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계약 직전에 뒤집히는 이유
작성자 메밀국수호랑이
[미팅이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6) 계약 직전에 뒤집히는 이유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위험했다
그날은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계약 규모만 2.3억. 강남에 위치한 국내 대표 렌탈사였습니다. 미팅도 두 번 했고, 수정 제안도 한 번 들어갔습니다. 조건도 어느 정도 맞춰진 상태였습니다. 경험도 많았고 담당자도 호의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이미 샴페인을 터뜨릴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팀원들한테 말할지, 이달 실적이 어떻게 잡힐지까지.
"편하게 클로징 할 수 있겠다. 이번 달은 내가 팀을 구원하리라."

팀을 구원하기는커녕
점심 먹고 자리에 막 앉았을 때였습니다. 옆 팀장님이 지나가다 멈추더니 별일 아닌 듯 말했습니다.
"너 떨어졌다며? 다른 업체 담당자가 나한테 전화왔더라."
아직 고객사한테 연락도 받지 못한 저는 당황과 불쾌함이 동시에 밀려왔습니다. 그 얼굴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었습니다. 아직 본인의 정보력이 살아있다는 뿌듯함, 그리고 우리 팀 실적이 하나 빠졌다는 은근한 만족감. 영업의 적은 경쟁사가 아니라 옆 팀일 수도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습니다.
더 황당한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옆 팀장님을 통해 들은 내용은 이랬습니다. 총 3개 업체가 경쟁했고, 우리는 가장 먼저 탈락했습니다. 옆 팀장님 지인 회사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최종 선정된 건 2순위 업체였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키맨이었던 상무가 일방적으로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대기업도 공기업처럼 공정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사기업은 사기업이었습니다. 임원 한 명의 판단이 모든 과정을 덮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모든 서비스를 다 제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왜 안 된다는 걸까. 비슷한 일을 몇 번 더 겪고 나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계약이 깨지는 이유는 마지막에 생기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쌓여 있던 것들이 끝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는 걸.
돌이켜보면 그 미팅에도 신호는 있었다
마음이 가라앉고 나서야 그 미팅을 다시 떠올려봤습니다. 신호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첫 번째, 확신이 아니라 호의였다는 점입니다.
고객은 친절했습니다. 리액션도 좋았고, 대화도 부드럽게 이어졌습니다. 있는 그대로만 판단한 저는 지나친 긍정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확신이 아니라 그냥 좋은 태도에 가까웠습니다.
진짜로 진행할 생각이 있는 경우는 어느 순간부터 질문이 달라집니다. "이 일정 가능하실까요?" "이 부분 조금 조정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건 실행을 전제로 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날 미팅 이후 끝까지 그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의사결정자가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실무자와의 대화는 잘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내부 공유 후 결정하겠다"는 말이 반복됐습니다. 큰 회사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압니다. 결정하는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제안도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기업에서는 그 결정권자가 생각보다 훨씬 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 번째, 비교 구조 안에 있었던 미팅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미 그 회사는 여러 업체를 동시에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선두업체라 생각했지만 사실 우리는 가능성 10% 미만의 스페어 업체였습니다. 그것도 나중에 알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가 했던 가장 큰 실수는 "거의 됐다"는 착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생긴 습관
계약 직전은 마무리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선택 구간입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서는 반드시 확인합니다.
"혹시 이번 건은 어떤 기준으로 최종 결정이 이루어질까요?"
이 질문은 단순하지만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비교 안에 있는지, 혹은 거의 확정 단계인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무자가 답을 주지 않는다면, 다소 무례하게 보이더라도 그 위의 결정권자를 직접 찾아야 합니다. (키맨 찾는 법은 별도 글로 다시 안내 예정)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단계에서 반드시 해야 할 게 있습니다. 의사결정자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실무자만 알고 있는 제안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정하는 사람이 이해한 제안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계약은 구조가 만들어졌을 때 이미 끝난 것이다
1) 누가 결정하는지,
2) 어떤 기준으로 비교되는지,
3) 왜 우리여야 하는지.
이 세 가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그 계약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습니다.
지금도 2.3억이라는 숫자를 보면 소식을 전하는 게 즐겁다는 듯 들어오던 옆 팀장님의 슬쩍 올라가던 입꼬리가 먼저 떠오릅니다. 그 미소 덕분에 더 꼼꼼하게 계약을 챙기는 좋은 버릇이 생겼습니다. 실패가 늘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