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학원생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인터뷰] 대학원생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작성자 아워익스프레스

아워익스프레스 인터뷰

[인터뷰] 대학원생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아워익스프레스
아워익스프레스
@ourexpresso
읽음 1,237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인터뷰이 소개

(*만족도는 5점 만점이다.)


김필준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 석사 과정)

| OE 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나요? 선택에 있어 후회는 없으신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국문과에 가고 싶어했어요. 학부에 입학해서 처음 들은 수업이 현대소설 수업이었는데, 이 수업을 듣는 순간에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고전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고전문학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해를 넘겨 2학년 1학기에 고전문학 전공 수업 하나를 들었는데, 그 수업에서 다룬 세부 전공을 대학원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금의 세부 전공을 정하게 된 수업에서는 현지 조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4박 5일의 현지 조사 동안 느낀 게 컸어요. 이 전공을 택해야겠다, 하는 사명감을 크게 느끼고, 교수님 앞에서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교수님께 공부가 하고 싶다고 찾아갔어요. 답사를 다녀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5월 초였고, 저는 스물 한 살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서울대에서 공부하길 권하셨어요. 그때부터 서울대이 가서 공부하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단순히 ‘서울대’여서는 아니었습니다.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라는 게 컸죠.

대학원에서 이 전공을 공부하겠다는 제 결심이 맞을지 고민하면서 학술대회도 가보고 논문도 여러편 읽어봤습니다. 그러다보니 이게 내가 좋아하는 게 맞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일단은 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했어요. 그래서 군 복무 후 복학해서 대학원 입시를 준비했고, 2022년 후기 대학원에 들어와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후회 없는 일들은 없겠지만, 아직은 후회를 할 정도로 멀리 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울 뿐,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 OE 학부 시절의 공부와 지금의 공부와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학부 때는 지식을 습득하고 전달받는 소비자 입장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이 알려주면 필기하고 외우고, 조금 응용해서 생각해보고 답지를 줄줄 쓰고 학점을 받는 식이죠. 그때의 공부는 질문보다도 대답을 암기하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대학원에 와서도 물론 지식을 습득하게 되기는 하지만, 스스로 생산자가 된다는 점에서 공부의 방향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이제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대답을 하게 되는데,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어디서 그 답을 찾아야 하는지 모두 혼자 알아서 해야하는 거죠.

그리고 그냥 고민만 할 수는 없어요. 읽고 쓰고, 고치고, 또 쓰면서 나만의 논증을 쌓아나가는 게 대학원 공부 같습니다. 학부 때는 논문 쓰기가 수월할 줄 알았죠. 정말 거만한 생각이었던 거 같아요. 대학원생의 삶이 꽤나 고달프리라 예상은 했어서인지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기는 합니다. 삶의 강도는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저 스스로가 제 예상과 달리 너무 게으른 사람이더라고요. 그리고 확실히 공부해야 하는 게 정말 많기는 하더라고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은데, 또 시간이 없고, 그런 오묘한 삶을 살고 있네요.

| OE 대학원생으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대학원생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 경우에는 학업 성취에 대한 불만과, 경제적인 불안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연구자‘라는 정체성에 기대어 볼 때 ’학업 성취‘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마땅치 않네요. 논문과 저서를 많이 보면서 보는 눈은 높아지는데 쓰는 실력이 거기에 비례해서 좋아지질 않거든요. 학기가 지날 때마다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는 때가 많아져요. 논문도 금방 쓸 줄 알았는데 쉽지 않고, 쓸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에 사로잡히는 날들도 많습니다. 잘 하고는 싶은데, 실제로 잘 하는 건 요원한 일인 거 같아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특히나 경제력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어요. 아직 석사 논문을 쓰는 입장에서 연구라는 말이 부끄럽긴 하지만, 연구에 집중하면 경제 생활을 하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그걸 다 해내는 선배들도 있기 마련이지만, 저 스스로 둔재라고 생각해서인지 섣불리 이런 저런 일을 해보기가 겁납니다. 일하느라 공부에 너무나 소홀해질 것이 분명하고, 공부에 에너지를 쏟지 못할 것 같아서요. 장기적으로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하고 있어서인지 지금 상황이 많이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 OE 경제력에 대한 불안감을 고민으로 꼽아주셨어요. 대학원생들은 보통 재학 중에 어떻게 경제력을 확보하나요?

