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고객은 떠날 준비를 먼저 한다

10) 고객은 떠날 준비를 먼저 한다

메밀국수호랑이
@kee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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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피부관리를 받아본 적이 있습니다. 난생 처음이어서 망설였지만, 최초 상담했던 부점장이 인상이 좋으시고 말씀도 잘 하셔서 10회권을 계약했습니다. 직접 관리도 해주시고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해줘서 만족했습니다.

3회차부터 초짜 관리사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트집 잡을 만한 내용은 없었지만 매번 관리사가 바뀌니 괜히 어색하고 제대로 케어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7회차에는 사소한 실수로 대기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요.

그런데 9회차가 되자 갑자기 부점장이 다시 들어왔습니다. 재계약 얘기를 꺼내면서요. 새로 계약하면 추가 혜택이 있다, 자기에게 인센이 더 들어오면 고객에게도 더 돌려드릴 수 있다고 읍소했습니다. 그제서야 기분이 나빴습니다. 좋은 계약을 유도하려 했다면 더 빨리 얘기했어야 했고, 좋은 서비스가 있었다면 이번에 받을 때 자연스럽게 체험하게 해줬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처음에만 잘하고 그동안은 신경도 쓰지 않다가, 막판에 와서야 잘해보겠다고 말하는 게 더 싫었습니다.

재계약은 당연히 안 했습니다. 그 관리사가 문득 생각난 건 제 우량 고객사 재입찰이 깨지고 난 후였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삼성동에 위치한 제약회사였습니다. 회사 규모도 크고 해외 진출도 활발해서 교육 비용 지출을 아끼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인수인계 받았을 당시 3.5억 남짓이었던 규모를 저는 1년 안에 5.5억으로 키웠습니다. 무려 2억이 늘어난 거였습니다. 열심히 한 결과로 스스로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느 날 컴플라이언스 강화로 이제 3년에 한 번씩 입찰을 띄운다는 연락이 담당자에게서 왔습니다.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담당자와의 관계도 좋았고, 계열사별로 담당자들을 별도로 만나며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여러 루트도 마련해 놨었습니다. 담당자도 크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무난하게 입찰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결과는 무참히 깨졌다

탈락이었습니다. 솔직히 얘기해달라고 했더니 담당자가 그제서야 본심을 꺼냈습니다.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이유는 이랬습니다. 계약 진행 중에도 좋은 내용이나 업데이트할 수 있는 부분을 선제안하지 않았다는 것. 트렌드는 급변하는데, 그에 맞게 따라오지 않는 것 같다는 의견. 윗선에서는 그런 느낌을 이미 받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직원 내부 건의사항도 종합했는데 과정이 너무 별로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과정은 경쟁사도 크게 다르지 않으니 그건 핑계였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오래 썼는데 크게 강점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이 왔다."

위에서 이미 그렇게 정리된 내용이었습니다. 한 번 바꿔보자는 의견이 입찰 통보보다 훨씬 먼저 나와있었던 거였습니다. 무력해졌습니다.


그제서야 보인 신호들

지나고 나서야 보였습니다. 그 관리사처럼 저도 마지막에야 움직이려 했다는 걸.

매출이 2억 늘었다는 건 제 입장의 성과였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게 중요하지 않죠. 오히려 돈을 더 쓰는데 챙겨주지 못하는 빌미를 준 것입니다. 저는 트렌드에 맞춘 선제안, 새로운 시도. 추가적인 서비스등을 기획해서 먼저 드렸어야 했습니다. 익숙함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무언가를 보여주고 매순간 인정을 받아야 했는데.. 저는 관계가 좋다는 이유로 안주했습니다.

피부관리실 부점장이 9회차에 와서 재계약을 권유했을 때, 저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습니다. 제 고객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었습니다. 입찰 통보가 왔을 때, 사실은 이미 결정이 끝나있었던 겁니다.


재계약은 마지막이 아니라 처음부터

재계약은 입찰 시점에 결정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9회차에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1회차부터 매번의 만남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포인트죠.

좋은 관계는 기본입니다. 거기에 더해 매번 새로운 가치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 익숙해지는 순간 고객은 떠날 준비를 시작합니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하아.. 5.5억 이걸 어디서 만들어오나."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