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인터뷰도 코다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인터뷰와 주요 질문들은 동일하지만, 흐름이 달라요. 같은 코다이지만 살아온 방식이 다르기 때문 이에요. 모든 사람들이 살아온 배경이 다르듯이 말이에요. 우리는 모두 다르지만 또 같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받아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용어 알기
농인 : 청각장애인 중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
청인 : 농인에 대비되는 개념. 음성 언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하는 사람.
코다(CODA) :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
20대 후반 코다, 강서련🐣의 이야기 🍋🍊: 코다로서의 성장 과정이 궁금해요. 언제, 어떻게 '코다'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는지도요. 🐣: 사실 '코다'로서의 특별한 성장 과정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처럼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런 시간을 통해 성장 했어요. 저는 농인이신 부모님 밑에서 어렸을 때부터 수어를 사용했는데요. 부모님께 들어 보니까, 제가 국어보다 수어로 먼저 표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가장 먼저 표현한 언어가 '우유'였다고 해요. 배고프니까 우유를 달라고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수어와 국어를 함께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 했어요. 가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부모님과 말하면서 소통하는 친구들 모습을 보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혼돈 을 겪기도 했고, 어릴 때는 부모님이 부끄러워서 숨기기도 했어요. 하지만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이건 그냥 나의 하나의 특성이다.'라고 인정하게 됐어요.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 어릴 때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제 환경을 부끄러워하고 숨기려고 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당당하게 설명하게 되는 것 같아요. 청각장애가 미디어에 많이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수어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다 보니, 제가 "나는 코다야."라고 설명하면, 그걸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사실 그렇게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지만, 긍정적으로 봐 주시는 분들을 보면 괜히 뿌듯하고 그래요.
🍋🍊: 우리가 영아기를 '언어 습득을 위한 결정적 시기'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구어 습득을 위해 따로 청인이 집에 와서 시간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나요? 🐣: 집에서는 주로 수어를 습득 했어요. 또 집에 왔다 갔다 해 주시는 수어통역사 분 이 계셨어요. 육아 경험도 있는 분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죠.
수어랑 구어 문법이 서로 다를 때가 있어서, 순서를 가끔 헷갈리기도 해요. 또 수어는 조사가 없다 보니까 유아기 때는 언어 발달이 약간은 어려웠던 것 같아요.
🍋🍊: 어릴 때 또래 관계와 관련된 어려움은 없었나요? 어떤 코다는 그런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어요. 🐣: 또래가 하는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던 적 이 많아요. 친구들이랑 어울리려고 일부러 예쁜 스티커나 인형 같은 걸 가져가서 상호작용하려고 했었는데, 잘 되지는 않았어요. '내가 이상해서 그런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또래와 유대감이 좀 생겼다고 느낀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예요. 공통적인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면 같이 어울릴 수 있잖아요. 책 하나에 똑같이 꽂혀서, 그 때부터 친구들하고 서서히 어울리기 시작했어요.
🍋🍊: 어떻게 보면 농인과 청인의 세계에 모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 가운데에서 한 경험 중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을까요? 🐣: 사실 두 문화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언어의 차이일 뿐이지, 그들의 세계는 모두 비슷하다 고 생각해요.
'특수교사'로서 일하면서 농인 아버님의 상담을 지원한 적이 있어요. 오로지 수어로만 소통이 가능하신 분이었어요. 그래서 수어를 잘하는 편이 아닌 저로서, 굉장히 고민을 하다가 먼저 '제가 지원해보겠다.'라고 한 적이 있어요. 아이에 대한 상담 내용을 수어로 통역하고, 국어로 통역하면서 두 세계를 연결 짓는 듯한 기분 을 느꼈어요. 정말 형편 없는 통역 실력이었지만, 어쨌든 농인과 청인 간 소통이 이뤄졌고, 적절한 상담이 진행됐다는 게 굉장히 뿌듯하더라고요. 그래서 '코다'로서 이렇게 두 세계를 연결 지을 수 있다는 게 기뻤고, 요즘에도 이런 기회가 있으면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나서는 편 이에요.
"상담 내용을 수어로 통역하고, 국어로 통역하면서 두 세계를 연결 짓는 듯한 기분을 느꼈어요."(이미지 출처: canva) 🍋🍊: 그러면 반대로 '이랬으면 더 좋았겠다.'라고 생각했던 경험도 있을까요? 🐣: 한창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때에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병원을 왔다 갔다 했어요. 그때 엄마와 의사, 간호사 사이에서 계속 통역을 해 주어야 했어요. 엄마가 아프다고는 말을 하는데, 정확하게 '어떻게 아픈지'가 통역이 안 되는 거예요. '콕콕 쑤시다', '쓰라리다',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이 통역이 잘 안 되니까 정밀 검사를 하고, 또 하고... 그게 너무 고통스러웠던 거죠. 의사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엄마는 계속 아프다고 하니까... 그 때 마음이 좀 답답했어요.