제가 다니는 학교는 인문대 대학원생에 대한 지원이 꽤나 잘 되고 있는 편이에요. 제 경우에는 입학 후 수료까지 4학기 동안 학업지원금을 받으면서 어느 정도 버틸만 했었어요. 과정 중에 다른 대학 교수님의 연구 용역에 참여하면서 약간의 소득이 생기기도 했고, 연구 과제에 연구 보조원으로 선정되면서 조금씩 연구비를 지원받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따로 알바를 할 여유는 나지 않아서 학업지원금, 연구비 지원을 통해서 대학원생 생활을 연명해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축을 따로 할 정도로 넉넉한 상황은 아니다보니 최근에는 다른 알바를 해야하는지 고민이 많은 상태예요. 주변 대학원생의 경우에는 장학금 외에도 학원 알바나 과외를 통해서 생활비를 충당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 OE 학기가 지날 때마다 '바보 같다'라는 생각을 더 자주 하게 된다고 하셨어요.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오히려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하는 경우가 자주 있곤 해요. 필준 님께서도 이에 공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논문 한 편을 보면 그 논문이 참고하는 논문을 따라가고, 또 그 논문들이 참고한 논문을 따라가고 하면서 봐야하는 게 점점 많아지기 마련이더라고요. 그걸 읽어나가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의문이 해결되는 것 같고, 내가 어떤 새로운 질문을 할 수 있는지 회의감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

| OE 공부를 지속하시면서 겪게 되는 회의감은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이런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그냥 하기‘인 것 같습니다. 아무거나 그냥 하는 건 아니고 해야 하는 걸 그냥 하는 거죠. 근데 그렇게 잘 되지는 않다보니 종종 혼자 침잠해있거나 무기력감에 빠져있는 경우가 있죠. 그럴 때마다 힘이 되는 건 그래도 같이 공부하는 동학들이나 선배들인 거 같아요. 제가 안 될 거 같다고 해도 거의 멱살 잡고서 “너 쓸 수 있어.” 하고 끌어주는 분들이거든요.

| OE 대학원생으로서 대학원생 밈과 괴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실 "도망가"라는 말은 대학원생들끼리 많이 하는 말이기도 해요. 좋아서 오기는 했지만 많이 힘들거든요.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끼리 자조적으로 “관두고 뭐 할까?”, “도망가야겠다.” 식으로 종종 말하곤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다보면 ‘비-대학원생’들에게 대학원생이 어떻게 고생하는지를 토로하게 되고, 그런 모습을 다들 안타까워 하면서 밈과 괴담이 확산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밈을 있는 그대로 믿고서 열정적으로 학업에 뛰어드려는 친구들을 타박하는 일들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어려운 길이라는 걸 본인들이 스스로 잘 알고 선택한 길이거든요. 놀릴 수야 있겠지만 그러기 전에 응원이 먼저 수반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OE 대학원생의 구체적인 일상이 궁금해요.

보통 오전 10시~11시쯤 학교에 나와서 공부를 하다가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에 학교를 나섭니다. 집에서 학교까지 1시간 40분 정도 걸리다보니 집에 도착하면 꽤 늦죠. 연구실에 앉아서 공부를 하면 보통 논문 써야하는 자료를 읽거나, 논문을 읽거나, 단행본들을 읽습니다. 줄도 치고 메모도 좀 하고, 원고 몇 줄을 쓰고 한참 고민하고 다시 고치고 그런 식으로 공부가 이어져요. 많이 써야한다는 부담감이 있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살다보면 건강이 나빠지는게 느껴지더라고요. 지속 가능한 공부를 위해서 8월부터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했어요.

