈리스트(VC)를 직접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담았어요. 사실 VC 세계는 대중에게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자 베일에 가려진 곳이잖아요. 저는 이 기록을 통해 VC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고 싶었어요. '냉혹한 심판관'이라는 차가운 이미지 뒤에 숨겨진 그들의 인간적인 고민과 열정,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그들의 진짜 역할을 조명하고자 했죠.

인터뷰를 진행하며 깨달은 건, VC 세계 역시 논리적인 계산만큼이나 인간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이었어요. 대니얼 카너먼의 연구처럼 우리의 의사결정은 결국 직관과 감정에 큰 영향을 받으니까요. 화려한 성공 스토리 뒤에 숨겨진 그들의 허탈함과 실패의 기록, 그리고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결국 사람과 경험을 남기려 노력하는 그들의 진심을 마주하며 이 기록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결국 이 책은 1%의 희망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현장 기록이에요. 단순히 투자 기법을 배우는 지침서가 아니라, 불확실성 속에서 어떻게 리스크를 관리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지, 그리고 작은 가능성에서 어떻게 큰 성공을 길어 올리는지에 대한 비즈니스의 본질을 담았습니다. 이 기록이 창업가들에게는 든든한 가이드가 되고, 대중에게는 혁신의 최전선을 이해하는 창이 되기를 바랍니다.
Q. 스위트바이오에는 어떻게 합류를 하셨고 어떠한 일을 하셨나요?
스위트바이오와의 인연은 4년 전, 창업진흥원이 주최한 '컴업(COMEUP)' 행사로 거슬러 올라가요. 우연히 명함을 나누던 중 제가 네슬레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오종민 대표의 반응이 꽤 강렬했죠. 그는 "네슬레는 스위트바이오가 가장 닮고 싶은 롤모델"이라며 깊은 경외심과 관심을 드러내셨거든요.
그날의 만남은 일회성 인연으로 끝나지 않았어요. 이후 스위트바이오의 창업 서사를 DBR(동아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하며, 저희는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서 서로의 철학을 깊이 탐색하는 시간을 가졌죠. 그렇게 쌓아온 오랜 신뢰 위에서, 지난해 비즈니스적 상황과 개인적인 타이밍이 완벽한 공명을 일으켰고 마침내 합류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부임 후 제가 마주한 미션은 명확했어요. 전략과 마케팅 체계를 근본부터 다시 설계하는 것이었죠. 단 한 명뿐이던 조직을 1년 만에 15명 규모의 본부로 재편하면서, 글로벌 기업의 선진 프로세스를 스타트업의 기동성에 맞춰 이식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관성적인 회의체는 과감히 덜어내고, '고민'보다 '실행'이 조직의 기본값이 되도록 체질을 완전히 개선했어요.
이 변화의 파동은 마케팅팀의 헌신을 타고 놀라운 숫자로 증명되었습니다. 자사몰과 스마트스토어 매출은 단기간에 700% 성장했고, 아티제·공차·해태제과 같은 유수의 브랜드들과 협업하며 시장에서의 저력을 과시했죠. 특히 네슬레 코리아 시절부터 오랜 호흡을 맞춰온 이유리 마케팅팀장은 이번 팀 빌딩의 든든한 주춧돌이 되어주었어요. 그녀의 홈쇼핑 전문성을 살려 영업팀과 함께 주도한 첫 방송에서는, 불과 28분 만에 11만 개 완판이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일궈내기도 했습니다. 저와 싱크를 맞추기 위해 늘 부단히 노력해 준 그녀 덕분에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었죠.

이 눈부신 지표들은 제가 아닌, 실무를 저보다 훨씬 탁월하게 수행해 준 팀원들이 일궈낸 결실이에요. 저는 그저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했을 뿐입니다. 리더의 본질은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라 '환경을 만드는 설계자'여야 한다고 믿거든요.
구성원 각자의 잠재력이 사장되지 않고 최대로 폭발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 그리고 그들이 흔들림 없이 나아가도록 길을 터주는 것이 제 최우선 과제였습니다.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경영이란 인간을 통해 성과를 내는 예술"이라고 정의했죠. 그 예술의 현장에서 저의 위임을 압도적인 성과로 화답해 준 팀원들을 만난 것이 제 커리어의 가장 큰 자부심입니다.
Q. 스위트바이오에 전략마케팅 본부장으로 합류해서 1년 만에 15명 조직을 구축하고 낮은 이직률을 유지하셨습니다. 팀 빌딩 전략과 리더십 철학을 공유해주실 수 있나요?
팀 빌딩의 시작과 끝은 결국 '사람을 잘 뽑고, 그를 끝까지 책임지는 것'에 있어요. 저는 화려한 이력서보다 그 너머의 성품과 성장 가능성을 중요하게 봅니다.
D2C 매출을 700% 성장시킨 담당자를 채용할 때가 생각나네요. 더 쟁쟁한 후보가 많았지만, 인터뷰 직후 제게 "부족한 점에 대해 피드백을 달라"고 청하던 그분의 태도에 합류를 제안했어요.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고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용기, 그 의지에서 확신을 얻었거든요. 실무 지식은 가르칠 수 있지만, 이런 성품은 쉽게 학습될 수 없는 법이니까요.
제가 보낸 신뢰에 그분은 압도적인 성과로 화답해 주셨고, 덕분에 단순한 동료 이상의 깊은 감사를 나누게 되었죠.

