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버스킹, 나도 모르는 새 예술의 일부가 되다
작성자 아워익스프레스
아워익스프레스 에디토리얼
[에세이] 버스킹, 나도 모르는 새 예술의 일부가 되다
스페인에서 마주친 버스킹의 풍경
스페인에서 머무는 동안 버스킹을 자주 본다. 사람이 있는 곳엔 늘 버스킹이 있다. 사람이 많아서 버스킹이 시작되기도 하고, 버스킹이 시작돼서 사람이 모이기도 한다. 정확한 선후관계를 파악하긴 어렵지만, 사람이 담긴 풍경을 좋아하는 내가 버스킹이 열린 장소를 좋아하게 된다는 상관관계만큼은 꽤 정확하다.
나도 모르는 새 관객이 되었지만
버스킹을 감상한다는 건 예정된 적 없는 관객이 되는 일이다. 티켓이 열리기 전부터 오래도록 고대하던 콘서트의 시작과 달리 버스킹 감상의 시작에는 나의 의지가 크게 발휘되지 않는다. 기다리지 않았지만 버스킹은 시작되고 얼떨결에 한 명의 관객으로서 공연의 일부가 된다. 바삐 길을 걷던 도중에 지나치는 순간으로, 잠시 걸터앉은 분수대에서 쉬어가는 순간으로, 지평선에 반쯤 걸린 석양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으로. 한순간에 관객이 된다.
그러나 이 뜻밖의 신분을 지속하고 마무리할 때는 무엇보다 나의 의지가 강력하게 작용한다. 공연가가 자유롭게 버스킹을 시작한 것처럼 관객도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이 자유로운 공연에서 예의는 있어도 의무는 없으니까. 발걸음을 돌려 다시금 행인이 될지, 조금 더 머물며 관객으로 남을지, 결정은 너무 무겁지 않은 내 의지에 달려 있다.
때로 공연자의 의지가 관객인 내 의지를 추월하기도 한다. 조금 더 즐길 수 있겠거니 싶어 자리를 잡았더니 버스킹이 마무리된다. 아쉬운 마음에 괜히 서성여보지만 거리의 공연가는 몇 가지 장비와 조금 쌓인 동전을 순식간에 챙기고는 훌쩍 떠나버린다. 자유로운 출입은 관람객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상호 간에 부재하는 의무와 넘치는 자유, 그리고 적당한 예의. 여느 공연과는 다른 버스킹만의 매력이다.
버스킹, 일상과 비일상의 혼융
심심치 않게 개 짖는 소리, 신나게 뛰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쨍하게 귀를 때리는 공사장 소리, 성난 자동차 경적 소리 등 세상이 굴러가고 부딪히는 소리가 섞인다. 버스킹을 방해하는 시끄러운 소음일까? 어쩌면 불쑥 시작된 버스킹이 기존의 일상을 방해하는 게 아닐까? 버스킹에서 이런 시시비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배타적인 침범 대신, 섞이고 스며드는 침투이다. 늘 있던 일상의 소리도, 갑작스러운 비일상의 버스킹도, 소음의 방해가 아니라 음악의 여유가 되는 순간이다. 엄숙하게 버스킹에 집중하라고 호통치는 공연가도, 귀를 틀어막고 당장 버스킹을 중단할 것을 소리치는 사람도 없다. 일상과 비일상이 서로 겨루지 않고 융해되게 만드는 버스킹의 듬성한 여유를 좋아한다.
버스킹을 보고 있자면 착해지는 기분이 든다. 버스킹의 현장에서는 화난 사람을 찾기 어렵다. 마치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희망차기만 한 해피엔딩을 보고 있는 것처럼. 버스킹이 시작되자 대낮부터 취해 비틀거리던 노인의 발걸음은 바이올린 선율 위의 즉흥적인 춤이 되었다. 흐느적흐느적하게 또는 사뿐하게 춤추는 노인에게 바이올리니스트는 미소 띤 연주로 화답했다. 마주치기 싫은 취객이 누구보다 흥겹게 참여하는 최고의 관객으로 바뀌었다. 버스킹은 이걸 가능하게 한다. 그것도 아주 쉽고 엄청 아름답게.