| OE 졸업 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석사 졸업을 하고 나면 박사 과정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박사까지 졸업하면 임용을 위해 또 무던히 공부하겠죠. 장기적으로는 좋은 연구자가 되는 것이 삶의 큰 목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OE 좋은 연구자란 무엇일까요? 좋은 연구자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게 좋은 연구자라는 개념은 단순히 직업으로서의 연구자에 국한되지는 않아요. 크게 두 층위로 나누어서 볼 수 있겠는데요. 첫번째는 무엇보다도 좋은 인품을 갖추는 것이겠고, 두번째는 즐겁고 성실하게 연구하는 태도가 어우러질 때 좋은 연구자가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들과 학계에 관한 얘기들을 하다보면서 제가 생각하게 된 좋은 연구자의 핵심 면모입니다. 연구 성과가 뛰어난 교수님들에 대해서 ‘좋은 논문이 많다.’, ‘대단한 연구자다.’ 정도로 말하게 되는 것 같고요. 인품이 좋은 교수님들에 대해서 ‘좋은 사람이다.’ 정도로 말하게 되는 거 같아요. 인품과 연구 내용이 어우러질 때 비로소 좋은 연구자라고 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저는 단순히 연구를 잘한다는 것보다도 즐겁고 성실한 태도를 강조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연구자들은 대체로 즐겁고 성실하게 하는 분들이더라고요. 결과를 닮으려고 하면서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태도를 닮으려고 하는 편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즐겁고 성실하게 연구하다보면 좋은 연구를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 OE 대학원에 재학하시면서 가장 괴로운 부분과, 가장 즐거운 부분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공부가 둘 다에 해당해요. 공부를 하면서 끊임없이 나 스스로에게 되묻고, 채찍질하면서 괴로운 때가 많아요. 논문을 집필하면서 마음 편히 쉬기도 쉽지 않고, 회의감에 시달리다보면 잠도 잘 못자고요. 근데 또 ‘이거 이렇게 쓰면 되겠는데?’,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고민하고, 쓰고 하다보면 거기서 오는 은은한 즐거움이 있거든요. 투입된 고통 대비 산출된 즐거움이 엄청 크지는 않습니다. 마치 밥을 꼭꼭 씹거나, 엿기름을 삭혀서 단맛을 뽑아내는 일 같아요. 지루하지만 그때에 느껴지는 맛이 있거든요. 공부가 딱 그런 거 같아요.

돌이켜보면 ‘가장’을 떼어놓고도 괴로운 부분, 즐거운 부분 모두 많아요. 괴로운 부분에 얘기하자면,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아무래도 일반적인 사회인들과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게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더러 있죠. 또래에 비교해 현저히 부족한 소비력도 제 경우엔 특히 크게 다가와요. 갖고 싶은 게 좀 많거든요. 그래도 즐거운 것들은 저와 같은 분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고 함께 고민할 수 있다는 거. 그게 정말 큰 것 같아요. 나와 비슷한 전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만큼 기쁜 일이 없습니다.

| OE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국문과 대학원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실 대학원에 갈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대학원에 간다고 생각해요. 어떤 것을 더 좋아해서 그 분야를 깊이 공부하고 싶어하는지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고,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은 그게 문학 텍스트, 언어로 된 자료인 거 같아요.

| OE 대학원 진학 전, 미리 공부하거나 경험하고 오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문학 텍스트를 읽어내는 게 일이다 보니, 문학이론 공부를 더 해두고 입학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비평에서 이론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두면 내가 어디에 발을 딛고 텍스트를 읽을 수 있는지 확실히 파악할 수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저는 아직도 토대가 불안해서 휘청거리고 있지만요.


김지원 (런던 소더비 예술학교 미술품감정 석사 과정)

| OE 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나요? 선택에 있어 후회는 없으신가요?

현재 대학원에서 미술품 감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예술과 역사가 풍부한 도시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 런던으로 유학을 결정했고, 그곳에서 3년간 디자인과 아트 디렉션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런던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중,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에서 감정위원회 서기라는 특별한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감정위원회는 페어 시작 전, 전시된 작품들이 진품인지, 상태가 좋은지, 불법 유통된 작품은 없는지 확인하는 일을 합니다. 이 과정을 도우면서 자연스럽게 미술품 감정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더 깊이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런던에서 공부하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또, 가끔은 영어 대신 편하게 한국어로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할 때가 있어 아쉬울 때도 있죠. 하지만 이런 경험들 덕분에 더욱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OE 모국어가 아닌 제2외국어로 대학원 공부를 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외국어로 공부하고 배우는 건 괜찮은데, 글을 써야할 때가 조금 고민되는 것 같아요. 미술 작품에 대한 글은 어떻게 보면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살리는 것과 풍부한 어휘 사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작품을 보면서 찾아낸 작은 디테일들이 영어로 잘 전달되는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보통 영어권 친구들한테 글을 보여주고 피드백을 부탁하는 편이에요.

요즘 어려운 점은 프랑스와 이탈리아계 작품 감정을 할 때에요. 원어 사료도 읽어야 하는데, 전문용어도 번역이 안되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더라고요. 일단 어떻게든 번역기를 활용하거나 같은 과 친구들한테 번역을 부탁하는 방식으로 대처 중입니다. 곧 새로운 언어들을 더 배워야 할 것 같아요.

| OE 대학원생으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마 대학원생으로서 가장 큰 고민은 한국 미술계와 관련된 부분인 것 같아요. 예술을 전업으로 하게 되면, 큐레이터든 어떤 직업이든 내가 투자한 시간에 비해 그만큼의 보상을 받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나서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전시나 작품, 작가를 깊이 있게 연구하고 감정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가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 OE 졸업 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졸업 후에는 박사 과정을 밟는 것이 목표입니다. 중간에 잠시 일을 하게 된다면, 미술품 감정 전공을 살려 경매회사에서 일해보고 싶어요.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예술 시장의 다양한 직군을 직접 경험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미술 시장에서 한인 디아스포라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글을 쓰는 것입니다.

| OE ‘궁극적인 목표’를 이루는 데에 대학원에서의 공부가 얼마나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시나요?

