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주변에 결혼하는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비장애형제자매로서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늘었어요. 문득 올해 초에 결혼을 한, 비장애형제자매인 언니 한 명이 머릿속에 떠올랐어요. 비장애형제자매 자조 모임을 통해 계속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는 언니인데, 내면이 아주 단단해서 무척 닮고 싶은 언니였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이 언니와 나눈 대화를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 보았어요. 비장애형제자매들이 이 글을 읽고 나서, 더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연애하길, 나아가 (원한다면) 인생의 동반자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Q1. 자신의 가족을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저와 쌍둥이 남동생으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에요. 제 동생은 발달장애가 있고, 뇌전증을 앓고 있어서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어요.
Q2. 결혼 전, 가족과의 관계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 평소 가족 안에서 맡아온 역할은 무엇이었고, 그 역할이 연애나 결혼에 대한 태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 저는 가족 안에서 '보험' 같은 역할 이라고 할 수 있어요. 평소에 동생을 돌보거나 집안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역할은 아니지만, 문제가 생기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가족들이 결국 저를 찾게 돼요. 세대 분리를 오래전에 했음에도, 감정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다들 저에게 많이 의지해요.
그런데 가족 모두가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는 편이라 그 의지가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아요. 저도 문제 상황이 생기면 그걸 빨리 해결해야 마음이 편한 성격이라, 자연스럽게 맡아온 역할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 자라서 그런지, 연애와 결혼에서도 '누군가가 해 주겠지.'라는 생각보다는 대부분의 상황을 제가 먼저 챙기고 결정하는 편이에요. 아마 남편과 시댁이 저를 믿음직하게 느낀 이유도 그런 모습 때문일 거예요.
Q2-1. '보험' 같은 역할이라는 건 어떤 건가요?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 제가 평소에 가족을 돌보는 건 거의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따로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족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예를 들어 법무사나 변호사의 도움이 필요한 일 같은 게 있을 때는 제가 다 맡아서 해야 해요. 아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리고 부모님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저를 가장 믿으세요. 일이 일어나면 저한테 얘기를 하시는 거죠. 제 입장에선 미리 말을 해 주면 일이 안 일어날 텐데, 다 벌어지고 난 다음에 저한테 알려주거든요. 사후 처리를 하는 역할을 많이 하다 보니까… 부모님이 자책하시면 "아니야. 엄마 탓도 아니고, 아빠 탓도 아니야. 그냥 상황이 이렇게 된 거야."라고 말해주는 심리적 지원 역할? (웃음) 금전적 지원 도 당연히 주고 있고요.
Q2-2. 그렇다면 '어릴 때' 그런 감정적 지지대 역할을 해야 했던 기억이 있나요?
🦭: 어릴 때는… 없어요. 어릴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걱정 없이 컸어요. 전혀 저에게 감정적으로 의지한다는 느낌을 못 받았어요. 아예 저한테 의지하실 생각도 없으셨고요. 형편이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었는데 저한테 해 줄 수 있는 모든 투자를 다 하셨고, 감정적인 지원도 해 주셨어요.
그런데 부모님이 쉰다섯이 넘어가니까,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시기 시작했어요. '이때까지 혜택을 많이 누렸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일시불로 돌려주고 있는 상태예요. 이제 부모님은 은퇴를 하신 거죠. '이제 네가 가정의 대들보가 되거라.' 근데 그냥 자연스럽게 물려받은 것 같아요. '내가 받아온 이 역할을 그대로 해 드리면 되겠구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제가 받은 게 얼만데. 신기할 정도로 부담을 안 느끼게 잘 키워주셨어요.
Q2-3. 어릴 때 부모님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할 수 있게 지원해 주신 게, 지금 이렇게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생각하나요?
🦭: 예. 매우. 엄청 많이. '신경쓰지 마라.' 이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어릴 때부터 저희 부모님은 '네 판단이 다 맞다. 나는 너를 믿는다.' 라는 메시지가 항상 있었어요. 그런 지지가 느껴지니까 자라면서도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제 심리적 기반이 이렇게 단단하지 않나 생각해요.