🍋🍊: 사람들은 상대방이 '코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려워하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애'를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데요, 코다는 어쩌면 거기에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인 것 같아요. 특수교사로 일하는 저에게도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개념이었고, 많이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어요. 사람들이 코다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 주제가 이어지면 "저희 부모님은 두 분 다 농인이세요."라고 말하는 편이에요. 스스로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돼요. 그때마다 "어, 진짜?", "그럼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돼?", "아, 어." 등 다양한 반응 을 보여요. 사실 제가 다른 사람들의 환경이나 특성에 대해 들을 때 저 또한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그 반응이 상대방에게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받아 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대로 반응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친구가 "나 이번에 성적이 올랐어."라고 말했을 때, "와, 축하해."라는 반응도 있을 수 있고, 만약 본인이 성적이 떨어졌을 경우라면 "아, 그래?"하면서 그 자리를 벗어날 수도 있잖아요. '코다'에 대한 이야기도 그런 일상적인 얘기와 많이 다르지 않아요. 불편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궁금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신기한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그러면 수어 잘해요?", "그러면 소통을 어떻게 하세요?", "두 분 다 완전히 농인이신 거예요?"라고 질문하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오히려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한 마음 이에요. 그래서 '코다'에 대한 내용이 주제가 된다면, 그냥 평소에 대화하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수어나 농인은 미디어에서 꽤 많이 다루어진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반짝이는 워터멜론>을 재미있게 봤어요. 하지만 미디어에 많이 등장하는 만큼 왜곡되는 지점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코다에 관한 의견이 궁금해요. 🐣: 수어, 농인에 대한 내용이 미디어에서 많이 다뤄지기 시작하면서, 그런 내용을 즐겁게 보고 또 공유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들과 이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해지기도 하고, 집에서 부모님하고 드라마, 영화를 함께 보면서 공감하기도 해요. 사실 농인, 코다로서의 삶이 이 세상 사람들의 다양한 삶처럼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모습도 단편적인 '부분'이라고 생각 해요. 그렇지만 그런 내용을 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되고, 구체적인 내용을 다른 사람들하고 공유하면서 소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고 생각하고 있어요.
🍋🍊: 그러면 코다의 삶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 중 추천하는 작품이 있을까요? 🐣: 농인 관련해서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청설> 이에요. 최근 한국판으로 제작돼서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정확히 '코다' 관련 영화라고 해도 될지 애매하긴 한데, 그 영화 안에 담긴 내용이 많이 공감이 됐어요. 조금만 더 얘기하면 스포가 될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요. 예를 들어, 화재가 났는데 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들에게 어떻게 그걸 알려야 하는지, 그런 내용이 자연스럽게 들어가 있고 또 생각해 보게 해 줘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반복해서 보는 그런 영화예요.
(🔽 한국판으로 제작된 2024년 영화 <청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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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유아특수교사로 일하고 계시지요. 코다인 아이들을 위해 어떤 지원이 있으면 좋을까요? 또 코다를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까요? 🐣: '코다'인 아이들에게도 다른 아이들과 동일하게 생각을 확장시켜 주고, 친구들과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제공해 주는 게 가장 좋다 고 생각해요. 저는 주변에서 "너는 괜찮아.", "너는 특별한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저 자신이 세상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코다라는 걸 인정 하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고 생각해요. 그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서는 단단한 자존감, 인간관계 등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에요. 아이들이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적절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곁에서 지지하고 존중 해 주는 게 필요해요.
부모님이 모두 농인이시고, 언어적 자극을 얻기 어려운 환경의 코다 아이에게는 언어적인 경험을 많이 제공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스스로 코다라는 걸 인정하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이미지 출처: canva) 🍋🍊: 제가 직업을 선택할 때도 '가족'이 정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코다라는 사실이 직업 선택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 80% 이상 은 영향을 줬다고 생각해요.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특수교육 자체를 아예 모르다가, 그 당시 농아인협회에서 하던 가족 프로그램에서 다른 가족들하고 얘기하다가 특수교육과를 알게 됐어요. 그 때부터 막 파고들기 시작했어요. '우리 부모님도 유아기 때 적절한 교육을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요즘은 '너무 일에만 집중을 하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을 가질 기회가 있었다면 더 확장된 시각을 가질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좁은 시각을 가지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또 이게 제가 자라온 환경인 거니까요. 항상 마음이 왔다 갔다하기는 해요.
🍋🍊: 그럼 만약 유아특수교사를 안 했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나요? 🐣: 가정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외가 쪽에 경찰인 분이 계셔서 경찰을 하거나, 법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 코다로서의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 '똑같다' 입니다. 농인의 삶과, 청인의 삶과, 모두의 삶과 다르지 않아요. 코다는 세상의 한 구성원이고, 모두가 다 특별한 것처럼 코다도 세상에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한 한 사람 이에요.
"'똑같다'입니다. 농인의 삶과, 청인의 삶과, 모두의 삶과 다르지 않아요."(이미지 출처: canva) 🍋🍊: '사람들이 코다에 대해 이것만큼은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을까요? 🐣: '코다'를 '수어를 잘하는 사람'과 연관 짓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농인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고 해도, 수어를 접할 기회가 적은 코다 분들도 꽤 많아요. 농인 분들 중에서 구어를 사용하시는 분도 있고, 수어만 사용하시는 분도 있는 등 너무 다양하기 때문이에요. 각 가정에서의 소통 방식도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코다 = 수어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 을 알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엄마의 지인 분 가족하고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가족은 어머니가 구어 연습을 많이 하셔서, 농인이시지만 구어 발음이 정확 한 거예요. 입 모양만 보고도 상대방 말 해석이 가능하신 거죠. 자식들하고 소통을 구어로 하다 보니까, 자식들이 수어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 마지막 질문이에요. 코다인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최근에 코다인 아이를 진단평가한 적이 있어요. 상담하는 과정에서 관찰을 해 보니까, 떼를 쓰다가도 엄마가 한 번 토닥여 주면 다시 조용해지더라고요. 농인이든 청인이든 아이들과 부모님의 관계는 견고하다는 걸 느꼈어요. 살아가면서 '어, 나는 이런 환경 때문에 저 사람들과 조금 다른 건가?' 생각하기보다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면서 어려운 순간들이 있고, 나만의 독특한 면이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는 말을 하고 싶어요.
*해당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허락을 받은 내용으로만 구성하였습니다.
*대표 이미지 출처: can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