60%. 제 커리어에 전문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전환점 같아요.

| OE 대학원에 재학하시면서 가장 힘든 부분과 가장 즐거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힘든 건 네트워킹이요. 학교 자체가 예술 세계에서의 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강조하는 편이라 계속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야하는데, 하루가 끝나면 엄청 지치는 것 같아요. 제가 엄청나게 활발한 편은 아니라서 모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 때마다 용기를 내서 해야하고, 파티나 이벤트에서 사람들한테 스몰토킹하는 것도 익숙하지는 않구요.

그래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찾아나가는 재미가 있어요. 미술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같이 좋아하는 작가, 작품 얘기하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주변 사람들에게 배우는 것도 정말 많아요. 다들 자기 전문 분야 (16세기 프랑스라던가)가 나오면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데 그 순간 순간이 너무 즐거워요.

그리고 공부 특성상 회화작품의 캔버스 뒷면을 보거나 오래된 16, 17세기 공예작품들을 손으로 직접 만지면서 물질 공부를 할 기회가 주어지는데, 흔하게 주어지는 기회는 아니다 보니 그런 특별한 순간들도 너무 소중하고요. 아무리 어렵고 피곤해도, 이런 순간들 덕분에 힘내서 계속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 OE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해당 분야의 대학원에 진학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자기 세계나 예술관을 더욱 발전시키고, 다른 사람의 세계관을 배우고, 갈고 닦고 싶은 사람들이 지원하면 좋을 것 같아요. 미술 시장에 대한 실무 경험이 있으면 플러스인 것 같고요. 그리고 미술품 감정 방식의 큰 부분은 작품의 이전 소유주나 사료증거를 수사하는 것과 닮아 있어서 탐정 업무와도 유사한데, 이러한 부분에 흥미가 있고 끈기 있는 분이면 잘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 OE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조금 더 준비해두면 좋았겠다고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프랑스어나 이탈리아어요. 아무래도 유럽 고미술을 자주 다루다보니 언어 능력이 출중할수록 좋은 것 같아요. 또 중간에 좋은 기회가 있어 서울대 미학 강의도 청강하다가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서양 모더니즘 및 근대 미술을 배울 때 큰 도움이 되었어요.


한동현 (경희대학교 소프트웨어융합학 박사 과정)

| OE 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나요? 선택에 있어 후회는 없으신가요?

70%의 마음으로는 박사 한동현으로 불리고 싶었습니다. 멋있으니까요. 의기소침해지고 힘들 때 제가 조금이나마 재능이 있는게 머리 쓰는 거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도 잘난 부분 하나는 있다고. 이게 자기 위로를 위한 합리화로만 끝나고 싶지 않았어요. 적어도 스스로에게 나 진짜로 그래도 꽤나 똑똑하다고 당당하고 싶었습니다. 남은 인생 살면서 스스로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을 얻고 싶었어요.

박사 한동현이라고 수식어가 붙으면, 누구나 인정할테고, 나도 자신감있게 나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30%는 먹고 사는 문제 때문입니다. 딱히 부족한 집에서 태어난 건 아닙니다. 평범한 집안인데. 하지만 누구나 가진 책임이란게 있잖아요? 부모님과 형제를 부양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기대, 소중한 사람들이 잘못됐을 때 흔들림없이 지원할 수 있는 경제 능력. 그런게 가지고 싶었어요. 내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져도 문제없을 만한 경제적 능력. 그리고 사실 이기적으로 하고 싶은게 많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은 인생 음악을 즐기고, 게임을 만들면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게 꿈이에요. 돈과 상관없는 예술을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거죠. 결국 책임을 챙기면서도 자아실현할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돈도 벌면서 시간도 있으려면 그만한 걸출한 능력이 있어야 했고. 저에겐 박사 라이센스가 가장 적당했습니다. 책임과 꿈을 둘 다 이루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까요.

후회는 없습니다. 내 인생 설계에 가까운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고. 적성에도 맞다고 생각해서 선택했습니다. 실제로도 다른 사람들보다 적성에 잘 맞는 편이라, 당연히 힘든 부분이 많지만 잘 이겨내고 있습니다.

| OE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을 잃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의 공부가 동현 님을 의기소침하게 만들거나, 의심하게 만든 적은 없었나요?