Q2-4. 자신을 믿음직스럽게 여기는 것과 관련해서 들었던 말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요?
🦭: 특별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기보다는… 남편은 저한테 '안정감을 느낀다'는 말을 많이 해요. 또 모든 결정을 저에게 맡겨요. 저에게 주도권을 주고, 믿고 맡겨주는 편이에요. 시부모님도 저에게 '믿음직스럽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근거 없는 자신감일수도 있지만요. (웃음)
Q3. 연애를 하면서 '동생이 있는 나'로 인해 조심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나요?
- 동생 이야기를 숨기거나 말하는 시기를 조율했던 경험이 있는지, 그때 고민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 저는 동생의 장애를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관계에서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초반에 이야기했어요. 감정이 깊어지기 전에 서로 선택권을 갖는 것이 더 건강하다고 생각했어요. 가족은 숨기거나 지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받아들이지 않는 상대와는 관계를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Q4. 연애를 하며 상대방이 동생에 대해 보인 태도나 반응으로 상처받은 경험이 있었나요?
- 어떤 상황이었고, 그때 어떤 감정이었나요?
- 그 경험이 이후의 연애나 결혼관에 영향을 미쳤다고 느끼시나요?
🦭: 2년 넘게 만났지만 자기 가족이나 친구, 가족을 단 한 번도 소개해 주지 않던 사람이 있었어요. 어느 명절에 본가에 다녀온 이후에 저에게 "너는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느냐?"라고 나무라면서, 장애가 있는 동생과 준비되지 않은 부모님의 노후 문제 때문에 본인이 부담을 느낀다고 쏟아내더라고요. 그 사람 어머니는 저를 만나본 적도 없었지만, "그냥 정상적인 여자면 되는데 왜 하필…"이라고 말했다고 들은 적도 있어요. 크게 상처받지는 않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장애 형제의 독립에 대해 더 일찍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Q4-1.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자신의 가족을 소개하지 않았을까요? 형제자매의 장애를 알고 부담을 느껴 그랬다고 생각하나요?
🦭: 짐작은 잘 안 가요. 동생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첫 번째로 저희 집안은 크게 내세울 게 없거든요. 제가 가장 역할을 해야 한다고도 말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주변에는 잘 사는 사람들밖에 없었어요. 주변하고 아무래도 비교가 됐겠죠.
두 번째로는 그 사람 어머니가 저를 안 좋아했어요. 제 동생이 장애가 있다는 걸 알고 나서요. '난 걔 안 만날래.' 이런 태도? '내가 무슨 재벌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냐. 큰 거 안 바라고 정상적인 여자면 되는데.'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고요. 각색이 아니고 실제로 한 말씀이라면 참 상당하다… (웃음) 전 별로 개의치 않기는 한데, 곱씹을수록 드라마 대사로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5. 지금의 배우자에게 동생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언제였나요?
- 어떤 계기로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이야기할 때의 감정은 어땠나요?
🦭: 소개팅 네 번째 만남에서 이야기했어요. 여러 번 겪은 과정이라 이제는 말할 때 특별한 감정이 들지는 않았어요. 그냥 말하고, 반응을 보고, 관계에 대한 선택을 하는 단순한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 순간은 분명 관계의 방향이 정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에 약간의 긴장은 있었던 것 같아요.
Q6. 그때 배우자의 반응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 주는구나' 혹은 '아직 설명이 필요하구나' 같은 생각이 들었나요?
- 그 경험이 결혼 결심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 남편은 본인의 간병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런 거 잘한다." 라고 말했어요. 아마 제 동생이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라고 상상했던 것 같아요. 그 반응이 든든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사실 제 결혼 결심은 남편 개인이 아니라 남편의 아버지를 보고 확신했어요. 그리고 "그 정도의 수발은 필요 없다."라고 설명했어요. (웃음)
Q6-1. 아버지의 어떤 모습을 보고 결혼을 확신했나요?
