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룩백] 서로가 서로에게 찬란했던 그 순간이여

작성자 메밀국수호랑이

[영화 룩백] 서로가 서로에게 찬란했던 그 순간이여

메밀국수호랑이
메밀국수호랑이
@kee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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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평]

"일단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를 보지 않았고, 스포가 싫다면 창을 닫아주시길 바랍니다."

​[평론가 평가]

이동진 : 8.0 / 컷이 바뀔 때마다 사무치기도 하고 어찌할 수 없기도 한 세월이 툭툭툭 넘어간다.

김경수 : 8.0 / 원작에 생명을 더한 더없이 황홀한 작화, 덕후의 마음을 감싸안는 최선의 위로

박수용 : 7.0 / 도약과 소망의 네컷 조각들을 수호하는 등의 표정

이우빈 : 7.0 / 나의 뒤를 맡긴다는 것은, 당신을 온전히 품겠다는 신애의 발로

메밀국수호랑이 : 8.0 / 서로가 서로에게 찬란했던 그 순간이여

영화는 후지노의 뒷모습에서 시작한다. 초등학교 4학년인 소녀 후지노는 만화에 재능이 있다. 학보에 실리는 4컷 만화를 정기적으로 그리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의 만화에 친구들은 매번 좋은 리액션을 헌사한다. 그 반응으로 인해 그녀는 에너지를 얻는다. 그러던 어느 날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또 한 친구도 4컷 만화를 그리고 싶어 기회를 주고 싶다고 하고 그는 승낙한다. 다음 학보에 실린 만화를 본 그는 상대가 그린 그림의 퀄리티에 충격을 받는다. 그 자극으로 인해 그는 각성하게 되고 한 층 더 진화하며 그로 인해 일어나는 이후의 이야기는 점점 더 풍성해진다.

'룩백'은 만화로 서로 영감을 주고받으면서 성장하는 후지노와 쿄토모의 찬란한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쿄토모의 존재 덕에 후지노는 그간 살아온 본인 중심의 세상에 또 다른 실력자가 있다는 것에 놀라 한층 더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교토모의 그림 실력에는 미치지 못하고, 친구들도 어느덧 너무 만화에 몰입하는 그녀에게 오타쿠 등을 언급하며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냐는 식으로 채근한다. 그러나 그의 원동력은 만화였는데 이걸 어쩌나. 그 간극사이에서 망설이던 어린 영혼은 어느날 결심한다. 그토록 사랑한 만화는 포기하고 친구들 사이로 젖어들기로. 그러나 운명은 둘을 떨어뜨려 놓지 않았고, 우연한 기회에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더없이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둘의 몰입은 창밖의 계절의 흐름을 통해 묘사된다. 후지노는 메인 작가로, 쿄토모는 백그라운드 작가로서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어린 나이임에도 성공가도를 달리는 영예를 안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한 순간, 쿄토모는 더 큰 발전을 위해 궤적을 틀게 되고, 너무 아쉽지만 그들은 그렇게 멀어진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내가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을 상상하게 하는 끔찍한 사건이 찾아온다.

후지이는 발산하는 것으로 에너지를 얻는 활발한 사람이었고, 쿄토모는 수축하는 몰입의 에너지를 가진 수줍은 사람이었다. 힘의 방향성이 다른 둘은 오히려 최적의 케미를 발산하는 파트너가 되고 만화라는 매개체로 더 응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이었던 시절. 최고의 만화를 위해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았던 순간. 그 시간이 영원했으면 좋으련만 야속하게도 시련은 찾아오는데, 그 시련은 실제 2019년 일어난 교토의 교토 에니메이션 스튜디오의 방화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 더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둘의 주 공간인 아키타현의 풍경은 참으로 아름답다. 백그라운드의 내용이 많이 들어가서인지 내용도 훌륭하지만 배경도 너무도 매력있다. 한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이지만 이야기와 배경을 바라보는 그 재미와 감동은 충분하다. 둘의 진심이었던 시간, 한가지에 몰입해 이뤄나가는 과정은 기특을 넘어 존경의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얘기치 못한 사건은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라는 가정까지 끌고 와 서로를 존재를 부정했으면 현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절절함으로 표현되는데 너를 모르는 다른 세계로 갈 지라도 너의 안녕을 바라는 가슴 아픈 고백 속 형언할 수 없는 '한'의 크기가 느껴져 더 몰입이 된다. 흡사 최근 몇년 간 한국에서 일어났던 굵직한 참사가 생각나 한동안 먹먹해지기도 했다.

​마지막 영화는 다시 후지노의 뒷모습을 비춘다. 후지노는 다시 만화가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쿄토모의 4컷 만화를 창문 앞에 붙여놓고서 말이다. 본인 등 뒤에서 늘 힘이 되어주던 쿄토모를 기억하며 오늘도 묵묵히 꾸준하게 달려나간다. 처음처럼. 그 때 그 마음을 안고서.

리뷰 : 메밀국수호랑이