저는 다행히도 연구가 적성에 맞는 편이어서, 연구하면서 처음부터 인정을 좀 받았던 편인 것 같아요. 물론 처음 시작하는 학생이니까 응원의 말도 많았지만, 진실이든 거짓이든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1~2년차까지는 의기소침보다는 실적 압박과 답답함 때문에 좌절한 것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내가 능력없는 사람인가? '라는 의심보다는 '기한이 다가오는데 생각대로 결과가 안 나오니 답답하고 어떻게 해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도저히 모르겠다.' 이런 답답함과 좌절 같은 게 더 컸어요.

오히려 저는 연차가 차면서 생각이 좀 확장이 되었어요. 다른 사람의 연구들과 해외 학회장 가서 발표 같은 걸 보면서, ‘아 이 사람들 다 똑같은 사람이구나.’라는 걸 가장 많이 느꼈던 것 같습니다. 좋은 학회장 가서 보는 사람들이 뛰어난 사람인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완벽한 천재, 범접할 수 없는 사람은 정말 몇 안 됐어요. 대부분의 뛰어난 업적은 다 평범한 사람들이 내는 것이더라고요.

그들도 가끔은 완전 별로인 논문과 연구를 내기도 하고, 똑같이 자기 능력에 대한 의심과 고민도 하고요. 각자 엄청 잘하는 부분, 못하는 부분이 당연히 있고, 그 와중에 어떻게든 잘해보려고 하는 마음이라는걸 느꼈습니다. 처음부터 다 엄청 잘하고 능숙한 사람에 대한 환상은 없어졌어요. ‘아, 다같이 잘 안되는데 조금씩 노력하고 있는 거구나. 다같이 힘내자’ 같은 생각이 더 커진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세계 어디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 OE 동현 님의 대학원생 라이프를 듣고 싶어요.

전시도 하고, 게임도 만들고, 공연도 하고, 음악도 듣고, 놀러도 가고, 매일 운동도 하고, 인스타랑 유투브도 많이 보고,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요. 그냥 좀 많이 바쁘긴 한데 시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직장인이랄까요. 근데 돈은 적게 버는 직장인. 약간 이 정도지 싶네요. 좀 많이 바쁜 학생의 연장선인데 직장인에 약간 걸쳐 있는 느낌입니다. 앉아 있는 시간은 더 길지만, 정말 집중해서 일이 잘 되는 시간은 주말 포함 하루 4~6시간 정도인 듯 해요. 전 사실 매일 4~6시간 집중하는 걸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거라 생각해요. 남들처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일상을 잘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연구를 일상 중 하나로, 분리를 잘 해야 해요.

실제로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1. 연구, 2. 제안서, 3. 연구실 관리. 연구는 논문을 쓰는 일이구요. 간단히 말하면 다음의 반복입니다. 기존 기술에서 부족함 찾기 - 이렇게 하면 더 좋아질 거 같은데? 가설 및 주장 세우기 - 가설대로 구현하기 - 평가 실험해서 확인하기 - 안되면 왜 안되는지 분석해서 다시하기 - 잘 되면 글과 그림으로 써서 완성되면 제출하기.

| OE 대학원생으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한, 졸업 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가장 큰 고민은 '내가 경제적 능력이 전무하고 지원만 받고 있는 상황에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입니다. 어찌보면 주변 모든 이들에게 대기만성형 투자를 받고 있는데. 꽃을 피우기 전에 무슨 일이 터져서 전 무기력하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죠. 부모님이 아프다든지, 큰 돈이 들어갈 일이 생긴다든지요.

두번째 고민은 취업이에요. 제가 일하고 싶은 게임 업계의 직군은 해외에서나 제대로 활성화되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전 평생 국내에 자리잡아 살고 싶은데, 그것과 비슷한 직무를 국내에서 찾아서 뚫어나갈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졸업 후 목표는 역시 취업이겠죠. 좋은 팀에 들어가 일하면서 목표했던 자아실현 취미생활들을 하고, 나중엔 화목한 가족을 만들어 살고 싶습니다.

| OE 목표하시는 분야에서 학부졸업과 박사 졸업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요?

제가 취업을 할 시기는 아니라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당연히 박사 라이선스가 있다고 누구나 취업이 잘 되는 건 아닙니다. 물론 무슨 일을 하더라도 먹고 살 걱정은 없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겠지만, 그건 라이선스 때문이 아니라 6년 간의 산전수전에 단련된 자신의 능력일 뿐이고요. 박사 라이선스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취업 시장에 나온 다른 박사들에 비해서 좋은 실적을 가진 박사가 되어야 하는 거죠.

