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 위로가 필요한 동료 시민들에게 🕯️
작성자 라라스윗
시사 Re:BOOT
탄핵 정국, 위로가 필요한 동료 시민들에게 🕯️
정말 고생했습니다
서로 약속하진 않았지만 함께 자리에 있었을 내 오랜 친구들. 시위 현장에 나오진 못 했어도 계속 뉴스를 확인하며 마음 쓰고 괴로워 했을 내 모든 인연들. 민주사회의 동료 시민들.
공당이 국민을 상대로 한 폭거를 비호하고, 자신의 당 대표를 위헌적으로 체포하려던 친위 쿠데타를 눈감고, 내란을 용인한 오늘, 대한민국은 사법과 행정에 이어 의회마저 제 기능을 상실하고 타락했음이 증명됐습니다.
이 정부 이래 근원적으로 마음 편한 날 없었지만, 12월 3일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권위주의 대한민국이 되어 버린 날부터 저는 생각했습니다. 여수・순천, 제주의 비극과 내 아버지가 태어난 1960년 피의 화요일을. 부마의 거친 함성과 뜨겁게 흘린 광주의 피를, 서울시청 앞을 가득 메운 6월의 구호를.
대의 민주주의가 무너진 12월 7일, 저는 여러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위기와 최후의 보루를 목도합니다. 여당 국민의힘은 자신들의 탄핵 트라우마를 이유로 감히 대한민국의 군부 트라우마, 계엄 트라우마, 권위주의 트라우마를 외면했습니다. 시민은 민의가 왜곡돼 절차로 발현되는 과정 속, 민주주의의 본질과 무게를 실감하며 자책 섞인 분노로 일갈했습니다.
내란 앞에 존엄은 없습니다
대한민국 형법 제87조에 내란은 “대한민국 영토의 전부 또는 일부에서 국가권력을 배제하거나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으로 일으킨 폭동”이라고 규정돼 있습니다. 선배 세대가 우리의 오늘날 소중한 일상을 위해 피로 일궈낸 최소한의 제도를 폭력으로 무력화하고 뒤엎으려는 시도를 의미합니다. 이승만이, 박정희가, 전두환이 그랬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엘리트주의로 점철된 정계에서 표 싸움이나 벌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친위 쿠데타로 내란의 죄를 저지른 이들이 즐겨 쓴 비상계엄만 봐도 개개인의 삶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산 가치가 폭락하는 등 경제적 영향이나, 외교가 멈추고 국가 신용등급이 추락하는 등 대외적 영향은 부차적인 수준입니다.
먼저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뒤집혀 군이 민간인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공공질서 및 치안 유지의 명목으로 민간인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하는 등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습니다. 형법상 중한 범죄를 포함해 공무 집행 방해까지 군사법원에서 재판받을 수 있습니다. 즉, 시민으로서의 존엄을 송두리째 앗아가고,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습니다
이번 비상계엄이 ‘교과서에서나 본 일’이라는 수사로 설명되곤 하는데, 이는 단순히 교과서에 수록된 내용이라는 걸 의미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비상계엄은 세계 여느 나라가 그랬듯 우리나라가 민주주의를 학습해 온 길 위에서 나타난 반작용입니다. 그리고 54년이 지난 2024년 국민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킨 초유의 상황. 우리는 민주주의가 완성된 채 주어진 것이 아니라 끝없이 학습해야 하고 가꿔나가야 할 대상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해야 합니다.
숱하게 인용돼 이젠 머쓱하기까지 한 말을 덧붙이겠습니다.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말입니다.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합니다. 우리 민주주의도 선진국 수준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성숙한 민주주의를 이뤄 가야 합니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 관용, 통합을 실천해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민주주의의 완전한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할까요?
당파를 초월해 ‘민주주의의 완전한 이상과 가치 실현’을 위해 오늘날 우리 시민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총선인 22대 총선은 올해 4월에 이뤄졌습니다. 절차적 심판은 차기 총선이 열리는 2028년에나 가능합니다. 아무리 여당이 ‘내란의 힘’이요 ‘국민의 적’이 되어버렸다고 해도, 여당을 향한 폭력을 행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에 동료 시민들에게 아래 다섯 가지를 간곡한 마음으로 부탁합니다.
첫째, 계속될 탄핵 정국 속, 우리는 깨어있든 깨어있지 않든 민의를 모아 ‘조직된 힘’으로 뭉쳐야 합니다.
둘째, 탄핵이 성공한 이후에도, 사회적 혼란과 권력 공백에 눈을 떼지 않고 민의를 표출해야 합니다.
셋째, 내란 수괴와 주모자, 부역자를 절대 잊지 않고 합당한 처벌이 이뤄지는지 확인하고 감시해야 합니다.
넷째, 김동춘 교수의 책 제목처럼 이것은 ‘기억과의 전쟁‘으로, 고통스럽고 지겹더라도 이 모든 걸 끝까지 기억해야 합니다.
다섯째, 광장에서의 촛불 민주주의를 넘어 풀뿌리 민주주의 등 우리에게 더 나은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라는 믿음
정파와 지역, 계급, 젠더와 세대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대한민국이지만 우리가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헌정 대한민국의 제도적 근간이라는 믿음 만큼은 하나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이 나라를 독점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시민사회를 유린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올바른 보수적 가치를 온존하며, 끝없이 진보하길 희망합니다.
마음 쓰며 잠 못 이룬 여러분,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4.12.08. 여러분의 동료 시민 라라스윗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