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호. 마음의 움직임을 멈추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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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레터 OLLY

38호. 마음의 움직임을 멈추는,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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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님, 마디입니다.

혹시 그런 경험 해보신 적 있으세요? 

아름다운 공간에 들어갔을 때, 경이로운 예술 작품을 마주했을 때,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 때문에 나를 둘러싼 시공간이 잠시 멈추는 듯한 경험요. 내면 깊숙한 곳 뭔가가 푸-욱 찔린 듯 눈물이 터져 나오기도, 깊은 여운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요가레터에서 갑자기 웬 예술 얘기냐고요?

오늘은 우리를 명상적 상태로 데려가는 예술 작품들을 소개하려고 하거든요. 마음의 작용을 멈춰 세우고 온전히 현존할 수 있도록 하는, 예술을 통해 우리를 "그곳"으로 이끄는 네 명의 예술가와 그 작품을 소개합니다.

🔖 이번 레터에는 요가레터 구독자만을 위한 할인 링크가 있어요. 요가레터 본문에서 확인해주세요.

제임스 터렐 <Dhatu>, 2010
제임스 터렐 <Dhatu>, 2010

 

이번 레터는 특별히 객원 에디터 지니님과 함께 썼습니다. 요비탐 1기로 함께해주셨던 지니님은 서울에서 요가하는 디자이너신데요. 지니님께서 1기 과제로 제출해주셨던 웰니스 비쥬얼 리서치의 내용이 너무 좋아 이렇게 요가레터로 확장시켜봤어요. 

🧑‍🎨 지니: 타오르는 소리, 빗소리, 싱잉볼 소리... 제가 디자이너라 그런 걸까요? 이렇게 귀로 들어오는 소리가 가끔 제 머릿속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때가 있어요. 음악을 틀어두고 아사나 수련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예술을 통한 명상적 경험 또는 몰입적 경험이 영감의 원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레터, 부디 즐겁게 읽어주세요.

 

⏳ 시간을 확장하는, Bill Viola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미국의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입니다. 비올라는 아주 느린 비디오를 통해 시간의 흐름을 확장하는 작가인데요.

6살 때 호수에서 익사할 뻔한 경험이 있는 그의 작품에는 물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삶의 깊고 아름다운 부분은 결국 우리의 표면 아래 깊은 곳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해요. 

 

빌 비올라 <Acceptance>, 2008 
빌 비올라 <Acceptance>, 2008 

암흑 속 폭포수를 맞으며 걷고, 또 걷고... 천천히 걸어가는 인물의 모습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느리게 재생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물을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고, 인물의 표정에는 황홀경과 고통이 교차하며 복잡한 감정이 드러나지요.

명상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그저 지켜보듯 비올라의 작품을 감상해 봅니다. 그럼 평소에 지나치기 쉬운 우리의 감정이 얼마나 섬세할 수 있는지, 또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감정의 풍경들을 천천히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빌 비올라 <The Dreamers>, 2013 
빌 비올라 <The Dreamers>, 2013 

인간의 감정적, 영적 경험을 표현하는데 평생을 바친 비올라의 작품을 보고 싶으시다면, 마침 이번 주부터 시작해 1월 말까지 열리는 국제갤러리의 《Moving Stillness》 전시를 확인해 보세요. 

 

🟥 색으로 초대하는, Mark Rothko


한 번쯤 들어보셨을 마크 로스코. 러시아계 미국인인 그는 인간이라면 응당 갖는 아주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로스코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색색의 면에 투영되는 우리의 무의식을 느끼는 예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그의 그림 앞에서 수많은 관객이 눈물 짓는 거겠죠.  

 

한 사람의 영혼을 갈아서 안을 보여준다면 이런 것이겠지 그래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이다 붓 대신 스펀지를 발라 영원히 번져가는 물감 속에서 고요히 붉은 영혼의 피 냄새

한강 '마크 로스코와 나 - 2월의 죽음'

 

마크 로스코 <Red, Black, White on Yellow>, 1955 
마크 로스코 <Red, Black, White on Yellow>, 1955 

작가는 겉으로 드러나는 색채나 형태보다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비극, 아이러니, 관능성, 운명을 이미지로 구현해 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가 평소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어쩌면 스스로도 그 곳에 있는 줄 몰랐던 내면 깊숙한 어떤 풍경을 색면으로 담담히 보여줄 뿐이죠.