박사라는 건 독립 연구자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박사가 아닌 사람은 세상에 없는 진정 새로운 해결법을 시도하는게 어렵습니다. 박사 과정 동안 세상의 지식이 끝이 어딘지 파악하는 법을 매일매일 훈련했으니까요. 박사 라이선스가 있는 사람은 뭐가 새롭고, 뭐가 새롭지 않은 건지 구분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해결책을 창조하도록 훈련된 사람이에요. 그런 능력이 있다는 보증 증표로 박사 라이선스를 받은 것이고요. 그 말인 즉, 박사가 아닌 사람은 그 훈련이 되어있다는 보증은 없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기업의 새로운 제품들, 새로운 기술들, 새로운 제도들, 정책들. 인문계든 공학계든 새로운 건 거의 대부분 다 박사들의 주도로 나오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석사의 역할은 박사들이 제시하는 결과물을 현실화시키고 도와주는 실무의 역할에 해당하고요. 물론 그 현실화하고 실무를 이끄는 능력에도 굉장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박사의 능력은 그것과는 결이 좀 다른 거죠. 새로운 해결법을 찾아야 하는 모든 분야에 박사는 필요할 겁니다. 그것이 박사 라이선스의 특별한 점이자, 박사의 특수한 능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무로 가는 것이, 박사 학위의 메리트를 잘 활용한 것이겠죠. 그렇지 않은 직무라면 학석사로 졸업해 경력을 쌓은 분들과 능력적으로나 대우로나 큰 차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회사를 선택하실 때 사내에 아시는 분이 있으면 충분히 묻거나, 다른 곳에서 정보를 충분히 찾아보시는게 좋습니다. R&D 부서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연구 결과는 제대로 나오는지, 대우가 어떤지. 아니면 박사를 땄는데도 학석사했을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일과 대우를 받고 있을 거예요.

그렇게 경쟁을 뚫고 취업을 잘 하면, 박사만의 특수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팀에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보통 연구직은 자유로운 경우가 많습니다. 앉아있다고 실적이 정량적으로 쏟아지는게 아니기도 해서. 하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 대우는 좋을 거고요. 흔히 말하는 전문직이 되는 거죠. ‘남들이 시키는 일을 곧이곧대로 하지 않고 어느정도 주관적, 주도적으로 삶을 살 수 있다.’라는 게 박사하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짚는 장점이었습니다. 전문직의 장점과 같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학사와 석사의 차이는 크게는 없을 거라고 보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업으로 치면 석사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기보다는 2년간 연구직 인턴 해본 정도로 생각될 거예요. 개인의 특출난 실적이 있더라도요, 독립 연구자로 대우받기는 어려울 겁니다.


강우영 (홍익대학교 미학 석사 과정)

| OE 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나요? 선택에 있어 후회는 없으신가요?

끊임없이 ’왜?‘ 를 묻다 보니 대학원에 와 있었어요. 사람들은 왜 각자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다른지, 취향의 문제라면, 각자의 취향은 왜 다른지, 사회적이든 환경적이든 혹은 타고난 것이 달라서라면, 그것이 바뀐다면 과연 달라졌을지 등등... 혼자서 생각해봤자 답이 없을 것 같았고, 분명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저뿐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 하에 대학원으로 갔습니다. 아직 후회는 없어요. 여전히 ’왜?‘ 하고 있어서요. 이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를 조금이라도 잡는 데에 있어 미학과에서의 공부가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아요.

| OE 학부 시절의 공부와 지금의 공부와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이든, 논문이든, 텍스트를 더 읽어야 한다는 점이 가장 차이가 큽니다. 여기서 더 읽는다는 의미는 정말 도서의 문장 하나 하나를 잡아 뜯어서 해체하듯이 봐야 한다는 것인데요, 보통은 이제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대학원에서는 ‘아’ 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백만 개쯤 생각해보고, ‘어’ 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백만 개쯤 생각해보고, 또 그 ‘아’ 랑 ‘어’ 가 어떻게 연결되어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게 되는지 백만 개쯤 생각해요.