🦭: 저희 시아버지 진짜 멋있는 분이에요. 어머니께 너무 스윗하세요. 어머니 말씀을 아주 경청하시고… 보통 손님이 오면 손님을 먼저 챙기는데, 두 분은 서로가 1순위이시더라고요.
남편이 아버지 자랑을 많이 했었어요. 전 안 믿었죠. '자기 아버지니까 저렇게 말하나 보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 뵈니까, 완전 최수종인 거예요. 전 아직도 최수종이라고 부르거든요. '저 모습을 보고 자랐다면, 나중에 우리도 저렇게 늙지 않을까?' 그래서 그때 결혼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Q7. 결혼을 준비하면서 동생 문제로 마음이 복잡했던 일은 있었나요?
- 그때 어떻게 해결했나요?
🦭: 결혼식에 동생을 초대하는 것은 저에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어요. 다만 시댁 가족들이 갑작스럽게 접하면 놀랄 수 있을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먼저 설명을 드렸어요. 그런데 시부모님께서 "가족인데 왜 허락을 구하느냐"라고 따뜻하게 받아주셔서, 그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Q7-1. 결혼식에서 동생과 관련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 있었죠. 동생이 진짜 푹 자더라고요. 동생이 엄마 아빠 바로 뒤에 앉았어요. 사진에 아주 잘 나오는 자리. 당일엔 정신이 없어서 못 봤는데, 스냅 사진을 보니까 정신없이 자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소란스러운데 어쩜 이렇게 잘 잘까... 신기할 정도로.
Q8. 그 시기를 돌아봤을 때, '비장애형제자매로서의 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 순간이 있었나요?
- 그 과정에서 가족과의 관계나 '누나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나요?
- 결혼을 앞두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 저는 동생과 저를 원래부터 별개의 존재라고 생각해 왔어요. 더군다나 제 새 가족은 장애 형제로 인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할 거예요. 그래서 결혼이 저의 정체성을 바꾸거나 흔들어 놓은 과정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다만 부모님은 혹시 장애 형제로 인해 제 혼사가 어려워질까 봐 내심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그 부분의 짐을 덜어드렸다는 점이 뿌듯할 따름이에요.
Q8-1. 많은 비장애형제자매들은 형제자매와 자신을 분리하는 게 쉽지 않은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부모님의 어떤 양육 방식 덕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언어적으로는 다른 부모님들과 비슷한 것 같아요. '어떻게든 네가 책임지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나중이 되면 복지 제도가 더 좋아져 있을 거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제 인생에 집중하게 해 주신 게 큰 것 같아요. 그런 거 있잖아요. '지금부터 코끼리 생각을 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코끼리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 같이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까?'라고 말하면 그것에 대한 생각을 하지, 코끼리 생각을 안 하게 되잖아요. 부모님은 동생 얘기보다는 제가 무얼 하고 싶어하고, 제가 무얼 좋아하는지에 무척 집중하셨어요. 동생이 가족 구성원이니까 함께 여행도 다니고 복지관도 다니고 했지만, 그건 그냥 일상인 거고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오직 '저'였어요.
Q8-2. 그렇다면 어릴 때, 동생이 남들과 다른 이유가 궁금했던 적은 없었나요?
- 부모님께 동생의 장애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는지 궁금해요.
🦭: 없는데, 어릴 때 가설을 세웠어요. 건방진 말일 수 있는데, 저는 항상 뭐든 잘하는 아이였거든요.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반장도 하고... 제 가설은, 제가 쌍둥이니까 '내가 쟤 걸 빼앗아서 태어났구나.'라는 거였어요. 이 생각을 꽤 오래 했어요.
Q8-3. 그러면 언제쯤 '장애'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나요?
🦭: 알기는 유치원 때부터 알았어요. 제가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걔는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니까. 의식적으로 챙겼던 기억이 그 때부터 있거든요. 항상 손 잡고 다니고.
... 2부에서 이어집니다.
*본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자의 동의를 받은 내용으로만 구성되었습니다.
*대표 이미지 출처: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