무릎만 한 아이가 한창 연주 중인 드러머 옆에서 덤블링하는 뜬금없음이, 처음 보는 사람과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추는 유쾌한 낯섦이, 유일하게 외운 후렴구를 지구 반대편의 사람들과 함께 부르는 폭넓은 공감이, 버스킹에서는 아무렇지 않다. 아무렇지 않다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이상하고 복잡한 사람들이 한데 모여 너무나 잘 보이는데 하나도 유별나지 않게 느껴진다. 웃고 싶어지는 풍경이다. 서로에게 겹쳐 버스킹을 즐기는 착한 뒤통수들을 보며 나도 이렇게 착한 풍경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옹기종기 모여들고 어느덧 둥글게 공연가를 에워싼다. 점점 여러 겹이 되어가는 박수 소리까지가 버스킹의 마지막 음표가 된다. 그러다가도 공연가가 사뿐히 자리를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각자 제 갈 길을 간다.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는 지나친 아쉬움은 묻히지 않기로 한다. 여전한 거리의 관성이 뜻밖의 순간을 소중한 환상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니까.
공터를 장소로 만드는 버스킹의 힘
'어떤 일이 이루어지거나 일어나는 곳', 장소의 사전적 정의이다. 버스킹은 공터를 장소로 만든다. 비워진 터가 무언가 재미난 일이 벌어지는 목적 있는 장소가 된다. 버스킹 덕분에 사람들은 대가 없이 잠시나마 장소를, 더불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 뿔뿔이 흩어져서 지나치는 거리와 달리 규모 있게 모이는 광장은 힘이 있다. 충돌도, 배제도, 대가도 없이 응집을 가능하게 하는 버스킹은 단지 낭만 있기만 하지 않는다.
대학 새내기 시절, 신촌의 '차없는거리'를 늦게까지 걸으며 버스킹을 구경하곤 했다. 도로 이곳저곳에 열린 버스킹은 내가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예술이었다. 큰돈을 내지 않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안전하게,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웃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크고 작은 원을 구성하고 있는 게 좋았다. 그 중심에서, 반지름이 얼마나 크고 작든, 자기만의 예술을 내보이는 꿋꿋한 젊은 얼굴도 좋았고.
신촌 거리의 구석구석이 익숙해지고, 아는 척할 수 있는 예술이 늘어나던 중, '차없는거리'가 폐지되었다. 차도가 아니어도 버스킹할 공터는 있었고, 상권 매출이 유의미하게 증가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전보다는 줄어든 버스킹 장소에 꽤 속상해했었다. 공짜로 즐길 안전한 예술 공간이 점점 사라지겠구나, 완성되지 않더라도 예술을 표현할 결심이 작아지겠구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아름다운 계기가 줄어들겠구나, 싶은 젊은 마음이었다. 다시금 '차없는거리'가 시행되고 있지만, 언제 또 폐지될지 모르는 일이고, 아직도 나는 젊기만 하다.
1유로, 뜻밖의 관객이 될 충분한 준비
모집하지 않은 관객을 두고 버스킹하는 거리의 공연가들을 보며 마치 나 같다고 생각했다. 내 글을 원한 적 없는 미정의 독자들에게 무작정 글을 쓰고 있다. 비록 그들처럼 직접 얼굴을 마주치며 공연하는 담대함도, 아쉬움은 뒤로 하고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여유도 없지만.
스페인에서 머물 남은 기간 동안 현금을 들고 다니기로 했다. 혹시 모를 거리의 예술가를 기다리면서. 뜻밖의 관객이 될 준비는 동전 몇 개면 충분하다. 멋진 예술가는 될 수 없을지라도 멋진 관객이 되는 건 쉬우니까. 그렇게 예술의 일부가 되는 것도 좋겠다.
한국의 멋진 가수들이 버스킹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 '비긴어게인'의 좋아하는 영상을 첨부하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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