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너무 쉬운 귀여움은 귀여움이 아니었음을

[에세이] 너무 쉬운 귀여움은 귀여움이 아니었음을

작성자 아워익스프레스

아워익스프레스 에디토리얼

[에세이] 너무 쉬운 귀여움은 귀여움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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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귀여워 보인다면 게임은 끝난 거라고 한다. 귀여움에 함락되면 사랑의 포로가 되기 십상. ‘귀엽다.’는 '예쁘다.’, ‘잘생겼다.’ 등 그 어떤 형용사보다도 강력한 사랑의 언어로 곧잘 여겨진다. 예쁘고 잘생긴 건 한 순간이지만, 귀여운 건 영원하다고, 귀여움은 상대의 본질을 투사하고 애정하는 감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정하는 마음을 사랑보다는 어렵지 않게 전할 수 있기에, 나 역시 귀여움을 자주 활용했다. 그것이 오용이나 남용일 수도 있었음을 자각한 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귀엽다는 말이 기분 좋게 들리지 않던 적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리라.

내가 그리 귀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학습 되었을 귀여운 외모의 전형을 떠올려보자면 동글동글하고 짧은 얼굴과, 그 얼굴을 꽉 채우는 동공 지분 많은 눈이다.마찬가지로 학습 받았을 ChatGPT에게 귀여운 외모를 물어보니 비슷한 대답이다. 어린이가 연상되는 답변이다. 길고 뾰족하고 탁한 얼굴과, 두텁고 낮은 목소리, 정체불명의 문양으로 빽빽한 옷차림은 단숨에 귀여운 조합은 아니다. 느지막하게, 어렴풋이, 의외로 귀여울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Chat GPT에 물어본 귀여움

귀여움에 간절했던 적은 없지만, 이따금 귀여움 받을 때면 기분이 좋아진다. 뾰족하고 두텁고 빽빽한 외연을 지나 드디어 내 진가를 발견해줬다는 뜻이니까. 시간이 조금 걸리는 내 희박한 귀여움은 대체로 즐거운 기억이다.

그런데 외국에서의 나는 너무 쉽게 귀여워졌다. 기쁘지 않았다. 희소성의 법칙 때문만은 아니었다. 귀여움이 수요공급곡선으로 나타낼 수 있을 만큼 경제적이진 않을 것이다. 나는 잦은 귀여움에 무감해지기보다 되려 예민해졌다. 


내가 귀여워진 대부분의 이유는 영어에 있다. 세밀하지 못한 내 영어 문장들은 실수가 많았고, 실속은 없었다. 복잡한 생각을 유려한 문장으로 세공해낼 단어도, 어법도, 시간도 없었다. 쉽고 단순해져야만 했다. 생각의 가지들을 거치지 않고 직진으로 뻗는 생각과 말이 필요했다. 물론 그마저도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안간힘을 쓰고 나온 내 영어는 귀엽기만 할 뿐이었다. 서툰 영어는 고군분투의 흔적이지 귀여움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 역시 귀여운 주장이 될 게 뻔했다. 내 영어가 귀여움을 받을 때마다 내 노력이 자꾸만 깎이는 기분이었다. 귀여움은 발화된 영어를 거쳐 발화하는 나에게로 조준되었다. “Your English is so cute.”는 어느새 “You are so cute.”이 돼버리기 일쑤였다. 내 영어가 서툴어서, 내 키가 작아서, 내 손이 작아서, 내가 낯선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나는 결론적으로 귀여워졌다. “Cute”에 명중될 때마다 아직 할 줄 아는 욕이 없어 씩씩거리기만 하는 인스타그램 릴스의 어느 아기가 떠올랐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국인 연예인들의 서툰 한국말을 귀여워하는 MC들의 흐뭇한 미소도 떠올랐다.


서툴다는 건 귀여운 것일까? 작다는 건 귀여운 것일까? 서툴고 단순하고 작고, 그래서 귀여운 사람이 될 때면, 복잡한 마음으로 귀여움을 추적했다. 기분 좋게 귀여워지고 싶었고, 납작하지 않게 귀여워하고 싶었다.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귀여워해 보세요." 이옥섭 감독의 말처럼 귀여움은 충돌을 덜어주는 유용하고 다정한 감정이다. 그러나 어떤 귀여움은 게으른 존중의 방식이 된다. 복잡하고 갈등하는 존재를 귀여움에 가둬버릴 수 있다. 무해하고 단순한 귀여움이다. 그렇기에 귀여운 존재는 통제하기 쉽고 지배하기 쉬운 대상으로 축소되기도 한다.

서툴고 작은 존재를 보면 너무 쉽게 귀여워하곤 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어린이다. 아직 어른의 때를 타지 않은 천진난만한 웃음은 무해하고, 고리타분함을 돌파하는 엉뚱함은 순수하다. 무해와 순수가 귀여움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것에 일정 부분은 동의한다. 어린이는 귀엽다. 하지만 단지 귀엽기만 하진 않는다. 어렵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서툰 걸음마는 대단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구 떼쓰는 목소리는 힘겹고, 좋아하는 음식과 사물에 관한 주관은 뚜렷하다. 그러니 몸집이 작고, 세상에 서툴다는 것이 어린이를 향한 귀여움의 전부가 아니고, 또 귀여움만이 어린이의 전부도 아닐 것이다.

대상이 아닌 존재로서의 어린이에 관한 책 <어린이라는 세계>

외국어를 배울 때면 어린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하고 싶은 말은 많고, 생각은 여전히 다채로운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애쓰는 모든 시도가 그저 귀여워지는 순간에는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내 영어는 귀엽지 않다고, 그리고 나는 단지 귀엽기만 하지 않다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귀여움 말고, 작고 평평하게 만들어버리는 수직의 귀여움 말고, 다른 종류의 귀여움이 필요했다.

통제할 수 있는 무해한 귀여움 대신, 대등하고 다양한 귀여움을 실현할 수 있을까? 앞서 언급한 이옥섭 감독의 시선으로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옥섭 감독의 귀여움은 구체적인 관찰력과 상상력이다. 쉽고 빠르게 귀여움을 판정해버리는 게 아니라, 단숨에 미울 법한 사람을 다각도로 바라보고 귀여움을 발굴한다. 단순하게 밉다고 치부해버리지 않고, 복잡하게 귀여워한다. 나는 기꺼이 이옥섭 감독에게 귀여움 받고 싶다. 게으른 존중이 아닌, 성실한 사랑의 방식으로 귀여움을 다루고 싶다.

돌이켜 보면 그간 내가 기분 좋게 받은 귀여움도 유사한 형태였다. 그리 귀엽지 않은 첫인상을 거쳐 의외의 모습에서 발견된 귀여움이다. 나를 납작하게 누르는 귀여움 말고, 더욱 다채롭게 하는 귀여움이다.

너무 쉬운 귀여움은 귀여움이 아니었음을, 이제는 안다. 보다 열심히 귀여워 할 차례다.

By Heeseung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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