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카페에 앉아 한 지인과 나눈 대화입니다. 청각장애에 관해 배울 때 딱 한 번 스치듯이 들은 것 외에는, 코다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어요. 그만큼 '특수교육'을 전공하는 저에게도 낯선 단어였던 것이지요.
'특수교사 될 거라면서, 코다라는 단어도 기억 못하나?'
순간 죄책감에 사로잡혔어요. 집에 돌아가는 길에 황급히 검색창에 '코다 이야기', '코다 인터뷰' 등을 쳐 보았어요. 하지만 검색에 걸리는 내용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언젠가는 코다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10월 말, 코다인 지인 두 명을 간단하게 인터뷰 해 보았어요. 이 짧은 인터뷰는 '코다로 살아가는 게 이렇게 달라!', '코다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을 더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처럼 어떤 문제 의식을 제기하고자 하는 글은 아니에요. 그냥 태어나 보니 '코다'인 한 개인의 이야기 입니다. 뉴니커들이 '이 세상에는 '코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고, 이런 일을 겪기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구나!' 정도로 이 글을 읽어주면 좋겠어요.
✅️ 용어 알기
농인 : 청각장애인 중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
청인 : 농인에 대비되는 개념. 음성 언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하는 사람.
코다(CODA) : 'Children Of Deaf Adults'의 줄임말로, 농인 부모를 둔 청인 자녀.
20대 초반 코다, 배추🥬의 이야기 🍋🍊: 코다로서의 성장 과정이 궁금해요. 언제, 어떻게 '코다'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는지도요. 🥬: 농인 부모의 가정이라는 건, 생각보다 청인 부모의 가정과는 많이 달라요. 한글을 배워야 하는 시기에 집에서 한국어를 들을 수가 없어서, 청인인 이모가 와서 함께 살기도 하고요. 차에 타면 늘 CD로 동요를 틀어주시곤 했어요. 책도 많이 사 주셨었고... 만화책을 많이 보기는 했어요(웃음). 언어적 자극에서 손해를 볼까 많이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외동이어서 더 걱정하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코다로 자라는 건 순탄치 않았어요. 일단 사회성 발달이 굉장히 늦었어요. 집에서 사회성 관련 케어를 그렇게 잘 받았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차라리 형제자매가 있었으면 괜찮았을까 싶어요. 타인과 어떻게 상호작용해야 하는지 초등학교 5학년 정도까지 잘 몰랐어요. 친구들에게 상호작용을 할 때 어깨를 두드리던지 했고... 농인의 행동 같죠. 유치원 때 거의 혼자 놀았었어요. 초등학교 때는 왕따를 당해서 거의 기억이 없고, 초등학교를 굉장히 싫어해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점점 친구가 생겼어요. 그때부터 사회성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보시면 돼요.
친구에게 농인 가정임을 당당하게 오픈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진학 후부터예요. 그 때는 스스로도 성장했고 친구들도 성장했으니까, 친한 친구들에게만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3학년 때는 작게 수어 동아리 를 해서 전교생 앞에서 수어 영상을 보여줄 정도로 많이 당당해졌어요. 특수교육과에 진학한 이후로는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확실히 다른 사람들보다는 언어에 트여 있는 것 같고, 농문화를 안다는 게 특수교사로서 의미가 크더라고요!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코다'라는 제목의 영화 광고를 봤었어요. 마침 유튜브에서 '반짝이는 박수소리' 소개 영상처럼 여러 코다 콘텐츠가 나올 때여서, 그 때 저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꽤나 기뻤어요!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더 있다니!
(🔽 코다(CODA)인 이길보라 감독의 2015년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 소리>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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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 친구들이랑 길거리를 걷다가 영상통화 하시는 농인 분을 봤었어요. 그 분이 "나 17만원 벌었다, 짱이지!"라고 말씀하셔서 그대로 '풉!'하고 웃음이 터진 적이 있어요. 친구들이 왜 웃냐고 해서 설명해 줬더니 다 같이 웃었던 해프닝이 있어요.
