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담당자가 바뀌었을 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가
작성자 메밀국수호랑이
[미팅이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8) 담당자가 바뀌었을 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가

영화 〈인턴〉에서 70세 인턴 벤은 이렇게 말합니다. "경험은 절대 나이들지 않는다."
담당자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 속 관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시 설명하면 그 뿐입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연락에는 부정적인 리스크를 걱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아. 또 리셋인가."
그동안 쌓아온 대화, 설명했던 내용, 조금씩 맞춰왔던 방향까지. 전부 초기화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어느 정도 진척이 있던 딜일수록 그 허탈감은 더 크게 다가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그 귀찮음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었다
담당자가 바뀐 고객사에 찾아갔을 때였습니다. 새 담당자를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담당자가 사업에 대해 이해를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살짝 답답한 마음에 속에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혹시 전임자에게 인수인계 못 받으셨나요?"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습니다. 새 담당자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스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그냥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어요? 제가 이미 맡은 프로젝트가 많은데, 이런 사소한 것까진 못 보거든요."
우리 사업을 사소하다고 했습니다. 뜨끔함과 민망함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귀찮다는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 거였습니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그 자리가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쌓아온 관계는 나만의 것이었다는 걸. 새로운 담당자 입장에서 저는 그냥 처음 만나는 영업사원일 뿐이었습니다.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그 이후로 마인드 컨트롤을 엄청나게 했습니다. 유튜브를 보니 싫은 상대를 그냥 사랑해 버리면 된다는 걸 누가 얘기하더군요. 반신반의했지만 간절한 마음을 안고 새로운 담당자가 왔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다.'
처음에는 억지로 하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습니다. 그 사람의 장점만 보기로 했습니다. 외모, 말투, 사소한 행동도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반드시 마음에 담았습니다.
설레는 마음과 귀찮은 마음은 상대방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담당자가 바뀌었다는 건 사람만 바뀐 게 아니라 판단 기준도 함께 바뀐 것입니다. 같은 자료를 반복하기보다, 이 사람이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를 먼저 확인하는 게 먼저입니다.

달라진 마음으로 달라진 결과를 만났다
경상북도 구미에 위치한 공공기관이었습니다. 기존 담당자는 이해도가 높았고, 함께 쌓아온 신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공기관 특성상 담당자가 매년 바뀌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담당자가 배정됐습니다.
뜨끔했던 그 경험 덕분에 이번엔 처음부터 설렌다 생각하고 미팅에 임했습니다. 관계 형성, 회사 소개, 사업 이해도 안내까지. 귀찮다는 감정 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마음으로 접근했습니다.
새 담당자는 의욕이 넘쳤습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았습니다. 원하는 것들이 계약 범위를 한참 벗어나 있었지만, 그 에너지 자체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같이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일이 있을 때마다 구미까지 내려갔습니다.
사실 서울에서 경북 구미까지는 쉬운 거리는 아닙니다. 시간도 돈도 꽤 들어갑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담당자 입장에서는 그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이렇게까지 자주 내려오는 업체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런 모습이 성실해 보였는지 예상치 못한 보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담당자가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사업 구조를 설계해준 것입니다. 공정성이 있어야 하는 공공기관이다 보니 몇 번의 수정을 거쳤지만, 당연히 우리도 그 사업에 최적화되도록 노력했습니다.
결론은 담당자가 바뀐 덕분에 기존 계약을 더 유리하게 바꿔서 재계약에 성공했습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 담당자가 저를 다른 기관에도 소개해줬고, 추가 계약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덜컹했던 그날이 나를 바꿨다
"인수인계 안 받으셨나요?" 그날의 덜컹했던 경험은 저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줬습니다. 어쩌다 보니 담당자를 사랑해 버리는 방법을 택하게 됐는데, 민망하지만 효과적이더군요. 그저 설레는 마음을 먹고 대했을 뿐인데, 더 좋은 결과로 보답받는 날도 있었고요.
담당자가 바뀌었을 때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가. 네, 그럼요. 하지만 그 다시는 리셋이 아닙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기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