리더십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리더가 먼저 움직여서 팀원들이 안심하고 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게 본질이죠. 저는 뒷짐 지고 관망하기보다 팀과 함께 전선에 서 있는 사람이고 싶어 팝업 현장에서 직접 짐을 나르고 손님들을 응대했어요. 현장의 호흡을 직접 느껴야만 팀이 마주한 문제 앞에서 가장 정확하고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으니까요.
특히 조직을 재건하며 가장 공을 들인 건 '신뢰의 밀도'를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부임 초기, 디자인 팀장이 제 의지에 보냈던 냉소는 사실 상상 이상이었어요. 제가 "디자인 어워드 수상을 통해 우리의 역량을 대외적으로 증명해 보자"고 제안했을 때, 그는 콧방귀를 뀌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죠. 하지만 저는 그 고집 뒤에 숨은 무거운 책임감과 실력에 대한 자부심을 보았습니다. 어렵게 쌓은 신뢰일수록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기에, 포기하지 않고 지지와 관심을 보냈어요.
그의 시야를 넓혀주고 싶어 세계적인 디자인 어워드를 휩쓴 '생활공작소' 디자인팀과의 미팅을 직접 주선하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브랜드 철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마찰도 불사해야 한다"며 디자이너로서의 자존감을 끊임없이 자극했죠.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브랜드 가이드북'이에요. 최근 협업했던 다른 기업들이 그 가이드북의 디테일을 보고 기겁할 정도였죠.
결국 그의 냉소는 가장 뜨거운 확신으로 변했어요. 이후 디자인팀을 정식 조직으로 구축하고 그를 팀장으로 추대한 건, 그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제 나름의 진심 어린 예우였고요. 최근 제가 떠난다는 소식에 누구보다 깊은 아쉬움을 전해준 그의 모습에서, 한 인재의 잠재력을 오롯이 끌어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어요.
공포는 사람을 굴복시킬 뿐이지만, 진심 어린 신뢰는 사람을 스스로 움직이게 하죠. 그렇게 쌓인 단단한 유대감이야말로 조직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중심축이 된다고 믿어요.
Q. 재무에서 마케팅으로, 글로벌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인 커리어 패스를 걸어왔습니다. 인사권자라면 의구심을 가질 법한 이 비정형적인 행보 속에 어떤 필연성이 숨어 있나요?
인사팀 관점에서 보면 가장 기피하고 싶을 만큼 변화가 심한 이력일지도 몰라요. 편하게 직장 생활을 할 팔자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가장 오래 근무했던 네슬레에서도 6년 반 동안 무려 6개의 각기 다른 업무를 거쳤으니까요.
한번은 대표님께 여쭤본 적이 있어요. "새로운 미션이 생길 때마다 왜 항상 저를 찾으시나요?"라고요.
대표님의 답변은 명쾌했습니다. "회사에 새로운 기회나 난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당신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거절하지 않고 돌파해 낼 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저는 제게 주어진 미션에 단 한 번도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당시 대표님이 저보다 저를 더 잘 꿰뚫어 보고 계셨던 거예요. 끊임없이 도전하고 새로운 경험을 섭취해야만 에너지를 얻는 제 성향을 말이죠.