🍋🍊: 어떻게 보면 농인과 청인의 세계에 모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잖아요. 그 가운데에서 한 경험 중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 있을까요? 🥬: 모두에 속하면서 모두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농인만큼 수어를 잘하거나 농문화를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보통의 청인처럼 농인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는 것도 아니니 장애혐오적인 순간을 마주할 때 힘들어요. 어딜 가나 이방인이라고 느꼈는데, 이게 보통 이중언어사용자(bilingual)나 어릴 때 여러 문화권에서 자란 사람들이 겪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청각장애 특수학교로 교생을 갔었어요. 수어와 구어를 모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고, 제가 수어를 정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랑 비슷한 코다를 친척 말고는 아직 만나보지 못해서, 그렇게 동질감 드는 환경은 그 학교가 처음이었던 것 같네요.
"모두에 속하면서 모두에 완전히 속하지 않는 것 같아요."(이미지 출처: canva) 🍋🍊: 두 세계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이 있나요? 🥬: 많아요! 너무 많아요. 작년에 엄마 쪽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였어요. 가족 내 대소사가 있을 때 항상 제가 통역을 해요. 외가 쪽 어른들 중에는 농인도 계시고 청인도 계세요. 그래서 법 같이 깊은 내용으로 들어가면 서로 소통이 어려워요. 재산 분할 논의를 할 때, 저만 같이 들어갔어요. 장례식 때 장례지도사가 하는 말도 전부 제가 통역했고요. 그런데 저도 손녀잖아요. 저도 슬픈데 그 상황에서 온전히 슬퍼할 수 없고 통역사로서의 저를 켰다가 손녀로서의 저를 켰다가. 왔다갔다하는 게 되게 힘들었던 기억이 있네요.
아주 어릴 때 에피소드도 생각나요. 9살 때쯤부터 '전화'는 제가 다 도맡아서 했어요. 배달 전화도 제 몫. 쇼핑을 나가거나 음식점에 가면 통역하는 것도 다 제 몫. 그래서 일찍 성장한 것 같아요. 9살 때 엄마, 아빠랑 외식을 하러 나갔는데, 건너편 3인 가족이 계속 우리를 쳐다보면서 얼굴을 찌푸리는 거예요. 제가 "뭘 쳐다보세요?"라고 말했더니... 제대로 대답도 안 하고. 그 이후로 외식하자고 하면 가기 싫다고 얘기하게 됐어요.
이건 14살 때 일인데, 엄마랑 같이 옷 구경을 하러 갔어요. 엄마가 어떤 옷을 보고 싶다고 얘기해서 그걸 통역했더니, 가게 점원이 되게 무시하는 거예요. 어린 여자 아이가 나이 든 장애 여성이랑 같이 가니까, 어린이혐오, 장애혐오, 여성혐오를 한꺼번에 느꼈어요. 이렇게 예의 없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에게 통역하기가 좀 그래요. 제가 좀 더 나이를 먹었을 때는, "지금 뭐라고 하신 거예요?"하고 싸운 적도 있고요. 요즘은 그런 일이 거의 없는데, 8~9년 전쯤에는 그런 일이 진짜 많았어요.
대학생이 돼서 기숙사에 들어갈 때였어요. 기숙사 올라가기 전에 엄마, 아빠 알뜰폰 가입을 시켜 주려고 전화 너머로 상담사하고 얘기하던 중이었어요. 가입을 하기 직전이었는데, "약관에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네"라고 대답해야 하는 절차가 있었어요. '부모님이 청각장애인이셔서 '네'와 '아니오'의 판별이 어렵다'라고 하니까 '그러면 가입이 어렵다'라는 거예요. 그러더니 내부 협의를 하더니 다음 날에 다시 전화를 해 준다고... 다음 날에 전화해서 "음성만 나오면 가입이 됩니다"라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저는 그 '가입이 안 된다'라는 말이 진짜 충격이었어요.
🍋🍊: 사람들은 상대방이 '코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어려워하기도 해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장애'를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워할 수밖에 없는데요, 코다는 어쩌면 거기에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는 느낌인 것 같아요. 특수교사로 일하는 저에게도 다소 낯설게 여겨지는 개념이었고, 많이 생각해 보지 못한 주제였어요. 사람들이 코다를 만난다면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먼저 그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냥 평소대로 해!" 라고 할 것 같아요. 괜히 어려워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게 더 불편하게 느껴져요. 장애가 조심스러울 건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게 더 차별적인 느낌이 들어요.