그래서 막연히 하고 싶은 연구를 하고 더 많이, 빨리 배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기대와는 달리 진도가 엄청 느리게 나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또 학부 때 수강신청 가능했던 학점보다 대학원에서 수강신청 가능한 학점이 훨씬 적은데도 늘 공부할 시간이 모자라다는 것도 이런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OE 대학원생으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또한, 졸업 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알고자 했던 것들을 알아갈수록 말로는 정리하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넓고 깊은 공부를 하다 보니, 오히려 말 한두마디로는 온전히 전달하지 못하겠더라구요. 제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알고리즘 맨 끝자락에 있는 가공된 정보란 사실을 하루하루 깨닫는 중입니다.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공부가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아, 이러다가 박사 하는구나 (웃음) 졸업 후에는 어느 정도 ’왜‘들이 정리되었으먼 좋겠어요. 제가 있는 학과에서 하는 연구는 자판기처럼 돈을 넣으면 음료수가 나오는 것보단, 흰 캔버스에 원하는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더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림에 대한 화가의 해설이 타당해야 가치가 있는 것처럼, 저도 이 '왜'에 대해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연구를 앞으로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OE 최근 붙잡고 계신 ‘왜?’는 무엇일까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을 속이려 드는지, 그것 때문에 왜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지를 생각합니다. 사실 곧 이사를 가야 해서 집을 구하는 중인데, 사기 문제 때문에 워낙 예민하게 여러 사항을 보다 보니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것 같네요. 속이려 들지 않는다면 의심하지도 않을 텐데, 왜 그렇게 속이며 살아가려 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걸까요? 왜 누군가를 괴롭게 만드는 일을 하려 드는 걸까요?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요? 왜 그런 마음이 드는 걸까요? 우리는 왜 서로를 의심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 OE 대학원생으로서 대학원생 밈과 괴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희 과는 이공계처럼 연구실에 컨택을 하지도 않고, 흔히들 얘기하는 ‘대학원 노예’ 와는 거리가 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학교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연구와 병행하는데 있어서 더 낫기 때문에 봉사장학생이나 조교 생활을 하는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게 되기 때문에 ‘도망쳐’ 라는 얘기가 간혹 나오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런 괴담에서 간과하는 게 있는데요, 대학원생들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스스로 대학원에 들어온 사람들인 만큼, 딱히 그런 얘기에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흔히들 말하는 ‘진짜 광기’는 대학원생을 가리키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 OE 우영 님의 ‘진짜 광기’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어보고 싶어요.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제가 이야기하는 주제 중에 가끔 몇몇은 ‘저런 생각을 하루 종일 하고 있으면 피곤하지 않나?’ 라는 감상이 들곤 하는데, 막상 얘기하는 당사자는 너무 신나게 말하고 있어서 조금 신기하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 OE 미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어떤 진로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공유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대학원 공부의 목적과 결과를 진로와 직업으로 무조건 연결지을 필요는 없겠지만요!

석사-박사까지 쭉 이어서 학위를 따고 교수가 되거나, 그 밖에도 큐레이터, 비평가 등 다양한 진로가 있습니다. 제 계획은 아직 명확하지는 않은데, 지금은 문화 비평에 가장 관심이 커서 그 분야로 방향을 잡는 것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미학과 대학원 수업 듣는 분들 중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분들이 많으십니다. 글을 쓰는 분도 계시고,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을 하거나 작곡을 하는 분들도 계세요. 이렇게 다양한 분들을 대학원에서 뵈면서 저도 제 진로에 대해 더 폭넓게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에디터님께서 말씀해 주신 대로 공부의 목적이 직업을 얻는 것만이 아니며, 미래는 알 수 없으니 자유롭게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 OE 미학과 대학원생의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의문이 많고 인간 본질에 대해 끝없이 알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는 사람. 우선 사람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제가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드리긴 했는데, 사실 정해진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대학원생 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공부하시는지 저도 아직은 잘 모르기 때문에, 특별한 자질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저런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더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것 같네요.


강경원 (맨체스터메트로폴리탄 대학 스포츠 비즈니스 석사 과정)

| OE 왜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었나요? 선택에 있어 후회는 없으신가요?