이 모든 경로가 의도된 전략이었느냐고 묻는다면 제 대답은 '아니요'예요. 그저 호기심이라는 원초적인 본능에 지극히 충실했을 뿐이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매끈한 이력서를 조립하는 따분한 일보다, 생소한 영역에서 나만의 해답을 도출하는 그 지독한 공정을 즐기거든요.
누군가는 한 우물을 파지 않은 제 이력을 두고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낼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과거를 복기하며 아쉬워하기보다, 다가올 미래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훨씬 저다운 모습이라 믿습니다. 재무의 날카로운 숫자 감각과 마케팅의 전략적 시야, 그리고 다양한 산업군을 넘나들며 체득한 유연한 적응력은 어느새 저만이 가질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무기가 되었거든요.
비록 계획된 직선의 길은 아니었을지라도, 이 구불구불한 궤적이야말로 저라는 사람의 전문성을 증명하는 가장 입체적이고 강력한 서사가 된 셈이죠.
Q. 본업과 작가 활동을 병행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많은 분이 노하우를 물으시지만, 제게 본업은 작가 활동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가장 풍요로운 원천이에요. 조직을 이끌고 구성원을 설득하며, 때로는 타 기업과 치열하게 협업하는 그 현장에서 수많은 생각과 통찰이 교차하거든요.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다면 진작에 할 이야기가 바닥났을 거예요.
경험을 글로 정리하는 과정은 제게 일종의 '비워내기'와 같아요. 머릿속에 엉켜있던 생각들을 활자로 쏟아내 비우고 나면, 그 빈자리에 다시 새로운 경험을 채워 넣을 수 있거든요. 이 무한한 반복 속에서 저는 늘 어떻게 하면 더 나아질 수 있을까를 고민해요. 생각이 멈추면 성장도 멈추고, 제 글도 자연스레 멈출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결코 제자리에 머물지 않으려 노력해요. 스스로를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과 시련에 노출시키고, 낯선 환경에 저를 내던질 때 비로소 한 단계 더 단단해진다고 확신합니다. 움직이는 한, 언제나 다음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물론 시간은 늘 부족하고 에너지는 한계가 있어요. 그럼에도 스스로를 끊임없이 단련하지 않으면 리더로서든 작가로서든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현장에서 배우고 부딪히며 살고 싶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낸 흔적들을 기록하는 것, 그것이 제가 본업과 글쓰기를 병행하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Q. 이제 익숙함을 뒤로하고 새로운 지평을 향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려나갈 계획과 지향점은 무엇인가요?
스위트바이오를 떠나기로 한 건, 역설적이게도 모든 지표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기 때문이에요. 흑자 전환과 가파른 매출 성장, 그리고 견고해진 브랜딩까지 모든 것이 안락한 궤도 위에 안착해 있었죠. 하지만 시스템이 단단해질수록 제 안의 사업가적 기질은 오히려 경고음을 울렸어요. 이미 완성된 구조 안에서 최적화의 효율을 논하기보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새로운 판을 짜는 순간의 아드레날린이 다시 필요해진 거예요.
오종민 대표님이 일찍이 건네셨던 “창업가 대 창업가로 만나고 싶다”는 그 권유의 본의를 이제야 비로소 실감해요. 어쩌면 그는 제 안에 숨은, 결코 길들여지지 않을 사업가적 야성을 저보다 먼저 꿰뚫어 보셨던 것이 아닐까 싶거든요.

최근 여러 선택지를 깊이 검토하며 내린 결론은 명확해요. 결국 제가 주도권을 쥐고 스스로 길을 낼 때 비로소 가장 효율적이고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죠.
그 확신을 발판 삼아, 올해는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다른 산업에 입성해 보려 합니다. 국내외의 경계가 없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제가 가장 잘하고 또 간절히 해보고 싶었던 일에 도전할 계획이에요. 이를 위해 지금은 새로운 무대에서 다음 단계를 위한 탐색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어요. 낯선 영역의 관계자들을 만나 토론하고, 그 세계의 언어를 공부하며 밑바닥부터 다시 배우는 중이죠. 단순히 정보를 습득하는 차원을 넘어, 새로운 분야의 본질을 파고들어 저만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이 과정에 지금은 가장 큰 공을 들이고 있어요.
저는 커리어가 이어지는 한 끊임없이 배우고 부딪히며 스스로를 유연하고 민첩하게 유지하고 싶어요. 과거의 성취에 안주하기보다 한계를 넘어서고 영역을 넓히며 계속 나아가는 것이 제 성장의 본질이니까요. 지금 낯선 영역에서 기초를 다지는 이 시간은 방황이 아니라, 더 넓은 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필연적인 준비 과정이에요. 정답이 없는 곳에서 스스로 길을 내는 이 여정이야말로 저를 깨어 있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동력이 될 거라 믿습니다.
※ 오늘의 큐터뷰는 조인후 작가님이 작성하고, 큐레터가 편집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