저는 대학교 동기들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코다이고, 수어를 할 수 있다,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 달라'고 먼저 이야기했고, 실제로 물어봐 주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수어 관련해서 이 수어를 써도 되는지 컨펌해 주기도 하고, 수어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코다가 다리 여섯 개 달린 생명체는 아니니 그냥 평범하게 대해 주면 좋겠어요. 또 수어를 하지 못하는 코다도 있고, 수어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싶어하지 않는 코다도 있을 수 있으니까, 개인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대해 주면 좋겠어요.
🍋🍊: 수어나 농인은 미디어에서 꽤 많이 다루어진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반짝이는 워터멜론>을 재미있게 봤어요. 하지만 미디어에 많이 등장하는 만큼 왜곡되는 지점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디어에 등장하는 코다에 관한 의견이 궁금해요. 🥬: 영화 <코다> 앞부분을 잠깐 봤었는데, 꽤 고증이 잘 됐다 고 생각했어요. 직접적인 수어가 등장하는 장면도 그렇고, 온 가족이 함께 수어를 사용하는 장면도 그렇고요. 확실하게 말하고 싶은 건, '코다의 노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예요.
(🔽 영화 <코다>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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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유아특수교사로 일하고 계시지요. 코다인 아이들을 위해 어떤 지원이 있으면 좋을까요? 또 코다를 위해서는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할까요? 🥬: 제가 만약 코다인 아이를 알게 된다면, 농인의 방식으로 함께 의사소통하고 '반짝반짝 시간'을 정해서 수어로 의사소통 하거나, 몸짓으로만 대화해 보는 시간 을 가져볼 것 같아요. 저는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한 집에서 자랐거든요. 그 고요함을 공감해 주고 다른 친구들과 함께 느껴보고 싶어요. 더불어 그 아이의 부모님께도 수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청각장애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특수교사가 있으니 걱정 마시고 소통하시라고 안내할 것 같아요.
코다를 위해 필요한 지원이라... 저는 학창 시절에 수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어서, 부모님과 소통할 때 "~라고 한 거 맞아요?", "이해했어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었거든요. 코다 아이들은 수어를 배우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수어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 해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어쩌면 수어가 가장 필요한 사람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반짝반짝 시간'을 정해서 수어로 의사소통하거나, 몸짓으로만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 것 같아요."(이미지 출처: canva) 🍋🍊: 제가 직업을 선택할 때도 '가족'이 정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코다라는 사실이 직업 선택에는 얼마나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 90% 이상 이라고 봐도 무방해요. 10%는 제 적성이고요. 수어를 할 줄 알고 농문화를 안다는 것 자체가 후천적인 적성이에요. 장애에 대한 이해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어요.
🍋🍊: 그럼 만약 유아특수교사를 안 했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나요? 🥬: 아마 의사를 했을 것 같아요. 의사가 제 적성과 되게 잘 맞는다는 걸 최근에 알게 됐거든요.
🍋🍊: 코다로서의 삶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 '외줄타기' 예요. 아무리 농인과 가까워지고 싶어도 들리는 귀를 막을 순 없고, 청인과 가까워지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자란 환경이 다르기에 장애혐오를 대면하는 순간이 있어요.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모습이, 농인과 청인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 제 모습 이랑 비슷해 보여요.
"'외줄타기'예요. 농인과 청인의 경계에서 혼란을 겪는 제 모습이랑 비슷해 보여요."(이미지 출처: ChatGPT 및 canva) 🍋🍊: 마지막 질문이에요. '사람들이 코다에 대해 이것만큼은 알았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을까요? 🥬: 코다의 정의 를 알아주면 좋겠어요. 그게 뭐냐고 묻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요. Children Of Deaf Adults, 농인 부모의 자녀라는 뜻이에요. 보통 '코다'라고 하면 '농인 부모의 청인 자녀' 를 칭해요. 농인 부모의 농인 자녀는 자신을 그냥 농인이라고 소개하더라고요.
*해당 인터뷰는 인터뷰 대상자에게 허락을 받은 내용으로만 구성하였습니다.
*대표 이미지 출처: can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