대학 졸업 후 스포츠 구단 프런트의 마케팅 담당자로 2년 간 근무했습니다. 어릴 적 부터 꿈꿔오던 직업이었고, 학부에서도 스포츠경영을 전공했거든요. 입사 전까지는 이 목표만을 위해 수년 간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막상 꿈을 이루고 일을 하다 보니 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물론 목표를 이룬 것에 대한 성취감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은 있었지만,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더군요. 특히,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만족감을 넘어, 저라는 사람이 이 산업에 더 많이 기여하기 위해 저의 가치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생겨났습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해,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며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에 영국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단순 커리어적 측면 외에도 한 번 쯤 해외 생활을 경험해 보는 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타지에서 생활하다 보니 외롭고 힘든 나날들도 많고, 세계 각국에서 모인 뛰어난 친구들 속에서 스스로가 작아지는 것처럼 느낄때도 있지만,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이런 순간들 조차도 성장을 이루는 소중한 과정이라 생각하며 다신 오지 않을 이 곳에서의 하루 하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 OE 대학원생으로서의 고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각자의 배경과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취업 시장 및 사회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이들에게 더 높은 기대치를 갖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잖아요?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마음 한 켠에 있는 것 같아요. 단순히 이력서 상에 드러나는 대학원 ‘타이틀‘이 아닌, 조금 더 깊은 공부를 한 사람으로서의 본질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매순간 노력하고 있습니다. 각자만의 이유로 이 길을 택한 모든 대학원생분들의 공통된 고민이 아닐까 싶네요.

| OE ‘본질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바쁘게 학업을 따라가다 보면 그 자체에 매몰되기 쉬운데요. 제가 졸업 후 이 산업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지, 이를 위해서는 어떤 역량과 경험들이 필요하고 어떻게 커리어를 디자인해 나가야 하는 지,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는 그 과정 중 어디에 속해 있고 어떻게 해야 가치 있게 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지 등에 대한 생각의 끈을 늘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특히, 제가 공부하는 분야 자체가 대단히 학문적이라기보다는 실무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학업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다시 실무에 나가게 되면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 지 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에도 늘 어려운 문제 같아요. 아직도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입니다.

| OE 대학원에서 보다 심도 있는 공부를 하고 계세요. 갈증하셨던 부분, 목표하셨던 부분을 대학원에서의 공부가 얼마나 해소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시절 쌓았던 전공 관련 지식과 실무를 하며 쌓은 현장 경험을 기반으로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통해 전문성을 기르고 싶다는 마음에 석사 유학을 택했는데요. 목표로 했던 것들 중 많은 부분을 충족시켜 나가고 있는 것 같아 전반적으로 만족하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학부 시절과 비교하자면 단순히 수동적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주도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요구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공부가 되는 것 같아요.

단순 학업적 부분 외에도 세계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한 층 넓어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각기 다른 생각과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어울리며 좀 더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유학을 마무리하고 어떤 길을 걸어가게 될지 확신할 순 없지만,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소중한 자양분이 되는 시간을 지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지구 반대편의 이 곳에 오는 결정을 하기까지는 깊은 고민이 필요했고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도 컸지만, 돌아보면 후회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 OE 영어권 유학의 경우, 영어 실력을 어느 정도로 갖추고 오는 걸 추천하시나요?

공인 영어 시험 성적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목표로 하는 대학 등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요구 성적을 충족시켜야 하지만, 이를 충족시켰다는 것이 곧 현지에서 무리 없이 학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시험 성적과 실제 영어 실력이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단순히 정형화된 형태의 시험을 치뤄 점수를 받는 것과 실제 영어 사용 환경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입니다. 시험도 중요하지만, 영어 실력 자체를 최대한 키운 상태에서 유학을 올수록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OE 경원 님의 대학원생으로서의 일상이 궁금해요.

수업을 위해 학교에 가야 하는 날은 주 3일이고, 그 외의 시간은 주로 수업을 준비하거나 과제를 하며 보냅니다. 수업을 무리 없이 따라가기 위해 수업 전 선행해야 하는 공부량이 적지 않은데다가, 과제도 만만치 않아 여가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혼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많이 요구되기도 하고, 학부 때 처럼 동기들끼리 몰려서 놀러다니는 분위기도 아니다 보니, 자연스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아요. 여전히 학업을 위해 보내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얼마 전 졸업 논문 제출 이후로 조금은 여유가 생겨서 틈틈이 여행도 다니며 다신 오지 않을 소중한 이 시간들을 만끽하려 노력 중입니다.

| OE 졸업 후 목표는 무엇인가요?

이전처럼 스포츠 산업 내에서 재취업을 할 계획이지만, ’어떤 기업에 들어가고 싶다‘ 등의 표면적 목표 설정은 최대한 지양하려 하고 있습니다. 대학원에 오기 전 했던 생각처럼, 근본적으로 실력을 쌓고 저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에 집중해서 남은 대학원 생활을 잘 마무리하면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Interview & Edit | Heeseung Yoon


* 11월 중으로 카드뉴스 형식의 <대학원생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인터뷰가 @ourexpresso 에 업로드 될 예정입니다.

Mix all idea, and express!
상상이 현실로 창조되는 과정에 대한 모든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