 

로스코는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아 관람객들이 글로 된 단서에 매달리기보다는 그림을 채운 색과 형태에 반응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프레임이 없는 대형 캔버스를 낮게 걸어 작품과 관객의 환경이 하나가 되도록 했고요. 또 관람객의 시야를 지배하고 묵상과 초월의 느낌을 만들어 내기 위해 작품과 관람객 사이 45cm (18인치) 거리를 유지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4 Lessons from Mark Rothko as an artist / Sybaris Collection

마크 로스코 <Plum and Dark Brown>, 1964
마크 로스코 <Plum and Dark Brown>, 1964

 

🪞 빛을 조각하는, James Turrell


영국에서 시작된 '퀘이커'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떤다 quaker' 창시자의 말에서 유래된 퀘이커교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내면의 빛'이 있다고 믿고 침묵과 명상 속에서 신과의 교감을 추구하는데요. 독실한 퀘이커 집안에서 자란 작가 제임스 터렐은 이러한 정신을 그대로 작품으로 선보입니다.

빛과 공간을 통해서요.

 

제임스 터렐 <Open Sky Garden>, 1991
제임스 터렐 <Open Sky Garden>, 1991

터렐의 설치 작품은 우리를 자연스럽게 내면의 세계로 이끌며, 단순한 감상을 넘어 스스로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듯한 느낌을 경험하게 해요. 터렐이 구현해 낸 빛과 공간의 미묘한 변화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원적 경계를 넘어서는 그 어딘가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제임스 터렐 <The Inner Way>, 1999
제임스 터렐 <The Inner Way>, 1999

우리나라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에 제임스 터렐관이 있습니다. 터렐관 외에도 명상관 그리고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이 아름다우니 여유를 갖고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 드려요. 

 

🖌️ 하늘과 땅을 섞은, 윤형근


마지막으로 소개해드릴 작가는 우리나라의 윤형근 작가입니다. 극치의 단순함 속 담긴 묵직함이 관객들로 하여금 말을 잃고 그저 바라보게만 하는 단색화의 거장이지요.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피상적으로 표피가 알록달록하고 빛깔이 곱고 뭐 이런 게 아름답다고 난 생각 안해. 진리에 사는 것, 진리에 생명을 거는 거. 그게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거예요. 진실한 사람은 착하게 돼 있고, 진실하고 착한 사람은 내면세계가 아름답게 되어있어... 그것뿐이에요.

윤형근

 

윤형근 <Burnt Umber & Ultra Marine>, 1996 
윤형근 <Burnt Umber & Ultra Marine>, 1996 

우리는 어제 난데없는 한밤중 계엄 선포와 취소로 가슴을 쓸어내렸는데요.

윤형근 화백은 몇십 년전, 그런 계엄과 폭력이 일어나던 역사를 통과하며 그림을 그렸던 작가입니다. 폭풍 같던 시대, 그 복잡한 심경을 처절하고 거칠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최소한의 안료만으로 붓질도 절제하며 평생 담백한 표현을 추구했어요. 

시대의 아픔을 담담히 품은 그의 그림은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울림을 줍니다. 

 

언젠가 윤형근은 ‘하늘과 땅’으로 본인의 작업을 설명했다.  파란색은 하늘이 되고 암갈색은 땅의 빛깔을 나타낸다.(…) 천지문을 담은 마포는 물감이 자유롭게 스며들고 번지게 함으로써 동양의 정서를 한껏 고취한다. 계속된 겹치기는 가장자리를 흐릿하게 만들고 물리적 시간 감각을 효과적으로 생성한다. 관람객은 문의 빈 곳으로 흡수되고, 전시장에는 고요한 명상의 세계가 열린다.

월간 미술

 

윤형근 <Burnt Umber & Ultra Marine>, 1996
윤형근 <Burnt Umber & Ultra Marine>, 1996

이런 붓질을 하기 위해 그는 잠시 숨을 참았을까? 상상해 보게 됩니다.

윤 화백의 작품은 무척이나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객이 심연으로 빠져드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BTS의 RM이 이 윤형근 작가에게 영감 받아 쓴 곡 Yun 인트로와 아웃트로에서 작가님의 생전 목소리를 들으실 수 있어요 :)

 

 

🚪 내면으로 가는 다른 문, 예술


오늘 소개해드린 네 명의 아티스트들이 평생 에너지를 쏟아내 구현하려 했던 내면의 고요함은, 요가는 그저 마음의 작용을 멈추는 것이라는 요가 수트라의 구절과 호응합니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내 마음의 찌꺼기는 걸러지고 정화되는 과정을 거치게 되지요. 

가끔 좋은 예술작품에 흠뻑 감응하고 명상하는 여정도 요가로운 삶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하며, 이번 38호 전송 버튼을 눌러봅니다.

다들 참 마음고생 많았던 이번 주, 구독자님께 부디 조금의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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